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인간적인 물리학 - 삶의 궤도를 찾아가는 10번의 시간 여행
팀 폴러트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건너가는 철학의 질문


해가 뜨고 지는데도 수많은 공식이 존재하며 이러한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은 어떤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법칙들을 하나하나 공부하다 보면 보통은 과학을 인문학의 대척점에 세운다.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과 자연법칙을 공부하는 학문.

별 저항없이 받아들여온 이 법칙에 팀 폴러트는 과연 그러한가를 묻는다.


책 <이토록 인간적인 물리학>은 이 물리학에 사람을 모습을 입힌다.

시간은 왜 모두에게 같지 않은지, 별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 몸의 원소가 되었는지, 우주의 끝을 알면서도 인간은 왜 오늘을 살아가는지를 인문학이 아닌 물리학을 통해 묻는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주의 법칙이 한 이야기 안에 놓이는 어쩌면 조금 어색한 순간,

나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물리학은 생각보다 나와 가까이 있음을 알게된다.


물론 이 책이 삶의 목적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물리학을 통해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났는지부터 되짚으며 철학이 이어온 물음에 답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소크라테스를 건너 138억 년전으로 돌아간다.



상대성 이론이 전하는 각자의 시간


첫 장은 뉴턴이 당연하게 여겼던 시간에서 출발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시간을 우주 어디에서나 같은 속도로 흐르는 배경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에서는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절대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서로 다른 중력 환경에 놓인 두 시계를 비교하면, 각각의 시계가 기록한 시간도 달라진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는 그렇지 않은 시계보다 느리게 가고, 중력이 강한 곳의 시계 역시 중력이 약한 곳보다 천천히 움직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GPS 위성의 시계에도 속도와 중력에 따른 시간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상대성이론에 따른 보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각자의 시간’과 ‘시간 거품’의 개념도 여기서 나온다.

하나의 우주에 존재하더라도 모든 존재가 완전히 동일한 시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모두는 자신이 놓인 속도와 중력, 그리고 시공간의 경로에 따라 자기만의 시간을 지나간다.


이 설명이 흥미로운 이유는 상대성이론이 시간을 우리를 둘러싼 배경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조건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만의 우주의 시공간을 통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의 시간은 당신만의 것이다.




별의 죽음과 인간의 탄생


흥미로운 대목은 우주의 역사가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빅뱅 직후 우주를 채운 물질은 대부분 수소와 헬륨이었다.


지금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와 산소, 칼슘과 철 같은 원소는 아직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원소들은 별의 내부에서 탄생했다.


별은 수소를 태우며 빛을 내고, 그 과정에서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든다.

그리고 거대한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면 그 안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우주로 흩어진다.


그 물질은 다시 별과 행성을 만들었고, 지구와 생명의 재료가 되었다.

우리 몸의 탄소와 뼈의 칼슘, 피 속의 철에도 과거 별의 흔적이 들어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아주 먼 별의 탄생과 죽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고

이렇게 되면 인간과 우주를 따로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우주 밖에서 별을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138억 년 동안 우주에서 일어난 변화가 지금의 몸으로 이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지구의 생명은 수많은 충돌과 멸종, 우연한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끝에 있는 인간은 이제 자신을 만든 별을 관찰하고, 우주의 시작과 끝을 계산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주 전체에서 보면 티끌처럼 작은 존재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이 읽어주는 삶의 의미


때로 우주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의 작은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반대편의 생각도 가능해진다.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거대한 우주안의 티끌같은 존재일지라도 우리 존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있는 선택은 언제나 존재한다.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 물리학이 삶의 의미를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다만 내 몸의 물질이 별에서 왔고, 내가 죽은 뒤에도 다른 형태로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은 알려준다.


이 사실에서 무엇을 읽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과학이 어떻게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는지 알고 싶은 이라면 한 번 정도는 이 책을 펼쳐보면 좋겠다.

미리 경고하자면 사실 조금 어렵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무엇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사람을 기억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거의 얼굴부터 떠올린다.

눈매와 표정, 웃을 때 생기는 주름 같은 것들.

그래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은 언듯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처럼 들린다.

백희성의 <기억의 무늬>는 바로 이 익숙한 믿음을 뒤집으며 시작한다.


주인공 카미는 얼굴을 구별할 수 없다.

