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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9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21년 12월
평점 :
김경욱 작가의 [동화처럼]을 읽었다. 근래에 들어 어릴때 읽고 들었던 전래동화나 서구의 동화들의 숨겨진 내용을 낱낱이 드러내는 잔혹동화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의 일부분이 원래의 소설 일부를 각색해서 쉽게 쓴 것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원전은 그렇게 해피하지만은 않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낭만적이고 교훈적인 동화의 때론 추악하고 끔찍한 전말을 다 알게 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에 잔혹동화의 결과를 읽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동화 속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가 잔혹동화가 그 자체이니 말이다. 요즘 아이들도 동화를 읽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더 이상 허접하게 각색된 지인의 지인의 지인의 부탁으로 덜컥 사버린 동화전집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동화작가들의 쓴 좋은 책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내적 성장을 위한 준비물은 충분한 셈이다. 하지만 동화책과 동네 아이들과의 흙장난이 재미의 전부였던 시절에서 단 10초도 안 걸려 대부분의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각종 영상과 게임이 넘쳐나는 시대로 전환되었기에 준비된 훌륭한 동화책들은 행여나 힘을 못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보다 철드는 시기가 늦춰졌다고 한다. 이미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환갑을 맞으면 동네 잔치를 벌였던 시대처럼 수명이 짧아 제2차 성징과 더불어 철이 들고 어른이 되었던 시대와는 다르게 그보다 몇십년은 더 살게 되었으니 너무 일찍 철이 들면 남겨진 시간들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싶어 늦게 철이 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란 엉뚱한 추론을 해본다.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성인으로 인정받아 직업을 갖게 되는 나이대가 어느덧 20대에서 30대로 넘어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몸으로는 어른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내적으로는 아직 어린 아이가 남겨져 있다.
오랫만에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90년대 초반 대학생활을 시작한 장미와 명제는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치하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에 둘러싸여 학생 운동을 주도하던 세대와는 다르게 지금은 당연시 받아들이는 개취와 서구문화에 흠뻑 빠져든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노래패 동아리에 들어간 대학동기들은 MT에 가서 흠모하는 대상을 마음에 품게 되고 질투와 불확신의 소용돌이에서 분노하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몇 년이 지난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재회하게 된 명제와 장미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기막힌 확률을 계산하고, 공복과 계시 같은 엄마의 주문에 결을 맞춘 행운을 통해 연인이 된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명제와 장미의 결혼은 IMF라는 경제위기로 인해 여행사의 도산하며 신혼여행이 파토가 나며 불운이 시작된다. 때마침 결혼식장에 장미의 첫사랑인 치대생 서정우가 초대받은 것인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나타나 명제에게 불쾌감을 안기며 설상가상으로 취소된 신혼여행을 제주도에 있는 친구의 호텔을 예약해주는 구세주로 등장한다.
서정우에 대한 오해와 다툼으로 신혼여행 첫날부터 위기를 맞이한 명제와 장미는 이후 신혼부부의 전형적인 다른 생활방식에 오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별 위기를 맞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에 나온 눈물의 공주와 침묵의 왕자 동화 이야기처럼 장미는 눈물이 많은 여자였고, 명제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결핍이 있었다. 강유정 평론가의 작품해설에 나온 것처럼 이 세상 어떤 부모도 단 하나의 결핍없이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 완벽하고 완전하게 모든 것을 다 서포트 해주면 모자람없이 자랄 것 같지만 오히려 결핍이 없는 환경이 아이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결핍에서 오는 무능함과 무력함의 이유를 제3자에게서 찾지 않는 것이다. 장미가 오랜시간 계모와도 같이 자신을 대한 엄마에게서 눈물의 이유를 찾은 것처럼, 명제가 엄마의 부재와 더불어 아버지의 한결같은 과묵함으로 인해 침묵의 이유를 찾은 것처럼 그들은 결혼을 하고 헤어지고 다시 재회하기까지 여전히 숲속의 공주와 개구리 왕자의 동화속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남들의 눈에 비춰졌을 때 두 번 째 헤어짐이라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비로소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된다. 별거와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우울의 긴 시간을 보낸 장미는 홀로서기를 통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찾아나가게 되고, 동화작가로 등단한 소식을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된 명제는 장미의 병든 아버지가 찾는 말에 서둘러 달려가며 재회하게 된다. 이미 상실의 큰 아픔을 겪은 명제와 장미는 더 이상 동화의 결말을 믿는 철부지 소년 소녀가 아니며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해 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들의 성장사는 장미가 더 이상 엄마를 계모처럼 여기지 않고 엄마 또한 아빠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절정에 달하고 되고, 명제 또한 아버지의 입에서 처음으로 듣는 '미안하다'는 말을 통해 침묵이 해제된 넉살 좋은 말을 늘어놓는 살가운 사위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동화의 결말이 항상 그렇듯이 명제와 장미의 동화도 해피엔딩을 예감케 한다. 살다보면 또 어찌될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잔혹동화가 난립하는 시대에 한 번쯤은 꿈꿔 볼 새콤달콤한 연애사가 아닌가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볕이 좋으면 볕이 좋다고 건네는 인사는 죄의식과 무관했다. 비와 눈과 볕에게는 죄가 없다. 죄는 비와 눈과 볕을 핑계 삼는 마음에게 있는 법. 비가 와서 그립다고, 눈이 내려 심란하다고, 볕이 좋아 쓸쓸하다는 마음들에게.(206)"
"깨달음은 언제 찾아오는가. 깨달음은 찾아오는 게 아닐 것이다. 빛이 그러하듯 깨달음 또한 우리 안에 있으니 어둠이 깊을 대로 깊어져 바깥에 목매던 시선이 내면을 향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알아보게 되리라. 늘 그곳에 있어 온 깨달음을. 어떤 이는 수술대에 누워서, 어떤 이는 산꼭대기를 눈앞에 두고, 또 어떤 이는 철 지난 팝송 가사를 받아 적다가.(249)"
"흔히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인류는 언제부터 시간을 강물에 비유했을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그리 생각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 한 철학자는 시간의 불가역성을 설명하기 위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금언을 남겼으니까. 흐르는 강물과 같은 시간은 모래톱의 모양을 바꾸듯 세상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하늘의 높이를 바꾸고 구름의 모양을 바꾸고 나뭇잎의 색깔을 바꾸고 사람들의 얼굴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깊고 넓은 강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듯, 매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고 구름을 바라보고 나뭇잎을 들여다보고 얼굴을 쳐다본다면 시간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깊고 넓으니까.(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