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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었다. ‘윌라’ 광고에 김혜수 님이 노라와 엘름 부인의 대화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자정이 되면 열리는 도서관이라니 판타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다 읽고 나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노라 시드’라는 40대 여성이 우울증 증세를 드러내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슬퍼하다 심지어 키우던 고양이까지 죽게 되자 스스로 생을 포기할 것을 다짐하고 약을 먹으며 시작된다. 노라가 죽기 몇 시간 전의 상황들이 전개되고 죽음의 늪에 빠진 노라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인 ‘자정의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을 만나게 된다.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자정의 도서관'에 대한 설명을 하며 노라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 중에 <후회의 책>을 건넨다. 노라는 자신이 후회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사실 노라와 같은 후회와 자책은 노라만의 상황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복해서 겪게 되는 일이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며, 그때 조금만 더 인내할 수 있었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반복된 후회가 자신의 가슴을 구멍내고 고통과 좌절의 순간들이 다가왔을 때 바로 그 후회된 일로 인해서 이런 일이 발생된 것은 아닐까 자책하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의 자신이 삶이 결정되어 있다는 운명론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면서도 이렇게 과거의 일과 미래의 일을 연관지어 생각하곤 한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이 반드시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연에 불과한 것이 많다. 우리 삶의 우연성에 의미를 부연하는 것은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들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 그 우연적인 일에 반응한 자신의 모습이다. 소설에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견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았느냐'라는 말로 우리 삶의 우연성을 설명할 수 있다.
노라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극단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은 후회와 한탄의 선택들을 되돌릴 수 있는 다른 삶을 살아보게 된다. 아버지의 강요가 부담스러워 그만두었던 수영을 지속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삶을, 무대 공포증을 이기고 오빠와 밴드를 지속해서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 해외공연을 하는 유명인의 삶을, 엘름 부인의 권유를 받아들여 빙하학자가 되어 북극에서 북극곰을 만나 죽을 위기를 넘기는 삶을 그리고 노라가 가장 머물고 싶었던 애쉬와 결혼하여 몰리를 낳고 철학자가 되어 자신이 책을 저술하는 삶을 살아보게 된다. 하지만 노라는 그 숱한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균열을 감지하고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아본 노라는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릴 지경에 놓인 것처럼 보였던 실재의 삶이 그렇게 한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양원에 혼자 버려질 이웃집 할아버지를 위로했고 재능이 뛰어나지만 가난한 소년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그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리 삶은 어떤 방법으로든 서로가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선택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영향의 의미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 누구의 삶도 무용한 것은 없다는 것을 노라는 알게 된다.
"삶에는 어떤 패턴이...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것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258)"
C.S.루이스의 삶을 그린 <섀도우랜드>라는 영화에서 사랑하는 조이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조이는 루이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내가 죽고 난 이후에 받을 고통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일부예요." 우리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슬픔과 고통은 우리 삶의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