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
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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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부서진 뒤


달이 부서졌는데도 아침은 온다.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뉴스를 확인하며, 오늘 먹을 것과 잠잘 곳을 걱정한다.


세상의 종말이 눈앞에 보일 만큼 선명해져도 생활은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김성일의 <시간의 끝>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간격에서 출발한다.


밤하늘에는 온전한 달 대신 파편이 떠 있고 도시에는 괴물이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의 규칙을 붙들고 버틴다.


'누가 달을 파괴했는지 형사님은 아나?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한가?'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전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모두가 달이 부서진 건 알지만 그 원인과 다음에 올 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것을 우리는 공포라고 부른다.


세계가 이해되지 않기 시작하면 사람은 이를 설명하거나 혹 설명해줄 이들을 찾는다.

과학자는 수식을 세우고, 형사는 범인을 추적하며, 사교도는 재난에 계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셋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이 문제의 해석을 각자의 모습으로 찾는다.



세 사람 이야기


소설은 형사 수영, 수학자 지호, 이름 없는 교주의 시점을 교차하며 진행한다.

수영은 이미 벌어진 죽음의 원인을 좇고, 지호는 다가올 파국을 계산하며, 교주는 달을 복원하고 시간을 영원히 반복시킬 의식을 준비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맡은 듯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따로 움직이지만, 장이 바뀔 때마다 앞에서 본 장면의 의미를 뒤집으며 조금씩 맞물린다.


우리는 수영과 함께 과거를 수사하고, 지호와 함께 미래를 계산하며, 교주와 함께 시간이 정말 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의심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끝난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선택이고, 누군가의 원인은 다른 누군가에게 결과가 된다.


우리는 소설을 조각난 시간을 다시 배열하며 읽어야 하는데 이런 식의 책은 정말 오랜만이라 사실 읽으며 꽤 도파민이 돌았다.

이야기는 수학과 물리학을 품고도 미스터리 스릴러의 속도를 잃지 않는다.


사교도수사과, 피로 그린 수식, 파괴된 달과 봉쇄된 도시 같은 이미지는 우리게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세 인물이 결국 같은 시공간을 향한다.



과학과 주술은 과연 다른 것인가


책에는 조금은 어려운 개념, '2차 시간'과 '블록 우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블록 우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차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시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이고,

틸링해스트 수학은 그 전체를 바깥에서 바라보고 건드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간축을 계산하는 수식이다.


인간이 이 '2차 시간'을 다룰 수 있다면 괴물과 기이한 재해를 일으킬 수도 있고, 시간의 반복을 멈추거나 영원히 되풀이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어려운 개념을 썼을까 하다 무릎을 탁쳤다.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무자르듯 갈라지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세상앞에, 이성의 언어인 수학은 피와 희생을 만나 부적과 의식이 되고

평범한(?) 세상에서 광신으로 치부되던 힘은 디스토피아에서 비로소 그 힘을 가진다.


자 이제 우리는 답해야 한다.

과학과 주술은 과연 다른 것인가?


김성일은 이 어려운 질문을 형사소설의 추적과 스릴러의 불안을 통해 체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이 우주의 구조를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조차 사실은 더 거대한 질서의 일부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건넨다.


와 이 책 진짜 강추다.



끝이 정해져 있어더라도


운명론을 믿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결말이 이미 정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시간의 끝>은 이 익숙한 질문에 쉬 대답하지는 않는다.

인물들의 선택은 세계를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움직인다.

수영은 지호가 남긴 흔적을 좇고, 지호는 이해할 수 없는 계산을 이어가며, 교주와 제자들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두고 다툰다.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끝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 준 자유의지는 정해진 운명 밖으로 탈출하는 힘이 아니라 정해진 세계 안에서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까.


책을 덮은 뒤 떠오르는 것은 종말보다 오늘이다.

세계의 끝을 막는 일이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의 거대한 영웅담 이전에 누군가가 다시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내일을 약속할 수 있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래가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우리는 다음 하루를 향해 움직인다.

그 작은 움직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라도 바로 그 선택이 우리를 사람으로 만든다.


시간과 운명, 자유의지를 다룬 한국 SF를 찾는다면 <시간의 끝>을 펼쳐보길 권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모든 결말을 미리 안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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