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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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이야기


어느 날 인스타를 보다 우연히 들은 김창옥의 이야기에 20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손에 들게 했다. 그는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나오는 구절. "인간에게 가장 멋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돕되, 내일부터 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정말 그랬다. 20년 전에도 그랬는데 살아보니 저 이야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두려운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내일을 현실로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이끌리듯 20년 만에 책장을 펴며, 나는 다시 한번 악마의 편지 속에서 나를 비추는 삶의 질문을 마주했다.



악마의 편지, 인간을 비추는 거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숙련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31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출판사 홍성사는 이 책을 "정본 C.S. 루이스 클래식"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 재출간하며, 노련한 악마의 조언을 통해 인간 본성과 유혹의 본질을 통찰하는 작품으로 소개한다. 실제로 1942년 출간된 이래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신선하고 반짝거린다"는 평을 받는다. 인간의 일상과 생각 하나하나가 영혼의 운명을 가르는 전쟁터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경쾌한 유머와 날카로운 비유 속에 삶과 신앙의 깊은 본질을 담고 있다.



"유혹자의 안내서"


처음 읽었을 때는 복잡한 악마의 시점과 역전된 언어("우리 아버지"는 곧 사탄이라는 혼란스러움)에 당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니, 루이스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유혹자의 안내서"라 불리는 이 책은 어떻게 인간을 교묘히 속이고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지를 보여주는가 하면, 그것이야말로 독자를 깨우는 메시지라고 평했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는 "종교 풍자의 걸작"으로 유혹과 구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첫독과 재독 사이에서


나 또한 첫 독서와 재독 사이의 나를 돌아본다. 20대의 내가 스크루테이프의 유쾌한 아이러니에 심취했다면, 지금의 나는 글자마다 배어 있는 진지한 통찰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어쩌면 처음과 다시 읽은 사이의 차이는 책이 아니라 나의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20년,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위선과 자기합리화를 뼈저리게 보았고, 그것은 스크루테이프가 지적한 인간 심리의 묘사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어린 날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조직의 이면까지도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크루테이프의 직언,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가 교회다"라는 말은 뼈아프게 공감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신이 필요하다


스크루테이프는 "인간은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아주 작은 것에 정신이 팔려 인생을 허비할 수 있는 허무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진단한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없고, 몸의 상태가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옳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고 하루의 컨디션에 따라 나의 오늘을 망쳐버릴 수 있는 존재.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에 집중할 때 하찮아지는 삶의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주로 그것들에 집중하며 오늘을 보내지만 살아본 후에 우리는 그것들이 얼마나 지엽적인 문제였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오늘의 선택이 영원을 만든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깨달은 것은 이런 약할 때의 인간이 하는 순간의 선택이 결국 영원에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악마가 가르치는 유혹의 기술도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는 거울이다.

당신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들이 내게 건넨 질문들을 들어볼 용기가 있는가?

가장 멋진 계획을 세워두고 내일로 미루고 있진 않은가.


"인간에게 내일은 없다"는 이 우스꽝스런 조언은,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어떤 새로운 계획으로 지금 행동할 것인가?를 C.S 루이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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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지음 / 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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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놀림이 남긴 문장들


요리사 최강록을 처음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흑백요라사> 속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말수가 적고, 동작은 느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태도.

그가 요리를 대하는 자세는 언제나 차분했고, 조리대 앞에 선 그 침묵마저 하나의 설명처럼 느껴졌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침묵의 시간을 글로 옮겨놓은 책이다.

이 책은 요리의 세계를 해설하지 않는다. 대신 요리를 하며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을,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생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요리는 결코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최강록이 말하는 요리는 언제나 생활의 언저리에 있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 서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다음 날을 준비하는 반복.

그 반복 속에서 저자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체력적이고 고독한 일인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부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셰프의 전문적인 시선보다, 오히려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일기에 가깝다.

요리를 업으로 삼지 않은 독자들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식당을 한다는 것, 현실과 이상이 만나는 지점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식당을 한다는 것’은 특히 인상 깊다.

식당을 운영하는 하루가 시간대별로 펼쳐지는데, 그 안에는 낭만도, 성공담도 없다.

대신 계산기 위의 숫자, 예측할 수 없는 손님, 줄어드는 체력, 그리고 내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다.

