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나의 마음 그릇 (스프링) - 매일 나를 채우는 연습
김윤나 지음, 차상미 그림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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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 줄 알았더니 스프링 노트다.

정확히 말하면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루에 한 번 마주하는 탁상 달력이다.(아 날짜는 쓰여있지 않다)


어릴 적 이런 물건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초에 큰마음 먹고 사서 걸어두지만, 늘 1월 10일쯤에서 시간이 멈춰 버리곤 했다.

좋은 문장도, 성경 말씀도 결국은 펼치지 못한 달력 속에 남았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도 비슷했다.

'이건 과연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아직 새해가 밝지 않았는데 스르륵 넘겨 보았다. <김윤나의 마음 그릇>은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가만히 묻는다.

오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오늘 작은 친절 하나를 베푼다면 누구에게 하고 싶은지.

대단한 목표도 거창한 다짐도 아니다. 하루의 속도를 아주 조금 늦추는 질문들이다.



하루를 바꾸려 하지 않고, 나를 불러오는 질문들


이 책의 질문들은 삶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중심에 다시 나를 불러온다. 루틴한 하루가 반복되다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헛헛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은 웃으면서 한 번쯤 해볼 법한 질문을 건넨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질문, 사소하지만 그래서 더 다정한 질문들이다.


하루를 잘 살기 위한 정답 대신, 오늘 하루를 나답게 보내기 위한 물음을 던진다는 점에서 책은 조용한 동반자에 가깝다.



왜 우리는 이렇게 마음이 헛헛해질까


작가의 말은 이 책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김윤나는 우리가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역할에 묶여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바쁘게 반응하며 살지만, 정작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답 대신 질문을 한다.

나를 혼내는 질문, 다그치는 질문, 주어가 뒤바뀐 질문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묻는 성찰적 질문.

이 책에 담긴 질문들은 15년간의 상담과 코칭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자기 이해, 가치, 관계, 일, 건강, 행복처럼 우리가 자주 흔들리는 지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위로


이 책이 특히 좋은 이유는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의 질문에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마음은 시간을 두고 질문받기를 원하고, 어떤 답이든 격려 받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이 책은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 대신, 나를 기다리는 법을 알려준다.


하루를 놓쳐도 괜찮고, 질문에 답하지 못한 날이 있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이다.

나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 주는 책이다.



책처럼 생기지 않은 책의 장점


탁상 달력처럼 세워 두고 볼 수 있는 형태다.

책장에 꽂아 두면 잊히기 쉬운 책이지만, 책상 위에 놓이면 하루에 한 번은 시선을 건네게 된다.

매일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 자체가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 된다.


차상미 작가의 파스텔톤 일러스트도 예쁘다.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을 부드럽게 감싸며, 마음을 조금 내려놓게 만든다.



새해 다짐 대신, 새해 질문을 선물한다면


새해가 다가오면 우리는 늘 다짐을 한다.

더 잘 살아야지,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방향을 제안한다.

더 잘 살기보다, 다시 나에게 돌아오자고.

나를 채우는 연습을 하루에 하나씩 해보자고.


그래서 이 책은 새해 선물로 참 좋다.

타인에게 주기에도, 나 자신에게 주기에도 부담 없는 다정함이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질문 하나가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새해를 앞두고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작은 질문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혹시 아는가 어떤 질문으로 시작된 2026년의 당신의 하루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어떤 날이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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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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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었던 이야기 앞에서


어릴 적 운동권을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 효순이·미순이 사건이 계기였다. 세상이 마냥 상식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착각하기 마라는 듯 그 일은 다가왔다. 월드컵에, 삼성라이온즈 우승에,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모든 거리가 기쁨으로 술렁일 때도 나는 분노했다. 거리로 나갔고 동지들을 만났다. 나는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녹색당 등의 당적을 거쳤다. 물론 당비 월 얼마 내는 게 전부였지만 나에게도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뜨거움이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과거형인 것은 한때는 이 이야기들이 나의 정체성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되려 이런 책을 만나면 한발 물러서는 쪽에 가까워졌다.


