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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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의미론적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갑자기 나는 클로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길래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험프리 보가트와 로미오에게 눈을 찡긋하며.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05. 08. 17. WED. AM 8:09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책 표지가 심히 거부감을 일으켰다.

후기에서도 딱딱하다는 평이 남발했다.

읽고싶은 마음 반. 별로일 것이라는 마음 반.

그렇게 그렇게 보통씨의 책을 주문하는 걸 결정하는 일이란

너무 어려웠다.

 

"머해" "책읽고 있어" "무슨 책 읽는데??"

"보통사람이 지은 책이야"

"깔깔깔깔깔깔깔~~~~ 보통사람이 지은책은 어떤 책인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나의 형님이 읽고 있고. 또 권유했던 이유로.

결국은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생각대로 여전히 겉표지는 나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고

책 두께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두꺼웠다.

하지만 첫 10페이지를 읽고 말 그대로 필이 꽂혔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

엉뚱하고 일상적이면서 깊은 매력을 갖고 있는 말투.

역자의 말로는 웃음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적 노력이 따라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한번 이라도 사랑을 해 본 사람이거나 약간의 이론만 가지고 있어도

쉽게 수긍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을만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시끌벅적한 지하철이나 버스 안이 아닌.

차분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서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는

주의할 점을 가지고는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한장이 넘어가기가 무섭게

밑줄을 박박 긋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밤에 혼자서 깔깔깔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 또 사랑하고 싶은 사람. 이라면.

적극 추천해 주고싶은 보통씨의 사랑이야기.

 

 





그러나 분명한 그림은 떠오

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

던 그녀의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그림을 계속 재조정해

야 했다.

그녀는 똑같은 점을 두고 한

번은 칭찬을 했다가 조금 후

에는 비난을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제시하고 싶은 자아를

미친이 계속 고쳐 써야 했다.
그녀는 감정적 취약성을 칭찬하는 듯하다가.

곧이어 그것을 비판하고 독립성을 찬양했다.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찬양하다가.

결혼이 위선이라는 근거로 간통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침실에서는 모든 평가적 판

단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려

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침실에서는 연인들의

생각의 소리를 삼켜버리는

숨소리.

나는 정열에 사로잡혀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

라는 메시지를 확인해주는 숨소리만 들린다.

나는 키스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은 이 필수적인 미친 상태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은 숨을 헐

떡거리는데 혼자 제정신을 유지하는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에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이 여자는 이런 구

두와 나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을까?"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

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까?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클로이의 외모에 대한 나의 주관적 반응일

뿐이었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때

클로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클로이는 아름답기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예를 들면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

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

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방

식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본다.

 

 

 




나는 그녀의 사소한 동작에

서도 매력을 느꼈다.

모든 것을 그녀가 완벽하다

는 증거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거의 모든 것을 보았다.

 

잠시 나는 요구르트 병이 되어 그녀의 부드럽고 사려깊은

처리절차에 따라서 쇼핑백의 참치 캔과 올리브 기름병 사이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 공상을 했다.

내 공상과 어울리지 않는 슈퍼마켓의 사무적인 분위기를 보고서야

나는 내 낭만적 병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달았다.

 

차로 돌아가면서 나는 클로이가 식료품 사는 일을 아주 귀엽게

처리하더라고 칭찬해주었다.

"멍청한 소리 말고 트렁크나 열어. 열쇠는 내 가방에 있어."

클로이가 대꾸했다.

 

 


연인에게도 절대로

네 사랑으로 꽉 채워진 이

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상상한 것에

불과하냐.

하고 묻지는 말아야 한다.

 

의학사를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찢어질까봐" 아니면 "노른자가 흘러나올까봐"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의사는 그의 공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진정제 등 온갖 약을 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어떤 의사가 미망에 사로잡힌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늘 토스트를 한 조각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앉고 싶은 의자 위에 토스트를 올려놓고 앉을 수가있고

노른자가 샐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 환자는 늘 토스트 한 조각을 가지고 다녔으며.

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이 미망 (사랑.자신이 달걀이라는 마음)에

빠져서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을 보완해 주는 것 (비슷한 미망에 빠져 있는 클로이와 같은

연인, 토스트 한 조각)을 찾아내면

모든 일이 잘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닥터사베드라는 안헤도니아

라고 진단했다.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나오는

것으로. 고산병과 아주 흡사

하다고 규정한 병이었다.