그는 불안하고 삶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겠지만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일을 좋아하지만, 일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을 때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이 책은 그 복잡한 감정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최강록 쉐프가 좋았다.



내향인의 노동 서사라는 또 하나의 얼굴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떠오른 말은 어딘가에서 들은 '내향인의 분투기'였다.

최강록은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요리사로서의 성취도, 방송에서의 경험도 자랑처럼 다루지 않는다.

대신 잘되지 않았던 순간들, 흔들렸던 마음, 선택을 망설였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요리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향적인 사람이 세상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처럼 읽힌다.

크게 외치지 않아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삶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요리를 통해 다시 묻게 되는 질문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남는다.

우리에게 음식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일이라는 것은, 직업이라는 것은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그는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우승하고 나서 재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계속 곱씹어 보게 만든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

아니 좋아하기까지 않더라도 내가 매일 대하고 있는 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던 적이 얼마나 있는가.

실패해도 또 도전하고, 실패해도 또 도전하는 그의 무던함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요리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내일은 어떤 마음으로 일터에 서게 될지 조용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마 지금 더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 같은데,

단순히 그의 유명세로 베스트에 있는 것만은 아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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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글쓰기 - 일잘러를 위한 관계와 소통의 기술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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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왜 글쓰기가 곧 일일까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알게 된 것들 중 하나가 일이 생각보다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의에서 말한 아이디어는 결국 문서가 되어야 했고,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은 이메일 한 통으로 정리되어야 했다. 보고서, 기안문, 제안서, 메신저 메시지까지.

하루를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의 대부분은 글로 남아 있었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회사에서는 글쓰기가 부가적인 능력이 아니라, 일 그 자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말한다.

나는 일은 잘하는데 문서를 못 만든다고 말하는 직장인이라면, 왜 당신의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잘 쓴 글보다 필요한 것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글쓰기 기술보다 먼저 '관계'와 '심리'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회사 글쓰기라고 하면 논리적인 구조, 깔끔한 문장, 보기 좋은 포맷을 떠올린다.

하지만 강원국은 단호하게 말한다. 직장 글쓰기는 논술도 소설도 아니며, 절반 이상은 심리의 문제라고.


상사와의 관계가 어색한 상태에서 아무리 잘 쓴 글도 읽히지 않는다. 반대로 완벽하지 않은 문장이라도 신뢰가 쌓여 있다면 끝까지 읽힌다. 이 책은 그 당연하지만 누구도 쉽게 말해주지 않았던 진실을 차분하게 짚어준다.

글은 결국 사람이 읽는 것이고, 회사에서의 글은 늘 상대를 향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상사의 머릿속을 상상하는 법


<직장인의 글쓰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는 ‘상사의 시선’이다.

저자는 회장을 모든 상사의 상징으로 설정한다.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면, 그 아래의 사장과 부장, 과장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논리다.


우리는 보통 나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 일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왜 시간이 더 필요한지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상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다르다. 지금 이 일이 왜 중요한지, 조직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무엇을 결정하면 되는지다.

이 책은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내가 이 글을 왜 쓰는지'보다 '상사가 이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묻도록 만든다.



회사 글쓰기의 진짜 목적


강원국의 글쓰기는 설득을 위한 글쓰기다.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보고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실무적 설득이다.

그래서 책에는 아부와 잡담, 토론과 협상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곱씹어 보면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가.


주니어들에게 이 질문은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맞는 말'을 하는 데 집중하지만, 회사에서는 '통하는 말'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은 맞는 말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통하는 말의 형태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글을 바꾸면 출근길이 달라진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글쓰기를 통해 회사 생활 전체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글이 바뀌면 오해가 줄어들고, 오해가 줄어들면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관계가 부드러워지면 출근길의 마음도 가벼워진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단기간에 문장을 세련되게 만들어 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오래 곁에 두고, 보고서를 쓰기 전이나 메일을 보내기 전 한 번쯤 펼쳐볼 수 있는 책이다.

사회 초년생에게는 회사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안내서로, 몇 년 차 직장인에게는 스스로의 글쓰기 습관을 점검하는 거울로 읽힌다.



