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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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림자


성해나의 기담집은 '공포'라는 장르적 틀을 빌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진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해진다.

하긴 요즘의 공포는 어떤 이야기나 이미지보다 사람이다.


'어제' 편에 실린 세 소설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내려온 벚나무 책상이 후손의 집에 놓이고, 비가 오면 벚꽃 향과 함께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화자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그 책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그리고 화자의 이 태도는 증조부와 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 이름 모를 메일을 스펨함으로 넘겨버리는 것에서 정점에 이른다.

죄는 물건에 새겨지고, 향기에 배고, 나무의 결에 스미는데 사람만 그걸 모른 척한다.

아니, 정확히는 외면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731부대 생체실험에 가담했던 노인이 영화감독에게 보내는 편지가 등장한다.

노인은 자신이 전범이 아니라 교수의 조수였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편지를 읽은 감독은 <영화가 될 만한 것은 이것 말고도 많다>며 미련 없이 그의 편지를 파쇄기에 넣는다.


노인의 변명보다 감독의 무심함에서 더 서늘해졌다.

평생 붙들고 살아온 죄책감도,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가 되지 못한 콘텐츠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역사는 그렇게 거대한 비극으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무관심 속에서도 조금씩 잊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을 경매에 부친 인간들


'오늘' 편에 이르면 공포는 더 익숙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완벽하지만 공허한 일상을 사는 여자가 타인의 삶을 경매장에서 사는 〈매일(買日)〉은 제목부터 묘하다.

제목의 한자어 '매일'은 매양 매(每)가 아니라 살 매(買)자다.

다시 말해 우리가 쉽게 말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하루를 돈으로 산다'는 뜻이다.


매일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매일 무언가를 사야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세계.

이제 무서운 이야기는 남의 입이 아니라 내 SNS 화면에서 펼쳐진다.

타인의 삶을 소비하며, 구매하며 살아가는 세계.

당신은 아니 그런가?


〈프랭크 오자와〉에서는 남의 인생을 단돈 100달러에 낙찰받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번듯한 집, 벤츠, 투자 계좌, 학력과 인간관계까지.

남의 삶을 산다는 건 터무니없는 설정 같은데 이것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타인의 삶을 공유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집, 식탁, 여행지, 성공담, 육아, 취향, 독서 목록까지.

사지는 않았지만 훔쳐보고, 훔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부러워하고, 부러움이 어느 순간 내 삶의 빈칸이 되고 만다.


〈윤회(당한)자들〉도 비슷한 방식이다.

실패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전생을 믿는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가짜 전생을 꾸며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만든 삶이 그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외로움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때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을 설명할 한 조각을 기어이 찾아 내고야 만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라 착가하며 살아간다.



미래에도 인간은 인간일까


'내일' 편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계들이 등장한다.

〈아미고〉의 스턴트맨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미고'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말은 늘 근사하지만 그 근사한 말이 누군가의 밥벌이 앞에 놓인다면 사실 얘기는 달라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AI 비서에게 묻는다.

'너도 무섭니?'


AI는 담담하게 답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AI는, 기계는 아무렇지 않은 세계에서 인간만 혼자 흔들리고 아파한다.


〈#유령〉은 아동용 챗봇의 유해 언어를 정제하는 노동자를 다룬다.

챗봇이 더 순하고 안전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마다 혐오와 폭력의 언어를 읽고 지운다.


우리는 기술을 매끈한 화면으로만 만나지만, 그 아래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눈과 손과 마음이 있다.

편리함은 대개 누군가의 고통을 잘 포장한 이름일 때가 많다.

언젠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의 댓글을 모니터링 하고 지우다 밤새운 적이 있었는데 꼭 그때의 생각이 났다.

누군가의 눈에 보여주지 않게 하기 위해 지워야 하는 수준의 것들을 날것으로 마주하는 기분.


마지막 작품 〈고(蠱)〉는 안드로이드 의사가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안드로이드 의사가 상용화되어 있는 시대,

인간 의사보다 훨씬 정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의료기술도 뛰어나다.


그런데 정작 인간인 한의사 이익은 빚에 쫓기면서 점점 윤리를 버린다.

돈을 벌기 위해 독약인 '고(蠱)'를 만들고 환자들을 속인다.

반면 안드로이드 도윤은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기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도윤은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읽고, 욕망을 이해하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교묘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름 '사람같다'고 표현한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내려놓는 장면은 꽤나 공포스럽다.



이어지는 서늘한 질문들


<인비인>은 확실히 전통적인 공포소설이나 괴담과는 좀 다르다.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식의 공포가 아니라, 읽고 나면 존재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종류의 공포다.


<혼모노>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흔들었다면,

<인비인>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흔든다.


그리고 그 경계는 어쩌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제목인 ‘인비인(人非人)’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해나 작가는 이 의미를 확장한다.


죄를 외면한 사람,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사람, 기술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하는 사람, 누구의 삶을 헐값에 사고파는 사람도 모두 그 이름 안으로 들어온다.


이미 우리 안에 조금씩 섞여 있는 그 무시무시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과연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한다.

공포영화도 잘 못 보고, 괴담도 굳이 찾아 읽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됐다.


벚나무 책상 밑에서 굴러나온 쥐의 두개골처럼 역사의 흔적이 불쑥 튀어나오고,

타인의 삶을 경매에서 사는 장면에서는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아미고'에게 밀려난 스턴트맨은 자동화와 AI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불안해지는 내 마음과 겹쳐졌고

챗봇의 혐오 언어를 지우는 노동자는 알고리즘 뒤에 숨은 누군가의 얼굴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편리함을 누리고 너무 쉽게 무관한 사람이 된다.

어쩌면 성해나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그 편리함 뒤에 숨은 무관함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작가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거울을 보듯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이다.

이런 계절이라면 이런 책 한번 속는 셈 치고 펼쳐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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