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 프로젝트 - 노동과 여성·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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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삼전닉스를 가지고 있나요?


2026년 5월, 역대급 주가의 고공행진을 펼친 삼성전자 성과급 협상이 파업 직전 극적으로 타결됐다.

청와대는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한 노사의 대승적 결단"이라며 반겼다. 그런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노조 내 갈등과 차별 처우, 그걸 지켜본 시민들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과 소득 양극화에 대한 불만은 어디로 갔나.

조돈문 교수는 이 장면을 두고 초기업노조의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와 그런 노조를 키워낸 삼성 재벌, 시장의 '모범 사육'이 빚어낸 최악의 담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 합의 소식을 들으며 비슷한 찜찜함을 느꼈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은 것 같다.

반도체 부문(DS)은 1인당 최대 6억 원, 디바이스 부문(DX)은 600만 원 수준의 자사주. 같은 회사 안에서 이 정도 격차가 벌어진다면, 그 격차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당화되는 걸까.

자회사 안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반도체 초호황이 만든 초과이윤은 결국 누구의 몫이었나.

AI와 코스피 9000 시대, 겉으로는 모두가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기에 이 책은 하필 그 이면을 파고든다.



우리는 왜 불평등을 참으면서 미국을 좋아하는가


전작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저자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시민들은 불평등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왜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은 계속 선망하는가.


책은 모든 나라의 시민이 사실 피라미드형 소득분배보다 다이아몬드형을 선호한다는 걸 데이터로 짚는다.

스웨덴이 그 다이아몬드형에 가장 가깝고, 미국은 정반대편의 전형적 피라미드형이라는 것.(p.46)


그런데도 "한국의 시장경제가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가깝고 자본과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은 미국식 모델을 집행하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방어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한다."(p.71)


안타까운 사실은 그 반대편에서 북유럽 모델을 대변할 세력은 마땅히 없다는거다.

책은 그 정보 비대칭이 불평등체제를 지탱해 온 힘이라고 진단한다.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그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가 고른 벤치마킹 대상은 역시 스웨덴이다.



스웨덴 모델과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라는 말


스웨덴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평등 복지국가라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스웨덴 모델을 낭만화하지 않고, 노동계급이 그 모델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만들어왔는지 과정 자체를 짚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전략의 이름은 '비개혁주의적 개혁'.

작은 개혁으로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발판으로 점차 개혁의 수위를 높여 더 큰 변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불평등체제의 피해자들이 권리 의식을 발전시키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집합적 요구를 중심으로 위력을 행사하며 변화를 압박하는 동원 과정이 필요하다고 책은 말한다.(p.165)

사실 말은 쉬운데, 그 동원이 실제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이야기하자면,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노동조합은 동맹의 중심이 될 수 있는까


저자는 노동계급을 사회 통합과 변혁의 구심점으로 놓고, 노동, 여성, 청년 동맹을 해법으로 제안한다.


그런데 이 책도 인정한다.

겉으로는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조차 정작 자기 조직 안의 불평등에는 소극적라고.

사실 그렇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내 이익이 걸린 불평등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 불평등 개선의 주체가 자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내 목소리를 낮춘다.


이는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처럼 취약한 사람들까지 포함한 노동자 전체의 이익보다는, 이미 자리를 잡은 정규직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집단이 되어버린 곳도 비일비재하다.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에서 저자가 초기업노조를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최근 시행된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쟁도 비슷하다.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겠다면서 정작 노조와의 협의는 건너뛰는 원청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이 책이 말하는 노동계급 내부의 대표성 문제를 다른 자리에서 다시 확인시켜준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을 평등사회의 구심점으로 세우자는 제안과, 노동조합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진단은 어떻게 양립하는가.

책은 이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가능성과 한계라는 두 단어 사이를 오간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이 우아한 절충안처럼 들리지만, 정작 그 개혁을 밀고 나갈 주체의 대표성 문제는 다소 낙관적으로 남겨둔 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자리의 불평등


그렇다고 이 책이 덜 중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긴장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데이터와 논리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볼 법한 책이다.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은 가볍고 편안하게 술술 읽히지는 않을 거라 경고했다는 점은 미리 말해둔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개혁부터 신뢰를 쌓아가자는 제안이 순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순진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뭔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생각해보라. 크고 작은 불평등의 자리에 서 있을텐데,

당신은 지금의 불평등을 언젠가 나아질 거라 믿으며 견디고 있는가 혹 그 불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이미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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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역설 - 역동과 통제, 첨단과 소외가 공존하는 복합 중국 읽기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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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든 않든 중국의 성장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의 이른바 빅2의 시대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산업화를 포기해 버린 일본과 한국에 밀려 언제나 2류국가 일 것 같던 중국은 이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기 위해

국가적 총동원 체제를 만들어 냈고 정말로 그들은 그 비웃음을 단기간에 뒤집고 이제는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AI분야 마찬가지다.

