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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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를 읽었다.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음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지장산, 지장천, 말고개재, 소잡는골, 도롱이못, 범바위골, 안경 다리 등의 장소가 나온다. 탄광촌이었던 마을이 폐광이 되고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의 마을로 탈바꿈되어버린다. 소설 속에서는 카지노의 이름이 그냥 ‘LAND’라고만 나오는데, 소설을 읽는 누구나 우리나라의 유일한 카지노인 강원도 정선에 있는 카지노를 연상하게 된다. 특히 지음은 사북 탄광촌을 연상시키며 오래전 친구를 보러 사북에 갔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1년에 한 번 정도 사북을 방문했을 때에는 탄광의 거의 다 문을 닫을 무렵이자 카지노가 시작된 때이다. 친구가 사북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대충 건성으로 들어서인지 그 때 당시 사북의 정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랜시간 기차를 타고 사북에 가곤 했지만, 사북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고 그저 친구가 거기 살아서, 친구와 만나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게 전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철이없던 학생시기라 그랬는지, 강원도는 놀러갈 때만 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폐광 이후 쇠락해가는 곳에 카지노가 들어서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그냥 속편하게 믿어버리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카지노의 천국인 마카오에 갔을 때 머물던 호텔의 1층에서 누구나 손쉽게 슬롯머신을 당겨볼 수 있었다. 재수가 좋아야 음료수 한 잔 값을 벌수 있을까 말까한 몇 번의 배팅을 제외하고 진짜 카지노 게임처럼 보이는 테이블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곤 했다. 대체 게임 방법을 알아야 한 번 앉아서 해보던지 말던지 할텐데, 엄두가 안나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실제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한 사람을 완전히 망가뜨리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카지노 베이비도 결국은 도박에 미친 부부가 갓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번갈아 가며 카지노에 머물다 여자는 자살하고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이만 전당포에 남게 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림픽 다방에서 월드컵 전당포를 운영하게 된 동여사와 그의 딸, 아들은 전당포에 남겨진 아이 하늘의 엄마와 삼촌이 되어주고 동여사는 하늘에게 동이라는 성을 붙여준다. 하지만 하늘은 버려진 아이였기에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을 수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소설은 하늘의 입장에서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시선으로 할머니의 전당포와 카지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실 하늘은 자신이 어떻게 전당포에 맡겨지게 되었는지,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기억나지 않지만 환영처럼 펼쳐진 어렴풋한 장면들을 끄집어 내려 애쓴다. 하늘의 삼촌은 건실한 청년으로 물 배달 일을 하다가 카지노의 단맛에 사로잡혀 가산을 탕진하고 “지음이 흔들린다! 랜드가 무너진다!”라는 약간은 맛이 간 사람으로 나온다. 하지만 하늘 삼촌의 말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복선이 되고 미친 사람이 넋두리처럼 혼자 내뱉는 말이 카지노의 마지막이 되버린다. 


이미 깊은 탄광이었던 곳에 카지노가 세워지다보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보이는 가설로 텅 빈 땅에 많은 비가 내리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싱크홀과 함께 랜드는 무너져 버린다. 저자의 말에서 이미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거대한 재난을 연상시키는 랜드의 붕괴는 물신주의로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며 이득을 취하려 했던 비참한 결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랜드의 붕괴로 인해 빚어진 댓가는 모두 지음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다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밤이면 슬립 시티에서 잠만 자고 가는 것으로 어느 정도의 순환 경제가 이루어지던 지음은 랜드의 붕괴와 더불어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 하늘은 용사장과의 내기로 카지노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신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어하지만, 바로 그날 랜드는 붕괴되고 하늘은 천신만고 끝에 다리만 골절된 채 구조된다. 하늘을 찾기 위해 사흘밤낮 분투한 동여사는 하늘의 구조와 더불어 실신하고 하늘과 함께 입원한 병실에서 동여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비운의 사건들과 하늘이 어떻게 전당포에 오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하늘을 구하느라 힘을 소진한 동여사는 결국 생을 마감하고 딸과 아들에게 남긴 유언의 내용을 변호사가 전해준다. 장례를 마치고 딸과 하늘은 동여사가 남긴 땅을 찾으로 지장산으로 올라간다. 그들이 발견한 땅은 아직 카지노가  개발되지 않는 땅의 한 가운데 그야말로 알박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하늘과 딸과 아들은 동여사 남긴 땅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늘은 자신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과감히 마주하기 위해 열심히 마을을 향해 내달린다. 


