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신아연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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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작가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이다. 제목과 부제부터 묵직한 어두움을 안겨준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두배 이상으로 연장시켜주었다. 이제는 백세시대라는 말이 그냥 막연한 꿈이 아니라 실재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고 오래 산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체감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인간의 삶이 남긴 흔적은 먼지처럼 흐릿할 뿐이지만 개개인이 겪는 100년도 안 되는 시간은 참으로 지리멸렬한 시간이 주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할 때가 많을 것이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안락사'라는 단어는 조금 생소한 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고 안락사와 자살이 뭐가 다르냐는 듯한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생명연장의 가속도가 붙으면서 또한 웰빙과 더불어 웰다잉이라는 말이 번져가면서 안락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조조 모예스의 [미비포유]라는 소설을 읽기 전에 스위스에서 실제로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설에 나오는 이그니타스라는 병원은 실제하며 그곳에서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기에 자발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벌써 수년 전이니 아마도 지금은 스위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어느 곳에서 안락사가 합법적으로 실행되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2018년 연명의료 결정법이 실행되었다. 사실 연명의료 결정법이 법적으로 공표되고 법적 효력을 갖기까지 논의된 가장 큰 화두는 인간이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인정할 수 있느냐, 아니야의 문제였다. 오용과 잘못된 이해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불필요한 치료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의 상황을 받아들여 임종기에 이른 사람에 한해서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문서가 법적 효력을 얻게 된 것이다. 당시 이 법이 국회에 상정되고 공표되기까지 가장 염려한 부분이 바로 안락사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란 우려였다. 이런 우려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얼마전 어느 국회의원이 '조력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취지의 법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결정법에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존엄한 죽음'이라는 표현이었다. 실제로 연로한 어른들은 아직 큰 병을 앓고 있지 않아도 혹시나 갑자기 중병을 얻어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 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어차피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길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느니 차라리 좀 더 상태가 원만할 때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그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의 일반적 상태가 아닐까 싶다.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기저귀를 차고 배변을 배출해야 하거나 제대로 먹지고 마시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온갖 신경질을 부리며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될까 두렵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존엄한 죽음이라는 표현은 아직 죽음과는 먼 거리에 있는 건강한 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막상 나 자신이 생사를 오가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온전히 대소변을 자발적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이 차이가 과연 임종자에게 존엄함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죽음 이후의 경험을 듣고 볼 수 없기에 죽는 자가 존엄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이 스스로 존엄함을 느끼고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삶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죽음 또한 우연적일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을 조작하고 선택할 수 있다면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인간임을 폐기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안락사 현장에 대한 동반기는 페이지를 넘기기에 참으로 힘든 시간이지만, 가족이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안락사를 선택한 이의 여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권리로 생각하며 안락사를 법으로 제정하고 싶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연장이라는 꿈같은 일이 가능해지는 세상에 이렇듯 개인주의적인 선택의 만연이 팽배해질 상황에 저자의 맺음말이 더욱 깊이있게 와닿는다. 비록 죽음은 한 개인의 소멸인듯 하지만 그 개인이 함께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속된다. 나의 삶을 당장 끝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나의 소멸 이후에 살아갈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죽을 것 같은 고통은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이니 그 숙제를 잘 마무리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부재의 슬픔을 이겨내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최고의 스승이 가르치는 과목은 단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죽음이 곧 사랑을 일깨운다는 뜻입니다. 죽음은 죽음보다 더 깊었던 무지에서 우리를 깨어나게 합니다. 그 무지란 사랑하는 능력을 그냥 묻어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이란 '전 존재를 거는 일'입니다. 나의 관심사나 이기적 욕구와는 아무 상관 없이 그저 나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 갑니다.(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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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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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의 [기울어진 미술관]을 읽었다. 부제는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이다. 얼마 전 뉴스 기사에 교권 추락에 대한 타이틀과 더불어 충격적인 사진이 하나 게시되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판서를 하는 도중에 학생 한 명이 교단 바닥에 누워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연결한 채 마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후 또 다시 등장한 기사에는 그 학생의 스마트폰을 포렌식 검사 한 결과 선생님을 촬영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수업 중에 교단 앞에서 학생이 대놓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이나, 또 그 학생의 스마트폰에 전문적인 포렌식 검사까지 적용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의 체벌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군대보다도 더 폭력적이었던 학창 시절을 어떻게 군말없이 버틴 것인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단체기합을 받고 줄빠타를 맞을 때면 이건 학생의 악습관을 선도하기 위한 체벌이 아니라 이 선생이 미치거나 어디선가 받은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거의 대다수가 반항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다. 