중국은 딥시크 쇼크와 화웨이의 반도체처럼 첨단 기술에 관해서도 빛나다 못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중국이라는 역설>은 이 화려한 중국의 경제상과 함께 또 다른 시대로 나아가는 중국을 포착한다.

단기간에 성장한 중국의 기술 굴기의 빛나는 면과 함께 탕핑족과 라이프니스트가 나타나고,

자유를 꿈꾸는 청년들이 억압 속에서 지하 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재 중국이 마주하는 기회와 위기의 양극단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중국 : 불안한 권력과 억압의 어둠


1부는 강력한 1인 지배 체제 아래에서도 시진핑의 불안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추적한다.

중국은 2020년대 들어 안보를 최우선하는 총동원 체제를 정착시키며, 당내 숙청과 사회 통제를 심화해 왔다.


장유샤(張又俠) 숙청과 같은 사건에서 보듯 권력 핵심부의 내부 균열은 체제의 불안감을 단적으로 드러냈고

이는 한때 한국에 불었던 시진핑 실각설 등 다양한 루머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루머의 뒤에 숨은 혐중 정서와 음모론을 짚어낸다.

언젠가부터 진실을 회피한 채 음모론에만 집착하는 우리안의 허구를 지적하며 중국의 정보 통제와 모순된 현실을 이해야하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유튜브에는 정제되지 않는 정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다니는데 이에 대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함을 저자는 강조한다.



미중 경쟁과 새로운 국제 질서


2부는 미중 패권 경쟁의 역설을 분석한다.

책은 중국이 처음부터 세계 패권을 노렸다기보다 공산당 체제의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 미국 주도 질서 약화를 선택했다고 본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중국이 유리한 판이 펼쳐지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비상식적 행보 또한 짚어낸다.

(이를테면 미국‑이란 전쟁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로 이란은 달러가 아닌 중국의 위안화를 선택했다. 미국의 의도와 달리 중국은 미국의 헛발질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기회를 부여 받고 있다.)


책은 2026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미국과 경쟁하면서도 충돌을 피하려는 중국의 계산을 보여 준다.

꽤 여러책에서 중국에 관해 하는 이야기인데, 저자 또한 한국이 미중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실리적 외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중국이 꿈꾸는 천하삼분지계


마지막 3부에서는 중국이 그리는 천하 질서 즉 미국-중국-유럽의 천하 삼분 지계를 탐색한다.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국가가 된 중국은 한국, 북한, 러시아, 유럽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계 질서를 설계하려 한다.


책은 역사 인식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속국으로 규정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비판하며, 청나라 시기의 종주권 회복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움직임을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는다.

북중 관계는 겉으로는 혈맹을 과시하지만 속으로는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는 점,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지정학적 현실도 되짚는다.


지금 중국이 그리려 하는 세계지도는

안보에서는 미‑중‑러 삼각 구도,

경제는 미‑중‑유럽 삼분지계를 형성하려 한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데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이 중국과 협력과 견제의 균형을 잡을 빈틈을 찾고, 미중 양대강을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혐중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마주하라


저자는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혐오정서도 놓치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역설>은 단순한 중국 찬가도, 반중 비판서도 아니다.

책은 첨단 기술의 대약진과 철저한 안보 국가로서의 통제가 공존하는 중국의 복합적 실체를 드러내고,

한국 사회가 혐중 정서와 음모론을 넘어 냉정하고 균형 있게 중국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을 경쟁 상대나 적으로 보든, 필연적 협력 파트너로 여기든 중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국의 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

책은 미중 경쟁의 역설 속에서 한국이 얼마나 섬세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들려주며 정치 뿐 아니라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들려둔다.


사실 나도 이런 거 잘 모르지만, 복잡한 국제 정세와 중국의 내면을 꽤 세세하게 들여다 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추천.중국을 미워하기 전에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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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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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림자


성해나의 기담집은 '공포'라는 장르적 틀을 빌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진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해진다.

하긴 요즘의 공포는 어떤 이야기나 이미지보다 사람이다.