“이미 넌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네가 진짜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43)”


“나쁜 예감이란 한 번도 비를 쏟아본 적 없는 생각의 먹구름이다.(141)”


“아이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인상을 쓴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마음속으로 깊이 미워 한다든지. 그런 기억들은 가슴 깊은 곳에 저장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나서까지도 남아 있다.(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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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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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의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을 읽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본 이동진 영화평론가 님의 서재에 2만 3천 여권의 책이 빽빽이 꽂혀 있는 모습은 하나의 아카이브를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로 놀람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이 이 정도의 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 많은 책을 소유할 공간이 있다는 것 또한 놀라며, 전부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많은 책을 대부분 읽은 평론가님의 역량에 또 한 번 놀랐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전세계의 주목을 받을 때 저자의 한 줄 영화감상평이 꽤나 화제가 되었다. 긴 문장도 아니고 짧은 글로 영화의 특징을 콕 찝어 소개해야 한다니,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반복한 결과일지. 기생충 영화에 대한 감상평에 ‘직조’라는 단어가 들어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 생소한 단어를 수차례 반복하며 웃음의 소재로 쓰기도 했다. 쉽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지만,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한줄 영화평을 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감탄과 놀라움의 끄덕임을 반사적으로 만들어낸 단어가 바로 ‘직조’라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참고로 한줄평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요즘 방과 후 교실에 해당되는 당시에는 특별반이라고 이름붙인 본고사를 준비하는 수업 시간에 정규 과정과는 다르게 한국 현대문학의 단편 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는 과제를 매주 내주었다. 당시에는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었는데, 과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편 소설을 읽고 내신 성적을 위한 것도 아니고, 중간 기말고사를 위한 것도 아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문을 써내곤 했다. 그런데 막상 과제를 제출하는 날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책을 다 읽지 못해 감상문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특별반이라서 그랬는지 과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화를 내지 않고 감상문을 써온 학생들의 글을 발표하도록 했다. 발표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서 맘편히 썼는데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나의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이 조금 껄끄럽게 느껴졌다. 어느 주간에는 나 혼자 감상문을 써가서 나 홀로 발표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반의 본고사 준비를 위한 과제가 끝나고 선생님과 마주한 우연한 계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글 쓰는 일을 해도 될 것 같다고.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 그 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냥 선생님이 나 혼자 과제를 해온 것에 대한 지나가는 칭찬으로 여기지 않고 정말로 내가 글을 쓰는 것에 소질이 있고 책을 사랑하게 될 줄 조금이라도 예상했더라면 나의 삶을 달라졌을까?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은 수상작과 더불어 자전적인 이야기를 함께 수록하곤 한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작가가 되기 전에 유년 시절에는 어떤 책을 주로 읽었는지, 때론 작가가 되기 위한 극적인 사건들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 작가들의 용기 있는 선택이 부럽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고독한 자신과의 사투를 그토록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업작가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서점에 가면 어머어마한 신간이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그에 반해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책을 아끼고 심지어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책에 대한 너그럽고 자상한 이야기를 들으니 책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저자의 독서법을 읽으며 그동안 너무 편협하게 소설과 에세이만 읽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깊이보다 넓이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철학에서도 그렇고 뇌생리학에서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책을 읽은 후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진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글이나 말의 형태로 옮기지 않는 한 생각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또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말하고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55)”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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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태석입니다 - <울지마 톤즈>에서 <부활>까지
구수환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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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환 감독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울지마 톤즈>에서 <부활>까지”이다. ‘울지마 톤즈’를 보기전까지 남수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수단이라는 나라는 들어봤지만 왜 이름에 남쪽을 뜻하는 말이 붙었을까란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아프리카의 식민 역사를 모르고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국경선이 자로 잰것처럼 반듯하게 그어진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 열강 제국들의 지배에서 벗어나며 일방적으로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들끼리 조약을 맺고 국경선을 정했다는 말을 듣고 아프리카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부족들 간의 전쟁이 지속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도 TV를 보다가 중간에 광고가 삽입될 때에 NGO 관련 홍보 영상들이 수없이 나온다. 유명 연예인들이 가난한 나라를 방문해 뼈가 앙상한 아이를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후원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전달된다. 사실 인간이라면 그 처절한 상황을 보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꽤 많은 기부가 이어져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에 지속적인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가난한 것일까? 


