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10만부 판매 기념 한정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것 같다.

아직 그림책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책장 앞에 서서 한 권을 꺼내 든다. 그리고 뒤뚱거리며 내 앞으로 온다.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과 그림이 있으면 ‘사과’라고 말해주고, 줄을 타는 서커스 단원이 있으면 ‘서커스 하는 아저씨를 보세요’라고 읽어준다.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를 무척 즐거워한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 순간을 보고 나는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 읽게 된 책이 바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내일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 존재, 하나의 마음


이 책에는 네 인물이 등장한다. 소년, 두더지, 여우, 말이다.

소년은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두더지는 케이크를 좋아하며, 여우는 상처로 인해 말수가 적다. 말은 이들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존재로서 조용히 이들을 지켜본다. 저자 <찰리 맥커시>는 이 네 존재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불안해하는 나, 달콤한 위안에 기대는 나, 상처받아 침묵하는 나, 그리고 모든 것을 품으려 애쓰는 나. 이 책 속 인물들은 서로를 고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고, 함께 멈추고, 함께 질문한다.


요즘 우리는 관계 속에서 너무 쉽게 해결하려 든다. 문제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답을 빨리 내놓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 진리는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이해할 수 있고, 또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그것을 그림과 문장으로 차분하게 보여준다.


함께 그리고 사랑하기


누군가는 이 책을 ‘위안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출간되는 많은 책들이 위로를 건넨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위로는 조금 다르다. 혼자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와 함께 있으라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 아이와 책을 읽던 아침처럼,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불확실한 시대의 새로운 우화


이 책이 <곰돌이 푸>,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함께 언급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그 단순함 덕분에 오래 남는다. 가르치려 들기보다 여운과 웃음을 남긴다.


언젠가 아이에게 꼭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함, 잘해야 한다는 강박,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점에 앉아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와 아이가 장난을 치는 소리, 꺄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 

스마트폰 너머로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다시 행복해졌다.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잘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 있다. 이 책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아주 다정하게 알려준다.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읽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있다는 감각이면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이어령의 말 1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으로 만나는 사유의 지도


<이어령의 말>은 어록집의 형태를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 책이다. 사전 같기도 하고, 인생의 명언을 모아둔 책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설명 보다 한 사람이 평생 붙들고 씨름해온 질문과 언어의 궤적을 따라가게 만드는 사유의 지도라는 설명이 더 적확해 보인다. 책은 이어령 선생의 저작물을 망라하여 선생이 우리 생에 던져진 평범한 그 단어를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사유했는지를 집대성했다. 이 방대한 단어와 사유의 물결 앞에 ‘우리 시대의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왜 이어령 선생에게 과하지 않은 표현인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나라에 이 정도로 많은 개념과 단어에 자기의 정의를 부여한 사람이 있었나 싶다. 문명, 인간, 언어, 예술, 종교 같은 거대한 개념부터 마음, 사물, 창조처럼 일상과 사유의 경계에 놓인 단어들까지, 그는 소소한 것들에도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 책 <이어령의 말>은 그가 그렇게 평생을 쌓아온 작업 속에서 건져 올린 결정체다.



단어를 따라 걷는 독서


처음에는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다가 자연스럽게 어떤 단어를 찾아 그것부터 읽게 된다. 물론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을 펼쳐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떤 단어 앞에서 멈춰 서게 될 때, 어떤 개념이 막연해질 때 이어령 선생이라면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이 책을 찾게 된다.


나도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다 문득 이어령 선생의 생각이 궁금해 책장을 펼쳤고, 그렇게 그의 단어 속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가 쓴 책 중 '다음에 읽어야 할 책' 리스트를 얻게 되었다. 좋은 책은 그 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독서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어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짧은 말에 눌러 담은 깊고 넓은 사유


이어령의 글은 짧을수록 강하다. 그의 탁월함은 특히 짧은 글에서 잘 드러나는데 한두 문장 안에 담긴 사유의 밀도는 일반인이 쉽게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강력하다. 짧은 글이 사람의 내면을 흔들기 위해서는 깊이와 넓이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은 단정하지만 얕지 않다.


좋았던 점은 그는 우리말을 깊이 사랑해서 안팎의 세계를 외래 개념에 기대기보다 가능한 우리말이 지닌 소박함과 경이로움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익숙하고 투명하다. 분명 쉬운 단어들임에도 그것들에 기대 나오는 사유의 깊이, 선생의 내공에는 여러 번 경탄하게 된다. 이 사람 진짜다. 대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좀 즐겁다.



이어령의 결정판


편집자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어령 선생은 1970년대부터 자신의 사유를 사전화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늘 때가 아니라며 고사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생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수백 권의 저작 중 '이어령 말의 정수'를 한 권으로 엮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책이 선생이 작고한지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완성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수년의 회의와 선정 작업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AI의 도움을 받아 너무도 가볍게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던져지는 요즘 이렇게 정성 들인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에서 나의 삶으로


이어령 선생이 떠난 지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시대가 변해도, 질문의 형태가 달라져도 그의 문장은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있을 것 같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 잃어버린다.