너무 많은 슬픔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로 혹은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 바닥에서는 모를 수 없는 이름 박래군. 그래서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를 집어 들기까지 조금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도, 투쟁의 연대기도 아니다. 한 사람이 감당해 온 슬픔의 밀도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슬픔이 어떻게 개인의 몫을 넘어 사회의 언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문학청년에서 활동가로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청년 박래군이 1980년대라는 시대와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연세 문학회, 기형도와 성석제, 공지영의 이름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럼에도, 그가 기억하는 것은 문학적 낭만이 아니라 최루탄 연기로 뒤덮인 교정이다.

"편하게 글만 쓰고 있을 수는 없다"는 문장은 선택이 아니라 그의 양심의 강요에 가까웠을 것이다.


체포, 강제징집, 구속. 그는 비교적 담담하게 이 시기를 회고하지만, 그 문장 사이사이에는 국가 폭력이 한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부수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혀를 깨물어서라도 저항하려 했던 순간, 그리고 끝내 굴복해야 했던 기억. 이 책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그 폭력 자체보다, 살아남은 자의 남겨진 자괴감이다.



내 슬픔이 세상의 눈물과 만났을 때


생 박래전의 분신 이후, 박래군의 삶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설명하기 어렵다. 거리에서 형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환청, 운동이 뭔데 내 아들을 둘이나 교도소에 넣었느냐는 어머니의 외침. 숨이 막히는 고통. 그는 이 상실을 극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 슬픔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유가족이라는 정체성은 그를 더 많은 죽음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감옥에 있으면 면회라도 갈 수 있을 텐데라는 유가족들의 오열 앞에서 흘렸던 눈물.

그날 밤, 그는 그들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 책이 말하는 연대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기로 결심한 이들의 선택에 가깝다.



더 낮은 곳을 향한 시선


박래군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통해 사회의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다. 장애인 시설, 부랑인 수용시설, 양지마을과 에바다 학교

언젠가 기사로 읽은 사건들이지만, 그의 글을 통해 다시 읽으면 이 문제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담은 허물어졌지만 운영 주체는 그대로 남아 있고, 법인은 이름만 바뀌어 운영을 계속한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한차례 이슈가 지나간 이후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장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노보다 무력감이다. 폭로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너무도 잘 알려진 진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이기 때문이다.



질 줄 알면서도 하는 싸움


대추리와 용산,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서 박래군은 늘 진다.

그는 스스로를 지는 싸움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훈 작가의 말처럼, 이런 싸움은 져도 지는 것이 아니다.

승패로 평가할 수 없는 싸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장을 읽으며 나는 왜 나의 젊은 날과 멀어지려 했는지 깨달았다.

뜨거운 문장들 앞에서 그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고.



눈물의 온기로 이어진 연대


마지막 장에서 박래군은 세월호 이후 생명안전 운동가로 다시 서 있다.

다섯 번째 구속, 독방에서 삼킨 눈물, 그리고 지키지 못할지도 모를 약속에 대한 자책.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과 이태원 유가족은 2020년대에도 서로를 만났고 안아 주었다.

누가 그랬나. 운동 같은 건 애저녁에 끝난 일이라고.

아니다. 아직도 사람이 있다. 그리고 책은 그 연대에 조용히 희망을 건넨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박래군은 지난 45년 동안 그 온기에 기대어 싸워왔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이 눈물 앞에서 고개를 돌릴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춰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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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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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 한자라니.

요즘 아이들도 한자를 공부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은 믿기지 않을 이야기지만 어렸을 적만 해도 신문의 반은 한자였다. 신문을 읽기 위해서라도 한자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한자는커녕 신문도 사라져 버렸다. '우리 신문은 모든 기사를 한글로 쓰겠습니다'라는 광고가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자는 우리 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한자를 아닌 이들이 이 땅에서 사라질 즈음 한자는 그저 외국어의 하나로 남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별다른 감정 없이 하고 있었다.



