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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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 조이스의 [뮤직숍]을 읽었다. 처음 접하는 영국 작가의 책이었는데, 마치 영화 한 편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등장 인물의 다음 여정이 너무나도 궁금해 책장을 넘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소설의 무대는 영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낙후된 유니트스트리트라는 곳이다. 이름에서도 뭔가 숨겨진 뜻이 새겨져 있듯이 언제 재개발이 될 지 모르고 시위원회로부터 오래된 건물들이 위태롭다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유니트스트리트에 사는 이들은 가족보다도 더욱 친말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하더라도 서로의 안위를 염려하며 아주 작은 일도 공유할 수 있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가 형성되기까지 뮤직숍의 사장인 프랭크의 공헌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에게는 여느 레코드샵의 주인과는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프랭크의 뮤집숍을 방문한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었는데, 프랭크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귀담아 듣고 그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적절히 선정해 주었다. 프랭크의 추천 음악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바로 그들이 찾고 있던 음악임을 인정하게 되고 더욱 더 프랭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프랭크 말고도 개성 넘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게 해준다. 프랭크의 뮤직숍에서 일하는 덤벙대는 청년 키트, 프랭크가 아니었던 어디선가 알콜 중독으로 삶을 마감했을지 모를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전직 앤소니 신부, 그리고 프랭크를 짝사랑하지만 언제나 툴툴거리며 삐딱한 척 하며 문신가게를 운영하는 모드 외 여러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과의 삶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쉼없이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일사 브로우크만은 갑자기 불현듯 별에서 떨어진 여자처럼 프랭크의 뮤직숍 앞에서 기절하게 되고, 프랭크와 일사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보면 넘치고 차는 러브스토리의 전형적인 전개처럼 여겨지지만 그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뭔가 색다르다. 바로 프랭크와 일사의 만남에는 음악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고, 바로 그 장애물이 사랑을 완성시키는 열쇠이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8년도에 우리나라 음반 시장은 가격이 조금 비싼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두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에 점차 CD가 양산되면서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모두 사양길을 걷게 되었지만, 지금은 어느덧 CD도 찾아보기 힘들어져 대부분 음원사이트를 통해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곤 한다. 이제는 어느 장치에 저장을 해서 음악을 듣기 보다는 언제든 원할 때 음악을 선택해서 듣고 대신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레트로라는 복고 문화가 다시 주목을 받으며 어딘가 먼지를 한 참 뒤집어 쓰고 있었을 LP판의 음악을 틀어주는 전문적인 카페들이 종종 생겨나고 있다. 


뮤집숍이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LP판만을 고집했던 프랭크는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바늘을 내려놓고 음악이 나올 때까지의 침묵을 중요시했다. 마치 존 케이지가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무대를 채웠던 것처럼 음악과 음악 사이의 침묵 그리고 LP판에서 음악이 재생되기까지 칙칙, 삑삑 거리는 소리까지 CD처럼 사용이 편리한 것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LP판을 케이스에서 꺼내 표면에 지문이 묻지 않도로 정성스럽게 끄트머리를 잡고 턴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고 바늘을 올리는 수고로움은 어쩌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해나가는데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프랭크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결국은 일사가 21년 간 준비한 헨델의 '할렐루야' 플래시몹으로 극복하게 되고 그들은 또 다른 손님들을 위로할 수 있는 새로운 뮤직숍을 운영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이 좋아요. 엘피판을 들으려면 제법 번거로운 과정이 있죠. 편리성만 따지다면 시디가 최고일 거예요. 엘피판은 반드시 손으로 들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흠집이 나 판이 튀기도 해요. 엘피판은 세심하게 신경 써주어야 하고 깊고 그윽한 음질로 보답하죠. 우리의 삶에 음악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삶을 축보해주는 음악을 들으려면 기꺼이 그 정도 수고쯤은 감수해야죠.(82)"


"음악이 모드에게 말했다.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지?'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떨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지. 어쩌면 앞으로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이 음악을 들어. 음악이 너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져줄 거야. 네 옆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어. 모드, 움츠려들지 말고 힘을 내.(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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