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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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제일 답답한 순간이 있다.

분명 한글인데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다.

있어 보이는 단어들 사이로 문장은 유유히 흘러가는데 의미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요즘은 AI가 쓴 글들이 주로 이렇던데 그러고 보니 철학자들의 글과 AI가 좀 유사한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많이 알면 일반인의 영역에서 풀어쓰기 힘든 건가…)

보통 이럴 때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끝까지 따라 읽어보거나, 무시하고 비웃거나.

나는 대체로 전자를 택해왔다. 사실 학부 시절 수많은 철학 책으로 단련된 독서력 덕분에 포기를 선언할 만큼 어려운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언컨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 어려운 책은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씨 이게 뭔 소리야 싶은 책은 잊을 법하면 툭툭 튀어나온다.

이건 나이가 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귀찮고 힘들어질 무렵,

이 책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를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아마도 이 책의 마지막 장에도 놓인 질문 때문이었다.


“우연이라는 불가해한 힘 앞에

삶은 얼마나 파편 된 진실이며 필연적 거짓인가?”



선명해질수록 희미해지는 진실


소설은 닐이라는 남자의 회고로 시작된다. 두 번의 이혼 이후 삶의 결핍을 느끼던 그는 한 강좌에서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를 만난다.(이 책의 원제는 <엘리자베스 핀치>다) 그는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학생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어른이다.

닐은 그 만남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찾아온 순간임을 직감한다.

그렇게 그는 엘리자베스 교수와 20년에 걸친 만남을 이어오며 철학과 역사, 신념과 회의에 대해 묻고 또 답한다.



이해하려는 시도의 아이러니


그러던 중 핀치 교수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닐은 그녀의 서류와 노트 등을 유품으로 전해 받는다.

그는 그 속에서 미완의 과제였던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관한 에세이를 완성하는 한편, 이것으로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인물을 회고하려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닐의 삶을 흔들었던 절대적인 핀치 교수라는 존재가 사실은 그게 진리에 가까운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닐은 계속 핀치 교수를 일관되이 현자의 자리에서 두고 그의 삶을 해석하려 한다.

그런데 이 시도들이 결국 하나의 생각으로 사람을 규정하지 말라는 핀치 교수의 태도와 어긋나 있음을 그는 곧 알게 된다.


심지어 닐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기억 속 엘리자베스 핀치는 닐의 알고 있던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그 틈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렇듯 책은 우리 삶의 인식의 한계를 우리에게 명확히 알려준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심지어 그것마저 오해되기 십상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설명 가능한 삶은 실상 얼마나 취약한가.

역사는 왜 사실이 아니라 해석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책은 말한다.



우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오히려 더 난해해진다.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서사 위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볼테르의 이름이 불쑥불쑥 등장하고, 소설 안에서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읽고 있다기 보다 헤매고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그렇게 수많은 철학자들의 생각을 오가며 이 책이 결국 도달하는 곳은 의외로 단순하다.

삶은 생각보다 우리가 설계할 수 있는 영역이 좁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종종 그 한계를 드러내는 일에 불과하다.

그 이해의 너머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우리의 어떠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연에게 삶을 맡길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의지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


닐이 핀치 교수를 몰랐던 것처럼,

우리의 노력이 삶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책이 말하는 삶의 자세는 어쩌면 그 정도의 겸손일지도 모르겠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끝내 남아 있긴 하지만.

꽤 어려운 철학 책의 퍼즐을 맞추는 일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추천.

그렇지 않으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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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 광수네 복덕방, 모두의 투자 이야기
이광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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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에 올라온 제목을 보고 한참을 쩨려보고 있었다.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내가 알고 있는 그 '진보'가 맞나 싶어서였다. 혹시 저자가 경북 청송의 진보면을 출신인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 알게 된다. 이 양반 진심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진보는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 정치적·사회적 의미의 진보를 가리킨다.

그러니 조금 더 난감해졌다.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어떤 거리에서 서평을 써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정치 얘기는 좌우지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도 책의 대부분은 비교적 익숙한 투자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주식의 기본 원리, 매수와 매도의 기준, 손실을 관리하는 방법, 장기 투자에 대한 태도까지.

투자서를 몇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크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이라는 점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다.

문제는 '왜 굳이 여기에 진보라는 말을 붙였을까'라는 거다.


저자도 대놓고 밝히듯 그가 원하는 진보는 소위 '돈 벌어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는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말하고, 행동은 책임이며 책임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투자하면(?) 시장이 바뀌고, 시장이 바뀌면 사회가 조금씩 나아진다는 논리다.

솔직히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하나하나 문장을 떼 놓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도 있다.


다만 마음 한켠에서는 계속해서 삐걱거림이 있는데 사실 지금도 이 어긋남은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온 진보는 공동체의 문제를 개인의 윤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진보는 구조를 이야기하고, 제도를 이야기하고, 불평등이 발생하는 조건 자체를 질문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자'는 선언은 러프하게 진보 아젠다와 함께 설 수 없다.

