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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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이 필요한가


기지 사용, 부대 운용, 사태 대처, 출구전략, 확장억지.

도대체 일본사람이 쓴 미일관계에 대한 책을 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펴들기는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이 다섯 가지의 축이 그저단순한 정보 정리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이야기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대전 당시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의 일본침공을 이끌어 낸 얄타 회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저자는 이 회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오늘날 미일동맹이라는 틀을 넘어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어떻게 정립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반 독자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


이 책이 가진 중요한 장점은 난이도다.

안보, 군사, 외교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개념을 한 번에 밀어넣기보다 단계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필요한 용어를 반복적으로 정리한다.

그래서 관련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도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읽는 동안 막히는 구간이 많지 않고,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책이다.



미일동맹의 변화


일본에는 2차 대전 이후 군대가 없다. 자위대라는 이름의 일본 본토를 지키는 방어병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패망했던 일본의 성장은 비단 경제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현재도 자위대는 어느덧 세계 5위권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상자위대는 세계 최상위급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껏 공격과 방어의 역할분담이 단순했던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관계는 이제 실제 작전에서 의사결정 구조에서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누가 판단하고, 누가 실행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지.

이 책은 이 문제를 꽤나 흥미롭게 풀어내며 미일동맹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극동 1905년체제?


읽는 과정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이른바 <극동 1905년 체제>라는 개념이다.


일본인 저자에게는 동아시아 질서를 설명하는 분석 틀일지 모르나, 한국 독자에게는 다른 맥락으로 다가온다.

<국화와 칼>같은 책을 보며 일본 사람들 역시 미국 중심 시각이나 비판 부족을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으로 1905년은 일본에게는 어떤 체제가 정립된 시점일지 모르나 한국은 나라가 망했고 원치 않은 식민지배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1905 체제라고 부르는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부터 선행되야 한다.


그들은 회복하고 싶은 체제일지 모르나 우리로는 돌아가서는 안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사실 역사나 한반도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어쩌면 필요한 책이긴 하다.


첫째, 미일동맹은 한미동맹과 연결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 등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슈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둘째, 책은 동맹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협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법률과 지휘 체계라는 현실적인 구조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참고 가치가 높다.


셋째,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이해하는 기본 틀을 제공한다.

미국, 일본, 중국, 한반도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제정세, 한미동맹 등의 단어에 반응하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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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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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먼저 말을 건네는 순간


언제부턴가 다들 맞춤법 때문에 난리다.

사실 나도 '어의 없다', '골이 따분한' 뭐 이런 글을 볼 때면 마음이 깝깝하기는 하다.


그런데 그에 앞서 어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맞춤법에 민감해졌을까.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그냥 웃고 넘겼던 일에 우리는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있을까.


사실 이 책이 여러 장면을 통해 반복해서 건드리는 질문이다.

오늘 같은 대 SNS 시대에 많은 대화는 대부분 문장으로 시작된다.

얼굴을 보기 전에 문장을 먼저 만나는 시대,

한 줄의 문장이 어쩌면 그 사람의 첫인상이 된다.


저자는 "문장이 곧 그 사람이며 맞춤법은 그 사람의 기본값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하고,

그러니 글자 하나의 어긋남이 사람 자체의 어긋남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꽤 자주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 불안을 지적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 불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따라간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보다 오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긴장이면 어쩌면 이런 불안도 괜찮지 않을까?



한 글자와 한 칸이 만들어내는 거리


이 책을 읽으며 재밌었던 부분은, 국립국어원 상담실로 들어온 질문들이 대부분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어린 사람이 나를 ○○ 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같은 질문은 사실 문법이 아니라 거리의 문제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예의와 맥락이 얽힌 문제다.


‘갈빗살’은 붙이고 ‘닭 다리 살’은 띄어 쓰는 이유를 묻는 질문도 결국 비슷하다.

단어의 구조를 묻는 것 같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나로 보고 무엇을 나누어 보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한 칸의 띄어쓰기는 문장의 간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 사이의 간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맞는 표현을 알려주기보다, 왜 그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규정이 아니라 생활이 된다.



