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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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것 같다.

아직 그림책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책장 앞에 서서 한 권을 꺼내 든다. 그리고 뒤뚱거리며 내 앞으로 온다.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과 그림이 있으면 ‘사과’라고 말해주고, 줄을 타는 서커스 단원이 있으면 ‘서커스 하는 아저씨를 보세요’라고 읽어준다.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를 무척 즐거워한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 순간을 보고 나는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 읽게 된 책이 바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내일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 존재, 하나의 마음


이 책에는 네 인물이 등장한다. 소년, 두더지, 여우, 말이다.

소년은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두더지는 케이크를 좋아하며, 여우는 상처로 인해 말수가 적다. 말은 이들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존재로서 조용히 이들을 지켜본다. 저자 <찰리 맥커시>는 이 네 존재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불안해하는 나, 달콤한 위안에 기대는 나, 상처받아 침묵하는 나, 그리고 모든 것을 품으려 애쓰는 나. 이 책 속 인물들은 서로를 고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고, 함께 멈추고, 함께 질문한다.


​요즘 우리는 관계 속에서 너무 쉽게 해결하려 든다. 문제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답을 빨리 내놓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 진리는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이해할 수 있고, 또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그것을 그림과 문장으로 차분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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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그리고 사랑하기


​누군가는 이 책을 ‘위안을 넘어 희망으로 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출간되는 많은 책들이 위로를 건넨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위로는 조금 다르다. 혼자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와 함께 있으라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 아이와 책을 읽던 아침처럼,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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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시대의 새로운 우화


이 책이 <곰돌이 푸>,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함께 언급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그 단순함 덕분에 오래 남는다. 가르치려 들기보다 여운과 웃음을 남긴다.


​언젠가 아이에게 꼭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함, 잘해야 한다는 강박,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점에 앉아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와 아이가 장난을 치는 소리, 꺄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 

스마트폰 너머로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다시 행복해졌다.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잘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 있다. 이 책은 이 당연한 사실을 아주 다정하게 알려준다.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읽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있다는 감각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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