‘라떼는 말이야’가 유행어가 되면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 ‘라떼는’는 상대적인 평가로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어리고 젊은 세대를 보면 충분히 좋고 편안한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힘들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기성세대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썰을 푸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떼는’ 이야기를 듣는 젊은 세대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구’의 냉소를 퍼붓는다. 하지만 지금의 기성세대도 분명 앳된 시대를 보냈고 그들에게 ‘라떼는’을 시전한 올드세대가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다. 어쩌면 무한루프처럼 반복되는 ‘라떼는’이란 어려운 시절의 경험담은 세대를 연결하고 싶은 어설픈 시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수록 ‘라떼는’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좀 쿨하게 세태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같이 누리고 싶은데 자꾸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수많은 부조리와 불평등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분명하게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행복한 줄 알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5.25, 3.5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다니며 행여나 디스크에 담긴 파일이 뻥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때가 있었다. 메가에서 기가로 이제는 테라바이트 용량의 소형 드라이브가 일상화된 시대이니 정보를 공유하고 저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진 한 장도 쉽게 찍을 수 없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는 그림과 건축물을 통해서 오래전의 일상들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전세계의 미술관에 전시된 오래된 명화들은 너무나도 귀중히 보관되며 금전적 가치를 환산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작품들도 꽤 될 것이다. 미술에 대한 문외한이라도 몇몇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가 이름과 작품의 제목까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유명세와는 반대로 미술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책에 나온 그림들은 거의 상당수가 잘 알지 못하는 작품들이었지만 저자의 배경 설명과 화가들의 이야기가 곁들이지 않았다면 그 명화 속에 담긴 시대적 상황을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대단한 작품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사실 화가의 의도가 생각보다 옳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이해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명화를 그린 화가를 비판하고 평가절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화가의 명화 속에 담긴 인간과 자연과 세상에 대한 온갖 기울어지고 삐뚤어진 시선을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저자가 매 쳅터마다 강조한 것처럼 그림 속에 나타는 온갖 불합리와 불평등한 시선들은 과연 지금의 시대에는 얼마나 변화된 것인지 자성하는 시간을 갖게 만든다. 


“노년의 지혜란, 노년들은 긴 시간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니 삶이라는 여행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게 소중한 안내판 한두 개쯤은 전승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삶이라는 여행의 의미를 다면적으로 묻고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싹튼다. 삶의 의미가 활용 가능한 자원이나 기술 등을 이용해 얻는 성공이나 부, 권력으로 환원되는 사회문화 맥락에서라면, 지금과 같은 기술 환경에서 노년들에게 청해 들을 지혜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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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전
정은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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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우 작가의 [국자전]을 읽었다. 전래동화나 고전에서나 나올 법한 누구누구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전’자가 들어간 소설이라니. 뭔가 진부한 냄새가 나면서도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오히려 신선함도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국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을테지만, 이국자라는 이름은 얼마나 많은 놀림을 당했을까라는 생각과 더불어 뒤에 전자를 붙이니 또 그럴듯해보였다. 이야기는 국자의 딸 미지가 독립하려는 시도를 번번이 놓쳤던 과거의 회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국자와 아버지가 미지가 독립 못하도록 억지로 막아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미지의 독립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국자는 언제나 미지에게 맛깔스러운 식사를 준비하여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나면 독립을 반대하는 국자의 의견에 매번 KO 당하는 것이었다. 미지가 엄마인 국자가 요리해준 음식에 대한 묘사 부분은 정말 얼마나 맛이 좋고 입맛에 딱 맞으면 독립하고자 하는 그 열망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인지 국자의 요리실력에 대한 궁금증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그렇게 미지는 엄마의 요리에 뭔가 감춰진 비밀이 있지 않을까란 의구심을 갖고 김치 담구는 법부터 배우려 하지만 국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미지에게 간단한 레시피만을 알려줄 뿐이다. 이래서는 독립한 이후로의 식생활은 보마마나 뻔할 테니, 어쩌면 독립을 미룰 적절한 핑계를 마련한 것일지도 모른다. 


