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
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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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부서진 뒤


달이 부서졌는데도 아침은 온다.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뉴스를 확인하며, 오늘 먹을 것과 잠잘 곳을 걱정한다.


세상의 종말이 눈앞에 보일 만큼 선명해져도 생활은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김성일의 <시간의 끝>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간격에서 출발한다.


밤하늘에는 온전한 달 대신 파편이 떠 있고 도시에는 괴물이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의 규칙을 붙들고 버틴다.


'누가 달을 파괴했는지 형사님은 아나?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한가?'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전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모두가 달이 부서진 건 알지만 그 원인과 다음에 올 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것을 우리는 공포라고 부른다.


세계가 이해되지 않기 시작하면 사람은 이를 설명하거나 혹 설명해줄 이들을 찾는다.

과학자는 수식을 세우고, 형사는 범인을 추적하며, 사교도는 재난에 계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셋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이 문제의 해석을 각자의 모습으로 찾는다.



세 사람 이야기


소설은 형사 수영, 수학자 지호, 이름 없는 교주의 시점을 교차하며 진행한다.

수영은 이미 벌어진 죽음의 원인을 좇고, 지호는 다가올 파국을 계산하며, 교주는 달을 복원하고 시간을 영원히 반복시킬 의식을 준비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맡은 듯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따로 움직이지만, 장이 바뀔 때마다 앞에서 본 장면의 의미를 뒤집으며 조금씩 맞물린다.


우리는 수영과 함께 과거를 수사하고, 지호와 함께 미래를 계산하며, 교주와 함께 시간이 정말 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의심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끝난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선택이고, 누군가의 원인은 다른 누군가에게 결과가 된다.


우리는 소설을 조각난 시간을 다시 배열하며 읽어야 하는데 이런 식의 책은 정말 오랜만이라 사실 읽으며 꽤 도파민이 돌았다.

이야기는 수학과 물리학을 품고도 미스터리 스릴러의 속도를 잃지 않는다.


사교도수사과, 피로 그린 수식, 파괴된 달과 봉쇄된 도시 같은 이미지는 우리게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세 인물이 결국 같은 시공간을 향한다.



과학과 주술은 과연 다른 것인가


책에는 조금은 어려운 개념, '2차 시간'과 '블록 우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블록 우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차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시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이고,

틸링해스트 수학은 그 전체를 바깥에서 바라보고 건드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간축을 계산하는 수식이다.


인간이 이 '2차 시간'을 다룰 수 있다면 괴물과 기이한 재해를 일으킬 수도 있고, 시간의 반복을 멈추거나 영원히 되풀이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어려운 개념을 썼을까 하다 무릎을 탁쳤다.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무자르듯 갈라지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세상앞에, 이성의 언어인 수학은 피와 희생을 만나 부적과 의식이 되고

평범한(?) 세상에서 광신으로 치부되던 힘은 디스토피아에서 비로소 그 힘을 가진다.


자 이제 우리는 답해야 한다.

과학과 주술은 과연 다른 것인가?


김성일은 이 어려운 질문을 형사소설의 추적과 스릴러의 불안을 통해 체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이 우주의 구조를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조차 사실은 더 거대한 질서의 일부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건넨다.


와 이 책 진짜 강추다.



끝이 정해져 있어더라도


운명론을 믿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결말이 이미 정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시간의 끝>은 이 익숙한 질문에 쉬 대답하지는 않는다.

인물들의 선택은 세계를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움직인다.

수영은 지호가 남긴 흔적을 좇고, 지호는 이해할 수 없는 계산을 이어가며, 교주와 제자들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두고 다툰다.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끝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 준 자유의지는 정해진 운명 밖으로 탈출하는 힘이 아니라 정해진 세계 안에서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까.


책을 덮은 뒤 떠오르는 것은 종말보다 오늘이다.