'어제' 편에 실린 세 소설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내려온 벚나무 책상이 후손의 집에 놓이고, 비가 오면 벚꽃 향과 함께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화자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그 책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그리고 화자의 이 태도는 증조부와 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 이름 모를 메일을 스펨함으로 넘겨버리는 것에서 정점에 이른다.

죄는 물건에 새겨지고, 향기에 배고, 나무의 결에 스미는데 사람만 그걸 모른 척한다.

아니, 정확히는 외면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731부대 생체실험에 가담했던 노인이 영화감독에게 보내는 편지가 등장한다.

노인은 자신이 전범이 아니라 교수의 조수였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편지를 읽은 감독은 <영화가 될 만한 것은 이것 말고도 많다>며 미련 없이 그의 편지를 파쇄기에 넣는다.


노인의 변명보다 감독의 무심함에서 더 서늘해졌다.

평생 붙들고 살아온 죄책감도,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가 되지 못한 콘텐츠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역사는 그렇게 거대한 비극으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무관심 속에서도 조금씩 잊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을 경매에 부친 인간들


'오늘' 편에 이르면 공포는 더 익숙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완벽하지만 공허한 일상을 사는 여자가 타인의 삶을 경매장에서 사는 〈매일(買日)〉은 제목부터 묘하다.

제목의 한자어 '매일'은 매양 매(每)가 아니라 살 매(買)자다.

다시 말해 우리가 쉽게 말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하루를 돈으로 산다'는 뜻이다.


매일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매일 무언가를 사야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세계.

이제 무서운 이야기는 남의 입이 아니라 내 SNS 화면에서 펼쳐진다.

타인의 삶을 소비하며, 구매하며 살아가는 세계.

당신은 아니 그런가?


〈프랭크 오자와〉에서는 남의 인생을 단돈 100달러에 낙찰받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번듯한 집, 벤츠, 투자 계좌, 학력과 인간관계까지.

남의 삶을 산다는 건 터무니없는 설정 같은데 이것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타인의 삶을 공유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집, 식탁, 여행지, 성공담, 육아, 취향, 독서 목록까지.

사지는 않았지만 훔쳐보고, 훔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부러워하고, 부러움이 어느 순간 내 삶의 빈칸이 되고 만다.


〈윤회(당한)자들〉도 비슷한 방식이다.

실패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전생을 믿는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가짜 전생을 꾸며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만든 삶이 그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외로움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때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을 설명할 한 조각을 기어이 찾아 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라 착가하며 살아간다.



미래에도 인간은 인간일까


'내일' 편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계들이 등장한다.

〈아미고〉의 스턴트맨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미고'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말은 늘 근사하지만 그 근사한 말이 누군가의 밥벌이 앞에 놓인다면 사실 얘기는 달라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AI 비서에게 묻는다.

'너도 무섭니?'


AI는 담담하게 답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AI는, 기계는 아무렇지 않은 세계에서 인간만 혼자 흔들리고 아파한다.


〈#유령〉은 아동용 챗봇의 유해 언어를 정제하는 노동자를 다룬다.

챗봇이 더 순하고 안전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마다 혐오와 폭력의 언어를 읽고 지운다.


우리는 기술을 매끈한 화면으로만 만나지만, 그 아래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눈과 손과 마음이 있다.

편리함은 대개 누군가의 고통을 잘 포장한 이름일 때가 많다.

언젠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의 댓글을 모니터링 하고 지우다 밤새운 적이 있었는데 꼭 그때의 생각이 났다.

누군가의 눈에 보여주지 않게 하기 위해 지워야 하는 수준의 것들을 날것으로 마주하는 기분.


마지막 작품 〈고(蠱)〉는 안드로이드 의사가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안드로이드 의사가 상용화되어 있는 시대,

인간 의사보다 훨씬 정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의료기술도 뛰어나다.


그런데 정작 인간인 한의사 이익은 빚에 쫓기면서 점점 윤리를 버린다.

돈을 벌기 위해 독약인 '고(蠱)'를 만들고 환자들을 속인다.

반면 안드로이드 도윤은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기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도윤은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읽고, 욕망을 이해하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교묘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름 '사람같다'고 표현한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내려놓는 장면은 꽤나 공포스럽다.



이어지는 서늘한 질문들


<인비인>은 확실히 전통적인 공포소설이나 괴담과는 좀 다르다.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식의 공포가 아니라, 읽고 나면 존재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종류의 공포다.


<혼모노>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흔들었다면,

<인비인>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흔든다.


그리고 그 경계는 어쩌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제목인 ‘인비인(人非人)’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해나 작가는 이 의미를 확장한다.


