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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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 작가의 [최단경로]를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좀처럼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쉽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진도를 나가면 주인공 혜서와 애영의 만남이 어렴풋하게 그려진다. 혜서는 라디오방송국 피디로 매번 심야시간 프로그램만 맡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아쉬워한다. 인기 있는 낮시간 프로그램을 맡았던 능력있는 재혁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혜서는 원하던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하지만 재혁의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준비하던 중 아이의 옹알이를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음악 속에 숨겨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혁이 반복적으로 찾았던 웹지도 상의 지점들이 그 숨겨진 소리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혜서는 무작정 암스테르담으로 휴가를 떠난다. 


이제 또 다른 주인공 애영의 이야기이다. 애영은 재혁과 고등학생 때 교제를 하다 그만 덜컥 아이를 갖게 된다. 애영의 어머니는 재혁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고 재혁은 아무말도 못한 채 돌아가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애영과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게 되고 그 이후에 애영이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야기의 전환은 암스테르담의 어느 레지던스로 옮겨지고 애영은 그곳에서 마이레라는 일본인 예술가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애영은 지원금을 받아 대학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지만 그녀는 안락사를 신청한 상태이다. 애영이 레지던스에 머물기 전에 잘못된 지도 어플로 인해 네비만 보고 운전하던 사람이 지도상에 보도가 나와 있는 않은 것을 모른채 질주하다 그만 애영의 아기와 어머니를 죽게 만든다. 그 이후 사고가 난 삼거리의 가로등에 애영의 아기가 애착하던 곰인형을 묶어두어 아기를 추모한다. 


혜서가 한국에서 재혁이 남긴 웹지도상의 지점들은 바로 애영과 아기가 지나간 발자취였고. 애영은 아기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재혁과의 짧은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만남에서 애영과 재혁의 핸드폰은 뒤바뀌게 되고 자신이 버린 아이의 죽음을 전해들은 재혁은 소리없이 사라지게 된다. 재혁이 남긴 흔적을 찾아 암스테르담에 온 혜서는 애영이 재혁의 핸드폰으로 남긴 족적들을 뒤쫓다 애영과 마주하게 된다. 재혁이 남긴 아이의 옹알리 소리는 애영의 핸드폰에서 추출한 것으로 추정되고 혜서는 재혁이 왜 그렇기 소리없이 떠났는지 알게 된다. 애영으로부터 사연을 듣게 된 혜서는 애영의 거처에서 마이레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애영을 위로하지만, 애영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혜서는 갑작스런 결정을 내리며 애영 곁에 머물 것을 결심한다. 혜서와 마이레의 뜻밖의 연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삶을 놓아버리려는 이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전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죄책감 호근 죄의식에 관한 소설로 읽혔다. 여기 한 때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이끌려, 그러니까 상징질서가 지정한 그 어떤 좌표에 최단경로로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한 남자가 있다. 그의 외면은 그녀를 불행에 빠뜨리고 그녀의 불행은 그녀의 어머니와 딸을 회복할 수 없는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이 불행의 연쇄들을 통해 [최단경로]른 비록 악의는 없었다 하더라도 혹은 심지어 선의의 의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걸 외면하면 그것은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러므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죄책감 혹은 죄의식을 느낀 존재-자들이 어떻게든 그 죄를 갚아 불행의 고리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류보선(170)"