세계의 끝을 막는 일이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의 거대한 영웅담 이전에 누군가가 다시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내일을 약속할 수 있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래가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우리는 다음 하루를 향해 움직인다.

그 작은 움직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라도 바로 그 선택이 우리를 사람으로 만든다.


시간과 운명, 자유의지를 다룬 한국 SF를 찾는다면 <시간의 끝>을 펼쳐보길 권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모든 결말을 미리 안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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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 - 주어진 길을 넘어, 삶의 이유를 만든 사람들
김회주 지음 / 데이지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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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조금 슬프지만 사람은 무너진 뒤에야 자신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보게 된다.

일이 뜻대로 풀릴 때는 신념과 습관, 욕망과 체면 같은 것들이 한데 섞여 있어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가 한꺼번에 그것들을 걷어 가면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는 그것이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김회주의 <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는 바로 그 실패의 순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톨스토이와 헤밍웨이, 카프카와 카뮈, 스티브 잡스와 리오넬 메시, 프리다 칼로와 다산 정약용까지.

우리는 그들은 성공했으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한 획을 그었다는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책은 그 화려한 결말보다 아무도 성공을 보장하지 않았던 그들의 어둠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병든 몸, 거절당한 원고, 잃어버린 자리, 실패한 사업, 끝을 알 수 없는 유배가 그곳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성공노하우를 모은 자기 계발서와는 조금 다르다.

어떻게 넘어지지 않을지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넘어진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실패를 없애는 방법은 없지만, 실패가 삶 전체를 뒤집에 쓰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선택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순간의 작은 선택


사실 책 속 인물들을 다시 움직이게 한 힘은 한두개의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일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질문이었으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고 그리고 가르치는 행위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린 뒤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확신이 생겨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 아니라 첫발을 내딛고 다음 발을 내밀며 다음 확신을 만들어 갔다.


정약용의 이야기다.

이미 실각해 정치적 기반과 지위를 잃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읽고 쓰고 사람을 가르쳤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오늘 한 줄의 글을 쓰고, 내일은 한 장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모레 한 사람을 가르쳤다.'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는 말을 어떤 극적인 반전으로 생각한다.

바닥을 찍은 사람이 어떤 계기로 인해 이전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회복은 대개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것으로 시작된다.


한 줄을 쓰고, 한 장을 읽고, 한 사람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건네는 일.

오늘의 내가 감당할 몫을 해내면서 무너진 삶에 다시 질서를 만드는 일 말이다.


이 책이 좋았던 점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삶을 우러러 보는게 아니라 그들이 견딘 하루를 함꼐 경험하는 일.


옳다. 다시 일어서는 힘은 타고난 의지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실패를 해석하는 법


제임스 다이슨의 실패는 버려야 할 흔적이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자료가 된다.

프리다 칼로에게 상처 입은 몸은 감추어야 할 결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그리는 언어가 된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속이며 안전한 길에 머무는 대신 익숙한 껍질을 깨는 쪽을 택한다.


이들이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어쩌면 차가울 만큼 객관적이다.

아픔은 아픔이고 상실은 되돌릴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이후의 삶을 전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실패를 자신의 무능을 증명하는 판결문으로 읽으면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다.

반대로 무엇이 맞지 않았는지 알려주는 설계도로 읽으면 실패는 인생을 수정할 근거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의미는 고통 안에 미리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고통받지 않는 삶이 축복이긴 하다;;)



한권에 마흔네 사람의 이야기는 좀 많긴하지..


44명의 삶을 248쪽에 담아서 읽다보면 예화집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짧고 서로 독립되어 있어 아무 장이나 펼쳐 읽어도 된다.

하지만 인물을 깊게 알고 싶다면 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했다'는 결론이 반복되면서 조금 루즈해질 수도 있다.

또 가난과 차별, 질병과 사회 구조처럼 혼자만의 노력으로 바꾸기 어려운 조건에 대한 이야기도 불충분하다.