죄를 외면한 사람,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사람, 기술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하는 사람, 누구의 삶을 헐값에 사고파는 사람도 모두 그 이름 안으로 들어온다.


이미 우리 안에 조금씩 섞여 있는 그 무시무시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과연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한다.

공포영화도 잘 못 보고, 괴담도 굳이 찾아 읽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됐다.


벚나무 책상 밑에서 굴러나온 쥐의 두개골처럼 역사의 흔적이 불쑥 튀어나오고,

타인의 삶을 경매에서 사는 장면에서는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아미고'에게 밀려난 스턴트맨은 자동화와 AI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불안해지는 내 마음과 겹쳐졌고

챗봇의 혐오 언어를 지우는 노동자는 알고리즘 뒤에 숨은 누군가의 얼굴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편리함을 누리고 너무 쉽게 무관한 사람이 된다.

어쩌면 성해나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그 편리함 뒤에 숨은 무관함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작가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거울을 보듯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이다.

이런 계절이라면 이런 책 한번 속는 셈 치고 펼쳐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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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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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앞에서 만나는 균열


좋은 서평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

늘 고민하는데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나도 어쩌면 이런 글을 계속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나의 서평은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 등에 올라간다.

이미 알고리즘이 지배해 버린 채널에서 선택받기 위해, 언젠가부터 내 글은 어느 정도의 모양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저 SEO에 걸리기 위해 GEO에 선택받기 위해 AI 선생님 가르침을 받고 내 글을 고친다.


이따금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이게 맞나.

그러나 읽히지 않는 글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만난 글, 아니 이 책은 또 내 머리를 퉁치고야 말았다.

맞다. 이게 글이다.


일단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신유진의 <나를 균열내기>를 주저 없이 추천한다.


저자는 뒤라스의 감각과 욕망, 카뮈의 부조리와 실존, 에르노의 자기 해부와 기억의 서사 등 프랑스 작가들의 문장을 빌려 우리가 흔들리고 부서지고 다시 시작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일어나는 균열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세우는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균열의 발견 – 고독과 부조리, 이름 없는 여백


첫 번째 장 <균열의 발견>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독, 상실, 공허함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만나면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안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카뮈와 뒤라스의 작품 속 인물들은 삶의 부조리와 사랑의 실패를 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처를 극복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저자는 이런 순간을 '균열'이라 부른다. 벽에 금이 가면 무너질 것 같지만, 때로는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기도 한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같은 질문들은 대개 평온한 시기가 아니라 균열의 순간에 시작된다.


결국 이 장은 고독과 상실을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바라본다.



해체와 붕괴 – 언어와 계급, 몸의 기억


2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러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말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계급의 경험, 사용하는 언어, 몸에 남은 상처와 습관은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이것은 일관적이지 않다.

우리는 젠틀하면서도 비겁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렇게 여러 시간과 경험이 겹쳐진 우리는 무엇이라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것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게 될 때,

어린 시절 속했던 세계와 지금 살아가는 세계가 충돌할 때, 익숙했던 언어와 가치관이 흔들릴 때 우리는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순간을 실패가 아닌 자신을 다시 읽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유예의 순간 – 창작과 욕망, 실패의 미학


3부 <유예의 순간>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삶에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끝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저자는 그런 시간을 유예라고 부른다.


쿤데라는 인간의 삶을 거창한 철학이나 신화가 아니라 작고 우스운 것들에서 다시 바라본다.

이를테면 배꼽 같은 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소한 곳에서 오히려 인간의 근원을 묻는다.

슬리마니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욕망과 진실을 보여준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들.

라가르스는 성공의 언어가 아니라 실패의 언어를 선택한다.


그의 인물들은 끝내 완벽하게 화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계속 어긋난다.

대신 실패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시 말하고, 끝이 보이는데도 더 멀리 걸어간다.


저자는 그 모습에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버팀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장은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자아의 재구성 – 깨진 거울로 타자를 품다


마지막 4부는 흔들리고 부서진 이후 다시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간이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변하고, 기억을 새롭게 해석하며, 타인을 만나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페렉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사물들을 바라본다. 너무 평범해서 잘 보지 않았던 것들. 방, 거리, 물건, 목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가진 것들 속에서 더 선명해지고 있을까. 아니면 그 많은 것들에 파묻혀 오히려 흐려지고 있는 걸까.