"사실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어떤 장면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허들을 넘어야 한다. 솔직히 나는 그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거 지금 나를 적당히 살게 해주는 편하고 순진한 감정들에서 벗어나 심각하고 치열한 고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매번 소설을 쓰고 나서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어떤 사안을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어떤 인물을 이해하려고 이렇게까지 노력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치부와 진심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구는 순간이 있었던가. 없다. 일상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일들을, 소설을 쓰면서는 한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일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그건 힘들고, 부끄럽고, 신경질이 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허들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렇게 몰입하지 않으면 장면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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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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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를 읽었다. 작년 이맘 때 읽었던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자폐를 앓고 있는 소녀 오로르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바로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소리를 낼 수 없기에 태블릿으로 의사소통은 한다. 이번 이야기는 오로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겨난 에피소드이다. 전편에서 오로르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으로 형상들을 놀래키며 주베 형사의 부관으로 임명되었기에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형사 일을 돕게 된다. 오로르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주베 형사와 멜빌 형사 등과 조지안느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르는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이지만 막상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말을 못하고 태블릿으로 대화를 하는 오로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급기야 오로르를 괴롭히려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되지만 오로르는 기죽지 않고 지혜롭게 그 상황을 헤쳐나간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듯 학교 폭력에 대한 소재가 등장한다. 특히나 요즘은 SNS를 통해 일방적인 비방과 치부를 들추는 언어로 뒤에 숨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장점 중의 하나인 파급력이 엄청나기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청소년 시기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이버 폭력과 맞물려 신체적인 폭력과 갈취까지 이어진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극단적 선택의 상황까지 내몰리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왕따나 따돌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점점 조직적이고 예리해지는 이러한 학교 폭력 사태에 대해서 부모들고 선생님들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니, 그저 내 아이가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의 부모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오로르 이야기에서 특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설정은 바로 '참깨세상'과 '힘든세상'의 오고감이다. 오로르는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태블릿의 별을 그리고 '참깨세상'으로 가서 친구 오브를 만난다. '참깨세상'은 마치 유토피아처럼 부정적이거나 우울함은 1도 없이 오로지 진실과 사랑만이 가득한 곳이다. 오로르는 친구 오브에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위로를 받고 '힘든세상'으로 돌아온다. '참깨세상'에서 오로르는 태블릿을 이용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저자는 아마도 오로르가 '힘든세상'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신체적인 장애보다도 오로르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더욱 큰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오로르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아나이스 친구를 구하게 되고 부관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 이번 책에도 조안 스파르의 그림이 더해져 오로르의 귀여움이 더욱 부각되었고 등장인물들도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가 담겨 있기에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다른 사람을 보면 불편하다고 말해. 자기들이 생각하는 '정상'의 개념에 맞지 않는 걸 보는 게 싫은 거야. 그런데 '정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특별해 보이는 걸 억누르려고 '정상'이라는 개념을 스스로한테 강요하는 것뿐이야.(47)"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삶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모든 모험이, 자기 인생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306)"


더글라스 케네디가 전해주는 마지막 구절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구절(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과 너무나도 일맥상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시대와 지역과 초월하여 같은 결론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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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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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카피라이터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었다. 부제는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이다. 작년에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를 읽고 난 후, 습관적으로 난데 없이 어떤 음식을 먹고 나서 혼잣말로 'OO 맛이 나니까 OO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라는 내뱉곤 했다. 뭔가 재미있기도 하고, 후크송처럼 중독성이 있고. 라임이 딱 들어맞는 느낌도 들고 해서 ㅋㅋ. 최근에 저자의 새로운 에세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검색하다 이번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있다고 답하니, 돌아온 대답은 "정말 작가들은 제목부터 잘 짓는 것 같다'는 말이. 생각해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저자의 직업이 책 제목에서부터 너무나도 잘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모든 기록의 원천이 되는 저장소로 읽다: 인생의 기록, 듣다: 감정의 기록, 찍다: 눈의 기록, 배우다: 몸의 기록. 쓰다: 언어의 기록으로 구분짓어 놓았다. 책의 말미에 "나는 읽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259)"라는 한 문장으로 그녀가 어떻게 카피라이터로서의 삶을 준비해왔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문구를 예로 든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260)" 우리가 기억하고 생생히 떠올리는 추억의 모습들은 아주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마는 물줄기처럼 겨우 손바닥에 남은 한방울에 불과할지 모른다. 