국자와 미지의 독립을 둘러싼 음식 이야기가 펼쳐질 때만 해도 능력자와 반동이 나오는 히어로물이 등장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한 사실주의 소설인지 알았더니 국자를 비롯한 수많은 숨겨진 능력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가 삽입되어 있었다. 마블 시리즈에 환장한다면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소설 속에서의 히어로들의 등장은 뭔가 거부감이 느껴지곤 한다. 어차피 소설은 가공할 만한 이야기가 삽입되고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부풀려진 내용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되는 것과 가능성이 제로인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므로 히어로들의 등장 요소는 차치하고 국자의 과거 이야기와 사랑 등의 전개는 그들이 가진 능력과는 무관하게 현대 사회의 많은 모순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실제로 어딘가에 그런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을 되돌리거나, 순간이동, 염력, 투시와 같은 능력을 가진 이들을 테스트해서 등급으로 나눌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는 국가에서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지 테스트하여 능력을 가진 이들이 국가에 충성하는 이들일지 아니면 능력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국가에 반하는 이들일지 선별하는 기준의 모호함을 우선적으로 비판한다. 차라리 아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일반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겠지만, 혹시나 하는 바람에 테스트를 받아 부적합한 능력을 가진 이로 판별이 된다면 강제로 교정시설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적합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등급으로 나누어 최고 등급에 속한 이들은 스타 대접을 받으며 영웅이라는 칭한다. 이런 우상화에 길들여진 국민들은 능력을 가진 이들 중 영웅에게는 온갖 찬사와 관심을 베풀지만 부적합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혹시나 이 사회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반동이라는 적대세력을 간주한다.


이렇게 능력자에 대한 구분이 이루어지고 국자는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먹은 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일부러 낮은 등급을 받아 튀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 국자의 친구 경남 글로리아 또한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갖고 있지만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낮추어 국자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들이 훈련소에 있을 때 각광받던 새로 지워진 아파트 단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되고 영웅이라 칭송받던 능력자들은 때마침 해외순방 중이라 구조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보다 등급이 낮은 김숙녀와 어윤경이 무너진 건물에 깔린 이들의 구조에 앞장서게 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 사고와 언제 이어질지 모를 붕괴에 두려움을 느낀 영웅과 높은 관료들은 어윤경에게 책임을 미룰 생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도 사고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도 벌어진 일을 바꿀 수는 없었다. 


어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의 능력은 이미 우리 사회가 무수히 세밀한 간격으로 등급을 매겨 구분해 온 것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왔지만 그러한 시선으로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은 삼시 세끼를 항상 잘 챙겨먹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재난 사고와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테스트와 같은 설정은 비단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굴직한 획을 그은 사건들과 오버랩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자와 미지의 아버지가 된 윤수일 또는 박종일과의 사랑의 연대기는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며 비정한 사회구조 속에서도 미지가 선생님으로서의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근원이 되지 않았나 싶다. 


“회피는 생선회 접시 가장자리에 놓인 레몬 조각과 같았다. 신경썼다는 티를 은근히 내면서도 횟감에서 비린내가 나면 레몬즙을 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핑곗거리가 되기도 했다. 막상 레몬 조각을 짜다보면 레몬즙은 회가 아니라 애먼 손만 흠뻑 적시기 마련이었다.(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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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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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데쓰야의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를 읽었다. 음악, 영화, 책은 공통적으로 그것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즐기고 누리게끔 해 준다는 것이다. 이는 감상하는 이에게 실질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1차원의 욕구를 넘어서는 2차원 이상의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문화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감상하는 이들에게 충족감을 주기 위한 창작자들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편이다. 소수의 히트작을 만는 이를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음악가와 영화 관련 종사자와 작가들은 때로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순수 창작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 가깝고 아끼는 이가 그러한 창작의 길을 직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대부분은 응원보다는 진심어린 걱정으로 염려하며 그가 큰 좌절을 겪지 않을까 우려할 것이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음원 사이트에서는 매일매일 신곡이 넘쳐나고 영화 또한 매 주일 새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며 서점에 가면 대체 누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책을 쓰는 것인지 신간 또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출판된다. 


