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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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님의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를 읽었다. 부제는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이다. 스페인 반년살이를 꿈꾸고 계획했던 모든 것이 코로나 인해서 한 순간에 날아간 아쉬움 때문인지, 제목을 보는 순간 마치 나보다 먼저 실행에 옮긴이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6개월 동안 지낼 숙소와 어학원도 예약을 하고 무엇보다도 10년 동안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로 생애 처음 비지니스석을 탄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이며 비자까지 받으러 스페인 대사관에도 갔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비자를 수령하러 갔을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나아지겠지란 생각을 했었다. 예약한 출국 날짜를 늦추며 하루 빨리 상황이 호전되길 바랬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모든 예약을 취소해야했다. 다행히 금전적인 손해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속쓰림은 그나마 심하지 않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해외 여행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저가항공의 요금을 하나도 환불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불행 중 다행인 것인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십여년 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을 우연히 접하고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책을 여러 권 섭렵하며 언젠간 나도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반년살이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스페인은 이루지 못할 꿈처럼 로망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로마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스페인 소녀에게 들은 맛집 정보를 믿고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며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알려준 주소를 찾다가 맛본 타파스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더군다나 계산을 마치고 나와보니 상그리아 한 병이 카운팅 되지 않아서 공짜로 마시고 나온 행운도 따라줘서 스페인에 대한 기억이 더 좋게 남아있다. 슈퍼에서 산 바게트 빵과 하몽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검은 성모님을 만나러 몬세라트에 갔을 때, 왜 그런지 그날따라 식당을 못 찾아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성지의 난간에 기대어 수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야 식당가를 발견했었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바게트와 하몽이 어찌나 맛있던지 입천장이 다 까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체하지 않고 든든하게 한 끼를 때웠던 기억은 스페인에 대한 향수를 몽실몽실하게 남겨주었다. 


저자의 스페인 반년살이에는 여행 중에, 어학원의 동료로, 숙소를 계기로, 파티와 같은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우연적인 만남이 애틋함을 남길 정도로 순식간에 정을 나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그게 바로 여행의 힘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더 빨리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아닐 것이고, 축제나 파티의 현장이라도 해도 친밀도가 급상승하는 것도 아닐텐데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그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마음이 부럽기도 하고, 지금껏 그렇게 여행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인연과 도움이 되는 인연을 많이 만들 수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만남이 많은 것 같아 항상 후회와 미련이 남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는 보지 못함에도 기약없는 만남을 상상하며 이렇게 활자로 기록된다는 것을 통해 그동안 부질없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다. 살다보면 그렇게 물 흘러가듯이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내가 사람 관리를 잘 못하는 것이 아닌가란 죄책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는 것. 결국은 이렇게 우리 삶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리라. 


“자기계발 서적이나 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쓴 [난문쾌답]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그는 인간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둘, 사는 곳을 옮기는 것.

셋,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이 세 가지가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감히 이 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넷, 여행을 떠나는 것.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 있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말이다. 

그러니 일단 떠나시기를!(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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