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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배사 이야기 -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ㅣ 에디션L 3
배윤슬 지음 / 궁리 / 2021년 7월
평점 :
배윤슬 님의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읽었다. ‘궁리’라는 이름의 출판사에서 연재하는 ‘Love My life’, 에디션L 시리즈 3번째 이야기이다. 책날개에 출판 이름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나와 있다. “배우고 익히는 데 궁리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모름지기 독서에 있다.” 요즘 출판계의 유행이 이렇게 연재 형식의 책을 내는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시리즈도 있고, ‘띵’ 시리즈도 있고, ‘like-it’ 시리즈도 있고, ‘일하는 사람’ 시리즈도 있다. 글을 전문적으로 써온 작가들이 아닌 경우도 많지만 각자 살아온 직업과 정해진 주제에 대한 개성 있는 글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 책은 우연히 뉴스를 통해 잠시 소개된 내용을 얼핏 살펴보고 나중에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학벌지상주의의 나라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젊은 청년이 도배사를 한다고 하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 이유가 뭘까 정도의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언제부터인지 청년들 사이에서 스펙이라는 말이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우리말로 하면 경력이나 자격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싶은데, 스펙은 단순히 경험을 쌓아 삶의 지평을 넓히려는 의도보다는 취업을 위한 하나의 배경정도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신입사원을 뽑는데 이런 저런 경험이나 자격이 전무한 사람보다는 그래도 뭔가 있어보이는 사람이 더 경쟁력이 있게 비춰지다보니, 너도나도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게 되었고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학벌지상주의에 몰입해 있는것과 비례적으로 화이트칼라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이 있다는 사실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일에는 머리를 쓰는 일과 몸을 쓰는 일이 나누어져 있고, 자신의 성향과 재능에 따라서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우리사회는 몸을 쓰는 일을 미천하게 생각해왔기에 전국민이 대학을 나와 화이트칼라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책의 에피소드에 나왔듯이 저자가 속한 도배팀이 소갈집에 회식을 하러 갔을 때도 작업복을 입은 그들을 티나게 푸대접하며 불친절했던 것과는 반대로 중형차를 몰고온 어떤 사람이 냉면 한 그릇 먹고 갔음에도 정중히 대했다는 내용은 우리가 얼마나 눈에 보이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답습해온 인간의 나약한 습성의 단면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는 Praxis와 Poiesis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행하는 일에 대한 구분을 짓는다. 실제로 자신의 성격과 능력에 걸맞지 않지만 그저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일을 억지로 행하는 것은 그가 선택한 직업을 가식과 위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에 반해, 허름한 옷을 입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대체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갖고 일을 한다면 그가 선택한 직업은 진실한 것이며 그 직업을 선택한 이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은 그 일을 더 이상 하찮게 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선택하고 행하는 직업은 날때부터 귀한 일과 천한 일이 구분된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구분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러한 차별에 익숙해진 순간부터 차별을 당하는 일이 아닌 차별을 할 수 있는 일을 맡기 위해 맹목적인 교육을 받아 왔다. 배윤슬 님의 글은 어쩌면 이렇게 오랜시간 답습해온 우리 인간사회의 나약한 단면을 보기 좋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예리한 칼로 도려내고 있는 시도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일이 손에 익어 자연스럽게 그 일을 능숙하게 해내기까지 홀로 감내해야만 했을 인고의 시간이 있을텐데, 기꺼이 그러한 시간을 솔직담백하게 나눌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몸이 힘들고 피곤한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을 다잡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몸이 아프고 힘들어 그만두는 사람보다 마음이 힘들어 그만두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니 말이다. 몸의 피로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거친 일터에서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적은 월급을 받아가며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처음부터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주변에 보여주기 부끄러울 수 있다.(88)”
“같은 일을 하더라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롭게 시작하는 것과 지지를 받으며 일하는 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이고 내 선택이지만 주변의 응원과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도배를 시작했고, 그 지지에 대한 믿음은 내가 도배를 하는 것에 있어 아주 큰 자원이 되었다.(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