대신 사람마다 다른 옷의 결, 자주 걷어 올린 소매의 주름,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조합해 상대를 알아본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정보가 카미에게는 한 사람의 이름이 된다.

그 설정 덕분에 이 소설에서 ‘본다’는 행위는 눈의 기능만을 뜻하지 않는다.

많이 바라본다고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얼굴을 기억하면서도 마음을 놓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카미의 세계를 따라가면 우리가 사람을 알아보는 방식이 생각보다 대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표정 하나로 기분을 짐작하고, 옷차림 하나로 성격을 판단한다.

카미는 얼굴을 볼 수 없기에 오히려 한 사람에게 축적된 흔적을 더 세심하게 읽는다.


이제 결핍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종류의 이해로 바뀐다.



손끝으로 추적한 19년


카미가 기억하는 것은 세 살 때 부모가 숨진 날 만졌던 검은 옷감의 촉감이다.

경찰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는 부모 외에 세 번째 실루엣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목격자가 단지 촉감으로 범인을 찾는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은 미제 사건을 다시 구성한다.


옷은 입는 사람의 땀과 체취를 품고, 반복되는 움직임에 따라 닳고 주름진다.

낡은 가구 역시 손이 자주 닿은 자리와 고치지 못한 상처를 간직한다.

카미는 지문이나 몽타주 대신 직물의 박음질과 나뭇결 같은 걸 증거로 삼는다.


범인을 쫓는 과정은 이제 어딘가에 기록된 삶을 판독하는 일이 된다.


작가는 건축디자이너로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작은 소품도 허투로 대하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사용했으며, 왜 특정한 흠집을 고치지 않았는지는 한 가족의 시간을 추측하는 증거가 된다.


셜록이 주로 이런 일을 했던 것 같은데 뭔가 좀 흥미로웠다.



사물이 기억하는 것들


소설의 출발점은 살인 사건이지만 결국에는 이야기는 기억을 되짚어 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영상이나 사진처럼 보관되지 않는다.


기록한 이에 따라서 어떤 날은 냄새로 돌아오고, 어떤 사람은 낡은 셔츠의 촉감이 된다.

머리는 잊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도 있다.


카미는 바로 그런 기억의 조각을 이어 붙여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


제목은 ‘기억의 무늬’다.

무늬는 실 한 가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색과 굵기의 실이 교차하고, 때로는 매듭이 생기며 하나의 형상이 된다.


카미의 기억도 그렇다.

상처와 오해, 사랑과 결핍이 겹쳐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때론 지우고 싶은 부분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그림은 완성된다.


여기서 소설은 범인을 맞히는 재미에서 한 사람을 무엇으로 기억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사를 하며 버려야 할 물건들을 왕창 꺼냈다.

누군가는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남겨야 하면 사진을 찍어두라고 했지만 무언가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나는 정말이지 한참을 어려워 했다.

그 대부분의 물건에는 대단한 경제적 가치가 없었다.


닳은 머그잔, 늘어난 스웨터, 모서리가 깨진 가구. 남이 보면 낡은 물건인데 내게는 특정한 사람과 시간이 들어 있다.

그들은 이미 내 곁에 없지만 이것들을 만질때 그들에 대한 기억이 되 살아난다. 사물은 그런 것이다.



사랑이 새겨진 자리


카미는 범인을 찾기 위해 과거로 향하지만, 그 끝에서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았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을 괴롭혀 온 기억이 전부 불행의 증거라고 믿었는데, 같은 자리에는 자신을 지키려 했던 누군가의 마음도 함께 새겨져 있었다.


상처와 사랑이 서로 다른 곳에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늬 안에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부터 기억하려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얼굴의 세부보다 그 사람이 건넨 말, 손의 온도, 함께 쓰던 물건이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모든 장면을 정확하게 복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내 삶에 만든 흔적을 알아보는 일, 그 흔적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일 수 있다.


<기억의 무늬>는 속도감 강한 추리소설을 원하는 독자보다 사물과 공간에 스민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더 잘 맞는다.

책을 덮은 뒤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버리지 못하고 곁에 둔 물건 하나가 있다면, 그 안에는 누구의 시간이 새겨져 있는지도 떠올려보자.

그 안에도 분명 사랑이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탁민 오 지음 / 탁희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멋진 말만 하늘에 떠다니는 회의


개인적으로 어떤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사람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회의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다.