몇년 전까지 책을 읽고 마치 컬렉션을 구성하는 것처럼 작가별로 책장을 꾸며여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냥 책장에 꽂아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짧은 형태의 독후감을 쓰는게 좋겠다고 결심했다. 어느덧 3년 가까이 독후감을 올리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서 어서 빨리 그 느낌들을 정리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읽는 도중에 이 부분은 나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라는 구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다시 한 번 필사하며 되새겨보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회자되었을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고 싶을 때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북스타그램을 열고 그 때 그 시절 그 책을 열독하던 나로 돌아가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한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정말로 맞는 말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마이클 커닝햄, 세월> 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 일상은 스탠드 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 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릿이 아니라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 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말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쨋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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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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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 조이스의 [뮤직숍]을 읽었다. 처음 접하는 영국 작가의 책이었는데, 마치 영화 한 편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등장 인물의 다음 여정이 너무나도 궁금해 책장을 넘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소설의 무대는 영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낙후된 유니트스트리트라는 곳이다. 이름에서도 뭔가 숨겨진 뜻이 새겨져 있듯이 언제 재개발이 될 지 모르고 시위원회로부터 오래된 건물들이 위태롭다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유니트스트리트에 사는 이들은 가족보다도 더욱 친말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하더라도 서로의 안위를 염려하며 아주 작은 일도 공유할 수 있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가 형성되기까지 뮤직숍의 사장인 프랭크의 공헌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에게는 여느 레코드샵의 주인과는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프랭크의 뮤집숍을 방문한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었는데, 프랭크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귀담아 듣고 그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적절히 선정해 주었다. 프랭크의 추천 음악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바로 그들이 찾고 있던 음악임을 인정하게 되고 더욱 더 프랭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프랭크 말고도 개성 넘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게 해준다. 프랭크의 뮤직숍에서 일하는 덤벙대는 청년 키트, 프랭크가 아니었던 어디선가 알콜 중독으로 삶을 마감했을지 모를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전직 앤소니 신부, 그리고 프랭크를 짝사랑하지만 언제나 툴툴거리며 삐딱한 척 하며 문신가게를 운영하는 모드 외 여러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과의 삶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쉼없이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일사 브로우크만은 갑자기 불현듯 별에서 떨어진 여자처럼 프랭크의 뮤직숍 앞에서 기절하게 되고, 프랭크와 일사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보면 넘치고 차는 러브스토리의 전형적인 전개처럼 여겨지지만 그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뭔가 색다르다. 바로 프랭크와 일사의 만남에는 음악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고, 바로 그 장애물이 사랑을 완성시키는 열쇠이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8년도에 우리나라 음반 시장은 가격이 조금 비싼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두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에 점차 CD가 양산되면서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모두 사양길을 걷게 되었지만, 지금은 어느덧 CD도 찾아보기 힘들어져 대부분 음원사이트를 통해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곤 한다. 이제는 어느 장치에 저장을 해서 음악을 듣기 보다는 언제든 원할 때 음악을 선택해서 듣고 대신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레트로라는 복고 문화가 다시 주목을 받으며 어딘가 먼지를 한 참 뒤집어 쓰고 있었을 LP판의 음악을 틀어주는 전문적인 카페들이 종종 생겨나고 있다. 


뮤집숍이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LP판만을 고집했던 프랭크는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바늘을 내려놓고 음악이 나올 때까지의 침묵을 중요시했다. 마치 존 케이지가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무대를 채웠던 것처럼 음악과 음악 사이의 침묵 그리고 LP판에서 음악이 재생되기까지 칙칙, 삑삑 거리는 소리까지 CD처럼 사용이 편리한 것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LP판을 케이스에서 꺼내 표면에 지문이 묻지 않도로 정성스럽게 끄트머리를 잡고 턴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고 바늘을 올리는 수고로움은 어쩌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해나가는데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프랭크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결국은 일사가 21년 간 준비한 헨델의 '할렐루야' 플래시몹으로 극복하게 되고 그들은 또 다른 손님들을 위로할 수 있는 새로운 뮤직숍을 운영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이 좋아요. 엘피판을 들으려면 제법 번거로운 과정이 있죠. 편리성만 따지다면 시디가 최고일 거예요. 엘피판은 반드시 손으로 들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흠집이 나 판이 튀기도 해요. 엘피판은 세심하게 신경 써주어야 하고 깊고 그윽한 음질로 보답하죠. 우리의 삶에 음악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삶을 축보해주는 음악을 들으려면 기꺼이 그 정도 수고쯤은 감수해야죠.(82)"