음악과 영화도 상당 부분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겠지만 책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된다.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음악과 영화를 설명해주고 짤막하게 요약해서 보여주는 경우도 많고 유튜브에서도 십분만에 두 시간짜리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감상할 수 있는 채널들이 많다. 하지만 가뭄에 콩나듯 책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 생겼다가도 얼마 안가서 없지기가 일쑤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책과 저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야 관심도 생기고 흥미가 유발될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작가는 유명한 소수에 불과하며 그 작가를 안다고 해도 실제로 그 작가의 저작 중에 읽은 것은 한 두 권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기란 여간해서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책은 음악과 영화와 비교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음악과 영화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미디어의 향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기 구독료를 내며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있다. 하지만 책은 그렇게 즐기기가 어렵다. 특히나 멀티태스킹과 인터넷 서칭에 길들여지게 되면 우리의 뇌 구조가 활자를 인식하여 생각하고 고뇌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몇 시간 동안 활자에 집중해서 책에 나온 내용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언젠가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있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응가가 마려워졌다. 처음 몇 번은 그냥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만 머물렀는데, 그런 현상이 몇 차례 반복되지 혹시 책장을 마주하면 그런 생체적인 반응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서점과 도서관에서 책에 쌓인 먼지와 책에서 나는 냄새가 배변활동을 왕성하게 만든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런 신기한 화학 반응이 생겨나는 이유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내 몸이 이상한게 아니라는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책을 고르다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곤 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굳어진 습관 중의 하나는 매일 아침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업데이트된 신간을 살펴보는 것이다. 마치 트랜드에 민감한 MZ 세대인 것처럼 마음에 드는 신간을 누구보다도 빨리 읽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온다. 그리고 MZ 세대가 힙한 장소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처럼, 나또한 신간을 빨리 읽어서 서평을 쓰고 업로드 하고 싶어하는 관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 서점보다 신간 판매가 늦는 오프라인 서점에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서점에 가더라도 대충 매대 위에 놓인 서점과 출판사가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주력하는 책들만 살펴보고 어딘가에 숨겨진 채 보석같은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책들을 고르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 나온 실제 모델인 고바야시 서점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독립서점이 늘어가고 있다. 제주도에 머물 때에는 소리소문 서점에 가끔 들르곤 했었는데, 일반 대형서점과는 다르게 베스트셀러와 메이저 출판사 위주가 아닌 평소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 메인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는 양식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기도 했다. 독립서점에 가면 마치 책을 좋아하더라도 편식해온 습관을 고치라고 종용받듯이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관을 펼치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럽기까지 했다. 가끔 독립서점에 가면 어떤 주인분은 가까이 다가와서 어떤 책을 고르냐고 묻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꺼려지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독립서점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비대면과 시니컬함을 대명사로 하는 차가운 현대사회에서 자신이 읽은 책을 자신있게 권하며 대면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마음은 지속되어야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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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탄에 삽니다
고은경 외 지음 / 공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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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이연지, 김휘래 님의 [우리는 부탄에 삽니다]를 읽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예전에는 그렇게 많이 출판되는 것 같던 여행기들이 자취를 감춰서 더 그런지 다른 나라에 대한 신간 정보에 더욱 눈길이 끌린다. 특히나 ‘부탄’이라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 부탄에 대한 정보라면 히말라야 부근에 있는 작은 나라,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행복지수가 엄청 높아 거의 1위에 랭크된 경제적인 지표는 낮지만 국민들이 행복함을 느끼는 나라라고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탄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다는 것 정도. 


