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펼침 (주책공사 5주년 기념판)
이성갑 지음 / 라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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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부산 광안리의 서점, 주책공사. 나도 부산에 갈 때마다 꼭 들르게 되는 곳이다. 일부러 길을 돌아서라도, 굳이 살 책이 없더라도, 그곳에 들르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됐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주는 서점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그 안에 놓인 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온도가 살짝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펼침〉은 바로 이 공간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와 대표님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고 다정한 사건들, 책을 고르는 손길 사이에 담긴 질문들, 무언가를 오래 그리고 깊게 지켜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책을 사이에 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 안에서 계속 사유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기록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책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고에 균열을 낼 뿐이라고. 그 균열은 너무 단단해져버린 생각의 틈을 벌리고, 익숙함 속에서 보지 못했던 질문을 끄집어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된다. 흔들리기도 하고 멈칫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과정을 통해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나에게)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된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길 원하고, 명확한 해답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늘상 그렇듯 삶은 그런 식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삶에 책이 개입한다면? 책의 어느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책은 쉬지 않는다. 문을 닫아도 그 안에서 무언가가 계속 움직이고, 책을 덮어도 그 문장은 내 안 어딘가를 계속 두드린다. 책과 그를 통한 사유의 조각들은 렇게 내 삶을 이끌어간다.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흐릿한 질문으로. 누군가의 말을 고스란히 따르게 하기보다는, 다시 내 생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를 끌어갈 것이다. 


이런 순간들로 빼곡한 책을 읽으며 예전에도 그랬지만 주책공사 대표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어졌다. 서점의 조용하고 단단한 공기, 오래된 책장의 냄새, 천천히 책을 고르는 손길들을 오롯이 지켜본 그 삶과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책방 주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작지만 분명했고, 묵묵하지만 분명히 흔들림을 남겼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그 마음들. 이 책에는 그런 마음이 다정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책을 덮고 나는 오늘 또 다른 책을 펼치기로 한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질문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기 위해서.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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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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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받은 벽돌 책이다. 어쩌다 이런 책을 받았을까 후회하고 후회하며 며칠을 째려보다 책을 들었다. 이제 200일 갓 넘은 아이를 키우며 이런 책을 본다는 게 가능할까. 아이가 잘 때, 업무 중, 지하철을 타며 틈틈이 책을 펴들렀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이야기는 훅 들어왔다. 대필 작가가 아닌 빌 게이츠가 직접 썼다는 책은 단순히 그가 삶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의 주제인 기술과 혁신,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빌 게이츠는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한 인간의 철학과 함께 그의 몸부림을 담고 있다.

"어른이 되어 깨달은 경이로운 한 가지는 세월과 배움은 모두 걷어내고 보면 나라는 존재의 많은 부분이 이미 처음부터 갖춰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이 뭐랄까 꽤 위로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가능성이 있다. 이건 처음부터 있던 것이고 이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지금 우리게 중요한 일이다. 그런 그에게 기술은 단순히 경제적 성공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무엇이었다.

다들 어렵다고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간다. 환경은 조금 달랐겠지만 책 속의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가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그 역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면서도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들과 부딪히며 더 나은 길을 찾아냈고 그렇게 그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성장했다.
이는 동일하게 불확실한 미래와 매일 싸우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그는 끊임없이 기술과 혁신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그의 꿈을 이루어냈다.

책의 제목은 <소스 코드>다. 즉 주어진 코드들을 어떻게 조합해 자신의 삶을 꾸려갈 것인지를 묻는다. 당신의 소스 코드는 무엇인가? 꽤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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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카페, 카에데안
유리 준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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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가 헤어질 날을 받아놓고 살아간다.(거북이 정도가 예외려나..) 나보다 먼저 떠날 것이 확실한 생명의 처음부터 끝을 함께하는 일은 의미 있지만, 그리고 매우 소중하지만 그 끝에 그에 못지않은 상실 또한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나도 그러하다. 11년을 함께한 나의 고양이, 노묘로 불리며 예전처럼 뛰지 않고 자주 누워있는 고양이를 보는 마음은 참 쉽지 않다.


기적의 카페, 카에데안은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과 단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어딘가 제발 있었으면 하는 이 이야기는 단순히 상상의 설정에 머무르지 않고,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주는 깊은 상실감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사랑의 본질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그 사랑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에게는 그저 소중한 존재였던 반려동물이, 반대로 나에게 전부였다는 사실을.


또 이야기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슬픔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 순간들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웠는지를 일깨운다. 그리고 그 사랑과 관계의 의미는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관계를 맺고 끊지만, 떠나보내야 할 순간이 오기 전까지 그 관계의 진정한 가치를 자주 잊곤 한다.


그렇게 기적의 카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맞닥뜨릴 운명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이별이 단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우리게 조용히 일깨워 준다.


결국, 기적의 카페, 카에데안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반려동물이든 사람이든, 우리가 사랑했던 존재들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들이 남긴 흔적과 기억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과 가치를 비추는 빛이 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 짓거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줄 것이다. 어쩌면 기적의 카페, 카에데안은 단순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하고 상처받고 결국엔 떠나보내야 하는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그렇게 마음 깊이 울컥하게 되는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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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능동적
노연경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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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때의 여행이 내 인생을 대단히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나는 떠나기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아닌 듯 처음 느껴보았던 새롭고 강렬했던 감정과 기억들은 나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조각들이 되어 주었다.(p.69)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출장을 떠난다. 그렇게 오늘도 잠비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의 초고를 썼다.

