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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비트코인 -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탈리 브루넬 지음, 임지원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1월
평점 :
투자의 책이 아니라, 돈의 구조를 묻는 책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당연히 투자에 관련된 책이겠거나 했다. 그러면서 좀 의아하긴 했다. 내가 하는 <필름 출판사>는 그런 책을 내는 곳이 아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지 않을까. 당연히 가격, 타이밍, 수익률 같은 이야기로 흘러갈 거라는 내 생각은 몇 장 넘기지 않고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책은 비트코인에 관한 책이기 이전에, 돈 그 자체에 관한 책이었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비슷한 책을 떠올리자면 <EBS 다큐 자본주의>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던졌던 돈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암호화폐가 등장한 이후의 세계로 확장해 놓은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돈에 대한 문제의식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
돈은 불안하다
책의 전반부는 다소 느리게 흘러간다. 돈의 기원, 화폐가 신뢰를 획득해 온 방식, 자본이 사회에서 맡아온 역할을 차분히 짚는다.
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가 이렇게 작동하고 있는지, 왜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지를 설명한다.
화폐의 탄생뿐 아니라 오늘날 돈과 경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식이라든지, 연준의 역할, 통화 정책, 자산과 기회의 쏠림 같은 이야기들이 꽤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물가가 오르는 게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믿고 의지해 온 돈 자체가 이미 수정되어야 할 어떤 것일까.
논의는 확장된다.
일시적인 물가 상승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돈이 더 이상 공동의 신뢰를 지탱하지 못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월급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생활비는 계속 오른다.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간다.
저자는 그 좌절을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 부족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화폐 시스템을 조용히 의심해 보자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시작 그리고 비트코인의 등장
책의 중반을 넘어가며 비트코인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라는 극적인 순간,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서 비트코인은 모습을 드러낸다.
비트코인을 지지하던 이들이 어느 지점에서 열광했는지 이해될 정도로 드라마틱 하다.
문득 첫 번째 비트코인 광풍 때 봤던 유시민과 정재승의 비트코인 논쟁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유시민의 회의적인 시선이 더 설득력 있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정재승의 말이 조금씩 현실적으로 들리는데,
책은 읽으며 그때의 논쟁 속의 정재승 박사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기분이 들었다.
흥미로운 건 저자가 비트코인을 기술 혁신의 관점에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의 잘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누구나 코드를 검증할 수 있고, 특정 권위나 기관에 의존하지 않으며, 에너지를 통해 현실과 연결되는 시스템.
비트코인은 그렇게 신뢰를 잃어버린 시스템을 거부하고 돈의 규칙을 다시 설계한 실험으로 등장한다.
모두가 자신의 은행이 될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것은 비트코인이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우리는 이를 언제 가져야 하는가가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자산과 미래를 얼마나 통제하고 있는가.
예금 금리는 체감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산 시장은 점점 복잡해진다.
개인은 늘 선택지가 제한된 채 시스템에 종속되어 왔다.
비트코인이 이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것은 이 선택의 주체를 개인에게 되돌려 놓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스로 보관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구조.
이 바뀐 시스템의 작동이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킬지 책은 계속해서 우리를 설득한다.
비트코인은 오랫동안 '투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비트코인을 통해 '자유'와 '주체성'이이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한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
투자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모두를 위한 비트코인>은 썩 재미없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시스템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던 '돈'에 대해 한 번쯤 다시 돌아보길 원한다면 꽤 괜찮은 책이다.
비트코인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상관없이, 새로운 돈의 질서 앞에서 우리는 이제 자신의 위치와 태도를 고민해야 한다.
나만 벼락 거지가 될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한 시대에, 투자가 아니라 이해를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을 찾고 있다면, 충분히 좋은 책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