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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 - 주어진 길을 넘어, 삶의 이유를 만든 사람들
김회주 지음 / 데이지북스 / 2026년 6월
평점 :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조금 슬프지만 사람은 무너진 뒤에야 자신이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보게 된다.
일이 뜻대로 풀릴 때는 신념과 습관, 욕망과 체면 같은 것들이 한데 섞여 있어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가 한꺼번에 그것들을 걷어 가면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는 그것이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김회주의 <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는 바로 그 실패의 순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톨스토이와 헤밍웨이, 카프카와 카뮈, 스티브 잡스와 리오넬 메시, 프리다 칼로와 다산 정약용까지.
우리는 그들은 성공했으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한 획을 그었다는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책은 그 화려한 결말보다 아무도 성공을 보장하지 않았던 그들의 어둠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병든 몸, 거절당한 원고, 잃어버린 자리, 실패한 사업, 끝을 알 수 없는 유배가 그곳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성공노하우를 모은 자기 계발서와는 조금 다르다.
어떻게 넘어지지 않을지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넘어진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실패를 없애는 방법은 없지만, 실패가 삶 전체를 뒤집에 쓰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선택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순간의 작은 선택
사실 책 속 인물들을 다시 움직이게 한 힘은 한두개의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일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질문이었으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고 그리고 가르치는 행위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린 뒤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확신이 생겨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 아니라 첫발을 내딛고 다음 발을 내밀며 다음 확신을 만들어 갔다.
정약용의 이야기다.
이미 실각해 정치적 기반과 지위를 잃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읽고 쓰고 사람을 가르쳤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오늘 한 줄의 글을 쓰고, 내일은 한 장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모레 한 사람을 가르쳤다.'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는 말을 어떤 극적인 반전으로 생각한다.
바닥을 찍은 사람이 어떤 계기로 인해 이전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회복은 대개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것으로 시작된다.
한 줄을 쓰고, 한 장을 읽고, 한 사람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건네는 일.
오늘의 내가 감당할 몫을 해내면서 무너진 삶에 다시 질서를 만드는 일 말이다.
이 책이 좋았던 점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삶을 우러러 보는게 아니라 그들이 견딘 하루를 함꼐 경험하는 일.
옳다. 다시 일어서는 힘은 타고난 의지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실패를 해석하는 법
제임스 다이슨의 실패는 버려야 할 흔적이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자료가 된다.
프리다 칼로에게 상처 입은 몸은 감추어야 할 결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그리는 언어가 된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을 속이며 안전한 길에 머무는 대신 익숙한 껍질을 깨는 쪽을 택한다.
이들이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어쩌면 차가울 만큼 객관적이다.
아픔은 아픔이고 상실은 되돌릴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이후의 삶을 전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실패를 자신의 무능을 증명하는 판결문으로 읽으면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다.
반대로 무엇이 맞지 않았는지 알려주는 설계도로 읽으면 실패는 인생을 수정할 근거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의미는 고통 안에 미리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고통받지 않는 삶이 축복이긴 하다;;)
한권에 마흔네 사람의 이야기는 좀 많긴하지..
44명의 삶을 248쪽에 담아서 읽다보면 예화집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짧고 서로 독립되어 있어 아무 장이나 펼쳐 읽어도 된다.
하지만 인물을 깊게 알고 싶다면 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했다'는 결론이 반복되면서 조금 루즈해질 수도 있다.
또 가난과 차별, 질병과 사회 구조처럼 혼자만의 노력으로 바꾸기 어려운 조건에 대한 이야기도 불충분하다.
무엇보다 모든 실패를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말로 읽는다면 오히려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붙들 것인가
어떻게 읽으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덮고 우리의 질문이 바뀌면 좋겠다
'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붙들 것인가'로.
이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일로,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또 어떤 이는 한 줄의 문장으로 하루를 견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알아볼 만큼 큰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다.
슬픈 일은 우리는 자주 회복에도 속도를 요구한다.
얼른 괜찮아지고, 이전의 성과를 되찾고, 이번 실패에서 교훈까지 얻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쓰러지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다.
상처를 지닌 채 이전과는 다른 균형을 배우는 일.
때로는 일어서는 대신 더 쉬어야 하고 혼자 힘으로 버티는 대신 도움을 청하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선택이다.
지금 무언가가 끝났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가장 닮은 한 사람을 먼저 찾아보면 좋겠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그가 무너진 자리와 다시 내디딘 첫발 사이에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 하나를 찾아보자.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