돌이켜보면 늘 출장 전흔 분주하고 빠듯했다. 한주 혹은 두주를 한국에 없다는 부담인지 진짜로 그 시기가 바빴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적도 있고 저런 적도 있었겠지. 역대급으로 일이 많고 바쁘고 심지어 100일이 갓 지난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돌아보아야 했던 올해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이 와중에 비행기 타기 전 날 잠이 오지 않아 책도 펼쳐 들었다. 조금이라도 졸리면 곧장 덮어버리고 잠들 양이었으나, 밤은 깊었고 행복하기 위해 오늘을 발버둥 치는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상황의 어떠함과 맞물려 꽤 오랜 시간 나를 붙잡아 두었다. 그렇게 그 밤, 행복에 관하여, 잘 사는 것에 관하여 꼼꼼히 저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 출장은 늘 어렵지만 또 그만큼의 삶의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믿기지 붉은 석양, 그 석양이 지나간 자리에 피어나는 별천지, 누가 봐도 머리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을 향해 손 흔들며 웃어주는 천진난만함 그리고 친절함. 그 풍경을 지키기 위해 일이라는 걸 했다. 딱히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좋아서. 그 웃음이 그 풍광이 좋아서.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나는 계속해서 다른 무엇을 찾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여기 있었는데.



2. 늘 작가가 될 만큼은 아니지'라는 생각에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작가가 될 필요가 있었나? 글 쓰는 걸 좋 아하는 나는 글 쓰는 '나' 자체로 이미 완성인걸. 그걸로 이미 다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해서. (p.27)


다른 이들에 비해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다고 믿는 편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며,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무엇에 대해 쓰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은 아이를 무릎 위에 올린 채 한참을 아이와 함께 웃는 것도 좋아한다. 누가 그랬다. 남겨야 한다고. 그래서 남기기 시작했다. 사진도, 글도. 그렇게 남기다 보니 남기는 것이 일이 되어버렸다. 이 일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일이 되다 보니 버거워졌다. 이것도 아프리카 밤하늘의 별을 세다 문득 돌아보았다. 왜 이렇게 버거워진 걸까.



3. 진흙탕에 발이 빠진 것처럼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일지라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당신은 언제나 반짝인다. 당신도 내 눈엔 그저 아름다운 장면 속의 주인공이다. (p.79)


삶이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믿는 편이다. 정답이라는 게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건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고 그 안에서 투닥거리며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행복은 능동적이다. 곱씹을수록 맞다. 그의 이야기가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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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독백 - 발견, 영감 그리고
임승원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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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볼 게 없어서. 물론 볼 게 없다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유튜브에는 하루에 수백, 수천만 개의 영상이 업로드 된지만 어느 날 소파에 누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썸네일을 30분째 넘기다 그만 지쳐본 사람은 안다. 유튜브를 찬양하는 그 수많은 소리들이 얼마나 개소리들인지.

하나 마나 한 소리, 조회수를 좇아 그저 누가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시덥 잖은 소리, 이 영상 안 보면 큰일 난다는 듯이 협박인지 조롱인지 모를 글자들을 보다 울컥하는 마음에 프리미엄을 해지해버렸다. 이건 안 보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확신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한동안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아이를 기른다는 건 분명 좋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의 고갈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책 따위 던져두고 살다 그 와중에 무슨 정신인지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중간쯤 읽다 지워버린 유튜브를 다시 깔고 <원의 독백>을 검색했다. 오랫동안 그의 채널에 머무르다 구독 버튼을 눌렀다. 옳다. 크리에이터라고 말하는 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가슴이 뛰었다. 이 정도면 뭔가 새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콘텐츠 팔이 들 사이에서 이 정도의 <원의 독백>은 꽤나 독보적이다. 신박한 무언가가 있다기보다 그저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느낌이었다. '그저 낡은 신발이 되어 버려지게 되더라도, 행복을 위해서, 가치를 위해서 180만 원의 신발을 사는 이들을,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을 동경하는(p.197). 하지만 여전히 무서움의 지대에 머물고 있는'그의 마음은 꼭 언젠가의 나 같았다. 불안과 동경, 원하는 것과 안주하고 싶은 마음, 꿈과 현실에 관해 내가 어디까지 나아가고 어디에서 멈추어서야 만 하는지. 매일 같이 고민하고 싸워야 하는 지점에서 딱히 할 말도 할 수 있는 행동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원은 대신 얘기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밝혀지는 작은 촛불 하나, 혹은 라이터 같은 불빛 하나. 후 하고 길게 내뿜는 담배연기 같은 그의 손짓과 노래를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해졌다. 그랬다. 나도 그랬다. 20년 전의 10년 전의 나도 그랬다.

다가가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꿈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의 나를, 그 초라하고 불쌍한 그리고 행복한 나를.


정말 오랜만에 크리에이터라 불리기에 아깝지 않은 이를 만났다. 한동안은 계속 그를 좇아 다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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