행복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

은 행복이 워낙 희귀하기 때

문에 눈앞에 다가오면 무시

무시하고 불안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

"너를 이런 식으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네가 이것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놓여.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너

그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죄책감

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달라고 삐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

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낭만적 테러리스트는 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여자가 남자를 배반함으로

해서 생긴 고통을 놓고 배반

당한 남자가 배반한 여자를

위로하고 있다니........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기로.

울지 않기로.

피해자나 처형자가 된 것처

럼 느끼지 않기로 했다.

비록 내 사랑이 희생이 포함

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일반적이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나도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사랑없

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다오........
유서는 많은 초고를 거쳤다.

내 옆에는 구겨진 종이가

잔뜩 쌓여 있었다.

갑자기 나는 알약들이 든 통

으로 손을 뻗어 통째로 집어

삼켰다.

그것이 거품이 이는 비타민C알약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녀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부재에 무관심

해진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자신을 생략한다.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

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

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디너 파티

에서 레이철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레이철의 모습은 나에게 금

욕주의적 접근방법의 한계를

일깨워 주었다.

사랑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사랑이 지혜롭지 못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비합리적인 만큼이나 불가피했다.


 

그런 떨림은 한 가지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 내가 다시 한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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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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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동물원에 가기 - 알랭 드 보통

       - 2006. 10. 15. SUN. AM 12:12

 

 

 

       슬픔이 주는 기쁨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걸.

       - 세네카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풀려나가곤 한다.

 

 

 

       공항에 가기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러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장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진정성

       이 모든 소란과 안달은 왜일까?

       왜 이리도 절박하고 어수선하고 번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런 하찮은 것이 왜 이다지도 중요해진 걸까?

       -쇼펜하우어

 

       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였다.

 

 

 

       일과 행복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대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

       너의 도시들을 베수비오 산기슭에다 세우라!

       -니체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있다.

 

 

 

       독신남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왜냐하면

       친구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은 없다.

       정신을 팔 일이나 친구도 없어 깊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본질과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글쓰기(와 송어)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프루스트

 

       이제 우리는 전에는 지나쳤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하늘의 음영에,

       한 사람의 얼굴의 변화무쌍함에,

       친구의 위선에,

       이전에는 우리가 슬픔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으로부터 밀려오는

       축축하게 가라앉은 슬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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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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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다섯 번을 되뇌고 하늘을 본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

        게임을 한다. 게임이 한다. 게임을 한다. 게임과 한다.

        게임을 한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불을 끈다. 이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물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도 그것을 끄는 일이다.

        창이 없는 이 방에서 컴퓨터는 내 창이다.

        거기에서 빛이 나오고 소리가 들려오고 음악이 나온다.

        그곳으로 세상을 엿보고 세상도 그 창으로 내 삶을 훔쳐본다.

 

 

        -2006. 10. 14. SAT. PM 11:05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담배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관지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단편 소설 '흡혈귀'를 읽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동아리 토론 단편이었기에.

        그런데 그의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담배를 피지 않아 그 느낌을 잘 모르겠지만

        그의 말처럼

        내가 그의 글에서 느끼는 매력과 비슷한 느낌이겠지.

          

 

 

 

 

사진관 살인사건

-영화 '주홍글씨'의 바탕이 된 소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호리병에 갇힌 요괴처럼,

마개만 따주면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속삭여대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그들이 묻는다.

이봐.

누가 나를 이 호리병에 넣었지?

그건 바로 인간이야.

나를 꺼내준 너도 인간.

그러니까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어.

 

 

 

 

 

 

흡혈귀

 

 

 

인간이 인간을 아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섹스보다 이렇게 안고 있는게 좋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바람이 분다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위해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습니다.'

꿈꾸는 일을 위해 석 달을 하루같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그가 경이로웠다.

 

킬리만자로를 오르기 위해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다는 남자와 그는 무엇이 다른가.

또 나와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생각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왜 눈 덮인 정상에서 얼어 죽었는가.

 

아마도,

바람이 불어서였을 것이다.

마사이 초원에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불어서

표범은 무료했을 것이다.

 

 

 

 

 

당신의 나무

 

 

 

나무가 무섭습니다.

 

나무가 왜 무서운가?

