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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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의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읽었다.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남형도 기자의 일상을 보게 되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실제로 기사 대상의 입장이 되어 하루를 보내기에 ‘체헐리즘’이라는 합성어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 나온 내용은 목줄에 메인 개의 하루를 살아보는 것이었다. 실제로 1미터 밖에 안되는 목줄을 발에 채우고 영하의 날씨에 개집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사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사람도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목줄을 발에 걸고 보낸 하루에 대한 감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했다. 누군가에게는 미천해보이고 심지어 손쉬운 놀이대상이나 처분이 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지는 개와 같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과 무언가에 묶여 있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진실하게 보여주었다. 


머니투데이에 연재되는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이렇게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그동안 그가 체험했던 내용들을 어서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고, 아니 어떻게 이런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신박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얼마나 진심으로 체험 대상들의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지 그가  전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관심을 갖고 주의깊게 선택한 대상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거리를 거닐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쉽게 마주치는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면 가슴 한 구석이 쓰리게 느껴지며 연민의 마음이 들다가도 쉬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게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했다. 


저자의 글 중에 ‘폐지 165킬로그램 주워 1만 원 벌었다’라는 내용을 보고 고구마 한 덩어리를 생으로 삼킨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운전을 하다보면 리어카에 산처럼 박스를 싣고 좁은 도로를 거북이처럼 끌고 가는 연로한 분들을 가끔 마주치게 된다. 어서 빨리 저 신호를 받아서 가야되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급변하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가는 분들을 째려보기도 했었다. 가끔은 아이고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란 걱정도, 택배를 받을 때마다 박스를 뜯으며 아무렇게나 분리수거함에 내던졌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그런데 남기자가 소개한 최진철 씨는 하루종일 박스를 모아 팔아도 만원 남짓 벌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폐지를 모아 팔게 되는 이들은 어쩌다가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그가 무슨 잘못을 해서 아니면 억세게 운이 나빠서도 아니었다. 오래전 잘나가던 중식 주방장이었던 이가 일하다 쓰러저 병을 얻게 되고 몸에 장애가 생겨 하던 일을 못하게 되니 이렇게라도 일을 하여 자식들을 키우게 된 것이다. 저자가 폐지 수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허기가 져서 분식집 메뉴판을 보다가 떡볶이 2인분에 김밥 한 줄이면 최진철 씨가 하루종일 번 돈이 사라질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물음이 잔상처럼 남았다. 진정 괜찮은 걸까, 이들의 삶이 말이다.(146)”


읽는 내내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폐지 줍는 이들에 대한 내용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며 나 또한 큰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해 겨울, 토요일 새벽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15분이었다.

눈을 비비고 졸음을 애써 쫓았다.

그리고 내 기사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폐지를 함께 주웠던 최진철 씨 기사였다.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식사도 잘 못 하는 

그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가난해도 밥은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매일 1만 원 벌이라 치과 치료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댓글로 치과 치료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며칠에 걸쳐 메일 200여 통이 쏟아졌다.

그를 돕고 싶다고 했다.

편의점 야간 알바라 넉넉지 않지만 보태겠다고,

고등학생이라 용돈은 적지만 나누겠다고, 

기초생활수급자라 그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며칠 뒤 최진철 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울고 있었다. 

계좌에 모인 금액이 700만 원이라고 했다.

2년간 매일 폐지를 주워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치과 치료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의사도 있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는 그 말만 반복하며, 

수화기 너머에서 꺽꺽 울었다.

별로 한 게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뜨거운 게 목구멍에서 눈으로 차올랐다.


우리 삶이 그런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은 서툴더라도

온기 어린 공감과 작은 위로 덕에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살아나게 된다.

다가올 또 다른 하루가 고단할지라도 

다시 잘 살고 싶게 만드는 것도 

그 작은 것들의 힘이다.(3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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