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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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 작가의 [최단경로]를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좀처럼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쉽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진도를 나가면 주인공 혜서와 애영의 만남이 어렴풋하게 그려진다. 혜서는 라디오방송국 피디로 매번 심야시간 프로그램만 맡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아쉬워한다. 인기 있는 낮시간 프로그램을 맡았던 능력있는 재혁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혜서는 원하던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하지만 재혁의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준비하던 중 아이의 옹알이를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음악 속에 숨겨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혁이 반복적으로 찾았던 웹지도 상의 지점들이 그 숨겨진 소리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혜서는 무작정 암스테르담으로 휴가를 떠난다. 


이제 또 다른 주인공 애영의 이야기이다. 애영은 재혁과 고등학생 때 교제를 하다 그만 덜컥 아이를 갖게 된다. 애영의 어머니는 재혁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고 재혁은 아무말도 못한 채 돌아가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애영과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게 되고 그 이후에 애영이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야기의 전환은 암스테르담의 어느 레지던스로 옮겨지고 애영은 그곳에서 마이레라는 일본인 예술가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애영은 지원금을 받아 대학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지만 그녀는 안락사를 신청한 상태이다. 애영이 레지던스에 머물기 전에 잘못된 지도 어플로 인해 네비만 보고 운전하던 사람이 지도상에 보도가 나와 있는 않은 것을 모른채 질주하다 그만 애영의 아기와 어머니를 죽게 만든다. 그 이후 사고가 난 삼거리의 가로등에 애영의 아기가 애착하던 곰인형을 묶어두어 아기를 추모한다. 


혜서가 한국에서 재혁이 남긴 웹지도상의 지점들은 바로 애영과 아기가 지나간 발자취였고. 애영은 아기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재혁과의 짧은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만남에서 애영과 재혁의 핸드폰은 뒤바뀌게 되고 자신이 버린 아이의 죽음을 전해들은 재혁은 소리없이 사라지게 된다. 재혁이 남긴 흔적을 찾아 암스테르담에 온 혜서는 애영이 재혁의 핸드폰으로 남긴 족적들을 뒤쫓다 애영과 마주하게 된다. 재혁이 남긴 아이의 옹알리 소리는 애영의 핸드폰에서 추출한 것으로 추정되고 혜서는 재혁이 왜 그렇기 소리없이 떠났는지 알게 된다. 애영으로부터 사연을 듣게 된 혜서는 애영의 거처에서 마이레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애영을 위로하지만, 애영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혜서는 갑작스런 결정을 내리며 애영 곁에 머물 것을 결심한다. 혜서와 마이레의 뜻밖의 연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삶을 놓아버리려는 이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전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죄책감 호근 죄의식에 관한 소설로 읽혔다. 여기 한 때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이끌려, 그러니까 상징질서가 지정한 그 어떤 좌표에 최단경로로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한 남자가 있다. 그의 외면은 그녀를 불행에 빠뜨리고 그녀의 불행은 그녀의 어머니와 딸을 회복할 수 없는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이 불행의 연쇄들을 통해 [최단경로]른 비록 악의는 없었다 하더라도 혹은 심지어 선의의 의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걸 외면하면 그것은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러므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죄책감 혹은 죄의식을 느낀 존재-자들이 어떻게든 그 죄를 갚아 불행의 고리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류보선(170)"


"사실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어떤 장면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허들을 넘어야 한다. 솔직히 나는 그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거 지금 나를 적당히 살게 해주는 편하고 순진한 감정들에서 벗어나 심각하고 치열한 고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매번 소설을 쓰고 나서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어떤 사안을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어떤 인물을 이해하려고 이렇게까지 노력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치부와 진심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구는 순간이 있었던가. 없다. 일상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일들을, 소설을 쓰면서는 한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일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그건 힘들고, 부끄럽고, 신경질이 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허들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렇게 몰입하지 않으면 장면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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