<이어령의 말>은 그런 순간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생각의 중심을 되찾게 해준다.


이 글을 쓰며 느끼는 감정은 묘하게도 위로에 가깝다. 단호할 때는 단호하고, 부드러울 때는 조용히 어깨를 토닥이는 말들.

우리 생을 먼저 살아간 이가 남겨둔 말들은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을 기획한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선물이 아닐까.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렇게 오래 다듬어진 말은 읽는 사람의 숨결을 만나 다시 살아난다.

<이어령의 말>은 그런 책이다.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대가나 멘토의 이야기가 절실할 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리커버) 위픽
성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서 집어 든 책, 오래 머문 이야기


나는 아직 그 힙한 <혼모노>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힙한건 본능적으로 손이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을 지나가다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가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가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정도 단편이면  30분이면 충분하겠다는 계산도 섰다. 

그런데 늘 그렇듯, 이런 계산은 자주 빗나간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나는 이미 서점이 아니라 경주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고 온 여름> 이후, <혼모노>가 아닌 성해나의 다른 계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잘 아는 도시, 처음 보는 풍경


이 소설의 무대는 경주다. 대구 출신인 내게 경주는 지나치게 익숙한 도시다. 수학여행으로, 가족 나들이로, 짧은 여행으로 여러 번 다녀온 곳.

눈을 감아도 동선이 그려질 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도시다. 그런데 소설 속 경주는 내가 알고 있던 경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다.


관광지로서의 경주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오래 머물러온 경주. 잠깐 들렀다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남아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경주. 그래서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이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일지 가늠하게 되었다. 기억과 시간의 층위로 쌓인 경주. 맞다. 원래 경주는 그런 도시였다.



재건하려는 사람들과, 남겨두려는 마음


건축학과 4학년 재서와 이본은 같은 과제를 받고 같은 장소로 향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는 극명하게 다르다. 재서는 늘 의심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사람이고, 이본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사람이다. 이 대비는 곧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세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경주 산내면의 오래된 고택. 두 번의 지진을 견뎌낸 집은 이미 여러 곳이 무너져 있고, 구조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재서와 이본의 첫 판단은 명확하다. 주요 구조부를 철근으로 재시공하자. 재건하자. 더 안전하게, 더 단단하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배워온 정답에 가깝다.


하지만 소설은 그 ‘정답’이 얼마나 쉽게 내려진 것인지, 그리고 그 판단이 무엇을 지워버리는 선택인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재건은 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를 너무 쉽게 정리해버린다.



연필로 그리는 시간, 속도를 늦추는 일


문 교수는 캐드와 스케치업이 당연한 시대에 연필을 고집한다. 직접 재고, 손으로 그리고, 시간을 들여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재서가 한 학기 내내 그린 것은 등고선뿐이었다. 그런데 그 등고선으로 A플러스를 받는다. 최고점을 받고도 재서는 성적 이의서를 낸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다.


보통의 우리는 결과 앞에서만 안도하면서도 그 결과가 정말 온전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재서의 의의 속도와 효율로 만들어진 성취만을 경험한 이의 불안 같았다.

어쩌면 정신없이 내달리기만 하며 이렇게 느린 시간을 겪은게 우리 삶에 있기나 했던가.



집을 짓는 일과, 마음을 짓는 일


이 소설은 한 채의 집을 통해 ‘짓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품고 살아온 존재다. 그래서 소설이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재건과 보존의 이분법이 아니라, '짓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주고 속으로 "잘 살거라"라고 비는 마음.

우리가 잠깐 손님으로 왔다 가는 풍경에, 누군가는 평생을 머문다.

열 번을 나고 죽는 동안에도 이어지는 것들은 그렇게 남는다. 약해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들.



잠깐 읽기에는 아까운 소설


처음에는 서서 읽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자리를 구해 앉았다.

중간에 딴생각하다 읽은 부분은 이내 돌아가 다시 읽었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재건을 선택하는지, 얼마나 쉽게 오래된 것들을 정리해버리는지에 대한 생각이 꽤 많아졌다.


그리고 경주가 다시 떠올랐다. 그저 여행지로의 경주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켜켜이 쌓인 자리로서의 경주가.

이 소설은 묻는다. 정말로 무너진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끝내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인생이 부럽다


끝내주는 인생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내용이 궁금하기 보다 제목이 부러웠다.

'끝내준다'라는 말을 자기 삶에 붙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 오히려 담담하게 느껴진다는 것.

이슬아를 멀리서나마 지켜본 입장에서 아마도 이 제목은 성취의 선언이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더 부럽다.

나는 아직 내 인생에 이런 제목을 붙일 용기가 없다.


글을 쓰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부럽다


이슬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감정은 늘 비슷하다.

이 사람은 글을 쓰는데 글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자신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증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글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 같지도 않고 삶이 글을 밀어내지도 않는 것 같다.

그 균형이 참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저 부럽다.



망한 친구 옆에 조용히 남아 있을 수 있는 태도가 부럽다


큰 나무를 대신 맡아 키우는 장면이 나온다.