이태석 신부님은 부족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병에 걸리고도 치료 받을 병원에 갈 수 조차 없는 남수단 톤즈의 현실을 보고 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정주하며 톤즈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바로 그들에게 학교를 세워주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는 바로 부모님들의 엄청난 학구렬이다. 일제 치하 시기부터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자식 만큼은 공부를 시켜서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나라의 학력은 아마 거의 전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공부와 관련없는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할 정도니 말이다. 남수단을 비롯한 저개발국가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기초를 다지는게 중요했다. 아무리 고소득국가들이 원조를 많이 해 준다해도, 그리고 그 원조의 댓가로 몇 십배의 이득을 챙기는 것을 보고만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계속해서 이용만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의 상당수는 지배계급의 부정부패로 원조 받은 물건들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탐관오리같은 이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라니, 결국 그런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서도 깨어있을 수 있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울지마 톤즈’에서 꼬마 아이 같았던 이들이 어느덧 의사가 되어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센인들을 돌보는 내용은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사제 한 사람이 그 황무지 같은 곳에 가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작은 성당 하나 짓고 선교하며 지내지 않을까란 생각. 사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에서 보낸 시간은 남수단이라는 나라 하나를 바꿀 정도로 아니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지켜본 많은 이들이 자성할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의 희생 가득한 삶은 그저 한 사람의 몫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태석 신부님을 탄생시킨다.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을 만났던 그 아이들이 어디선가 또 다른 이태석 신부님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환자들이 들어오면 처음 5초는 걷는 모습을 보고 나머지 5초는 눈을 잘 들여다봐요. 눈을 보는 5초는 짧은 순간이지만 정말 대단한 순간이에요. 진실된 순간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볼 때 그 마음보다 더 진실된 순간이 아닐까, 왜냐하면 환자가 의사 앞에 있는 순간이잖아요. 모든 것을 고하고 싶은. 그런데 고해성사는 안 그렇잖아요. 조금은 미화를 시키기도 하고….(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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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이인애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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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작가의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를 읽었다.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이다. 코로나 19 발생 이후에 팬데믹과 관련된 여러 편의 소설들이 나왔는데, 이번 소설처럼 우리나라의 현실을 밑낯처럼 드러낸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부의 방역 정책으로 결정된 여러 가지 규정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뉴스에서 방역 단계를 재조정할 때마다 언급되었던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담아내었기에 그동안 수많은 자영업자 분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갈 때마다 고작 QR코드를 찍는 것을 귀찮아하고 행여나 마스크를 제대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언짢아졌던 기억들이 떠올려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니, 이렇게나 사람이 이기적일 수 있다니. 소설 속에서 스터디 카페를 운영하는 대한을 비롯한 다른 업종의 사장님들을 힘들게 했던 손님은 특정한 소수의 진상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나 또한 그런 몰지각한 손님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주인공 이대한은 8년 동안 일했던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하고 자영업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IMF 시기 하던 사업이 망해 오랜 시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대한은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부모님을 뿌듯하게 한 장한 아들이었다. 비록 대출을 많이 받기는 했으나 18평 짜리 아파트도 얻었고 할부가 끝난 차도 있는 퇴직금 5천만원이 전부이 30대 미혼 남자였다. 대한은 어떤 업종을 선택할 것인가 시장조사와 더불어 임대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다, 관리비가 많이 들지 않는 어느 건물의 3층에 스터디 카페를 하기로 결심한다. 대한의 퇴사와 더불어 시작된 스터디 카페를 개업하는 과정은 읽는 내내 독자인 나마저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위태롭게 느껴졌다. 임대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카운팅되는 월세에 대한 압박과 더불어 스터디 카페 인테리어를 위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호갱님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은 세상이 왜 이러 각박한 것일까란 순진한 생각마저 철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똑바로 정신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눈탱이 맞고 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은 대한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만든다. 


