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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세계 - 우리 세계에 뚫린 구멍에 관한 이야기
김지웅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9월
평점 :
1.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남아 있는 구멍에 대하여
<구멍 난 세계>
제목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제법 두께 있는 책을 한참이나 째려보았다.
제목이 말하는 구멍이 무얼 뜻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문득 그때 내 마음에 덩그러니 난 구멍을 들켜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우리는 대개 괜찮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 누구나 하나쯤은 설명하지 못할 결핍을 안고 있다.
애써 이름 붙이지 않거나 지금도 최선을 다해 외면하고 있을 뿐 마음 어딘가에는 크든 작든 구멍 하나쯤은 존재한다.
책은 그 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삶을 가장 크게 생채기 낸 그 구멍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실, 패배, 단절, 이별. 피하고 싶지만 결국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것들.
이 구멍은 특별한 이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예외가 아니라 오늘 당신의 삶에도 찾아올지 모를 것들이다.
2.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상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시간
이야기는 대학 졸업 후 삶을 찾아 떠난 아프리카 여행 중 주인공이 함께 떠난 친구를 잃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예고도, 준비도 없이 찾아온 비극에 별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 '헉'하고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상실은 언제나 그렇게 예고도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삶을 찾아 시작된 여행은 삶을 망가뜨리며 멈춘다.
그리고 이 사건은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죄책감, 그를 둘러싼 관계의 균열,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던 선량한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무너뜨리며 주인공의 삶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숨쉬기조차 버거울 고난 앞에 성경의 욥이 떠올랐다.
마치 인간 이상의 존재들끼리의 내기 혹은 장난에 까불리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처럼 속수무책인 인생 앞에 그는 묻는다.
이 지옥 같은 풍경도 삶인가.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3. 구멍의 의미
주인공 버든은 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여행을 계속한다.
이 여정에서 ‘구멍’은 점점 의미를 바꾼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공허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만드는 틈이 된다.
주인공 버든과 친구 채트인의 관계 역시 그 구멍을 통해 다시 정의된다.
물론 이들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한 상태로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살면서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 관계, 꿈, 희망 같은 것들.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린 대부분의 것들은 회복되기를 바랄 뿐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그것들을 져버린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지 그 상실을 안고 함께 살아갈 것인지.
주인공은 후자를 택한다. 그 상실을 안고 무겁게 남은 걸음을 걷는다.
4. 낯선 풍경이 우리 안의 공허를 비출 때
아프리카라는 배경은 단순한 이국적 장치가 아니다.
빈곤과 재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복잡한 얼굴들이 주인공이 지나가는 걸은 곳곳에 묻어있다.
그리고 책은 묻는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나의 삶을 그저 분리하고 그저 '저들과 다름에 감사하다'며 나의 삶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이 지점에서 <구멍 난 세계>는 개인 서사를 넘어서 우리 세계의 구멍을 응시한다.
세계의 균열과 개인의 상처가 겹쳐지는 순간 구멍 너머 타인의 삶이 보인다.
나의 고통과 다르지 않은 삶이, 나와 같이 고통 속에 있고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내밀고 있는 이들의 인생이 보인다.
그랬다. 우리는 모두 그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의 상실과 상처는 언제든 나의 질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5.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대치 않고 어느 정도까지 읽다 잠들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는데 다 읽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내 안에 난 이 구멍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자꾸 피하려 하거나 비웃음으로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외부의 누가 나를 이 구멍에서 꺼내주기를 바라며 자꾸 도움을 요청하고만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 질문 앞에서 멈칫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바라기는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자기 안의 구멍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처럼 그 순간을 두려움으로 비켜 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연결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완전해지지 않은 채로. 우리는 결코 이 구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 구멍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사람에게로,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일 수도 있다.
이는 오롯이 그 구멍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