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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하루를 산다는 것
거실 바닥에 앉아 혼자 놀고 있던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는 갑자기 눈으로, 몸짓으로 무언가를 전하려 애썼다.
아빠 같이 놀고 싶어요.
굳이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이 아이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싶었다.
누가 그랬나. 사랑에도 번역이 필요하다고.
<한영 육아 번역기>는 그 문장을 생활의 장면들로 풀어낸다.
임현주 작가와 다니엘 튜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자란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며 ‘우리’라는 문장을 그들의 언어로 다시 써간다.
식당에서 꺼내드는 태블릿 하나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아이가 조금만 크게 울어도 부모는 주변을 살핀다.
누군가 불편해할까 싶어 서둘러 아이를 달래고 결국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준다.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믿는다.
반대로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단다.
펍이나 식당에는 아기 의자가 기본처럼 놓여 있고,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자연스럽다.
아이가 조금 시끄럽게 굴어도 누군가 눈치를 주기보다, 그 상황 자체를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아이는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보게 되면, 우리는 묻게 된다. 아이를 조용히 만드는 것이 배려라고 믿는 사회와 아이와 어울리는 것이 당연한 사회.
무엇이 더 옳은가를 따지자는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물어볼 필요가 있디.
‘아이 전용’이라는 이름이 만든 기준
‘아이 전용 세제’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아이의 옷을 따로 세탁하고, 전용 세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책 속 영국의 마트에는 그런 제품이 없단다. 가족의 빨래를 굳이 나누지 않고, 같은 세제를 사용한다.
이 장면은 생각보다 큰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더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함께 세제를 사용하더라도 대단한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뿐 아니라 부모의 불안을 다루는 과정.’
이 문장을 읽으며 꽤 여러 상활들이 명확해졌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내 마음을 놓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는 걸.
부모이기 전에, 여전히 연인인 우리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육아에서 가족으로, 그리고 부부 관계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삶의 중심은 당연하게도 아이에게로 쏠린다.
하루의 대부분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부부는 점점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으로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이전의 관계를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오해하고 작은 일에 토라지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시간들이 필요하다.
특히 ‘산후우울은 엄마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했다.
그랬다. 아빠 역시 낯선 역할 속에서 혼란을 겪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 감정은 종종 설명되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가기 일쑤다.
아빠들에게도 희생이 아닌 위로외 격려가 필요하다.
기준 하나를 내려놓았을 때 보이는 것들
책을 덮고 나서도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를 달래며 주변을 살피던 부모의 손, 서로 다른 방식 앞에서 잠깐 멈추던 부부의 시선, 그리고 하루가 끝난 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들.
서로 다른 부부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주 작은 제안을 건넨다.
당신이 가진 그 기준 하나를 내려놓아 보라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왔던 것들 중 하나만 지워도, 보이는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고.
살아간다는 게 뭐 그런 것일게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지구에 떨어진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번역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리고 세 사람이 되고 네 사람이 되는 것.(이건 선택이겠지만)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응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