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팔리는 글쓰기 - 20년 차 문학동네 마케터의 영업비밀 本(본)
정민호 지음 / sbi(한국출판인회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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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 전부터 조금 궁금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하루키의 <1Q84>, 김훈의 <하얼빈> 같은 빛나는 책들 뒤에서, 대체 어떤 사람이 그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출판 마케터는 아닐지언정 북콘텐츠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길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한 문장에 쓱 지갑을 열까 이 방법은 알아야겠다 싶기도 했다.


좋은 책은 작가가 쓰지만, 읽히는 책은 누군가의 질문과 전략을 통과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이 <마케터의 팔리는 글쓰기>는 바로 그 보이지 않던 자리, 책과 독자 사이에서 수많은 문장을 다듬어온 사람의 기록이다.


짱고책방을 오래 운영하며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지금도 나는 우왕좌왕한다.

단순히 내 감정을 쏟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결국 누군가의 클릭과 머무름까지를 고민해야 하는가.


물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내 몫이긴 한데 이 책은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에 꽤 분명한 답을 준다.

팔리는 글을 쓰려면 단순히 잘 쓸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정보보다 ‘나와 닿는 이유’에 반응한다


책이 가장 먼저 말하는 건 독자의 니즈다.

조금 뻔한 말 같지만, 우리는 글을 쓰며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종종 ‘내가 좋았던 것’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서 그게 지금 내게 왜 필요한데?’를 먼저 묻는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랬다.

육아가 버거운 날엔 위로를 찾고, 일이 흔들리는 날엔 방향을 찾는다.

결국 책도, 콘텐츠도, 브랜드도 지금의 나와 연결될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손이 간다.


짱고책방 서평을 쓰며 종종 가장 잘 쓰이는 부분도 결국 줄거리의 요약보다 “이 책이 지금 내 삶에 왜 들어왔는가”를 적은 부분이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독자의 욕망을 읽는다는 건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하루를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마케팅은 부풀리는 일이 아니라 본질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일


이 책에게 가장 좋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1을 100으로 부풀리는 게 아니라, 1이 왜 1인지 알리는 것.’


수많은 캠페인을 기획하며 제일 어려웠던 건, 그리고 결국 중요했던 건 감동을 쥐어짜 내는 일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진심, 이미 존재하는 필요,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더 잘 보이게 하는 일이다.


저자는 글도 그렇다고 한다.

어그로로 가득한 문장은 순간 시선을 끌 수 있지만 오래 남지는 않는다.

조회수는 높을지언정 신뢰도는 떨어진다.


돌이켜 보면 내가 오래 좋아한 글들도 대개 그랬다.

온갖 수식어가 덕지덕지 한 글보다 진짜 마음이 먼저 보이는 글.

글쎄 이상하게도 그런 글을 문장 몇 개만 읽어도 알 수 있다.


팔리는 글의 핵심이 의외로 ‘진짜를 더 진짜답게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 반가웠다.


세 번째, 안전한 문장은 기억되지 않는다


“7초에 1권 팔린 소설.”


무려 하루키의 책을 마케팅하면서도 하루키라는 이름보다 먼저 속도를 말한 문장.

익숙한 방식 대신 완전히 다른 각도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은 카피.


나 역시 글을 쓰거나 캠페인 카피를 정할 때 무난한 표현, 실패하지 않을 문장을 고르는 편이다.

그런데 무난한 문장은 대체로 무난하게 흘러간다.

튀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안전하게 머물러 있다 사라지는 문장.


책은 그 안전지대를 벗어나라고 말한다.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묻고, 다르게 설명하라고.


결국 사람을 멈춰 세우는 건 정보의 양보다 관점의 각도일지도 모르겠다.

내 글도 조금 뾰족해지려면 이 부분에게 도약해야 한다.



네 번째, 장점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끝내 팔리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책의 단점을 찾기보다 끝내 장점을 발견해 내려는 태도였다.


사실 단점을 말하는 건 쉽다.

별로였다고, 아쉽다고, 흔하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점을 끝까지 찾아내는 건 애정이고 실력이다.