엘렌 식수는 언어 속에 숨어 있는 남성 중심의 질서를 흔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써온 말들이 어쩌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나를 설명하던 낡은 말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균열 속에서 다시 나를 쓰기


이렇듯 <나를 균열내기>는 문학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균열을 발견하고, 해체하고, 유예하고, 재구성하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작가는 한 사람이 끝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무엇을 부수고 다시 세울 수 있는지 탐색하며, 세계의 틈을 보는 일이 곧 문학이라는 믿음을 펼친다.

살짝 아쉬운 점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한 사례가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리감 있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읽고 쓰는 일만이 나의 막을 부수고 나를 건져 올리는 일"이라는 이라며 이 일을 소개한다.

균열은 파괴가 아니라 가능성이며, 무너진 자아의 잔해 속에서 다른 삶은 시작된다.


어쩌면 좋은 서평을 쓰는 일 또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분절된 독서의 경험을 모아 글이라는 그릇에 담는 과정,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 것에 균열 내고 다시 만드는 일.


어렵지만 한 번 더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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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유어 마인드 - 반복되는 루틴에 가려진 내 안의 잠재력과 마주하는 법
마리오 알론소 푸이그 지음, 성소희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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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해석을 바꾸라


이 책은 ‘세상은 내가 해석한 만큼 존재한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우리는 눈으로 외부 사물을 인지하지만, 그 정보는 기억·감정·신념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뇌가 재구성한 이미지로 변한다.

그래서 현실을 바꾸려면 외부를 통제하려는 것보다 내면의 해석 방식을 바꾸는 것이 실질적이다.


재미있는 점은 보통 내면을 바꾸는 일을 말하면서 마음가짐이나 자존감을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뇌를 이야기한다.

몸이 감정에 앞선다.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저자는 신경과학적 설명으로 이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사실 이 부분이 문제다.

의학적 지식이 거의 없는 나와 아마 이 책을 읽는 모두는 이 부분이 조금 헷갈리고 어려울 것 같다.

마치 처음보는 의학서적을 보는 것 같은 초반부를 견뎌내는게 중요하다.



통합과 잠재력


책은 자기계발서라기 보다 아닌 과학적·실천적 안내서로 보는게 적합할 것 같다.

앞서 말한 조금 어려운 초반부를 지나면 책은 우리게 익숙한 언어(?)인 좌뇌와 우뇌를 안내한다.

두 가지 정신 시스템(논리적 좌뇌와 직관적 우뇌)사이에 갈등이 있으며 이를 조화롭게 균형 잡아야 잠재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어린 시절 형성된 내적 서사와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므로, 긍정적 언어로 이야기를 이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건 내가 읽은 꽤 많은 책에서 뇌과학이나 의학이 아닌 심리학을 연구한 이들 또한 같은 결론을 말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뇌과학으로 시작한 저자 역시 성장 마인드셋을 강조하고, 명상·시각화·마음챙김과 같은 구체적 훈련이 두뇌 가소성을 활용해 습관을 재배선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진짜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통합’과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책은 부모의 목소리와 내면 아이의 욕구가 반복적 고통을 생성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인식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두뇌의 두 시스템, 즉 좌뇌와 우뇌가 서로 협력해야 하며 감정·언어·신체감각·관계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좌뇌가 분석과 분리를 맡고 우뇌가 전체성과 깊이를 담당하며, 두 가지를 조율할 때 창조성과 치유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이 균형과 통합이 마음의 운영체제를 리셋한다.



다른 시작 같은 결론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이라 함부로 언급하기 어렵지만 좌뇌·우뇌의 구분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두 뇌의 기능이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어 추후 이 부분은 추가 검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또 현실의 문제는 사실 내면의 해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과학으로 출발한 책의 결론이 결국 심리학이나 자기개발서적과 결론이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흥미로웠지만 누군가는 이게 어색하게 받아 들여질지도 모르겠다.



리셋 유어 마인드


《리셋 유어 마인드》는 뇌과학과 심리학, 경험적 통찰이 어우러진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을 소프트웨어에 비유하며,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프로그램–부모 자아와 내면 아이–을 인식하고 새롭게 설치할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하라고 권한다.


그 과정에서 좌뇌와 우뇌, 본능과 감정, 이성과 직관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T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랄까.


결국 책은 내면의 운영체제를 재가동해 마음의 잡음을 줄이고 자기 삶의 화면을 다시 그리라고 설명하지만 F들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분명있다.

하지만 뇌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우리의 몸이 익숙한 두려움에 안주하는 대신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에 뛰어들게 하는지 궁금하고 한번쯤 자신을 재정비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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