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이 사는 골목 푸른도서관 84
김현화 지음 / 푸른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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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월의 밤들을 지내며 밤의 길이에 맞춘 독서를 하기 로 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고민하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한

"기린이 사는 골목 (김현화 지음, 푸른책들 펴냄)"은 표지 그림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구를 닮은 커다란 달, 풀밭에 앉은 피부색이 다른 두 아이, 달을 향해 서있는

기린과 멈춰선 자전거를 보니 이 셋은 밤 산책을 즐기는 건가 싶기도 했다.

 

표지를 열고 나니 기린은 어디로 가버리고 두 아이와 자전거만 덩그라니

남아있다.

'골목에 기린이 살다니 이 아이들 동물원 근처에 사는 건가?'

나의 상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학생 선웅은 고도비만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왕따 학생이다.

그럼에도 선웅이는 위축되거니 기죽지 않고 옆집 누나, 같은 반 친구인 은형을

짝사랑한다.

은형은 선웅의 집에서 도우미로 일하는 태국인 엄마와 매일 술에 취해 사는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아이들에게 튀기로 불리우며 놀림을 받지만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아이다.

 

 

언제나 제 몫을 똑부러지게 하는 은형이지만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인지 몽유병을 앓게 되고 그런 은형을 어느 밤 골목에서 발견한 선웅은

매일 같은 시간 은형과 함께 배화동 배화로를 누비며 상상 속 기린이 사는 사바나로

향한다.

은형과 선웅을 학교에서 도와주는 친구는 딱 한 명 기수 뿐이다.

 

 

세 아이는 저마다 가슴 속에 커다란 상처가 하나씩 있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입 밖으로 아프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노숙자들에게 밥을 선물하는 꽃밥집 기수네 할아버지와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미는

순댓국 아주머니, 할머니 그리고 무료 진료를 하는 선웅이 아버지와 봉사자들이 있어

배화동은 행복한지 모르겠다.

작가를 꿈꾸는 선웅이는 이제 아이들의 괴롭힘에 당당히 맞선다.

은형이 역시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고, 기수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혼자 추스리고 있다.

그러나 셋은 이제 더 이상 외롭거나 아프지 않다.

사바나를 거니는 천천히 풀을 씹어삼키는 기린처럼 슬픔을 견디고 이기는 법을 배우며

마음이 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꽃밥집에선 꽃으로 밥을 짓는 줄 알았다는 선웅이의 천진한 말이 계속 떠오르는 밤,

혹 우리 동네 어딘가에 기린이 달빛을 받으며 걷는 건 아닌지 궁금해 겉옷을 입고 

밤거리를 거닐고 싶어졌다.

세 아이들이 서로를 향한 응원과 위로를 나누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기린이 사는

골목"은 위로받고 싶은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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