언젠가 단점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좋은 마케터가 장점을 발견하듯, 좋은 독자 역시 책 속에서 자기만의 문장을 발견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자꾸 들었다.



결국 <마케터의 팔리는 글쓰기>는 단순히 책을 많이 파는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본질을 발견하고, 더 나은 문장으로 연결하는 법을 알려준다.


어쩌면 팔리는 글이란, 많이 속이는 글이 아니라 많이 이해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텍스트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이해하고, 지금 이 시대의 시선을 이해하는 글.


그리고 그런 글이라면

비단 책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조금 더 깊이 닿게 만들지 않을까.


더 잘 쓰기를 바라지만 늘 쉽지 않다.

천권이 넘는 책을 리뷰했지만 아직도 어렵다.


그래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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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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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떠나야만 들리는 목소리


낯익은 제목을 들고 책장을 넘겼다.

고전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인생책으로 꼽는책이다.

예전에 한번 읽은 기억이 있는 것도 같은데, 그러거나 말았거나 다시 책장을 넘겼다.

분명 읽은 책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꽤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 내 인생이 가장 빛났을지도 모를 그저 젊은 것 밖에 없던 시절.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누가 정답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순간을 지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이미 성공한 이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덜 불안할 것 같았다.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그 가장 편한 유혹을 아주 단호하게 거절한다.

브라만의 아들로 모든 것을 가진 청년 싯다르타는 가장 높은 가르침조차 자신의 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떠난다.

부처조차 존경하지만 따르지 않는다.


진리는 위대하지만, 타인의 진리는 끝내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문득 학부시절 철학과 강의실에서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을 바꾼 질문들은 대부분 답이 아니라 물음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싯다르타 역시 그랬다. 그는 정답을 버리고 질문을 선택했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건 더 좋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멀리 돌아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젊은 날의 나는 어떤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다.

더 나은 의미, 더 나은 가치, 더 나은 방향 같은 것들. 그런데 현실은 늘 그런 식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싯다르타가 수행자의 길을 떠나 사랑을 배우고, 돈을 벌고, 욕망과 권태 속에 빠져드는 장면이 더 그럴듯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무너진다. 세속에 취하고, 점점 자신을 잃는다.


하지만 헤세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길마저 지나야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랬다.

완벽한 선택보다 후회스러운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더 많이 설명하고 만들어갔다.


관계에서의 실수, 일에서의 조급함, 인정받고 싶어 애썼던 시간들. 부끄럽지만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장도 없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욕망의 한가운데서 영혼의 공허를 발견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성자의 이야기라기보다, 결국 돌아오기 위해 멀리 떠났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강물은 아무 말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실 거창한 깨달음보다는 강물의 존재다.

뱃사공 바수데바 곁에서 싯다르타는 비로소 듣는다.


설교도, 교리도, 성공도 아닌 흐르는 물소리.

강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흐른다.


기쁜 날도, 후회되는 날도, 잃어버린 날도 모두 하나의 물줄기처럼 지나간다.

아이를 키우며 하루가 너무 빠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또 어떤 밤은 유난히 길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모든 시간이 결국 하나의 강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짱고가 내 곁에 처음 왔고 그렇게 떠난 날도, 아이가 태어난 날도, 지쳐서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버티던 날도.

삶은 각각의 사건 같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싯다르타가 강가에서 배운 것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삶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흐름이라는 것.


우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너무 애써 해석하려 하지말자.

모든 걸 당장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강물은 이미 알고 있으니.



결국 각자의 강가에 도착하기 위하여


25년전 처음 <싯다르타>를 읽을때와 지금의 나는 꽤 많이 달라져있다.

어릴때 고민했던 진짜 삶과 지금 내가 살아내는 삶은 설명하기 애매하지만 분명 조금은 달라져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이 책은 ‘누군가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너무 자주 비교하고, 너무 쉽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말한다. 깨달음은 경쟁해서 먼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고.

각자의 길을 걷고, 넘어지고, 사랑하고, 잃고, 다시 흘러가며 도착하는 자리라고.