잘해보자, 임팩트를 만들자,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자, 고객 중심으로 가자.

그 자리에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멋진 말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문제는 회의실을 나선 뒤다. 누구는 속도를 먼저 떠올리고 누구는 완성도를 챙긴다.

또 다른 사람은 전에 했던 일을 조금 고치면 된다고 이해한다.

모두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흔히 실무자의 센스나 역량을 탓한다.(그놈의 알잘딱깔센)


이때 이 책 <명료함>은 이 불완전한 의사소통의 책임의 방향을 리더에게 돌린다.

구성원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무엇이 중요한지, 왜 이 일을 하는지, 잘된 결과는 어떤 모습인지 설명했는지를 묻는다.


일할 때 책임지지 지않는 모호한 지시 한 문장은 여러 사람의 추측과 재작업을 부른다.

반대로 선명한 기준은 일을 줄이고 판단을 빠르게 한다.


생각하기에 일을 잘하는 사람란 단지 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 답이 있지 않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해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번 일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해 온 ‘일잘’의 조건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좋은 사람말고 진짜 그 사람


조직에는 대개 멋진 가치 혹은 비전이 있다.

도전, 신뢰, 협업, 혁신.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말은 누구나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도전하자’는 말이 실패해도 시도하라는 뜻인지, 높은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라는 뜻인지 정해져 있지 않다면 구성원은 같은 말을 보며 리더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이에 책이 제안하는 방식은 구체적이다.

먼저 함께 일했던 최고의 동료와 그렇지 않았던 동료를 떠올리고, 그 차이가 어떤 행동에서 드러났는지를 찾는다.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 뒤에 숨은 실제 그 사람을을 꺼내는 것이다.


회의 전에 자료를 공유했던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감추지 않았던 사람, 자기 성과보다 팀의 결정을 먼저 챙겼던 사람.


이렇게 어떤 사람의 행동을 적어보면 그와 나의 가치와 기준이 같은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막연히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잘못되었음을 알게된다.


멋진 단어들을 가져다 쓰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 세워진 세운 기준을 자신이 먼저 지키고,

보상과 평가와 채용에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일은 어렵다


말과 선택이 불일치는 여기서 나오고 이것이 일치할 때 구성원은 리더의 마음을 짐작하는 데에 헛힘을 쓰지 않는다.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리더


그런데 비단 이건 일뿐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못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료하게 정의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뛰어난 리더, 뛰어난 관리자다.

여기서 정의는 사람에게 '저 사람은 저래'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세심하게 보고 그가 성과를 내는 조건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점을 알아내는 일이다.


일을 빠르게 시작하지만 마지막 검토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확인의 장치를 붙여주면 된다.

충분히 생각해야 좋은 답을 내는 사람에게는 회의 전에 맥락을 건네야 한다.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보다 문서로 정리하는 데 강한 사람이라면 그 강점이 드러날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겉으로는 공평해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게으른 관리자의 모습이다.


좋은 관리자는 구성원을 대신해 모든 답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서로 다른 사람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조직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책에서 말하는 ‘인간 등대’도 결국 이런 역할이다.

리더가 모든 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위치와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면 그때부터는 각자가 자기 힘으로 주어진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



리더가 되면


리더십 책을 읽자하면 일견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를 구경하다 책을 덮을 때가 있다.


<명료함>은 이 읽는 사람을 구경꾼으로 두지 않는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준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리더란 무엇인가.

공식적으로 직함을 가진 자만 리더가 되는 것은 안니다.

자기 일을 정의하고 동료와 기준을 맞출 수 있는 비공식리더가 오히려 팀에 더 유익한 순간을 우리는 여러번 경험했다.


솔직히 별 기대 없이 펼친 이 책을 책상위에 놓았다.


아마도 지금 밑줄 친 문장과 실제로 팀장이 되어 사람을 이끌게 된 뒤 밑줄 칠 문장은 분명 다를 것이다.


새삼 팀원의 일이 기대와 달랐을 때 그 사람의 센스를 탓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하고,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나는 그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그 기대를 이해할 수 있게 말했는지에 톱아볼 수 있는 리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다 지친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그 행동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보다 중요하다.’(p.9)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면 우리는 빠르게 그에게 이름을 붙인다.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나르시시스트.