무엇보다 모든 실패를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말로 읽는다면 오히려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붙들 것인가


어떻게 읽으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덮고 우리의 질문이 바뀌면 좋겠다

'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붙들 것인가'로.


이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일로,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또 어떤 이는 한 줄의 문장으로 하루를 견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알아볼 만큼 큰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다.


슬픈 일은 우리는 자주 회복에도 속도를 요구한다.

얼른 괜찮아지고, 이전의 성과를 되찾고, 이번 실패에서 교훈까지 얻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쓰러지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다.

상처를 지닌 채 이전과는 다른 균형을 배우는 일.


때로는 일어서는 대신 더 쉬어야 하고 혼자 힘으로 버티는 대신 도움을 청하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선택이다.


지금 무언가가 끝났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가장 닮은 한 사람을 먼저 찾아보면 좋겠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그가 무너진 자리와 다시 내디딘 첫발 사이에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 하나를 찾아보자.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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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 프로젝트 - 노동과 여성·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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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삼전닉스를 가지고 있나요?


2026년 5월, 역대급 주가의 고공행진을 펼친 삼성전자 성과급 협상이 파업 직전 극적으로 타결됐다.

청와대는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한 노사의 대승적 결단"이라며 반겼다. 그런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노조 내 갈등과 차별 처우, 그걸 지켜본 시민들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과 소득 양극화에 대한 불만은 어디로 갔나.

조돈문 교수는 이 장면을 두고 초기업노조의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와 그런 노조를 키워낸 삼성 재벌, 시장의 '모범 사육'이 빚어낸 최악의 담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 합의 소식을 들으며 비슷한 찜찜함을 느꼈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은 것 같다.

반도체 부문(DS)은 1인당 최대 6억 원, 디바이스 부문(DX)은 600만 원 수준의 자사주. 같은 회사 안에서 이 정도 격차가 벌어진다면, 그 격차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당화되는 걸까.

자회사 안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반도체 초호황이 만든 초과이윤은 결국 누구의 몫이었나.

AI와 코스피 9000 시대, 겉으로는 모두가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기에 이 책은 하필 그 이면을 파고든다.



우리는 왜 불평등을 참으면서 미국을 좋아하는가


전작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저자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시민들은 불평등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왜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은 계속 선망하는가.


책은 모든 나라의 시민이 사실 피라미드형 소득분배보다 다이아몬드형을 선호한다는 걸 데이터로 짚는다.

스웨덴이 그 다이아몬드형에 가장 가깝고, 미국은 정반대편의 전형적 피라미드형이라는 것.(p.46)


그런데도 "한국의 시장경제가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가깝고 자본과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은 미국식 모델을 집행하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방어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한다."(p.71)


안타까운 사실은 그 반대편에서 북유럽 모델을 대변할 세력은 마땅히 없다는거다.

책은 그 정보 비대칭이 불평등체제를 지탱해 온 힘이라고 진단한다.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그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가 고른 벤치마킹 대상은 역시 스웨덴이다.



스웨덴 모델과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라는 말


스웨덴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평등 복지국가라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스웨덴 모델을 낭만화하지 않고, 노동계급이 그 모델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만들어왔는지 과정 자체를 짚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전략의 이름은 '비개혁주의적 개혁'.

작은 개혁으로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발판으로 점차 개혁의 수위를 높여 더 큰 변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불평등체제의 피해자들이 권리 의식을 발전시키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집합적 요구를 중심으로 위력을 행사하며 변화를 압박하는 동원 과정이 필요하다고 책은 말한다.(p.165)

사실 말은 쉬운데, 그 동원이 실제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이야기하자면,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노동조합은 동맹의 중심이 될 수 있는까


저자는 노동계급을 사회 통합과 변혁의 구심점으로 놓고, 노동, 여성, 청년 동맹을 해법으로 제안한다.


그런데 이 책도 인정한다.

겉으로는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조차 정작 자기 조직 안의 불평등에는 소극적라고.

