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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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의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을 읽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본 이동진 영화평론가 님의 서재에 2만 3천 여권의 책이 빽빽이 꽂혀 있는 모습은 하나의 아카이브를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로 놀람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이 이 정도의 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 많은 책을 소유할 공간이 있다는 것 또한 놀라며, 전부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많은 책을 대부분 읽은 평론가님의 역량에 또 한 번 놀랐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전세계의 주목을 받을 때 저자의 한 줄 영화감상평이 꽤나 화제가 되었다. 긴 문장도 아니고 짧은 글로 영화의 특징을 콕 찝어 소개해야 한다니,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반복한 결과일지. 기생충 영화에 대한 감상평에 ‘직조’라는 단어가 들어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 생소한 단어를 수차례 반복하며 웃음의 소재로 쓰기도 했다. 쉽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지만,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한줄 영화평을 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감탄과 놀라움의 끄덕임을 반사적으로 만들어낸 단어가 바로 ‘직조’라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참고로 한줄평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요즘 방과 후 교실에 해당되는 당시에는 특별반이라고 이름붙인 본고사를 준비하는 수업 시간에 정규 과정과는 다르게 한국 현대문학의 단편 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는 과제를 매주 내주었다. 당시에는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었는데, 과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편 소설을 읽고 내신 성적을 위한 것도 아니고, 중간 기말고사를 위한 것도 아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문을 써내곤 했다. 그런데 막상 과제를 제출하는 날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책을 다 읽지 못해 감상문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특별반이라서 그랬는지 과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화를 내지 않고 감상문을 써온 학생들의 글을 발표하도록 했다. 발표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서 맘편히 썼는데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나의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이 조금 껄끄럽게 느껴졌다. 어느 주간에는 나 혼자 감상문을 써가서 나 홀로 발표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반의 본고사 준비를 위한 과제가 끝나고 선생님과 마주한 우연한 계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글 쓰는 일을 해도 될 것 같다고.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 그 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냥 선생님이 나 혼자 과제를 해온 것에 대한 지나가는 칭찬으로 여기지 않고 정말로 내가 글을 쓰는 것에 소질이 있고 책을 사랑하게 될 줄 조금이라도 예상했더라면 나의 삶을 달라졌을까?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은 수상작과 더불어 자전적인 이야기를 함께 수록하곤 한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작가가 되기 전에 유년 시절에는 어떤 책을 주로 읽었는지, 때론 작가가 되기 위한 극적인 사건들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 작가들의 용기 있는 선택이 부럽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고독한 자신과의 사투를 그토록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업작가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서점에 가면 어머어마한 신간이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그에 반해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책을 아끼고 심지어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책에 대한 너그럽고 자상한 이야기를 들으니 책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저자의 독서법을 읽으며 그동안 너무 편협하게 소설과 에세이만 읽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깊이보다 넓이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철학에서도 그렇고 뇌생리학에서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책을 읽은 후 우리는 그냥 뭉뚱그려진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글이나 말의 형태로 옮기지 않는 한 생각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또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말하고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55)”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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