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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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화 기자의 [민트 돔 아래에서]를 읽었다. 부제는 “송가을 정치부 가다”이다. 작년 봄을 시작하며 노란색 자켓을 입고 동그란 안경을 쓴 기자 그림을 표지로 한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를 읽고 나서 현직 기자가 이렇게 소설까지 잘 써도 되는 거야 라며 ‘이러면 반칙이지’라는 놀라움을 안겨줬는데, 이듬해인 올해 가을을 시작하며 두 번째 소설을 만나게 되니 놀라움이 두배가 되었다. 지난 편은 송가을 기자가 첫 기자 생활을 하는 고군분투기였다면, 이제는 어느 덧 4년차가 된 송가을 기자가 정치부로 자리를 옮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시나 이번 책도 동그란 안경을 쓴 송가을 기자가 파란색 자켓을 입고 민트색 돔이 있는 국회의사당 앞 그림을 표지로 해서 마치 소설 속에 나온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너무 개연성이 없어서 오히려 만화같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당연히 소설 속에 나온 사건들은 저자가 꾸며낸 이야기겠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걸 보면 차라리 영화나 소설 속 상상이 오히려 개연성이 높지, 실제 벌어진 사건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기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아침에 토스트를 먹으며 뉴스를 보면 매번 정치 관련 기사가 제일 먼저 보도돼곤 한다. 정치인들이 매번 유사한 형태로 서로의 말과 행동을 헐뜯으며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밀려와 채널을 바로 돌리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정치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그러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착복과 불법 행위를 일삼는 작태가 고발되는 뉴스에는 분노가 정점에 달해 아예 뉴스조차 보고싶어지지 않는다. ‘나 하나 정도야 뉴스 안보고 살아도 뭐 알아서들 잘 하겠지’, ‘혹은 내가 뉴스 보고 정치판이 돌아가는 걸 잘 안다고 해서 뭐 세상이 달라지겠어’ 라는 생각을 하며 이왕이면 재미있고 기분 상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나 보자며 채널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나 말고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 진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동안 귀찮고 복잡하고 머리아픈 일들을 자꾸만 뒤로 미뤘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도, 군사독재정권의 기득권에 있던 이들에 대한 처벌과 그들로 인해 의문의 죽음과 상처를 받은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심지어 아직도 미궁에 빠진 세월호 사건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냥 잊고 살자는 나약함이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정치는 생물이다. 여의도는 욕망의 용광로다. 이 두 문장이 어쩌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졌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금빛 뱃지를 단 이들은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입법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공표된 법은 국민들의 실생활 곳곳에 적용되고 때로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또한 국회에서는 정부 각 부처들이 국민들이 낸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며 일하고 있는지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에 대한 감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거대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 중 누군가가 언젠가는 대선 후보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욕망의 용광로라는 말은 결국 정치에 입문한 사람은 결국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얼마나 많은 정치인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온갖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정치성향까지 정반대로 바꾸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는지 이제는 더 이상 실망할 일도 놀랄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포기와 실망은 이르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


송가을 기자가 정치부 말진이 되어 여의도를 날아다니는 장면들은 마치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고 흥미진진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알지 못했던 많은 이면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장 악독한 갑질 의원 밑에서 온갖 수모를 견디던 박새롬의 이야기는 차라리 그냥 뜬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아려왔다. 소솔 속에서는 대차게 복수를 하지만 부디 현실 속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어디선가 송가을 기자가 나타나 번뜩이는 기지와 뛰어난 복기 능력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의 마이크가 되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들, 약자들에게 먼저 손 내밀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기자. 난 그게 좋은 기자라고 생각해. 우리는 주로 고위층을 만나잖아. 권력자들, 힘 있는 강자들 목소리만 기사화하기 쉽거든.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는 기자. 그게 좋은 기자라고 본다.(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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