사실 그렇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내 이익이 걸린 불평등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 불평등 개선의 주체가 자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내 목소리를 낮춘다.


이는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처럼 취약한 사람들까지 포함한 노동자 전체의 이익보다는, 이미 자리를 잡은 정규직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집단이 되어버린 곳도 비일비재하다.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에서 저자가 초기업노조를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최근 시행된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쟁도 비슷하다.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겠다면서 정작 노조와의 협의는 건너뛰는 원청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이 책이 말하는 노동계급 내부의 대표성 문제를 다른 자리에서 다시 확인시켜준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을 평등사회의 구심점으로 세우자는 제안과, 노동조합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진단은 어떻게 양립하는가.

책은 이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가능성과 한계라는 두 단어 사이를 오간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이 우아한 절충안처럼 들리지만, 정작 그 개혁을 밀고 나갈 주체의 대표성 문제는 다소 낙관적으로 남겨둔 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자리의 불평등


그렇다고 이 책이 덜 중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긴장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데이터와 논리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볼 법한 책이다.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은 가볍고 편안하게 술술 읽히지는 않을 거라 경고했다는 점은 미리 말해둔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개혁부터 신뢰를 쌓아가자는 제안이 순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순진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뭔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생각해보라. 크고 작은 불평등의 자리에 서 있을텐데,

당신은 지금의 불평등을 언젠가 나아질 거라 믿으며 견디고 있는가 혹 그 불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이미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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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역설 - 역동과 통제, 첨단과 소외가 공존하는 복합 중국 읽기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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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든 않든 중국의 성장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의 이른바 빅2의 시대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산업화를 포기해 버린 일본과 한국에 밀려 언제나 2류국가 일 것 같던 중국은 이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기 위해

국가적 총동원 체제를 만들어 냈고 정말로 그들은 그 비웃음을 단기간에 뒤집고 이제는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AI분야 마찬가지다.

중국은 딥시크 쇼크와 화웨이의 반도체처럼 첨단 기술에 관해서도 빛나다 못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중국이라는 역설>은 이 화려한 중국의 경제상과 함께 또 다른 시대로 나아가는 중국을 포착한다.

단기간에 성장한 중국의 기술 굴기의 빛나는 면과 함께 탕핑족과 라이프니스트가 나타나고,

자유를 꿈꾸는 청년들이 억압 속에서 지하 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통해 현재 중국이 마주하는 기회와 위기의 양극단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중국 : 불안한 권력과 억압의 어둠


1부는 강력한 1인 지배 체제 아래에서도 시진핑의 불안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추적한다.

중국은 2020년대 들어 안보를 최우선하는 총동원 체제를 정착시키며, 당내 숙청과 사회 통제를 심화해 왔다.


장유샤(張又俠) 숙청과 같은 사건에서 보듯 권력 핵심부의 내부 균열은 체제의 불안감을 단적으로 드러냈고

이는 한때 한국에 불었던 시진핑 실각설 등 다양한 루머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루머의 뒤에 숨은 혐중 정서와 음모론을 짚어낸다.

언젠가부터 진실을 회피한 채 음모론에만 집착하는 우리안의 허구를 지적하며 중국의 정보 통제와 모순된 현실을 이해야하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유튜브에는 정제되지 않는 정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다니는데 이에 대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함을 저자는 강조한다.



미중 경쟁과 새로운 국제 질서


2부는 미중 패권 경쟁의 역설을 분석한다.

책은 중국이 처음부터 세계 패권을 노렸다기보다 공산당 체제의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 미국 주도 질서 약화를 선택했다고 본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중국이 유리한 판이 펼쳐지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비상식적 행보 또한 짚어낸다.

(이를테면 미국‑이란 전쟁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로 이란은 달러가 아닌 중국의 위안화를 선택했다. 미국의 의도와 달리 중국은 미국의 헛발질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기회를 부여 받고 있다.)