대한은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며 의사로부터 치료를 위한 과제로 주변의 또 다른 자영업자 사장님들을 인터뷰 해서 블로그에 글을 작성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이후 대한은 가까운 횟집 사장님부터 양장점, 미장원, 백반집, 카페, 치킨집 사장님들을 만나 그들이 이 영업장을 시작한 계기와 코로나로 인해 겪는 어려움과 각 영업장만이 갖고 있는 특징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한이 인터뷰한 영업장들은 사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원하는 삶의 터전의 환경적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이렇게 편의시설이 가깝고 잘 정비된 소위 인프라가 잘 조성된 곳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습관적으로 이러한 영업장들을 드나들었으면서도 정부의 자영업자 보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올해 들어 자영업자들에게 500만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기사가 나오자, 횟집의 손님 중 누군가가 마치 들으라는 듯이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지원금 받으니까 좋냐고 비아냥거리며 자기도 500만원 받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도 화내 거나 따지지 못하고 그저 다시 찾아주십사 인사를 건네는 것이 몹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백신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료 검색 중에 캐나다의 어느 자영업자가 보낸 편지라는 내용을 접하고,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들이 그토록 분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해 식당처럼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을 수 밖에 없는 영업장들의 영업 금지는 우리나라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주, 2주, 2주 이렇게 지속되는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은 일주일만 영업을 안해도 월세 및 각종 공과금 걱정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에게는 치명타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캐나다를 비롯한 일부 부유한 국가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영업장을 열지 못하게 하는 국가의 명령으로 인해 얻지 못한 수입을 대부분 그대로 보상해 주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거의 없다는 소식으로 편지를 마무리 된다. 마치 꿈같은 얘기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나라의 국가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하고 안락할 때에는 손쉽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여유가 있고 건강할 때에는 봉사할 시간도 낼 수 있고 금전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코가 석자이거나 한두푼이 아쉬울 때에는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게 된다. 일단 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타자를 위한 시야가 열린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가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간혹 송곳처럼 이런 보편적인 이기심을 뚫고 나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마치 타인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성자처럼 인간의 공존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놓는다. 그들의 숭고함은 너무나도 바보같고 멍청해보여 시장논리에 길들여진 보통 사람들의 도마에 오르내리며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송곳같은 단 한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켜가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세상은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스크를 써야 했고 생활에 제약을 좀 받기 했지만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집콕이 길어지다보니 인테리어가 지겹다며 가전과 가구를 바꾸었고, 이 시국에도 갖고 싶은 명품 가방을 사려고 이른아침부터 백화점에 장사진을 쳤다.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여전히 인기였고, 새로 나온 휴대폰이나 스마트워치를 사는 데에도 사람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부품 수급이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신차를 사려면 몇 개월씩 기다려야 했다. 집값은 이미 천장을 모르고 치솟은 후였다. 10억이 올랐는데 고작 1억 떨어졌다고 집값이 안정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었다. 진짜 집값이 잡혔다고 믿는다면 그건 멍청한 사람들이었다.(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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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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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님의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를 읽었다. 부제는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이다. 스페인 반년살이를 꿈꾸고 계획했던 모든 것이 코로나 인해서 한 순간에 날아간 아쉬움 때문인지, 제목을 보는 순간 마치 나보다 먼저 실행에 옮긴이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6개월 동안 지낼 숙소와 어학원도 예약을 하고 무엇보다도 10년 동안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로 생애 처음 비지니스석을 탄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이며 비자까지 받으러 스페인 대사관에도 갔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비자를 수령하러 갔을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나아지겠지란 생각을 했었다. 예약한 출국 날짜를 늦추며 하루 빨리 상황이 호전되길 바랬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모든 예약을 취소해야했다. 다행히 금전적인 손해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속쓰림은 그나마 심하지 않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해외 여행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저가항공의 요금을 하나도 환불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불행 중 다행인 것인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십여년 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을 우연히 접하고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책을 여러 권 섭렵하며 언젠간 나도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반년살이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스페인은 이루지 못할 꿈처럼 로망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로마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스페인 소녀에게 들은 맛집 정보를 믿고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며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알려준 주소를 찾다가 맛본 타파스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더군다나 계산을 마치고 나와보니 상그리아 한 병이 카운팅 되지 않아서 공짜로 마시고 나온 행운도 따라줘서 스페인에 대한 기억이 더 좋게 남아있다. 슈퍼에서 산 바게트 빵과 하몽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검은 성모님을 만나러 몬세라트에 갔을 때, 왜 그런지 그날따라 식당을 못 찾아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성지의 난간에 기대어 수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야 식당가를 발견했었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바게트와 하몽이 어찌나 맛있던지 입천장이 다 까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체하지 않고 든든하게 한 끼를 때웠던 기억은 스페인에 대한 향수를 몽실몽실하게 남겨주었다. 


저자의 스페인 반년살이에는 여행 중에, 어학원의 동료로, 숙소를 계기로, 파티와 같은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우연적인 만남이 애틋함을 남길 정도로 순식간에 정을 나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그게 바로 여행의 힘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더 빨리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아닐 것이고, 축제나 파티의 현장이라도 해도 친밀도가 급상승하는 것도 아닐텐데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그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마음이 부럽기도 하고, 지금껏 그렇게 여행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인연과 도움이 되는 인연을 많이 만들 수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만남이 많은 것 같아 항상 후회와 미련이 남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는 보지 못함에도 기약없는 만남을 상상하며 이렇게 활자로 기록된다는 것을 통해 그동안 부질없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다. 살다보면 그렇게 물 흘러가듯이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내가 사람 관리를 잘 못하는 것이 아닌가란 죄책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는 것. 결국은 이렇게 우리 삶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리라. 


“자기계발 서적이나 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쓴 [난문쾌답]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그는 인간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둘, 사는 곳을 옮기는 것.

셋,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이 세 가지가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감히 이 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넷, 여행을 떠나는 것.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 있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말이다. 

그러니 일단 떠나시기를!(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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