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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쏟아졌다.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무서웠다.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난 죽게 될거야."
그 럼 에 도 불 구 하 고 이 이 야 기 는 해 피 엔 딩 이 다 !
-파이이야기 - 얀 마텔
-2006. 03. 25. SAT. AM 12:13
모든 생물은 광기가 있어서,
때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런 미치광이 기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이 적응의 원천이기도 하니까.
그런 기질이 없으면 어떤 종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동물원이 너무 가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적 가봤거나 유치원에서 무작정 아무것도 모르고
졸졸 따라다니며 한바퀴 쭉ㅡ 돌았었거나...
하지만 기억에 남을 법한 인상적인 장면은 머리속에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입만 우물우물 거리는
동물들이 그냥 따분하기만 했던 것 같다.
'쟤네들은 어째서 나를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거야.'
날씨도 따뜻~하니 따분했고 동물원도 따분했다.
지금 보내준다면 정말 열심히 관찰할 자신이 있는데...

<엄마랑 동생이랑 동물원에서. 엄마 안경이 압권이다.ㅋㅋ>
이렇게 동물에게 의미를 부여한 책을 읽은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느릿느릿하니 굼뜬 게 정말 멍청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야생동물답게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것들이다.
오히려 그들이 시끄럽게만 떠드는 우리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쟤네 뭐니...' 하고 말이다.
물론 파이의 여행기는 정말 멋지고 흥미로운 글이었지만
나는 여행기에 앞서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물원의 동물들
을 묘사하는 부분이 훨ㅡ씬 맘에 들었다.
그리고 그의 종교이야기도.
파이는 무려 3개의 종교에서 독실한 신자였다...;;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금토일 3일을 예배보러 가는 파이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각 종교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왜 셋을 한꺼번에 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마마지는 여권을 두 개나 갖고 있어요.
인도인이고 또 프랑스인이거든요.
어째서 힌두교도 겸 기독교도 겸 이슬람교도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이 이야기가 위대한 것은 파이가 가족을 모두 잃고 뱅골
호랑이와 한 배를 탔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파이가 구조되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절망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의 상황이 결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고 신을 사랑했으며 혼자 일어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이는 현재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함으로써 나름의 반전까지
정말 말 그대로 흥미진진한 파이의 모험기.
삶에 만족하지 못해 절망속에서 허덕이는 당신과 내가
파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