그러다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는 멀쩡하고 친절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판단의 방향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달라졌을까. 관계는 여기서 더 복잡해진다.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는 그 성급한 판정 사이에 ‘이유’라는 한 칸을 만든다.

물론 이유를 안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든 나든 잘못이 옳은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설명할 수 없었던 행동에 구조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혹은 밀어내지 않을 수 있다.

이해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기 전에 상황을 정확히 보기 위한 조건이다.



미생과 나의 해방일지


책은 13가지 성격장애 혹은 불안을 섦여하기 위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예시로 사용한다.

적재적소라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 표현인가 싶을 정도로 적확하고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낯선 심리학 단어들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음을 알게된다.


이를테면 <미생>의 밉상 성 대리가 등장하는 순간 윗사람에게는 싹싹하고 유능하지만 약한 후배에게는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사람. 주변에서는 좋은 동료로 평가받으며 후배를 가스라이팅하는 우리가 직장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이임을 알게된다.

당신이 틀린게 아니다.


이렇게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를 통해 ADHD를 설명하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선아에게서 우울증을,

<나의 해방일지>의 구 씨에게서 중독을 읽어 낸다.


이러한 장면을 다시 불러오며 문득 ‘의지가 부족해서’, ‘원래 성격이 그래서’라고 지나쳤던 행동이 하나씩 떠올랐다.

또한 음주를 낭만으로 이야기해 온 캐릭터들이 실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진단은 뭔가 새롭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이해는 수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해와 수용을 한 묶음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왜 관심을 갈구하는지, 왜 상대를 통제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의 그런 행동을 계속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유를 알고 나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고 우리는 견뎌야 할 때와 도망쳐야 할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불안과 결핍을 알아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심리치료사가 아니며 그 결핍을 내가 전부 채워줄 수도 없다.


누군가를 돕는 일과 그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일도 다르다.

책은 때로 곁에 있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이해하라는 조언 때문에 더 많이 참고, 더 자주 자신을 탓해온 이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치료보다 앞선 선 긋기다.


관계의 이유를 아는 것과 상대를 바꾸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내 에너지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확인하고,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때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게 하는 것.


우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



그 이름표가 떼어 내세요


에니어그램 집단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너는 00라서 그래' 생각보다 쉽게 책이 쓰인 탓에 책을 덮고 나면 주변 사람에게 진단명을 붙이고 싶어질 수 있다.


성 대리를 보며 직장 동료를 떠올리고, 라스타를 보며 연인을 분류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실제 인물을 진단하지 말고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라고 여러번 당부한다.


부디 그 당부를 받아들이길 권한다.

책이 누군가를 판정하기 위한 목록으로 읽는 순간 저자가 애써 마련한 마음의 자리가 다시 정상과 비정상의 좁은 칸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결국 구원받을 사람은 나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선은 타인에게서 나에게 돌아온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내가 받아 자기 감정처럼 행동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애착 유형은 왜 유독 어떤 사람 앞에서 불안해지고, 밀어내는 사람에게 더 매달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관계에서 벌어지는 어긋남은 그저 한 사람의 성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과 침묵, 반복해온 반응 속에서 그 틈이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벌어진다.


그래서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물음은 ‘나는 왜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반응할까’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느라 나를 잃지 않고, 나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모든 관계를 끊어내지도 않는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고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사람 때문에 지친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번 더 당부한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에 곧바로 이름표를 붙이기보다, 그 사람 앞에서 반복되는 나의 반응을 한 번 적어보자.


이해의 끝에서 구원해야 할 사람은 결국 그가 아니라 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도에 숨은 수학을 찾아라!
김리나 지음, 김종채 그림 / 휴먼어린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다 쓰다 초등 수학만화까지 리뷰할 줄이야


쓰다 쓰다 이런 초등만화 서평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천 권이 넘는 책을 읽고 기록했으니 웬만한 장르는 다 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세계는 늘 내 예상보다 한 칸 더 옆에 있다.

이번에는 지도와 수학이다.


지도를 펼쳤다가 비와 분수와 좌표와 삼각비까지 끌려 들어간다.

뭐,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오래전에 수학 아니 산수 풀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비례식을 풀어 보고 등고선도 쳐다봤다.

예전에 이렇게 배웠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이제는 확인할 길 없는 미련도 조금 생기기도 했다.


