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고 싶은 날
강심옥 외 24명 지음, 김민희 외 20명 그림 / 북극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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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왜 어려운가?

시는 특별한 사람만 쓰는 걸까?

시는 소박하면 안 되나?

 

우리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시 읽어줄까 하고 물으면 하나같이 싫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듭니다.

'왜?'

'시는 어려워요.'

 

창비에서 그림책으로 나온 백석의 준치 가시 읽어주었습니다.

나물지 말자, 나물지 말자....

하루 종일 키득키득 거리면서도 따라 욉니다.

 

"재미있니?"

"네, 진짜 재미있어요."

"이게 시야."

"헐~"

  

다시 궁금하다.

시는 왜 어려운가?

 

몰래 먹는 아이스크림


김유하 (3학년)


엄마가 올까 봐 조마조마해서

맛이 안 느껴진다

아이스크림 껍질과 엄마의 숨바꼭질

끝나지 않는다

밤에도 하나 몰래 먹는다.


이건 우리 집 막내가 절대 공감하는 시입니다.

살이 쪄서 먹는 것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 막둥이. 특히 단 음식과 밤 간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 눈치 보고 몰래 들고 들어간 아이스크림.

"엄마, 진웅이 아이스크림 먹어요."

형들의 고자질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지는 순간이지요.

유하 어린이랑 우리 막둥이랑 어쩜 이렇게 똑같은 마음일까요.


좋은 시는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시입니다.



아빠는 스컹크

 

김민주 (6학년)

 

TV를 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민주야, 빨리 와 봐. 비밀 얘기해줄게."

아빠가 동굴처럼 이불을 벌리고 있었다

"야호"

이불 속으로 막 들어갔는데

뿌우웅 뿡! 뿡뿡!

아뿔사 독가스실이었다.

 

 

 싸움


박귀범 (4학년)


밥을 먹지 않아서

아빠에게 혼났다

형이 비웃었다

기분 나빴다

형아랑 엎치락 뒤치락 싸웠다

엄마에게 혼나서

싸움을 그쳤다

형아가 원숭이처럼 킥킥거렸다.


아이들에게 시는 좋고 아름다운 것만 소재가 된다고 혹시 누군가 잘못 가르쳤다면 이 시를 읽어보게 해야겠습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고, 뭐라도 시의 글감이 될 수 있으니 더는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잘 보이고 싶은 날』이 시집은 곡성의 아이들이 쓰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꾸며진 시집입니다.

『잘 보이고 싶은 날』은 전남 곡성의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님이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글을 배우면서 쓴 시를 엮어 만든  『시집살이 詩집살이』에 이어 두 번째 만든 책이네요.


사실  『시집살이 詩집살이』는 유명 시인의 시집도 아니고 시골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쓴 시라는 표지 글을 읽고선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가 그 감동에 한 방 '훅' 먹은 책이었습니다.

삶이 가진 사연보다 감동스러운 시는 없습니다.

할머니들의 삶을 꾸미지 않고 담은 시인데 왜 감동이 없겠습니까?


어쨌거나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시인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님께 박수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잘 보이고 싶은 날』이나『시집살이 詩 집살이』같은 책이 잘 팔릴 책이라거나 많이 읽힐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출판사의 입장에선 이런 책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남다른 가치관을 가지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책은 어떤 어려움 (특히 경제적인 것이겠지요)이 있어도 만들어 내는 북극곰 이순영 대표님과 이루리 작가 님의 책에 대한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쉬운 시도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다 시인이 될 수있습니다.

소박한 시도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날』은 그걸 아주 잘 보여둔 시집입니다.


한동안은 나란히 꽂힌 『잘 보이고 싶은 날』과『시집살이 詩 집살이』두 권에 행복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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