그래서 이 책은 종교가 아니라 삶에 가깝다.


오늘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사람, 정답보다 방향이 필요한 사람,

너무 많은 소음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강가에 앉아봐도 좋겠다.


어쩌면 당신이 찾던 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 안에서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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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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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깨어났는데


700쪽이 넘는 SF 소실을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영화를 알지 않았다면 손도 안 댔을 것 같은 책을 집어... 들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학도, 우주도, 인류 멸망도 뭐 다 좋은데 와 이거 나 읽을 수 있을까? 


그렇게 어렵게 집어 든 책인데 웬걸.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런 망설임을 부끄럽게 그리고 꽤 빠르게 무력화시킨다.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 남자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의 이름도, 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른 채 죽은 동료들 사이에서 서서히 현실을 복기해 가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때때로 그렇게 깨어난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을 위해 버텨왔는지 잊은 채 하루를 견디고,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기억해 낸다.

내가 여기 있었던 아니 있어야만 하는 그 이유를 말이다.


소설은 결국 거대한 우주 서사를 빌려 결국 한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이유를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책이 잘 읽히지도 않는 과학 공식을 딛고 끝까지 읽히는 이유는 결국 이것이 우리 삶의 이야기 혹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살고 싶어서. 아니,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서.



과학말고 다정함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SF 과학소설의 정점으로 평한다.

그런데 막상 끝까지 읽고 남는 건 내게 남은 건 관계와 그 다정함이다.


이 중심엔 로키가 있다. 전혀 다른 종족,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

모습도 사고도 언어도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보다 깊이 연결되는 존재.


처음엔 이 설정이 흥미로웠고, 이후엔 조금 웃겼고, 마지막엔 조금 벅차기까지 했다.

존재부터 다른 이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함께하는 이야기라니.


“이해함. 실제로 이해는 아니지만... 이해”


로키는 책 속에서 계속 '이해함'을 외치지만 결국 '실제로 이해는 아니지만'이라고 실토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우리 관계의 본질에 훨씬 가까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해서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하기로 선택한다.

그 선택이 이해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관계없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이고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신뢰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정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앤디 위어는 이 낯선 우주적 우정을 통해 묻는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헤일메리는 무엇인가?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역전을 위해 엔드존을 향해 던지는 무모한 패스라고 한다.

성공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때 던지는 패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수없이 작은 헤일메리를 던지며 살아간다.


안 될지도 모르지만 해보는 선택, 실패할 가능성이 커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돌아갈 수 없는 길임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내딛는 결정.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눈부신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다.


인류를 구하는 거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실은 한 존재가 끝내 희망으로 방향을 틀어내는 이야기.

절망 속에서도 농담을 잃지 않고, 계산보다 생명을, 귀환보다 책임을 선택하는 인간의 이야기.


어쩌면 사는 일도 이렇지 않을까.

거창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임무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

그 끝이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한 번쯤은 덤벼보는 것.


지금 나는, 내 삶의 어떤 헤일메리를 던지고 있는가.

아니면 이 게임은 끝났다고 주저앉아 있는가.


괜히 무릎에 힘을 준다.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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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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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이 필요한가


기지 사용, 부대 운용, 사태 대처, 출구전략, 확장억지.

도대체 일본사람이 쓴 미일관계에 대한 책을 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펴들기는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이 다섯 가지의 축이 그저단순한 정보 정리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이야기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대전 당시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의 일본침공을 이끌어 낸 얄타 회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저자는 이 회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오늘날 미일동맹이라는 틀을 넘어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어떻게 정립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반 독자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


이 책이 가진 중요한 장점은 난이도다.

안보, 군사, 외교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개념을 한 번에 밀어넣기보다 단계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필요한 용어를 반복적으로 정리한다.

그래서 관련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도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읽는 동안 막히는 구간이 많지 않고,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책이다.