사람과 AI 사이에서


책을 읽다 푹하고 뿜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답변하시는 분이 혹시 AI인가요"


요즘 나도 많이 하는 생각인데, 빠르고 정확한 답변 때문인지 상담원은 종종 AI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질문에 대답하려는 상담원들의 노력에 그 반대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AI와 사람의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게 된다.

규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발생하고, 우리는 대화를 통해 그 사이를 채워가려 노력한다.

이 노력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며 덜 오해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인터넷을 찾아보기보다 상담원을 찾는 경우가 나 또한 많아졌는데 그 통화를 괜히 생각하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



글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책을 덮고 나서 더 정확해져야겠다 보다 조금 덜 짚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맞춤법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 어쩌면 언어는 무기가 된다.

이 책은 그 무기를 내려놓게 한다.


얼굴을 마주하기 보다 글로 사람을 먼저 만나게 되는 시대에 글은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글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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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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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하루를 산다는 것


거실 바닥에 앉아 혼자 놀고 있던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는 갑자기 눈으로, 몸짓으로 무언가를 전하려 애썼다.

아빠 같이 놀고 싶어요.


굳이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이 아이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싶었다.

누가 그랬나. 사랑에도 번역이 필요하다고.


<한영 육아 번역기>는 그 문장을 생활의 장면들로 풀어낸다.

임현주 작가와 다니엘 튜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자란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며 ‘우리’라는 문장을 그들의 언어로 다시 써간다.



식당에서 꺼내드는 태블릿 하나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아이가 조금만 크게 울어도 부모는 주변을 살핀다.

누군가 불편해할까 싶어 서둘러 아이를 달래고 결국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준다.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믿는다.


반대로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단다.

펍이나 식당에는 아기 의자가 기본처럼 놓여 있고,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자연스럽다.


아이가 조금 시끄럽게 굴어도 누군가 눈치를 주기보다, 그 상황 자체를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아이는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보게 되면, 우리는 묻게 된다. 아이를 조용히 만드는 것이 배려라고 믿는 사회와 아이와 어울리는 것이 당연한 사회.


무엇이 더 옳은가를 따지자는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물어볼 필요가 있디.



‘아이 전용’이라는 이름이 만든 기준


‘아이 전용 세제’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아이의 옷을 따로 세탁하고, 전용 세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책 속 영국의 마트에는 그런 제품이 없단다. 가족의 빨래를 굳이 나누지 않고, 같은 세제를 사용한다.

이 장면은 생각보다 큰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더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함께 세제를 사용하더라도 대단한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뿐 아니라 부모의 불안을 다루는 과정.’


이 문장을 읽으며 꽤 여러 상활들이 명확해졌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내 마음을 놓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는 걸.



부모이기 전에, 여전히 연인인 우리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육아에서 가족으로, 그리고 부부 관계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삶의 중심은 당연하게도 아이에게로 쏠린다.


하루의 대부분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부부는 점점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으로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이전의 관계를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오해하고 작은 일에 토라지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시간들이 필요하다.


특히 ‘산후우울은 엄마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했다.

그랬다. 아빠 역시 낯선 역할 속에서 혼란을 겪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 감정은 종종 설명되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가기 일쑤다.

아빠들에게도 희생이 아닌 위로외 격려가 필요하다.



기준 하나를 내려놓았을 때 보이는 것들


책을 덮고 나서도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를 달래며 주변을 살피던 부모의 손, 서로 다른 방식 앞에서 잠깐 멈추던 부부의 시선, 그리고 하루가 끝난 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들.


서로 다른 부부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주 작은 제안을 건넨다.

당신이 가진 그 기준 하나를 내려놓아 보라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왔던 것들 중 하나만 지워도, 보이는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고.


살아간다는 게 뭐 그런 것일게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지구에 떨어진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번역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리고 세 사람이 되고 네 사람이 되는 것.(이건 선택이겠지만)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응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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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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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봄이다.

짱고와 함께 창문을 한껏 열어젖히고 봄바람을 맞을 때가 있었다.

고양이는 그 바람의 소리를 듣고,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이제 오지 않을 시간이지만 벚꽃 잎이 휘날리고 봄이 온다는 느낌이 들면,

아니 괜히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런저런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꽃과 바람과 소리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서울의 속도로 살아가던 한 사람이 태안의 숲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시간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야기.