히밀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마디로 가서 정말 드럽게 고생을 하고 드럽게 지내다가 와야 하고 잘못하면 고산병에 걸려 고생만 하다가 온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그런데도 적은 비용이 아님에도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오를 수 있는 높이까지 트래킹을 다녀온 분들은 마치 중독된 것처럼 또 다시 히말라야 트래킹을 꿈꾸고 있었다. 남미에 다녀온 이들 또한 남아메리카의 상당수의 나라가 높은 지대에 형성된 곳이 많기에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뭔가 어질한 느낌이 들며 마추픽추 같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산병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하고 올라가기 전까지는 당최 누가 고산병에 약한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은 1,950미터이기에 고산병의 증세를 느껴보기란 불가능하다. 언젠가 방송인 알베르토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 중의 하나인 알프스를 가기 위해서 뭐하러 비싼 돈 들여 스위스를 가냐고 말한 적이 있다. 알프스는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치는 거대한 산맥이기에 스위스의 융푸라우와 인터라켄 같은 곳에 가고 싶다면 차라리 이탈리아 북부의 돌로미티를 가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토의 말이 맞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알프스 물가는 아마도 거의 두 배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는 상당히 커서 높은 지대에 오르는 코스가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다. 그런데 3,000미터 이상의 높은 지대를 물론 트래킹으로 오를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가 워낙에 잘 되어 있어서 두 번 정도 바꿔서 타게 되면 순식간에 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를 밟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8월을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낮의 더위와 뜨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돌로미티를 갔을 때에도 산을 오르기 전에는 35도 정도 되는 무더위가 한창이었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15도 정도가 되어 쌀쌀함이 느껴졌다. 공기는 얼마나 맑고 하늘은 얼마나 파란지 정말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 높은 고지에 관광객들을 위한 펍도 있어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티롤 지역의 소세지를 먹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러니 비싼 돈 주고 스위스를 갈 것이 아니라 돌로미티를 가자는 알베르토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함께 선배가 신이 나서 그런지 평소와 다르게 무척 업이 되어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신나게 뜀박질을 했다. 그런데 케이블카를 타자마자 선배형이 마치 고꾸라지듯이 맥을 못추며 잠이 들어버렸다. 지상으로 내려와 보니 아마도 알콜 기운과 뜀박질 때문에 고산병 증세가 살짝 온 것 같았다. 선배는 무척 신기한 경험을 한 것처럼 잠시 후에 멀정해졌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 대한 기억은 돌로미티의 추억이 유일한데, 부탄의 수도 팀푸는 2,400미터 고지에 있다니, 더군다나 도시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니 신비한 미지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부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세 명의 저자는 신기하게도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대표하고 있다. 부탄에 사는 우리나라 교민이 10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니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신기했을까. 그런데 막상 책에 삽입된 사진을 보면 부탄 사람들의 외모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너무 흡사하여 말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외국인인지 구별하기 힘들 것 같아 보인다. 아니 어째서 인도, 네팔 그 부근의 사람들은 우리와 확연히 다른 외모인데 부탄만이 그렇게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해주는 은경 님은 코이카 코디네이터로 부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미 제주에서도 유사한 일을 해왔기에 가능하겠지만 저자의 가족이 모두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해외봉사단원들이 다시 돌아가게 되고 결국은 사무실마저 철수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부탄의 문화적 특성을 살뜰히 전해주기에 부탄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왕성해지고 지구상에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과 습성을 지닌 국가가 존재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해주는 연지 님은 어찌보면 세 명의 저자 중에 가장 부탄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벌써 10년 째 부탄에서 살아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부탄 사람과 혼인하여 살고 있기에 저자가 전해주는 말은 외부인의 시선보다는 부타인들의 삶에 충분히 녹아들어간 부타인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특히나 불교국가로서 집집마다 정성스레 꾸민 제단을 갖고 있는 그들의 신실한 믿음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나눔은 그들이 믿는 불교가 단지 종교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인본주의 사상에 흠뻑 젖어든 현대인들에게 인간이 이 모든 자연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없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만 같다. 부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채집과 식용의 권리가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심지어 파리 한 마리를 때려 죽이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연지 님의 남편 타시의 에피소드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경제적 빈국임에도 행복함을 누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 이야기를 전해주는 휘래 님은 세 저자 중에 가장 젊은 피로 부탄을 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부탄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부탄 정부의 일을 도와주는 유엔 상주조정관실에서 분석관으로 일하며 알게 된 내용을 어찌보면 세 명의 저자 중에 가장 객관적인 수치와 평가로 전해주고 있다. 부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해들은 것처럼 가장 행복한 나라가 맞는가? 부탄에는 우리와 비슷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해주며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부탄 유엔 사무실에서 만난 직장 동료들과의 이야기는 세상 어느 곳이나 일터에서 발생되는 갈등과 어려움은 비슷함을 전한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이들과의 산행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곳과는 뭔가 다른 따뜻함과 산뜻함이 느껴졌다면 그게 바로 부탄이 가진 힘이려나?


“무엇인가에 쫓기듯 무섭도록 속도가 빨라져버린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걸음을 유지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이곳을 특별하고 이상한 나라로 만들어버린 부탄에서,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220)”


“Don’t try to find yourself, just be you.

비슷하게, 나는 부탄에서 산을 오르면서 내가 조금 더 좋아졌다. 산을 잘 올라서가 아니라, 무엇을 더 잘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산을 잘 못 올라도,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이 아름다운 자연의 한 부분이 나라면, 그냥 그 자체로 충분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좋아하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바뀌는 산처럼, 나도 삶의 단계를 따라 자연스럽게 그냥 내 자신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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