김리나의 <지도에 숨은 수학을 찾아라!>는 지도를 수학책으로 바꾼다.

우리는 스마트폰 지도를 확대하고 축소하면서도 화면 속 세상이 어떤 규칙으로 줄어드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은 그 무심한 손가락 아래에 수학이 있었다고 말한다.



김정호 선생님의 위대함


옛날 김정호 선생님은 <대동여지도>를 만들며 우리나라를 약 16만분의 1 크기로 줄여 그렸다.

전국을 전부 펼치면 높이가 6미터를 넘는 거대한 지도지만, 실제 국토와 비교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작다.

산과 강과 길과 고을을 같은 규칙으로 줄이고, 길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었으며, 여러 정보를 기호로 표시했다.


이것이 지도다.


그리고 책은 이 비례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수학이 출발한다.


실제 세상을 그저 작게 그린다고 지도가 되지는 않는다.

집은 절반으로 줄이고 길은 10분의 1로 줄이면 그 그림으로 거리를 짐작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같은 비율로 줄여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축척이고, 축척을 이해하려면 비와 분수와 비례식이 따라온다.

교과서 안에서는 따로 떨어져 있던 개념들이 지도 위에서 한꺼번에 제 자리를 찾는다.


이 연결이 이 책의 가장 좋은 부분이다.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느냐는 물음에 ‘시험에 나오니까’보다 나은 답을 아이에게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비례는 실제 거리를 구하고, 좌표는 한 지점을 정확하게 표시하며, 등고선은 산의 높낮이와 경사를 알려준다.

숫자와 선이 갑자기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사회책과 수학책 사이


책은 축척에서 멈추지 않고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위치를 표시하는 좌표를 거쳐 위도와 경도로 나아가고, 둥근 지구를 평면에 옮긴 프톨레마이오스와 메르카토르의 지도까지 이어 붙인다.


이어 대동여지도의 기호와 범례를 살피고, 삼각형의 비율로 산의 높이를 계산한 뒤 등고선과 수준 원점을 설명한다.

초등 사회 시간에 본 단어와 수학 시간에 배운 개념이 같은 지도에서 만난다.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는 비례식을 풀고 사회 시간에는 축척을 외운다.

이 둘은 수학 선생님과 사회 선생님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만나지 않는데 <지도에 숨은 수학을 찾아라!>는 이 둘을 이어준다.


축척을 읽다가 분수로 이동하고, 위치를 찾다가 좌표와 각도를 만난다.

이 연결이 사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만화와 삽화, 짧은 글을 섞어 부담을 낮추고, 장이 끝날 때마다 ‘지도 속 수학 비밀 노트’로 개념을 다시 묶어 준다.

문제집처럼 정답을 재촉하지 않고 지도를 들여다보며 원리를 발견하게 한다.


수학이 계산의 기술이기 전에 세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라는 사실도 새삼 알게된다.



이게 진짜 재미있을까


재미있게 쓴 책이다. 나는 뭐,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는거지 정말 수학을 배워야 할 아이에게도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도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를 두지도 않았다.


어른인 나는 대동여지도와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미 알고 있고, 비와 분수와 좌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대충 짐작한다.

그래서 흩어진 지식이 연결되는 순간이 반갑고 진작에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쳤어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건 어른의 관점이다.


지도와 수학을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는 축척, 음수 좌표, 위도와 경도, 삼각비, 등고선이 그냥 단어만으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혹 표지와 그림을 보고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학습만화를 기대한다면 설명의 비중이 생각보다 커 놀랄수도 있다.


초등 저학년이 읽기보다는 적어도 초등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더 잘 맞을 듯하다.

부모나 선생님이 실제 스마트폰 지도와 함께 펼쳐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를 재 보거나, 등산 지도의 등고선을 찾아본다면 책의 효과는 더 커질 것 같다.



가르친다는 건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을 쉽게 말하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상대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짐작하고, 그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책이 지도를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화면을 확대해 본 경험은 있다.

저자는 거기 축척과 좌표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그래도 선생님의 마음과 아이의 재미 사이에는 늘 작은 틈이 생긴다.

정성껏 준비한 설명이 어떤 아이에게는 졸음의 시발점이 되고, 다른 아이에게는 또 다른 지식의 출발이 된다.


그 틈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을 최대한 줄이려 지금도 노력하시는 이 책의 저자 선생님을 비롯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