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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 슬금슬금 ㅣ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1
이가을 지음 / 북극곰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사람치고 어려서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도깨비 이야기 한 자락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한동안 외할머니와 이모들에게로 보내지면서 기나긴 겨울밤, 외할머니가 건네주시는 무 한 조각 씹으면서 꽤 여러 도깨비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아휴, 그때 어른들은 달고 시원하다던 그 무가 내 입엔 왜 그렇게 매웠던지.....
각설하고.
그러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애들이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뭔 놈의 옛날이야기를 그렇게 해달라고 졸라대는지.
나무꾼과 선녀서부터 흥부 놀부를 넘어가서 콩쥐와 팥쥐만 있더냐 바보 온달도 있었고 홍길동도 있었으나 가장 반응이 좋은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주워들었던 도깨비 이야기였으니.
많고 많은 도깨비 이야기 중에서도 우리 애들이 제일 좋아했던 이야기는 섣 달 그믐날 밤 잠자는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 보고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 야광귀 이야기였습니다. 야광귀에게 신발을 빼앗긴 아이는 명이 짧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새파래지던 녀석들. 그 야광귀를 막으려면 구멍이 촘촘한 체를 걸어두면 숫자를 잘 세지 못하는 야광 귀가 체 구멍을 세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세다가 잊어버리고를 밤새 반복하다가 해가 떠오르면 포기하고 돌아간다고 했더니 우리 집엔 체가 없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해서 체 대신 더 구멍이 많은 방충망이 있어서 괜찮다고 달래주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무섭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 하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옛날 외할머니가 겁에 질린 손녀의 껌뻑이는 그 눈길이 하도 예뻐 자꾸자꾸 새로운 옛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셨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도깨비가 슬금슬금』 에 나오는 많은 도깨비 이야기 중에 제가 아는 이야기는 씨름 도깨비 어영차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도깨비 이야기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어디선가 들어 본듯한, 아니면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듯한, 아니 겪어 본듯한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우리 집엔 짝을 잃어버린 양말이 참 많아요. 신던 양말을 훔쳐 갈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자꾸 양말이 한 짝만 없어지는지, 흠 『도깨비가 슬금슬금』필시 집도깨비의 짓인가 봅니다.
우리는 흔히 도깨비 하면 외눈에 뿔 달린 모습을 생각하는데 이건 일본의 도깨비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그 모습을 딱 이렇다고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빗자루, 짚신, 부지깽이 절굿공이처럼 오랫동안 쓰다가 버린 일상용품이 도깨비로 변했기 때문이라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이 와장창이, 와글와글이, 출렁출렁이, 뚝딱인 이유를 알겠습니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막둥이가 잠자려고 제 옆을 파고들 때마다 한 자락 씩 들려줄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도깨비 이야기가 끝이 나면? 뭐 비슷한 도깨비들이 등장하는 창작의 단계로 접어드는 거지요.
녀석이 이다음에 아빠가 되었을 때, 아빠가 들려주는 도깨비 이야기에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지는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옛 모습을 추억해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니, 아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건만 흐뭇해집니다.
옛이야기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