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은 없다 - 기후위기 너머 에너지 자립으로의 대전환
김백민 지음 / 경이로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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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 전부터 묘한 긴장이 있었다.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 이 책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할까. 뉴스는 매일 파국을 말하고, 타임라인은 재난의 이미지로 가득하고, 미래를 그릴수록 암울해지는 카테고리를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이 책은 이 과잉된 불안을 한 겹씩 벗겨내는 데서 시작한다.

2100년에 지구는 망하지 않는다고,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공포보다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그는 일단 이것부터 짚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1. 공포 대신 문해력이라는 무기


책이 말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과도한 공포는 오히려 행동을 방해한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거대한 종말 서사로 소비해 왔다. 북극곰의 절규, 불타는 숲, 사라지는 해안 도시. 물론 모두 가능성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이 이미지들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무기력해진다. 내가 한 걸음 뛴다고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마음, 이미 늦었다는 체념.


그런데 책은 되묻는다.

정말 그런가?


미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계속 이 가설들을 논박한다. 210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가설(SSP5-8.5)이 가능하려면 우리 모두가 지금의 소비를 지속하고 환경에 대해 손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 가설은 틀렸다. 전 세계 각국의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기업들 역시 이에 발맞추어 저탄소 제품을 생산하고, 저탄소 생산공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 위기 문해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확한 워딩과 정확한 이해는 오해를 줄인다. 오해가 줄어들면 행동의 방향은 훨씬 선명해진다.

그러니 먼저는 이해해야 한다.

기후 위기 카테고리에서 사용되는 용어들 중 무엇이 과장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바꿀 수 없는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사용해야 한다.


공포가 아니라 맥락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가 전해 듣던 것보다는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 기후 위기는 결국 국가 전략의 문제


책은 글로벌 공조를 강조한다. 내가 가장 많이 밑줄을 그었던 부분도 EU, 미국, 중국의 기후정책이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책들, RE100, 탄소 국경 조정 제도 같은 단어들은 사실 단순히 기후대책이 아니라 거대한 국제 정치의 전략이라는 점이 어쩌면 조금 슬프기도 했다.

인류를 위해라는 이상을 걸고 있지만 결국은 국익을 위한 싸움이고 그래서 트럼프 같은 이들은 이를 너무 가벼이 무시한다.


하지만 현실을 비판한다고 더 나은 정책이 생기는 건 아니다.

저자가 말하듯 우리나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국가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를 성장시켰던 재료 수입과 물건 수출 구조는 이미 중국에 밀렸고, 미국 기업의 저탄소 정책 요구에 대응하기에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기후는 곧 산업 전략이 되었고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순진한 이상주의나 단기적 경제논리로는 이 위기를 지나갈 수 없다.



3.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고 상상력을 회복하라


‘탄소발자국’이라는 말은 석유기업들의 PR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후 위기의 책임을 기업에서 개인에게 떠넘기기 위한 기만적 언어로 시작한 캠페인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기후 행동의 서사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기후변화는 상상력을 앗아가는 위기였다.

미래를 떠올릴수록 막막해지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라는 문장만 떠올라도 내 아이의 미래는 나와 같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기후변화를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자고 말한다.

위기를 딛고 더 나은 에너지 체계, 더 건강한 식량 구조, 더 안전한 도시, 더 지속 가능한 산업.

탄소발자국이 절망의 언어에서 희망의 언어가 된 것처럼 기후 위기 시대에 이런 상상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희한하게 설득이 되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의 미래


기후 위기는 인류 전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전략이자 우리 삶의 선택이기도 하다.

책은 이 층위를 냉철하게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상상력을 부드럽게 건져 올린다.


2100년의 지구가 망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이유를 과학과 국제정치, 산업 전략과 데이터로 차곡차곡 설명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논문으로 쓰인 책 같기도 한데 그런 것치고는 쉽게 쓰였다.

하지만 역시나 환경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니 이해하고 보면 좋을 듯하다.