실제로 부자가 된 이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자산과 권력을 사용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던가.(아니 있기는 한가?)

올바른 방향으로의 투자? 그게 뭔지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투자가 불법을 저지르는 게 아닌 이상 올바르고 그른 것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던지고 싶은 핵심은 어쩌면 '진보도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상을 이야기하되, 발은 땅에 두라며 루스벨트의 말을 인용한다. "발은 땅에, 눈은 별에."

맞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도 공허하고, 이상 없는 현실 인식도 결국은 관리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한국 내에서 정치적 진보를 자처하는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제안에 가깝다.

물론 이 제안이 충분히 치열한 질문 끝에 도달한 답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 논리가 불편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김어준을 좋아한다면 추천. 그렇지 않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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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10만부 판매 기념 한정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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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것 같다.

아직 그림책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책장 앞에 서서 한 권을 꺼내 든다. 그리고 뒤뚱거리며 내 앞으로 온다.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과 그림이 있으면 ‘사과’라고 말해주고, 줄을 타는 서커스 단원이 있으면 ‘서커스 하는 아저씨를 보세요’라고 읽어준다.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를 무척 즐거워한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 순간을 보고 나는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 읽게 된 책이 바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내일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 존재, 하나의 마음


이 책에는 네 인물이 등장한다. 소년, 두더지, 여우, 말이다.

소년은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두더지는 케이크를 좋아하며, 여우는 상처로 인해 말수가 적다. 말은 이들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존재로서 조용히 이들을 지켜본다. 저자 <찰리 맥커시>는 이 네 존재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불안해하는 나, 달콤한 위안에 기대는 나, 상처받아 침묵하는 나, 그리고 모든 것을 품으려 애쓰는 나. 이 책 속 인물들은 서로를 고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고, 함께 멈추고, 함께 질문한다.


요즘 우리는 관계 속에서 너무 쉽게 해결하려 든다. 문제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답을 빨리 내놓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 진리는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이해할 수 있고, 또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그것을 그림과 문장으로 차분하게 보여준다.


함께 그리고 사랑하기


누군가는 이 책을 ‘위안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출간되는 많은 책들이 위로를 건넨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위로는 조금 다르다. 혼자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와 함께 있으라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 아이와 책을 읽던 아침처럼,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불확실한 시대의 새로운 우화


이 책이 <곰돌이 푸>,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함께 언급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그 단순함 덕분에 오래 남는다. 가르치려 들기보다 여운과 웃음을 남긴다.


언젠가 아이에게 꼭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함, 잘해야 한다는 강박,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점에 앉아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와 아이가 장난을 치는 소리, 꺄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 

스마트폰 너머로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다시 행복해졌다.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잘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 있다. 이 책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아주 다정하게 알려준다.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읽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있다는 감각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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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이어령의 말 1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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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만나는 사유의 지도


<이어령의 말>은 어록집의 형태를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 책이다. 사전 같기도 하고, 인생의 명언을 모아둔 책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설명 보다 한 사람이 평생 붙들고 씨름해온 질문과 언어의 궤적을 따라가게 만드는 사유의 지도라는 설명이 더 적확해 보인다. 책은 이어령 선생의 저작물을 망라하여 선생이 우리 생에 던져진 평범한 그 단어를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사유했는지를 집대성했다. 이 방대한 단어와 사유의 물결 앞에 ‘우리 시대의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왜 이어령 선생에게 과하지 않은 표현인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나라에 이 정도로 많은 개념과 단어에 자기의 정의를 부여한 사람이 있었나 싶다. 문명, 인간, 언어, 예술, 종교 같은 거대한 개념부터 마음, 사물, 창조처럼 일상과 사유의 경계에 놓인 단어들까지, 그는 소소한 것들에도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 책 <이어령의 말>은 그가 그렇게 평생을 쌓아온 작업 속에서 건져 올린 결정체다.



단어를 따라 걷는 독서


처음에는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다가 자연스럽게 어떤 단어를 찾아 그것부터 읽게 된다. 물론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필요할 때 필요한 곳을 펼쳐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떤 단어 앞에서 멈춰 서게 될 때, 어떤 개념이 막연해질 때 이어령 선생이라면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이 책을 찾게 된다.


나도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다 문득 이어령 선생의 생각이 궁금해 책장을 펼쳤고, 그렇게 그의 단어 속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가 쓴 책 중 '다음에 읽어야 할 책' 리스트를 얻게 되었다. 좋은 책은 그 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독서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어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짧은 말에 눌러 담은 깊고 넓은 사유


이어령의 글은 짧을수록 강하다. 그의 탁월함은 특히 짧은 글에서 잘 드러나는데 한두 문장 안에 담긴 사유의 밀도는 일반인이 쉽게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강력하다. 짧은 글이 사람의 내면을 흔들기 위해서는 깊이와 넓이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은 단정하지만 얕지 않다.