책은 2026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미국과 경쟁하면서도 충돌을 피하려는 중국의 계산을 보여 준다.

꽤 여러책에서 중국에 관해 하는 이야기인데, 저자 또한 한국이 미중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실리적 외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중국이 꿈꾸는 천하삼분지계


마지막 3부에서는 중국이 그리는 천하 질서 즉 미국-중국-유럽의 천하 삼분 지계를 탐색한다.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국가가 된 중국은 한국, 북한, 러시아, 유럽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계 질서를 설계하려 한다.


책은 역사 인식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속국으로 규정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비판하며, 청나라 시기의 종주권 회복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움직임을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는다.

북중 관계는 겉으로는 혈맹을 과시하지만 속으로는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는 점,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지정학적 현실도 되짚는다.


지금 중국이 그리려 하는 세계지도는

안보에서는 미‑중‑러 삼각 구도,

경제는 미‑중‑유럽 삼분지계를 형성하려 한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데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이 중국과 협력과 견제의 균형을 잡을 빈틈을 찾고, 미중 양대강을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혐중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마주하라


저자는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혐오정서도 놓치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역설>은 단순한 중국 찬가도, 반중 비판서도 아니다.

책은 첨단 기술의 대약진과 철저한 안보 국가로서의 통제가 공존하는 중국의 복합적 실체를 드러내고,

한국 사회가 혐중 정서와 음모론을 넘어 냉정하고 균형 있게 중국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을 경쟁 상대나 적으로 보든, 필연적 협력 파트너로 여기든 중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국의 국익을 도모할 수 있다.

책은 미중 경쟁의 역설 속에서 한국이 얼마나 섬세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들려주며 정치 뿐 아니라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들려둔다.


사실 나도 이런 거 잘 모르지만, 복잡한 국제 정세와 중국의 내면을 꽤 세세하게 들여다 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추천.중국을 미워하기 전에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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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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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림자


성해나의 기담집은 '공포'라는 장르적 틀을 빌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진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해진다.

하긴 요즘의 공포는 어떤 이야기나 이미지보다 사람이다.


'어제' 편에 실린 세 소설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내려온 벚나무 책상이 후손의 집에 놓이고, 비가 오면 벚꽃 향과 함께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화자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그 책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그리고 화자의 이 태도는 증조부와 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 이름 모를 메일을 스펨함으로 넘겨버리는 것에서 정점에 이른다.

죄는 물건에 새겨지고, 향기에 배고, 나무의 결에 스미는데 사람만 그걸 모른 척한다.

아니, 정확히는 외면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731부대 생체실험에 가담했던 노인이 영화감독에게 보내는 편지가 등장한다.

노인은 자신이 전범이 아니라 교수의 조수였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편지를 읽은 감독은 <영화가 될 만한 것은 이것 말고도 많다>며 미련 없이 그의 편지를 파쇄기에 넣는다.


노인의 변명보다 감독의 무심함에서 더 서늘해졌다.

평생 붙들고 살아온 죄책감도,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가 되지 못한 콘텐츠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역사는 그렇게 거대한 비극으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무관심 속에서도 조금씩 잊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을 경매에 부친 인간들


'오늘' 편에 이르면 공포는 더 익숙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완벽하지만 공허한 일상을 사는 여자가 타인의 삶을 경매장에서 사는 〈매일(買日)〉은 제목부터 묘하다.

제목의 한자어 '매일'은 매양 매(每)가 아니라 살 매(買)자다.

다시 말해 우리가 쉽게 말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하루를 돈으로 산다'는 뜻이다.


매일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매일 무언가를 사야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세계.

이제 무서운 이야기는 남의 입이 아니라 내 SNS 화면에서 펼쳐진다.

타인의 삶을 소비하며, 구매하며 살아가는 세계.

당신은 아니 그런가?