사기를 당하고, 집을 옮기고, 삶이 기울어진 친구 곁에서 그는 어떤 위로의 말을 찾지 않는다.

대신 잎을 닦고 시간을 들이고 질문을 삼킨다.

무언가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곁에 머물러 준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이건 연습으로 되는 태도가 아니다.

그의 삶의 자세가 부럽다.



어리석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누구나 망한 강연 하나의 기억정도는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망한 군부대 강연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묘하게 부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락해버린 무대와 전혀 관심 없는 삼백 명의 군인들.

보통은 이런 곳에서 흘린 진땀만 기억하고 아예 지워버리기 마련인데

이슬아는 이것마저 그대로 적는다.

그때의 민망함과 후회를.

그리고 하나 정도 있었던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을.

이렇게 자기 삶의 어리석은 순간 마저 사랑하는 듯한 태도가 부럽다.



기쁨과 슬픔을 굳이 나누지 않는 태도가 부럽다


그의 삶이 그렇지만 책은 계속해서 경계를 흐린다.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억지로 구분되지 않는다.

나중에 돌아보아야 비로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순간들.

그 애매함을 그대로 두는 일.

의미를 만들기보다 시간을 믿는 태도가 부럽다.

나는 늘 먼저 앞서가고 의미를 예측하려고만 한다.

사실 있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고,

지금 보다 훨씬 뒤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

그것들을 그대로 둘 줄 아는 태도가 부럽다.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책의 마지막에 그는 고생 한복판에서도

"오 끝내주는데?"라고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길 희망한다고 쓰고 있다.


그의 끝내주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 건 비단 나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 약간 느슨한 협회에서 내 삶을 조금씩 꺼내놓아보고 싶다.


끝내주는 인생이란, 어쩌면 그렇게나마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인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26년은 또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니체를 만나다


나는 학부 때 철학을 전공했고 4년 내도록 니체와 맑스에 미쳐있었다.(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니체다.)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의 문장들은 그 시절의 나를 여러 번 흔들어 놓았고, 그가 이야기한 '초인'이라는 개념은 매일 나를 일어서게 했다.

그래서 이 책 <위버멘쉬>를 처음 보았을 때 사실 반가움과 경계심이 동시에 들었다.

철학 책이 대부분 그렇지만 니체를 다룬 책은 많지만 어렵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행처럼 <40대에 읽는 000> 같은 철학 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전공자의 입장에서 짜증 날 정도로 가볍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 책. 이 책은 딱 이 부분을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 이 책의 저자는 니체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히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저자가 니체고 이 책은 어나니먼스라는 그룹 혹은 사람이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전의 복잡한 문장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언어로 다시 풀어냈다고 한다.



초인은 누구인가


니체가 말한 초인, 위버멘쉬는 기존의 도덕과 사회적 기준을 넘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인간이다.

사회가 정한 답을 따르지 않고, 삶의 의미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존재. 이 개념은 여전히 강력하고 피를 끓게 한다.

특히 청춘들에게 초인은 현실을 거부하고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로 작용한다.


<위버멘쉬>는 이 초인의 개념을 자기계발적 언어로 풀어낸다.

자기 극복, 감정 조절, 인간관계, 삶의 태도 같은 익숙한 주제들이 니체의 사상과 연결된다.

"고통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요즘 세대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고통,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며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어렵지 않게 읽히며,

이를 오늘의 삶에 바로 대입할 수 있다는 점.

책은 철학을 몰라도 읽을 수 있고 철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다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위버멘쉬>가 가진 장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니체를 읽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전을 그대로 해설하지 않고, 지금의 언어로 재구성했기에 독자의 진입 장벽이 낮다.

또한 문장 사이사이에 질문을 던지며 독자를 수동적인 독서에서 끌어내 능동적인 사유로 이끈다.


<위버멘쉬>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 태도는 니체가 말하는 실존주의의 근원이기도 하다.

삶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니체 입문서로도,

삶이 조금 막막해진 시점에 읽어야 할 책으로도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지 않는 이유


다만 이 책이 가진 한계 또한 분명하다.

니체의 초인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가혹하다.

초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고, 고통을 견디며,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존재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개인의 노력으로 이겨낼 정도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이 초인이 될 수는 없고 모두에게 초인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또한 세상은 초인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조건들, 구조적인 한계, 각자의 삶이 가진 무게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건 개인의 노력 여하로 퉁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 책은 아니 니체는 이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이상으로 읽힐 수도 있다.

초인이 되지 못한 삶이 실패처럼 느껴질 위험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초인을 꿈꾸되, 현실을 붙잡으라


결국 <위버멘쉬>는 이렇게 읽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초인을 목표로 삼되, 초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재단하지는 말 것.

니체의 초인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기에는 충분하지만 당신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인간적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가치는 초인이 되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한때 니체를 그렇게나 사랑했지만 지금 내게 니체는 조금 부담스러운 존재다.

<위버멘쉬> 또한 그렇다. 부디 이 책에서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