처음의 나처럼 기후에 관련된 책 읽기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멸종이 아니라 가능에 대해 말하는 책이라는 걸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희망은 생각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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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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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미술에 관한 글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삶의 어떤 결을 손끝으로 더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가끔 내가 미술관에서 멍하니 그림들을 보는 이유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보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림이 나를 바라보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뭐랄까 마음을 살짝 당겨주는 힘 같은 것. 위로가 꼭 사람에게서만 오는 건 아니라는 걸 이런 경험을 통해 몇 번씩 배웠다.


책은 바로 그 힘, 미술이 건네는 작고 은근한 목소리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근현대 미술가들의 치열했던 삶과 현대 작가들의 고유한 감각이 시대의 벽을 넘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들.

마치 백 년의 시간을 건너와 나는 이렇게 살아냈어라고 책은 속삭인다.


저자는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리고 이 그림들이 결국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사실 미술 교양서 혹은 해설서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아니었다. 이건 미술의 언어로 쓰인 삶의 기록이다.


나혜석의 그림은 식민지와 남성의 이중 굴레 속에 갇혀 자유를 갈망하는 이의 외침이다.

현덕식의 그림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받음으로 생채기 난 정서적 폭력에 의한 상처들이 짓이겨져 있다.

백영수의 그림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꺾이지 않는 의연함이,

백영수와 이내의 그림에서는 도시의 여름밤에 없는 신비로움이 보인다.

이것들은 사실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할 뿐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책은 이러한 삶의 모양들을 도시, 경계선, 계절, 내면 그리고 삶이라는 다섯 가지의 테마로 풀어낸다.

읽다 보면 처음 들어보는 이의 그림도 있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소개로 새롭게 알게 되는 그림도, 몰랐는데 좋아하게 되어버린 그림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그들이 남긴 흔적이 단지 작품이 아니라 그들이 감당했던 슬픔과 선택과 기쁨의 역사라는 것.


근대의 작가들이 온몸으로 버텨낸 시대와 현대의 작가들이 견뎌내고 있는 도시의 리듬이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게 말 걸어올 때 우리는 결국 내 삶의 결을 더듬어 보게 된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무엇이 너를 지탱하고 있니?"


책은 그 질문을 조용히 건네고 우리는 아주 천천히 그 물음 사이를 걸어가게 된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큐레이션 잘 된 미술관을 산책하고 나오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 그림들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 왠지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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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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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필름 출판사의 책을 자주 받아 읽는다. 저자인 대표님도 책에서 슬쩍 자랑하지만 필름의 책은 언제부턴가 믿고 보는 책이 되어버렸다. 스타트업 같던 출판사가 매년 베스트를 뽑아내는 출판사가 되었다니 처음부터 지켜본 독자 입장에서는 뭔가 뿌듯하기도 하다. 그만큼 다들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일게다.(필름의 베스트셀러인 <일류의 조건> 띠지에 내 서평이 실린 좋은 경험도 있다.v)

그래서 언젠가 내 책을 낸다면 필름에서 내고 싶다 생각했고 투고했고 한 번 까였다. 이후 서평 의뢰가 없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럼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평을 의뢰받고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이니 뭐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들을 위로하던 그가 이제는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잘난체할 법도 한데 그는 다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도 일이라는 걸 시작한 지 어연 16년이 되었다.

그리고 시니어로 향하는 길 어딘가에서 나 역시 해온 일과 가야 할 방향을 동시에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모를 계절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고민이 더 반가웠고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에세이집이고 그가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런데 특별히 일을 하는 사람으로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그의 일에 대한 생각이 좋았다.

초석, 성장, 지속 가능한 삶의 원칙.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니 이 세 단어가 결국 하나의 문장을 향해 수렴하는 걸 알게 되었다.

흔들리더라도 자신이 누군지 잃지 말자.



초석. 모든 것은 마음가짐과 직업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살다 보면 성취보다 태도가 먼저 와닿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능력 있어도 태도가 어긋나면 관계가 무너지고 일이 무너진다.