좋았던 점은 그는 우리말을 깊이 사랑해서 안팎의 세계를 외래 개념에 기대기보다 가능한 우리말이 지닌 소박함과 경이로움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익숙하고 투명하다. 분명 쉬운 단어들임에도 그것들에 기대 나오는 사유의 깊이, 선생의 내공에는 여러 번 경탄하게 된다. 이 사람 진짜다. 대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좀 즐겁다.



이어령의 결정판


편집자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어령 선생은 1970년대부터 자신의 사유를 사전화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늘 때가 아니라며 고사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생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수백 권의 저작 중 '이어령 말의 정수'를 한 권으로 엮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책이 선생이 작고한지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완성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수년의 회의와 선정 작업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AI의 도움을 받아 너무도 가볍게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던져지는 요즘 이렇게 정성 들인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에서 나의 삶으로


이어령 선생이 떠난 지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시대가 변해도, 질문의 형태가 달라져도 그의 문장은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있을 것 같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 잃어버린다.

<이어령의 말>은 그런 순간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생각의 중심을 되찾게 해준다.


이 글을 쓰며 느끼는 감정은 묘하게도 위로에 가깝다. 단호할 때는 단호하고, 부드러울 때는 조용히 어깨를 토닥이는 말들.

우리 생을 먼저 살아간 이가 남겨둔 말들은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을 기획한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선물이 아닐까.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렇게 오래 다듬어진 말은 읽는 사람의 숨결을 만나 다시 살아난다.

<이어령의 말>은 그런 책이다.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대가나 멘토의 이야기가 절실할 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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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리커버) 위픽
성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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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집어 든 책, 오래 머문 이야기


나는 아직 그 힙한 <혼모노>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힙한건 본능적으로 손이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을 지나가다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가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가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정도 단편이면  30분이면 충분하겠다는 계산도 섰다. 

그런데 늘 그렇듯, 이런 계산은 자주 빗나간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나는 이미 서점이 아니라 경주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고 온 여름> 이후, <혼모노>가 아닌 성해나의 다른 계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잘 아는 도시, 처음 보는 풍경


이 소설의 무대는 경주다. 대구 출신인 내게 경주는 지나치게 익숙한 도시다. 수학여행으로, 가족 나들이로, 짧은 여행으로 여러 번 다녀온 곳.

눈을 감아도 동선이 그려질 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도시다. 그런데 소설 속 경주는 내가 알고 있던 경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다.


관광지로서의 경주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오래 머물러온 경주. 잠깐 들렀다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남아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경주. 그래서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이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일지 가늠하게 되었다. 기억과 시간의 층위로 쌓인 경주. 맞다. 원래 경주는 그런 도시였다.



재건하려는 사람들과, 남겨두려는 마음


건축학과 4학년 재서와 이본은 같은 과제를 받고 같은 장소로 향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는 극명하게 다르다. 재서는 늘 의심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사람이고, 이본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사람이다. 이 대비는 곧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세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경주 산내면의 오래된 고택. 두 번의 지진을 견뎌낸 집은 이미 여러 곳이 무너져 있고, 구조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재서와 이본의 첫 판단은 명확하다. 주요 구조부를 철근으로 재시공하자. 재건하자. 더 안전하게, 더 단단하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배워온 정답에 가깝다.


하지만 소설은 그 ‘정답’이 얼마나 쉽게 내려진 것인지, 그리고 그 판단이 무엇을 지워버리는 선택인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재건은 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를 너무 쉽게 정리해버린다.



연필로 그리는 시간, 속도를 늦추는 일


문 교수는 캐드와 스케치업이 당연한 시대에 연필을 고집한다. 직접 재고, 손으로 그리고, 시간을 들여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재서가 한 학기 내내 그린 것은 등고선뿐이었다. 그런데 그 등고선으로 A플러스를 받는다. 최고점을 받고도 재서는 성적 이의서를 낸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다.


보통의 우리는 결과 앞에서만 안도하면서도 그 결과가 정말 온전한지에 대해서는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재서의 의의 속도와 효율로 만들어진 성취만을 경험한 이의 불안 같았다.

어쩌면 정신없이 내달리기만 하며 이렇게 느린 시간을 겪은게 우리 삶에 있기나 했던가.



집을 짓는 일과, 마음을 짓는 일


이 소설은 한 채의 집을 통해 ‘짓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품고 살아온 존재다. 그래서 소설이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재건과 보존의 이분법이 아니라, '짓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주고 속으로 "잘 살거라"라고 비는 마음.

우리가 잠깐 손님으로 왔다 가는 풍경에, 누군가는 평생을 머문다.

열 번을 나고 죽는 동안에도 이어지는 것들은 그렇게 남는다. 약해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들.



잠깐 읽기에는 아까운 소설


처음에는 서서 읽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자리를 구해 앉았다.

중간에 딴생각하다 읽은 부분은 이내 돌아가 다시 읽었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재건을 선택하는지, 얼마나 쉽게 오래된 것들을 정리해버리는지에 대한 생각이 꽤 많아졌다.


그리고 경주가 다시 떠올랐다. 그저 여행지로의 경주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켜켜이 쌓인 자리로서의 경주가.

이 소설은 묻는다. 정말로 무너진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끝내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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