미일동맹의 변화


일본에는 2차 대전 이후 군대가 없다. 자위대라는 이름의 일본 본토를 지키는 방어병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패망했던 일본의 성장은 비단 경제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현재도 자위대는 어느덧 세계 5위권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상자위대는 세계 최상위급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껏 공격과 방어의 역할분담이 단순했던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관계는 이제 실제 작전에서 의사결정 구조에서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누가 판단하고, 누가 실행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지.

이 책은 이 문제를 꽤나 흥미롭게 풀어내며 미일동맹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극동 1905년체제?


읽는 과정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이른바 <극동 1905년 체제>라는 개념이다.


일본인 저자에게는 동아시아 질서를 설명하는 분석 틀일지 모르나, 한국 독자에게는 다른 맥락으로 다가온다.

<국화와 칼>같은 책을 보며 일본 사람들 역시 미국 중심 시각이나 비판 부족을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으로 1905년은 일본에게는 어떤 체제가 정립된 시점일지 모르나 한국은 나라가 망했고 원치 않은 식민지배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1905 체제라고 부르는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부터 선행되야 한다.


그들은 회복하고 싶은 체제일지 모르나 우리로는 돌아가서는 안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사실 역사나 한반도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어쩌면 필요한 책이긴 하다.


첫째, 미일동맹은 한미동맹과 연결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 등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슈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둘째, 책은 동맹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협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법률과 지휘 체계라는 현실적인 구조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참고 가치가 높다.


셋째,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이해하는 기본 틀을 제공한다.

미국, 일본, 중국, 한반도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제정세, 한미동맹 등의 단어에 반응하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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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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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먼저 말을 건네는 순간


언제부턴가 다들 맞춤법 때문에 난리다.

사실 나도 '어의 없다', '골이 따분한' 뭐 이런 글을 볼 때면 마음이 깝깝하기는 하다.


그런데 그에 앞서 어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맞춤법에 민감해졌을까.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그냥 웃고 넘겼던 일에 우리는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있을까.


사실 이 책이 여러 장면을 통해 반복해서 건드리는 질문이다.

오늘 같은 대 SNS 시대에 많은 대화는 대부분 문장으로 시작된다.

얼굴을 보기 전에 문장을 먼저 만나는 시대,

한 줄의 문장이 어쩌면 그 사람의 첫인상이 된다.


저자는 "문장이 곧 그 사람이며 맞춤법은 그 사람의 기본값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하고,

그러니 글자 하나의 어긋남이 사람 자체의 어긋남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꽤 자주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 불안을 지적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 불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따라간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보다 오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긴장이면 어쩌면 이런 불안도 괜찮지 않을까?



한 글자와 한 칸이 만들어내는 거리


이 책을 읽으며 재밌었던 부분은, 국립국어원 상담실로 들어온 질문들이 대부분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어린 사람이 나를 ○○ 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같은 질문은 사실 문법이 아니라 거리의 문제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예의와 맥락이 얽힌 문제다.


‘갈빗살’은 붙이고 ‘닭 다리 살’은 띄어 쓰는 이유를 묻는 질문도 결국 비슷하다.

단어의 구조를 묻는 것 같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나로 보고 무엇을 나누어 보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한 칸의 띄어쓰기는 문장의 간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 사이의 간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맞는 표현을 알려주기보다, 왜 그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규정이 아니라 생활이 된다.



사람과 AI 사이에서


책을 읽다 푹하고 뿜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답변하시는 분이 혹시 AI인가요"


요즘 나도 많이 하는 생각인데, 빠르고 정확한 답변 때문인지 상담원은 종종 AI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질문에 대답하려는 상담원들의 노력에 그 반대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AI와 사람의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게 된다.

규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발생하고, 우리는 대화를 통해 그 사이를 채워가려 노력한다.

이 노력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며 덜 오해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인터넷을 찾아보기보다 상담원을 찾는 경우가 나 또한 많아졌는데 그 통화를 괜히 생각하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



글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책을 덮고 나서 더 정확해져야겠다 보다 조금 덜 짚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맞춤법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 어쩌면 언어는 무기가 된다.

이 책은 그 무기를 내려놓게 한다.


얼굴을 마주하기 보다 글로 사람을 먼저 만나게 되는 시대에 글은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글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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