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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다.
그녀의 불만은 발전 단계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우린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요."
하고 앨리스는 말할 터였다.
하지만 그 표현은 부적절했다.
앨리스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인생에서, 애인에게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지
마는지 묻고 싶은 단계에 있다구요......." 였다.
사춘기 탓으로 돌려버리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몰라도,
인간의 복잡한 고뇌가 다 단순해져버렸다.
위대한 문학 작품까지 그 폭을 넓힌다면
세상의 평론가들은 다 일을 그만두어야 하리라.
햄릿, 라스콜리니코프, 베르테르를 몰아붙인 것은 무엇이었나?
당연히 사춘기적 분노였다.
그럼 돈키호테나 험버트 험버트(소설 '롤리타'의 주인공)는?
중년의 위기.
그럼 나이 든 안나 카레니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해 갱년기 장애와 호르몬 이상.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2006. 04. 12. WED. PM 10:36
변기가 또 막혀 정말 짜증나는 시점에서
기분을 전환해 보기 위해 보통씨의 소설을 리뷰해 보자.
혼자산다는 것은 정말,
막혀버린 변기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각보다 심오하게 심각하고 외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12월에 읽기 시작해 반도 못읽은 상태에서
이것저것 복잡하고 미스테리한 상황 속에 복댕이의 손에
넘어갔다가 거즘 3달만에 내게로 돌아온 보통씨의 책.
돌아온 뒤에도 '지금 이 시점에서 사랑 운운하는 책이 눈에
들어오겠어??' 하는 주인의 변덕스러움으로 한달 동안 책장
에서 천대받았던 기고한 운명의 책이었으니.
그만큼 읽는 동안 관심과 애정을 쏟아내야 했다.
그의 특유한 철학적인 문체는 대충대충 읽었다가는 반도 이해
하지 못하고 마무리 지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영역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씨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어머니의 존재감은 x분 동안 지속된다.
어머니가 x분이 넘게 돌아오지 않으면 그 영상은 지워지고,
그와 함께 아기가 결속의 상징을 이용하는 능력도 사라진다.
아기는 고통 받지만,
어머니가 x+y 분 뒤에 돌아오면 고통은 치유된다.
x+y 분 뒤에 아기는 회복된다.
하지만 x+y+z분이 지나면 아기는 정신적인 외상을 입는다.
x+y+z분 뒤에 어머니가 돌아와도 아기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정신적인 외상은 아기가 삶의 연속성에 단절을 경험했음을
암시한다.
위니캇과 피아제의 이론을 앨리스와 에릭에게 적용하는 것
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르지만,
영속성이라는 문제는 공통된다.
여기서는 대상 영속성이 아닌 사랑의 영속성 문제다.
이 사랑의 영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
도 다른 정인 (情人)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 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의 종말
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는 믿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과는 달리 남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여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바라본다는 것이 새롭고 더 흥미로웠다.
남자의 입장이나 여자의 입장이나 우리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 특이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듯이
앨리스가 모든 여자의 표본이고 에릭이 모든 남자의 표본이라
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남자와 여자의 그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
계를 어찌나 그리도 잘 꼬집어 내는지.
내가 밤중에 콜콜 자고 있으면 보통씨가 내 마음속을 왔다갔다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남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연애하면서 남자가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방식과 태도
가 여자에게는 왜 그리 낯설고 쓸쓸하게 받아들여 지는가?
그러면서도 왜 많은 여자는 앨리스처럼 '그래도 나는 그를 사
랑해.' 라고 느낄까?
왜 사랑한다고 믿는 두 사람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서로 다
를까?
작가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개인의 성장 배경에 따른 문화의 차이
등을 때로 철학이론 등을 동원하며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담아
펼친다.<공경희>
보통씨가 독심술을 발휘하는 건 사랑의 영역 뿐만이 아니다.
이번엔 내가 갖고 있는 '불안'에 대해 그는 어떻게 내 마음을
읽고 있을지 궁금하군.
알랭 드 보통씨의 신간 '불안'... 기다려라...
중간고사 끝나고 달려갈 터이니.
"줄다리기 같은 건 아니에요, 난 그런 거 싫어해요."
"키스해도 될까요?"
앨리스가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돌려줘도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