사라진 문자가 아니라, 멀어졌던 감정


<한자의 기분>은 한자를 가르치려는 책이 아니다.

책은 제목처럼 한자를 통해 우리 일상의 '기분'을 다시 일깨워 주는 책이다.

저자 최다정은 열두 개의 기분을 중심으로, 챕터마다 열 글자씩 총 120개의 한자를 꺼내 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고.


우리가 한자를 멀리한 건, 사실 그 문자가 낯설어서라기보다 굳이 더 들여다보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요약되는 감정, 이모지 하나로 대신되는 기분,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넘어갈 수 있는 하루들.

그런 시대에 이 책은 아주 느린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들이 당신을 표현하고 있는가?



한 글자에 접힌 시간의 깊이


우리가 무심코 손에 쥐고 읽는 책이 원래 冊에서 비롯했음을 자각하면, 아주 기나긴 인류 보편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冊(책책) 자는 3,000년 전 사람들이 대나무를 꺾어 비슷한 높이로 다듬어 가죽끈으로 엮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冊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글자를 한자로 옮겨놓는 순간, 우리는 수천 년 전의 누군가와 같은 마음을 건너 만난다.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쓰는 단어 하나가 사실은 오래전 누군가가 울고 웃으며 남긴 흔적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 책은 지식을 설명하는 대신, 시간을 불러온다.



기분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전


이 책을 한 글자 마음 사전이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한 것 같다.

嵌이라는 글자를 통해 산골짜기에 빠진 듯한 살아 있음의 기분을 말하고, 灰를 통해 다 타고난 뒤에야 만져볼 수 있는 안도와 공허를 이야기한다.

봄날의 靄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계절의 마음을 닮았고, 餘는 겨울밤과 장마철에 숨어 읽는 독서의 기분을 불러낸다.


물론 이 글자들이 어떠한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

기분이 엉망인 순간에 숨어 들어가 웅크리고 울 수 있는 곳이, 하나의 한자 안이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의 한자들은 갈 곳 없는 이들에게 피난처에 가깝다.



한자를 읽는다는 것, 나를 읽는 일


<한자의 기분>은 한자의 미래를 걱정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책의 역사, 읽는 손의 감각,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언어의 온기를 믿는 쪽에 가깝다.

언어가 사고를 만들고, 사고가 세계를 만든다는 오래된 언어학의 통찰처럼,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어떤 언어로 기분을 부르는가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결정한다고.



사실 읽으면서 나도 한자를 많이 잊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뭐 그렇지만 책을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선 내가 쓰는 말들에 대해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내 기분을 설명하는 단어 하나쯤은 조금 천천히 골라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


한자를 좋아하거나 배워보고 싶은 사람.

나의 마음을 한 글자로 나타내고 싶은데 그게 도저히 뭔지 모르겠는 사람.

말보다 이모지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


이 책은 다른 표현의 선택지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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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맡기는 요령 - 성과도 내고 팀원도 성장시키는 팀장의 비밀
야마모토 와타루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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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체를 좀 하자면 손이 빠른 편이다. 손만 빠른 게 아니라 일머리도 좀 있다.

그래서 오래도록 ‘믿고 맡긴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는데, 그게 늘 어려웠다.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믿고 맡기고, 아니라면 내가 밤늦게까지 야근해서라도 일이 잘 끝나도록 챙겨버렸다. 나도 안다. 이것이 좋은 방식은 아니라는걸. 그래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도 살아야지.

그러던 내게 이 책은 아주 단순하지만 단단한 메시지를 건넨다. 맡겨, 그냥.