시계와 일정표로 쪼개진 하루 대신,

꽃눈이 부풀고 잎이 색을 바꾸는 흐름으로 하루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낭만 뒤에 남은 것들


그렇다고 해서 수목원에서의 삶을 우리가 소비하던 캠핑의 풍경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도 이 낭만을 일부러 걷어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잡초는 끊임없이 자라고, 나뭇가지는 쉽게 사람을 찌르고, 벌레와 벌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누가 그랬나. 낭만은 시간 많고 돈 많은 사람이 찾는 거라고.


그 낭만과 현실에는 어떤 유격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책은 숲을 만드는 이 일을 낭만이 아닌 매일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그 반복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노력이라는 걸 우리게 알려준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풍경은 관계가 된다


책은 또 사계절을 따라 다양한 식물들을 소개하지만 그것을 지식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이름도 몰랐던 풀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함께 건넨다.

이들이 왜 그곳에서 자라는지, 어떤 시간을 견디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초록은 배경이 아닌 존재가 된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이것들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거다.


읽다 보면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고, 낯선 것들이 가까워지는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괜히 주변의 꽃과 풀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작은 관찰이 곧 이해로 이어지고, 이 그 이해가 자연스럽게 애정으로 번져 나간다.

무언가를 알아가고 사랑한다는 게, 사실 이런 거 아닐까.



나의 토양을 묻는 책


'식물이 모두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듯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로소 자란다'고 한다.


우리는 늘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

그곳에서 악을 쓰기 보다 오히려 더 잘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조금 넓어지고, ‘우리’라는 개념도 조금 달라질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삶의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넘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맞는 토양을 찾아 나서는 일이라면,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라면,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가야 할 곳을 발견하는 일이라면

우린 그 일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당신은 오늘의 바람 소리를 듣고 있나요?


책을 덮고 나니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생겼다.


하나는 천리포수목원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

다른 하나는 지금 당장 내 주변의 풀과 꽃들을 돌아 보고 싶은 마음.


사실 그렇다.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이야기들 대신,

천천히 쌓여가는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


내 하루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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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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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라는 말의 온도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다고 믿으며 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날은 혼자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와 어울리는 사람보다 나와 비슷하게 조금씩 어긋난 사람을 찾을 때가 있다.

다름에서 오는 평온? 여하튼 그런게 그리운 날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다.

늘 한 발쯤 밀려나 있는 사람들.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그런 이들은 더 쉽게 서로를 알아본다.


‘무리’라는 말은 원래 타인처럼, 괜히 차갑게 들리는 단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안에서는 이상하게 온기를 지닌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방향을 보고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묶이는 관계.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무리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관계


관계는 늘 가까워지기 위해 시작되지만, 이상하게 가까워질수록 균열이 생긴다.


이 책의 인물들도 그렇다.

서로를 붙잡고 싶어 할수록 더 상처를 주고, 이해하려 할수록 더 멀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늘 불안하다.

언제든 끊어질 수 있고, 실제로 자주 끊어진다. 그런데도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은 위로


이 책은 무리해서 어떤 위로를 주려 하지 않는다.

책의 어떤 문장이 삶을 바꾸거나, 누군가를 완전히 구원하지도 못한다.


대신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 남는다.

같이 무언가를 닦는 순간,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는 시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태도.

이런 장면들이 일상의 순간에 반복되면서 어떤 마음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다)



‘나쁜’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것


이 책의 제목에 붙은 ‘나쁜’이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쉽게 타인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불편한 사람들, 가까이 두기 어려운 사람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나쁨’이 사실은 어떤 종류의 결핍이라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몰라서 생긴 서툼, 사랑을 받아본 적 없어 생긴 왜곡된 방식들.


그렇게 생각하면 ‘나쁜 무리’라는 말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삶을 잘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간다


짱고가 가끔 내 옆에 와서 몸을 붙이고 앉아 있을 때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놀아달라는 것도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언젠가 이 장면에서 ‘좋아한다’와 ‘곁에 둔다’의 차이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 책은 그 차이를 계속 묻는다.

좋아하지 않아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래도 곁에 둘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과, 완벽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책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권한다.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달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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