〈프랭크 오자와〉에서는 남의 인생을 단돈 100달러에 낙찰받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번듯한 집, 벤츠, 투자 계좌, 학력과 인간관계까지.

남의 삶을 산다는 건 터무니없는 설정 같은데 이것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타인의 삶을 공유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집, 식탁, 여행지, 성공담, 육아, 취향, 독서 목록까지.

사지는 않았지만 훔쳐보고, 훔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부러워하고, 부러움이 어느 순간 내 삶의 빈칸이 되고 만다.


〈윤회(당한)자들〉도 비슷한 방식이다.

실패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전생을 믿는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가짜 전생을 꾸며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만든 삶이 그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외로움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때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을 설명할 한 조각을 기어이 찾아 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라 착가하며 살아간다.



미래에도 인간은 인간일까


'내일' 편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계들이 등장한다.

〈아미고〉의 스턴트맨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미고'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말은 늘 근사하지만 그 근사한 말이 누군가의 밥벌이 앞에 놓인다면 사실 얘기는 달라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AI 비서에게 묻는다.

'너도 무섭니?'


AI는 담담하게 답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AI는, 기계는 아무렇지 않은 세계에서 인간만 혼자 흔들리고 아파한다.


〈#유령〉은 아동용 챗봇의 유해 언어를 정제하는 노동자를 다룬다.

챗봇이 더 순하고 안전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마다 혐오와 폭력의 언어를 읽고 지운다.


우리는 기술을 매끈한 화면으로만 만나지만, 그 아래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눈과 손과 마음이 있다.

편리함은 대개 누군가의 고통을 잘 포장한 이름일 때가 많다.

언젠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의 댓글을 모니터링 하고 지우다 밤새운 적이 있었는데 꼭 그때의 생각이 났다.

누군가의 눈에 보여주지 않게 하기 위해 지워야 하는 수준의 것들을 날것으로 마주하는 기분.


마지막 작품 〈고(蠱)〉는 안드로이드 의사가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안드로이드 의사가 상용화되어 있는 시대,

인간 의사보다 훨씬 정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의료기술도 뛰어나다.


그런데 정작 인간인 한의사 이익은 빚에 쫓기면서 점점 윤리를 버린다.

돈을 벌기 위해 독약인 '고(蠱)'를 만들고 환자들을 속인다.

반면 안드로이드 도윤은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기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도윤은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읽고, 욕망을 이해하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교묘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름 '사람같다'고 표현한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내려놓는 장면은 꽤나 공포스럽다.



이어지는 서늘한 질문들


<인비인>은 확실히 전통적인 공포소설이나 괴담과는 좀 다르다.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식의 공포가 아니라, 읽고 나면 존재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종류의 공포다.


<혼모노>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흔들었다면,

<인비인>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흔든다.


그리고 그 경계는 어쩌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제목인 ‘인비인(人非人)’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해나 작가는 이 의미를 확장한다.


죄를 외면한 사람,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사람, 기술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하는 사람, 누구의 삶을 헐값에 사고파는 사람도 모두 그 이름 안으로 들어온다.


이미 우리 안에 조금씩 섞여 있는 그 무시무시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과연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한다.

공포영화도 잘 못 보고, 괴담도 굳이 찾아 읽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됐다.


벚나무 책상 밑에서 굴러나온 쥐의 두개골처럼 역사의 흔적이 불쑥 튀어나오고,

타인의 삶을 경매에서 사는 장면에서는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아미고'에게 밀려난 스턴트맨은 자동화와 AI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불안해지는 내 마음과 겹쳐졌고

챗봇의 혐오 언어를 지우는 노동자는 알고리즘 뒤에 숨은 누군가의 얼굴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편리함을 누리고 너무 쉽게 무관한 사람이 된다.

어쩌면 성해나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그 편리함 뒤에 숨은 무관함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작가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거울을 보듯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이다.

이런 계절이라면 이런 책 한번 속는 셈 치고 펼쳐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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