 

이곳의 나무들이 불상과 사원을 짓누르며

부수어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아니면 돌이 나무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한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한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이 뿌리를 내려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버린

한 여자에게 말이다.

 

네 몸이 그립다.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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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지식총서 168
김성곤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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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호밀밭의 파수꾼>은 존 레논의 살인사건과 관련해

        커다란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존 레논을 죽인 마크 데이빗 채프먼이 홀든 콜필드에

        매료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존 레논을 저격할 때에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논의 등에 다섯 발의 총탄을 발사한 후,

        채프먼은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을 꺼내들고 읽고 있었다.

        콜필드가 기성세대를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채프먼 역시 레논을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사진은 저격당시 쓰고 있었던 존 레논의 안경을 소재로

          그의 연인 오노요코가 찍은 사진이다)

 

 

        - 2006. 09. 29. FRI. AM 2:07

        - J.D.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김성곤

 

 

        저 사진을 볼때마다 오노요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물이 앞을 가려 셔터나 제대로 누를 수 있었을까?

        존 레논의 눈이 자꾸 떠오를텐데.

        그렇다고 해서 홀든 콜필드를 미워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난 홀든콜필드와 존 레논 그 둘 중

        어느 하나에게는 관심이 없었었다.

        홀든콜필드였나?

        무튼.

        그 둘을 좋아하게 된 이상 그 상관관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반항아나 다름없는 홀든이 어떻게 존 레논의

        저격이라는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었을까.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규정했을만큼

        '정치적 보수주의, 경제적 호황, 그리고 사회적 순응'

        의 시대였다.

        간단히 말해 사회가 홀든을 반항아로 만들었고

        그 시대 청년들을 '성난 젊은이'로 만들었으며

        비트운동을 발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홀든은 비트 운동가들의 상징이었고 또 그들 자신이었다.

        홀든과 샐린저가 그 시대의 청년들을 일깨운 것이다.

        그 중에는 존 레논의 살해범처럼 책을 잘못 읽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홀든과의 경험공유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많은 청년들이

        홀든의 어떤 점이 좋아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 '가짜'라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순진성을 상

        실하고 어른이 되며, 결국 그 '가짜'의 일부가 되어간다

        는 것을 인식하는 소설이다.

        홀든은 자연사 박물관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영속하는 순수란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순수를 상실하고 타락하며,

        결국 허위와 가식 속에 살게 된다.

        홀든의 고뇌는 바로 그러한 필연적 사실의 슬픔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건에 따라서는 언제까지라도 현재모습 그대로 보존하

        고 싶은 것이 있는 법이지.

        그런 건 그 큰 유리 상자에 넣어서라도 가만히 놔둬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불가능이 너무나 안타깝거든'

 

        모든 게 변해버리는 이 사회가 싫어서

        샐린저는 숨어버렸고 홀든은 죽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잡초같이 꿋꿋이 살아남아서 모든 것과 조우하면서

        살아 남겠다.

        어차피 누구나 순수를 상실하고 타락하게 된다면

        홀든이 말하는 '가짜'라는 사회가

        사실은 우리에게 '진짜'사회가 아닐까?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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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여자가 스무살 여자에게
김현정 지음 / 토네이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청춘_
 
변방만 기웃거리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

바로 당신의 청춘입니다.
 
 
 
 

 

 - 2006. 09. 29. FRI. AM 1:33

 - 서른살 여자가 스무살 여자에게 - 김현정

 

 

 

 

스무살 시절에는

자신의 삶을 낯설게 하기 매우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삶과 미래 세상을

갑자기 던져 버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삶과 꿈꿔왔던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편한 것들에서 빠져나와

좀 불편한 것들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을 때

스무살 청년의 미래는 새롭고 획기적이고

경이로울 것입니다

 

 

 

 

스무살 시절에는

모든 달콤한 유혹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아요

남들보다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이

남들보다 빨리 일어설 수 있죠

하지만 서른에는

결코 유혹이 주는 달콤함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 바로

운명이 가져다 주는 체념입니다

 

 

 

 

스무살, 짱짱한 나이죠

무엇을 해도 힘이 차고 넘치죠

그 힘을 잘 가꾸고 다스려 나가세요

살다보면 덜컥 넘어질 일이 많아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지 말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세요

그리고 그 힘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감사하세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현실속에 불쑥불쑥 찾아올 겁니다

반갑게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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