"음악이 모드에게 말했다.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지?'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떨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지. 어쩌면 앞으로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이 음악을 들어. 음악이 너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져줄 거야. 네 옆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어. 모드, 움츠려들지 말고 힘을 내.(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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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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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 작가의 [오늘도, 무사]를 읽었다. 부제는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이다. 2년 전에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요조 작가의 매력을 듬뿍 느꼈었는데, 그 보다 더 전에 출간되었던 [오늘도, 무사]를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사실 [아무튼, 떡볶이]를 읽기 전에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모습이 더욱 익숙했다. 그런데 저자의 책도 읽고 ‘책, 이게 뭐라고’의 팟캐스트 진행자였다는 것을 알고 더군다나 독립서점의 어엿한 사장님이라는 것에 놀람 더하기 경외의 느낌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작지 않은 인지도가 책을 출판하고 워크삽을 진행하는 데에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을까 생각되며 그것 또한 저자가 쌓아놓은 인생의 업적이기에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2014년 말에 도서정가제가 시작된다는 기사에 솔직히 더 이상 책을 대폭 할인 받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인터넷 서점에서는 10% 정도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일반 서점에서는 거의 정가로 구매해야 하기에 더욱 그랬다. 외국에서 살때 그렇게 비싼 돈으로 전공 책을 구입했으면서도 제 나라에 와서는 왜 그리 인색하게 굴었는지 지금은 부끄럽기만 한 기억이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정착된 후 눈에 띄는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바로 독립서점들의 부흥(르네상스)이라고 할 만큼 대형 서점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작은 서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출판된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고도 정당한 가치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지적재산권의 인정에 대한 새로운 변화였다. 특히나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종종 방문했던 '소리소문'과 같은 작은 서점들이 없었다면 한적한 곳에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머물고 있는 장면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이들이라면 독립서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독립서점 에디션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소장할 수 있는 그런 표지가 아니라 마치 나만을 위해 작은 서점이 준비해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제주에 머무는 장소가 서쪽이었기에 주로 그 근방의 카페와 서점을 찾아가보곤 했다. 제주를 떠날 날 무렵 '소리소문'의 사장님이 큰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한 달 동안 문을 닫고 새해에 만나자는 인사를 남긴 것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게 되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한 달 후 수술을 잘 마치고 다시 책방을 열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니 뭔가 마음이 뿌듯하면서 아마도 책방을 들른 많은 이들이 사장님이 쾌유를 한마음으로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쪽에 요조님이 운영하는 책방이 있다고 알기는 했는데, 차마 연예인을 구경하러 가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주저했었는데 다음에 제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요조님이 신간을 들고 가서 사인을 받는 용기를 내볼까 한다. 

“‘대체로 우리는 비슷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는 말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곳에 고정된 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다보니, 혼자 생각하면서 깨닫는 것과 실질적으로 조망하며 아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다. 머리로 알게 되는 것과 몸으로 알게 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책방에서 한결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일체의 욕심을 버렸다.(134)”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정말 아름다운 일이 맞다. 그러나 자신이 책을 많이 읽으므로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서 빨리 그 생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야 한다. 그건 틀렸다. 책은 인생의 유일한 묘약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한심한 바보 멍청이들도 되게 많다(나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책은 좋은 것이다. 독서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아름답게 한다. 그것만 조용히 혼자 알고 있으면 된다.(174-175)”

“나를 포함해 작은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부분 이런 아날로그가 주는 ‘옹기종기의 힘’을 가장 우위에 놓을 것이다. 월세도, 인건비도, 공과금도, 책장도, 바닥도, 천장도, 조명도, 진열된 책들도, 엽서도, 천 가방들도 그런 마음으로 준비할 것이다. 그 옹기종기함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느끼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손님들도 너무 좋아하며 공간의 사진을 담기 바쁘고, 덕분에 자신들의 하루가 의미있고 행복했다고 말하며, 이런 공간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 공간들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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