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봄이다.
짱고와 함께 창문을 한껏 열어젖히고 봄바람을 맞을 때가 있었다.
고양이는 그 바람의 소리를 듣고,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이제 오지 않을 시간이지만 벚꽃 잎이 휘날리고 봄이 온다는 느낌이 들면,
아니 괜히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런저런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꽃과 바람과 소리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서울의 속도로 살아가던 한 사람이 태안의 숲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시간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야기.
시계와 일정표로 쪼개진 하루 대신,
꽃눈이 부풀고 잎이 색을 바꾸는 흐름으로 하루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낭만 뒤에 남은 것들
그렇다고 해서 수목원에서의 삶을 우리가 소비하던 캠핑의 풍경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도 이 낭만을 일부러 걷어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잡초는 끊임없이 자라고, 나뭇가지는 쉽게 사람을 찌르고, 벌레와 벌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누가 그랬나. 낭만은 시간 많고 돈 많은 사람이 찾는 거라고.
그 낭만과 현실에는 어떤 유격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책은 숲을 만드는 이 일을 낭만이 아닌 매일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그 반복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노력이라는 걸 우리게 알려준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풍경은 관계가 된다
책은 또 사계절을 따라 다양한 식물들을 소개하지만 그것을 지식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이름도 몰랐던 풀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함께 건넨다.
이들이 왜 그곳에서 자라는지, 어떤 시간을 견디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초록은 배경이 아닌 존재가 된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이것들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거다.
읽다 보면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고, 낯선 것들이 가까워지는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괜히 주변의 꽃과 풀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작은 관찰이 곧 이해로 이어지고, 이 그 이해가 자연스럽게 애정으로 번져 나간다.
무언가를 알아가고 사랑한다는 게, 사실 이런 거 아닐까.
나의 토양을 묻는 책
'식물이 모두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듯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로소 자란다'고 한다.
우리는 늘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
그곳에서 악을 쓰기 보다 오히려 더 잘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조금 넓어지고, ‘우리’라는 개념도 조금 달라질지 모른다.
물론 이러한 삶의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넘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맞는 토양을 찾아 나서는 일이라면,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라면,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가야 할 곳을 발견하는 일이라면
우린 그 일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당신은 오늘의 바람 소리를 듣고 있나요?
책을 덮고 나니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생겼다.
하나는 천리포수목원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
다른 하나는 지금 당장 내 주변의 풀과 꽃들을 돌아 보고 싶은 마음.
사실 그렇다.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이야기들 대신,
천천히 쌓여가는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
내 하루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