반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도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요행으로 단단해지는 사람은 없다. 삶은 결국 기본기의 층위를 따라 쌓여가고 어떤 일을 대하는 다정함이 그의 평판을 결정한다.

요즘의 나는 어떤 조급함 속에서 자꾸 길을 잃는 것 같다.

멈춘 것 같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빨리 내 자리를 찾는 방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시기야말로 어쩌면 방향을 다시 찾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성장. 냉철한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라고도 부르는 자기 객관화는 사실 쉬운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덧씌워져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 이걸 최대로 부풀리고 부추기는 게 SNS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개개인은 특별한 사람인 건 맞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더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생각의 주파수를 집중하고,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이렇게 얻은 성취는 최고의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현재의 자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며 그에 따른 성취를 이루어라.

요행은 없다. 사실 이건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의 원칙. 본질, 균형, 그리고 자기 신뢰.


책은 말한다. 나의 가치를 계속해서 올려야 한다고.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트렌드가 아닌 본질을 아는 사람.


즉 일의 원리를 알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 속에 타인의 의견을 받아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스스로를 믿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명확하다면 사실 조금 헤매도 괜찮다.

저자도 그랬다. 그렇게 저렇게 그가 헤맸던 시간을 읽으며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마치 그냥 흘러가 사라진 것 같은 그 시간들은 그 시간을 반추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시 돌아와 단단한 땅을 만든다.

제목에 쓰인 땅의 의미는 아마 성취의 면적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서 있을 수 있는 기반일 것이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니어들보다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들.

그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금 우리의 헤맴도 결국 우리의 땅이 될 거예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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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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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하다. 사실 최근에 의젓하다는 말을 들은 건 아들을 가리키면서다. 은우가 어린이집 가더니 의젓해졌어요. 사방팔방 천지 모르고 뛰어다니다 이젠 좀 앉아있기라는 걸 하네요의 다른 뜻이다. <의젓한 사람들> 그래서 책 제목이 조금 재밌기도 했다. 점잖은 사람들? 그런데 책에서 말하는 의젓함은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태도, 그 조용한 책임감을 말한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버겁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생채기가 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의젓함은 번쩍이는 덕목이 아니라 그냥 오늘을 버티게 하는 작고 단단한 돌멩이 같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 단어를 되뇌었다. 의젓하다. 나도 의젓하고 싶다.



의젓함은 비교를 멈추고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마세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세요.

보여주려는 마음이 앞서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만 입어요.

좋아하는 거 하면 하다가 그만둬도 상처받지 않아요. 자존감이 남으니까요.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다. 달라이라마는 무욕이 아니라 탐욕만 안 부려도 좋다고 말했단다.

비교하고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마음. 난 참 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 놓고 살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어있다.

가끔 언제나 내 옆을 지켰던 짱고를 떠올린다. 고양이는 언제나 제 속도로 산다. 뛰기 싫을 때 뛰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창가에 앉아 햇살을 받고 잠을 자고, 집사의 품에서 그루밍을 한다. 그게 전부다.

어쩌면 의젓함도 그런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정한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살아내는 것.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해거티는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현실을 장밋빛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사람들,

문제보다 가능성의 입구를 먼저 보며 흔들리지 않는 게 의젓함이라고 말한다.



의젓함은 관계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연습이다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피드백이 아니라 조언을 구하라고 말한다.

피드백은 평가로 끝나지만 조언은 함께로 시작한다. 우리는 칭찬과 비판 사이를 오가며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조언을 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나를 돕는 지도자가 된다.

관계를 평가의 장에서 성장의 장으로 옮기는 일, 그 작은 전환이 의젓함이다.


당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남에게 가르쳐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르쳐본 사람은 안다.

내가 이해한 만큼만 말할 수 있고 내가 기억한 만큼만 설명할 수 있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는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도 충고한다.

타악기 전공자 에블린 글레니가 작은북으로 바흐를 연주하듯 그는 여러 작가의 문체를 따라 문장을 다듬으며 지루한 원고 작업을 버텼다고 말한다.