VUCA 시대에는 맡김이 필요하다


책은 오늘의 경영 환경을 VUCA(변동성 Voamiy, 불확실성 Uncerainty, 복잡성 complewity, 모호성Amboguts)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정답은 사라지고, 변화는 예측할 수 없고, 문제의 흐름은 훨씬 빠르게 바뀐다.

이런 시기에 과거와 같은 수직적 명령형 리더십은 작동하기 어렵다.

책은 이러한 흐름을 가져간다. 명령형 리더십보다 공감형 맡김과 자율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나는 왜 일을 맡기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들 비슷할 것이다.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팀원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나의 불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빠르다"는 말 뒤에는 실수의 책임, 시간의 손실,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부여잡은 채 계속 떠안는 방식으로는 리더도, 팀도, 조직도 점점 소진될 뿐이다.


결국 맡김은 그래야 한다는 대승적 결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누구에게 맡기느냐보다 중요한 것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일의 맡김을 일 나누기가 아니라 사람 설계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그 사람의 적성과 의욕에 맞느냐이다."

맞다. 일을 잘하는 이에게 맡기면 기본은 하겠지만 그 사람의 적성과 의욕에 맞는 일을 맡긴다면 그는 충분히 +a를 해낸다.


책은 의욕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A형: 스스로 성장·경험·성취에서 동기를 얻는 사람

B형: 인정·보상 등 외부 자극이 동기를 만드는 사람

C형: 타인·팀·가치에 기여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


연차와 나이에 따라 유형이 바뀌는 경우도 있겠지만 팀원들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고 그에 준하는 일을 맡기라는 것이 책의 추천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보통 일이 먼저 있고 그 일을 담당할 사람을 정한다. 하지만 책은 반대로 말한다.

사람을 먼저 세우고 그 결에 맞는 일을 설계하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껏 실패한 맡김은 '일은 해야지'라는 대명제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갖다 붙였다.

이 방식은 결국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반대로 적성과 의욕을 기준으로 맡기기 시작한 순간, 팀은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개입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동력을 키우는 쪽으로 개입하는 일. 이것이 지속 가능한 리더십의 핵심이다.



팀이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드는 기술


책은 리더가 없어도 돌아가는 팀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네 가지 축은 다음과 같다.


작게 맡기고 즉시 피드백하는 성장 루프

실패를 학습 자원으로 전환하는 시스템

칭찬과 피드백의 기술

개인의 목적과 팀의 목적을 연결하는 설계


듣기만 해도 단순한 것 같지만 실패하는 리더가 매일 놓치는 것들이 바로 이런 지점들이다.

'내가 없으면 안 굴러가는 팀'은 어쩌면 자랑이 아니라 리스크다.

팀이 자력으로 움직이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운영력이며 그것이야말로 리더십의 본질이다.

결국 좋은 리더란 좋은 매니저의 다른 이름이다.



맡김은 리더도 살리고, 팀도 살린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일을 잘하는 편이다.

혼자 하는 일에서 이 효율은 극도로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내가 계속 빨라야만 유지되는 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속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맡긴다는 건 결국 팀원을 키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를 살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주 단순하다.

불안을 견디고, 맡길 용기를 내는 것.


와씨 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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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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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인문학 책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조금 기대한 면이 있었는데 막상 책은 도시의 과거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더 정확히는 도시의 성장 전략, 정책 변화, 산업과 인구가 만들어내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가 예측하게 만드는 도시의 흐름을 다룬 책이다. 사실 이런 쪽으로는 거의 문외한이다 싶은데 김시덕의 <한국도시 2026>은 지금 한국 도시를 흔들고 있는 여러 신호 속에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지를 조금은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시를 읽는 기본 틀 : 선거·국제정세·인구·교통


책의 1부는 도시를 읽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축을 빠르게 정리한다.

2025 대선과 2026 지방선거 사이에서 쏟아지는 개발 공약, 국제정세와 기후 변화가 만들어내는 외부 압력, 인구와 산업 재편이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 그리고 교통망 구축이라는 현실적 제약.