주니어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


이 책이 특히 연차가 낮은 주니어들에게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아직 조직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고, 말 한마디·문장 하나에도 쉽게 흔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강원국은 글쓰기를 통해 조직을 이해하고, 관계를 해석하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회사에서 글쓰기가 곧 일이라면, 이 책은 일을 덜 힘들게 만드는 설명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만약 오늘도 메일 한 통을 보내기 전에 잠시 멈칫했다면, 보고서 첫 문장을 쓰지 못해 커서를 깜빡이고 있다면, 이 책은 꽤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깊이 읽고 천천히 적용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어느 날, 출근길이 조금 가벼워졌다면 그 변화의 시작은 아마 이 책 속 문장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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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 지구상 가장 비싼 자산의 미래
마이크 버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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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가진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


얼마 전 생애 첫 내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서울 시내에 또다시 끝을 모르고 오르는 집값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무주택자일 때는 그렇게 오르지 말라고 빌고 빌던 집값이었는데 이젠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묘한 죄책감이 엄습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그야말로 “종교이자 공포이며, 동시에 신분”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매일 뉴스 헤드라인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장식하고, 모이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집값이라지 않던가. 집 없는 시절엔 왜 그렇게 초조했는지, 그리고 집을 가진 지금은 왜 또 불안한지.



왜 돈은 언제나 땅으로 향하는가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에 이 책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가 손에 쥐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 집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 이 책은 "왜 돈은 언제나 땅으로 향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정면으로 던진다. 저자 마이크 버드(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는 부동산이 단순히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 만들 수도 없고 옮길 수도 없으며 금융 시스템의 가장 안전한 '담보'로 기능하기에 특별한 힘을 지닌다고 통찰한다.

이렇게 움직일 수 없는 땅이 돈과 결합되는 순간,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를 넘어 국가의 부와 권력을 재편하는 핵심 장치로 돌변한다.

저자는 이 현상을 '토지의 덫'이라 부르며, 말 그대로 땅이 우리 사회의 자본 흐름과 권력 판도를 좌우하는 함정에 빠졌다고 경고한다.

(영문 원제도 The Land Trap 즉 '토지 함정'으로, 제목부터 땅이 놓은 덫에 주목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토지의 역사


저자는 이 책에서 그 함정의 기원을 찾아 장대한 역사의 여정을 펼친다. 32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토지 분쟁부터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거쳐 미국 독립 이전 식민지의 토지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왜 인류가 이렇게 오래도록 땅에 집착해왔는지 탐구한다.

이 주제에는 빠지지 않는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도 꽤 심도 있게 소개한다. 그는 <진보와 빈곤>에서 기술 발전에도 빈부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에서 찾는다.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토지는 어김없이 등장했고, 수천 년 동안 땅은 세금과 군사력, 신용을 매개해온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현대의 디지털 금융 시스템은 오히려 이 고전적인 '토지의 힘'을 더욱 위험하게 강화하고 있다.



일본·싱가포르·중국이 보여준 세 가지 선택


나아가 저자는 일본, 싱가포르, 중국 세 나라의 사례를 통해 토지 금융화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1990년대 일본은 저금리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며 "잃어버린 십 년"(후에 20년, 30년으로 늘어남)의 늪에 빠졌고, 싱가포르는 토지를 공공 소유하고 엄격히 통제하여 주택 안정을 꾀하는 독특한 길을 걸었다. 최근 중국에서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이 파산한 사태는 토지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 모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저자는 이처럼 땅으로 흥하고 땅으로 망한 역사의 장면들을 서사적으로 그려내며, 우리 시대에 중요한 경고를 울린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토지의 덫'에 걸려 겪은 위기와 교훈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주는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를 뒤집어 놓는다.



2026년 한국, 토지의 덫 한가운데서


이 경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니 2026년 현재 한국 사회 역시 토지의 덫 한가운데 서 있는 듯했다. 실제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이 아직 파국에 이르진 않았으나, 부동산 과열이 낳은 지역 간 격차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이미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다. 부동산을 주거 정책이나 투자 문제로만 본다면 이 같은 구조적 변화를 보지 못할 거라는 일침도 잊지 않았다.



집을 가진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 구조


땅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극명히 가르는 제로섬 자산이다. 집값이 오르는 국면에서 자산을 보유한 쪽은 저절로 불로소득을 얻고 웃지만, 없는 쪽은 상대적 박탈감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이 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당연했다.