의젓함이란 결국 이런 모습이다. 똑같은 하루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버틸 이유를 찾는 일.



나는 누구에게 의젓한 사람이었는가


책은 묻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젓한 사람이었는가. 원하는 인생을 위해 어떤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

의젓함은 삶의 체력이자 윤리다. 타인의 무게를 떠안으며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힘, 불안을 견디되 냉소에 빠지지 않는 태도.

그리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관계와 공동체 안에 머무르는 결심.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오랜 다짐이 있다.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 정확하게 가이드 하지만 때로는 함께 비를 맞아줄 수 있는 사람.

김지수는 14명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의젓함에 대해 묻고 듣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영웅담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의 초상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덕목이라 생각했던 의젓함이 사실은 우리 안에 아직도 여러 모양으로 남아있음을 알려준다.


꽤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누구에게 의젓한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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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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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게시물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내버려 둬라"

내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해서 꽤 반가웠다. "냅둬 알아서 하겠지"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오래 흔들리고 누군가의 표정에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냅둬"하고 내뱉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곤 했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알아버렸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힘이 생긴다.


조용함 사이로 아주 작은 울림이 스며들었다.



내버려 두기 : 포기도 무관심도 아닌 나를 되찾는 행동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너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우리는 늘 신경 쓰며 산다. 관계의 온도, 말의 결, 상대의 기분,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지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누구인지 보다 ‘상대가 원하는 나’를 유지하느라 더 지쳐 있었다.


저자는 이런 마음을 단번에 뒤집는다.


"내 건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기침을 멈추게 할 책임은 상대에게 있는 게 아니다."


맞다. 돌이켜보면 관계에서 결국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상대가 틀렸다 혹은 바뀌어야 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나를 지치게 한 건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바꾸려는 나의 집착이다.


렛뎀이론이 말하는 내버려 두기는 무책임도 체념도 아니다. 이 말은 사실 상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그가 화를 내든, 뒷담화를하든, 나를 향해 무성의하게 대하든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서 나를 떼어낼 자유가 있다.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 번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놀라울 만큼 차분해진다.

그냥 내버려 두자.



내가 하자 : 내 삶을 나의 힘으로 움직이기


렛뎀의 두 번째 단계, Let Me. 내가 하기.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생각을 내버려두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자."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을 누군가의 반응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회사에서 승진을 놓쳤을 때, 누가 나를 험담했을 때,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을 때 나는 그 상황에만 매달렸고 자꾸만 나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렛뎀의 방향은 다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더 좋은 곳으로 움직이자.

그들이 욕하게 내버려두고, 나는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가자.

그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버려두고, 나는 나의 경계를 단단히 세우자.


상대가 바뀌지 않아도 나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이 묵직했다.

누구의 눈치에도 기대지 않고 나의 마음을 먼저 챙기는 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일.

그건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일이고 결국은 사적인독서를 하듯 나를 마주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사랑이든 관계든 고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가까워진다


밑줄 그은 문장 중 가장 오래 남았던 문장.


"때로는 상대를 고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냥 받아들이고, 사랑을 더 베푸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조언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애원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다.


'모든 사람이 변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렛뎀은 관계의 포기가 아니라 관계의 성숙이다.

바꿀 수 없는 상대를 기어이 바꾸려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괴로움을 내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일.


그 이후 비로소 우리는 정말로 사랑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억지로 변화시키지도 않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나를 괴롭혔던 관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하려 했던 건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는 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고

나 역시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기억을 읽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떤 관계를 지나왔는지, 어떤 마음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그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시간이었다.



내버려 두자. 그리고 내가 하자. 그 두 문장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내 삶은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렛뎀은 밀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벽을 세우는 기술도 아니다.


그건 내 삶의 중심을 되찾는 기술,

그러니까 나의 존엄과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곳에 쓰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원칙이다.


누구의 기대에도 휘둘리지 않고

누구의 기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움직일 자유.


그 자유를 되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두자. 그리고 내가 하자.

그 두 문장이 당신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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