이 네 축은 도시의 미래를 알아맞히기 위한 예측 도구라기보다는, 뉴스와 공약에 휩쓸리지 않고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선에 가깝다. 선거 공약은 빠르게 소음이 되고, 국제정세는 산업의 무게중심을 계속 바꾸어 가고, 인구와 산업은 도시의 체력을 결정하며, 교통은 도시의 속도를 조정하는 요소다. 책은 이 네 가지 기준을 통해 도시를 해석할 때 무엇부터 봐야 하는지를 가볍지만 정확하게 안내한다. 그리고 이 기준에 맞추어 우리나라의 권역들을 소개한다. 그는 특정 지역을 낙관하거나 경계하려기 보다 그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찾고 보여준다.



대서울권: 강한 축과 약한 축이 드러나는 자리


확장 강남은 여전히 견고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와 지식 산업 중심의 고밀도 일자리, 인구 유입이 지속되는 구조, 교통망 우선순위가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배치되는 현실 등이 대한민국의 발전은 모두 서울을 가리킨다. 여기에 선거때마다 이슈로 떠오르는 김포·고양의 서울 편입 논란이나 GTX-D 요구가 반복적으로 벽에 부딪히는 이유, 경기 북부와 서해안 개발 테마가 장기적으로 힘을 얻기 어려운 이유 역시 그는 나름의 근거로 설명한다.



동남권: 국제정세와 산업 재편이 만들어낸 새로운 중심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을 가진 부산·울산·경남이 국제정세 변화와 산업 재편 속에서 어떻게 다시 중심축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책은 보여준다. 방위산업과 조선업의 회복, 글로벌 공급망 이동이 이 지역의 장기적 성장성을 뒷받침할 것이고 이 지역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음을 책은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가덕도 신공항 추진처럼 여전히 해결해야 할 기술적·행정적 난관도 존재하지만 도시의 가능성과 한계를 그는 꽤 균형 있게 읽어 내려간다.



중부권: 수도 기능의 이동이 만들어내는 변화


선거때마다 행정수도 관련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세종과 충청권을 다루는 부분은 한국 도시의 힘이 재배치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KTX 세종역 논의, 행정수도 논쟁, 2차 공공기관 이전처럼 익숙한 이슈들이 사실은 이 지역의 위상을 크게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수도권 집중이 완화되는 과정에서 중부권이 어떤 교차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산업과 인구 흐름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책은 차분하게 설명한다.



이 밖의 전국 소권 분석


이 밖에 책은 '대구 구미 김천 소권', '동부 내력 소권', '동해안 소권', '전북 서부 소권', '전남 서부 소권', '제주 소권'을 차례로 설명한다.

각 지역마다 당면한 과제와 이슈가 다르지만 결국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관통하는 공통 패턴을 보여주고, 지역별로 산업 기반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인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교통망 구축이 실제로 그 지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속도를 가지는지 등을 알려준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도시의 패턴과 반짝 테마로 그치는 도시의 패턴을 구별하게 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지역 설명이 길어지는 책들은 전체가 산만해지곤 하는데 이 책은 같은 기준으로 전국을 읽으며 도시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는 느낌이다.



예측의 책이 아니라 해석의 기준을 주는 책


<한국도시 2026>은 어느 지역이 뜨는지, 어떤 지역이 떨어지는지를 가르쳐 주는 예측서는 아니다. 장기적 신호와 단기적 소음을 구별하고, 공약보다 구조를 먼저 읽는 법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해석의 기준을 독자에게 심어주는 책이다.

사실 지역이라고 하면 역사와 감성을 먼저 떠올리던 내게는 도시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야를 열어준 책이었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 도시의 미래를 알고 싶은 독자뿐 아니라, 도시 뉴스를 해석하고 싶은 분들께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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