거의 모든 정부는 선거 때마다 집값 안정과 기존 주택 보유자들의 부를 지키기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나 역시 이를 체감한다. 집값을 진정시키려던 대책들은 번번이 기존 소유층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지만 모든 정치인들은 언제나 집값 안정을 구호로 내세운다.



부동산은 권력이다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고 또 분명해졌다. 부동산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 구조로 진화해 왔다. 그리고 이 책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가 어떻게 '땅'이라는 연료로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매뉴얼에 가깝다. 책에서 하나씩 증명하는 것처럼 부와 불평등의 흐름 끝에는 언제나 땅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땅을 가지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는 꽤 큰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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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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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숫자 앞에서 사람이 사라지지 않도록


1985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지리학과 졸업생의 평균연봉이 1억 1천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에서 지리학과가 그렇게 유망한 학과이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기 명문대인가?


아니다. 그 대학은 마이클 조던이 졸업한 학과다.

이 예는 우리가 믿는 숫자가 얼마나 엉터리일 수 있는지 우리에 알려준다.


이 책 <직관과 객관>은 비슷한 이야기들로 문을 연다.

숫자에 대한 책이지만, 숫자를 맹신하지 말라고 말하는 책이다.


평균의 함정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가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소위 '객관적이라는 착각'이다.

설명했듯 숫자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순간 이미 인간의 직관과 편향이 개입된다.

이 책은 우리 사회 곳곳의 이런 오류를 짚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작은 표본이 만드는 큰 착각


생각보다 사람들은 표본의 크기를 쉽게 무시하곤 한다.

3건의 사례와 1만 건의 조사를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생각보다 흔하다.

저자가 말하듯 표본이 작을수록 결과는 극단으로 흔들리기 쉽고, 그 극단은 직관에 강하게 각인된다.


우리는 종종 숫자로 이루어진(이를테면 3대 맛집, 혹은 90% 이상이 선택한 같은) 이야기에 설득되지만,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대표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지금도 SNS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쭙잖은 숫자를 들이밀며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는가.

숫자를 본다는 건 수치를 읽는 일이 아니라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함께 살피는 일이다.

저자는 이를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무지는 왜 우리를 더 확신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가장 굳게 믿는다."

미셸 드 몽테뉴의 이 문장은 이 책을 아우르며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다.

무지는 조심스러움을 낳기보다 오히려 대담함을 부른다.


확신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질문을 멈춘 지점에서 생겨난다.

저자는 인간의 자기 과신이 어떻게 판단 오류로 이어지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면서도 스스로를 예외로 두는 심리를 해부한다.

타인의 편향은 쉽게 보이지만, 자신의 편향은 좀처럼 인식되지 않는다.


사람은 재미있는 동물이다.



수학과 사람, 양립 가능해야 하는 것들


수학을 소위 '문과형 인간'에게 닿지 않는 영역으로 밀어내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해석할 중요한 언어 하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저자는 수학을 일부에게 주어진 재능이 아니라 학습되는 언어로 설명한다.

옹알이에서 말로 나아가듯, 숫자 역시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이 관점은 데이터 리터러시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바꿔 놓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배제하는 대신 천천히 배워가는 쪽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사람을 향한 고려 없이는 인간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숫자와 데이터는 세계를 정밀하게 그려주지만, 그 세계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효율과 생산성을 앞세운 도구적 이성이 인간을 소외시켜 왔다는 지적은 오늘날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데이터를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그 대안을 정량적 관점과 인본주의의 결합에서 찾는다.

숫자를 버리자는 말이 아니라, 숫자가 향해야 할 방향을 이제는 정확히 묻자는 이야기다.



직관과 객관사이


물론 저자는 직관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직관이 얼마나 쉽게 우리를 속이는지 그리고 그 거짓을 자각하는 태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재차 강조한다.


사실 이제는 데이터 없이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시대다.

우리는 숫자를 통해 흐름을 보고, 그 흐름을 통해 내일을 예측하고 결정한다.

사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직관의 힘을 믿는 편이긴 하다.


저자는 숫자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되 그 끝에 사람을 반드시 고려하는 조언으로 책을 맺는다.


직관과 객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던 사실 이건 개인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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