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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 지구상 가장 비싼 자산의 미래
마이크 버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월
평점 :
집을 가진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
얼마 전 생애 첫 내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서울 시내에 또다시 끝을 모르고 오르는 집값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무주택자일 때는 그렇게 오르지 말라고 빌고 빌던 집값이었는데 이젠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묘한 죄책감이 엄습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그야말로 “종교이자 공포이며, 동시에 신분”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매일 뉴스 헤드라인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장식하고, 모이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집값이라지 않던가. 집 없는 시절엔 왜 그렇게 초조했는지, 그리고 집을 가진 지금은 왜 또 불안한지.
왜 돈은 언제나 땅으로 향하는가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에 이 책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가 손에 쥐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 집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 이 책은 "왜 돈은 언제나 땅으로 향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정면으로 던진다. 저자 마이크 버드(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는 부동산이 단순히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 만들 수도 없고 옮길 수도 없으며 금융 시스템의 가장 안전한 '담보'로 기능하기에 특별한 힘을 지닌다고 통찰한다.
이렇게 움직일 수 없는 땅이 돈과 결합되는 순간,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를 넘어 국가의 부와 권력을 재편하는 핵심 장치로 돌변한다.
저자는 이 현상을 '토지의 덫'이라 부르며, 말 그대로 땅이 우리 사회의 자본 흐름과 권력 판도를 좌우하는 함정에 빠졌다고 경고한다.
(영문 원제도 The Land Trap 즉 '토지 함정'으로, 제목부터 땅이 놓은 덫에 주목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토지의 역사
저자는 이 책에서 그 함정의 기원을 찾아 장대한 역사의 여정을 펼친다. 32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토지 분쟁부터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거쳐 미국 독립 이전 식민지의 토지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왜 인류가 이렇게 오래도록 땅에 집착해왔는지 탐구한다.
이 주제에는 빠지지 않는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도 꽤 심도 있게 소개한다. 그는 <진보와 빈곤>에서 기술 발전에도 빈부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에서 찾는다.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토지는 어김없이 등장했고, 수천 년 동안 땅은 세금과 군사력, 신용을 매개해온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현대의 디지털 금융 시스템은 오히려 이 고전적인 '토지의 힘'을 더욱 위험하게 강화하고 있다.
일본·싱가포르·중국이 보여준 세 가지 선택
나아가 저자는 일본, 싱가포르, 중국 세 나라의 사례를 통해 토지 금융화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1990년대 일본은 저금리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며 "잃어버린 십 년"(후에 20년, 30년으로 늘어남)의 늪에 빠졌고, 싱가포르는 토지를 공공 소유하고 엄격히 통제하여 주택 안정을 꾀하는 독특한 길을 걸었다. 최근 중국에서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이 파산한 사태는 토지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 모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저자는 이처럼 땅으로 흥하고 땅으로 망한 역사의 장면들을 서사적으로 그려내며, 우리 시대에 중요한 경고를 울린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토지의 덫'에 걸려 겪은 위기와 교훈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주는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를 뒤집어 놓는다.
2026년 한국, 토지의 덫 한가운데서
이 경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니 2026년 현재 한국 사회 역시 토지의 덫 한가운데 서 있는 듯했다. 실제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이 아직 파국에 이르진 않았으나, 부동산 과열이 낳은 지역 간 격차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이미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다. 부동산을 주거 정책이나 투자 문제로만 본다면 이 같은 구조적 변화를 보지 못할 거라는 일침도 잊지 않았다.
집을 가진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 구조
땅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극명히 가르는 제로섬 자산이다. 집값이 오르는 국면에서 자산을 보유한 쪽은 저절로 불로소득을 얻고 웃지만, 없는 쪽은 상대적 박탈감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이 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당연했다.
거의 모든 정부는 선거 때마다 집값 안정과 기존 주택 보유자들의 부를 지키기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나 역시 이를 체감한다. 집값을 진정시키려던 대책들은 번번이 기존 소유층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지만 모든 정치인들은 언제나 집값 안정을 구호로 내세운다.
부동산은 권력이다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고 또 분명해졌다. 부동산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 구조로 진화해 왔다. 그리고 이 책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가 어떻게 '땅'이라는 연료로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매뉴얼에 가깝다. 책에서 하나씩 증명하는 것처럼 부와 불평등의 흐름 끝에는 언제나 땅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땅을 가지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는 꽤 큰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