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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평점 :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마지막 장면.
암에 걸린 상연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기 위해 스위스로 떠난다.
엄마처럼 병원에서 고통받다가 죽고 싶지 않다. 자신의 죽음만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며 그는 별 고민 없이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평생 친구이자 라이벌이자 미워하는 사람이었던 은중을 향한 애정과 질투 그리고 미안함,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도 두 친구는 삶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그 마지막이 하얀 병실이 아니라 스위스여서 어쩌면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의 범람은 아제 스위스행으로 통칭되는 조력 죽음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왔으며,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에 우리도 설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묻는다.
정말 ‘깨끗한 죽음’이 존재하는가?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은 이 질문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안락사나 조력 임종을 논의할 때 어떤 현실과 감정에 빠져있는지,
그리고 반대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논박한다.
세 사람이 그린 조력 임종의 지도
책은 정신과 전문의 박혜윤, 신장내과 전문의 신성준, 의료인문학 교수 최은경, 세 사람이 함께 썼다.
암 병동에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돌보고, 말기 환자의 치료 거부와 연명의료 문제를 연구하며, 의료 역사와 윤리를 가르쳐 온 경험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
이들은 먼저 이 이슈의 이름부터 정의한다.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의사 조력 임종’ 등 용어에 따라 행위의 윤리적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오랜 논쟁 끝에 의사 조력 임종이 합법화됐지만, 한국과 일본은 이 논란이 개인은 가족이 돌보아야 한다는 사회질서 안에서 아직도 윤리적 논쟁에 갇혀 있다.
이렇듯 윤리가 논쟁에 들어가면 자칫 찬성과 반대라는 흑백논리에 갇히기 쉽다.
그럼에도 이들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조력 임종을 둘러싼 언어와 제도, 그리고 한국의 말기 돌봄 현실을 세밀하게 해부한다.
(이렇게 흑과 백이 뚜렷한 논쟁은 처음에는 건설적으로 시작했다 보통 감정싸움으로 끝난다 ㅠ)
돌봄의 공백 속에 피어나는 절망
책의 두 번째 파트는 왜 많은 이들이 스위스를 꿈꾸는지 해부한다.
한국인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일부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라는 제도가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제도를 누리지 못한다.
암 말기 환자와 가족이 겪는 경제적 부담, 간병과 돌봄의 고립은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이며
이 시간이 쌓이면 환자의 뜻과 무관한 연명치료를 환자와 가족 모두 중단하고 싶다고 속으로만 삭이게 된다.
(환자도 가족도 누구도 이 이 이야기를 함부로 입 밖으로 낼 순 없다)
서두에 언급한 상연의 고민도 이와 마찬가지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스스로 끝낼 권리.
이 조력 임종에 대한 논의는 서구에서 의사들이 주도해 진행한 것과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 가족 돌봄이 우선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 아래
가족에게는 가족(환자)을 포기한다는 윤리적으로 용납 받기 어려운 이유와 함께
환자는 자살을 선택한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이런 배경 아래 아주 가끔 경제적 이유로 인한 가족 간 살해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한동안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제대로 된 안락사 논쟁은 아직까지 시기상조인지도 모르겠다.
이와 별개로 조력 임종 제도가 도입될 경우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저자들은 돌봄과 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조력 임종을 허용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기결정권, 고통, 존엄
세 번째 파트는 조력 임종을 옹호하는 주된 논거인 자기결정권, 고통, 존엄을 차례로 살핀다.
자기결정권은 우리의 본능적 공감을 얻지만, 임종 과정에서 사실 ‘온전한 자기결정’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환자가 결정권을 행사하려면 의료인과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권력관계와 부담이 작용한다.
고통 역시 신체적 통증뿐 아니라 우울과 상실감, 돌봄의 부재가 얽혀 있어 어떤 기준을 세우기도 어렵다.
‘존엄’이라는 말은 지지 진영과 반대 진영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논의를 흐리는 수사학이 된다.
*이를테면 조력 임종을 찬성하는 측의 존엄은 '내 삶의 결정권은 내게 있다'는 걸 강조하지만
반대하는 측의 존엄은 '돌봄 받더라도 똑같은 인간이다' 즉 인간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가치를 말한다.
세 저자는 이렇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죽음을 향한 욕망 안에 삶에 대한 갈망과 절망이 함께 있음을 보여준다.
깨끗한 죽음은 존재하는가
저자는 논문의 형식을 빌어 네덜란드, 캐나다, 일본, 미국, 스위스 등 여러 나라의 법적 사례를 탐구하며, 제도의 도입 과정과 부작용 또한 기록한다.
합법화 이후 대상이 정신질환자까지 확대된 캐나다의 논란,
나고야 판결 이후에도 모호한 경계를 넘지 못한 일본의 상황,
음 관광으로 변질된 스위스의 현실 등을 들여다보며,
어쩌면 제도만으로는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만약 은중과 상연을 만난다면 나는 상연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어떻게 죽을지' 결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같은 단어로 자의든 타의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묻는다.
깨끗한 죽음이 과연 존재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각자가 내릴 일이긴 하다.
질문은 꽤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