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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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때 전설의 무술배우이자 스타였던 '이소룡'을 닮고자 무던히도 애쓴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짝퉁인생으로 점철돼 희비극이 교차하는 극적 요소를 가미해 기적 같은 일대기로 그렸으니 장편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다. 2004년 <고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최근 동명의 영화 개봉을 앞둔 <고령화 가족>의 작가 천명관의 최신작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식 근대화의 압축 성장을 거치며 평범한 개인들이 고달픈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천명관 특유의 흡인력 있는 화법으로 담아내며 영화 같은 재미까지 선사한다. 색다른 점은 보통의 3인칭 시점이 아닌, 작중 화자인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삼촌 '권도운'의 이야기로써 70년대 영웅의 상징 '이소룡'에 대한 추억으로 명징되며 풀어나간다. 그것이 이 소설의 플롯이자 관통하는 핵심이다. 

삼촌은 이소룡을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이 아닌 그를 신으로 섬길 정도로 집착하고 애착했다. 그런 이소룡이 73년 7월에 돌연 죽었다.(사인에 대해선 아직도 설들이 많다) 그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 깡촌의 두메산골 학촌까지 타전된 부고에 삼촌은 모든 활력을 잃고 말았다. 나름의 추모제를 지낸다며 ‘나’와 형, 그리고 나의 친구 종태를 데리고 뒷동산에 올라가 이소룡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사인은 무엇인지 중요치 않았다. 삼촌은 이젠 이소룡을 신으로 모시게 될 터니까.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됐고, 이런 이소룡의 죽음으로 시발된 삼촌의 짝퉁인생은 그렇게 펼쳐졌으니, 이소룡에 의해 탄생된 삼촌만의 인생유랑극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하겠다. 즉, 소설 속 이소룡과 삼촌 권도운은 불가분의 관계로 둘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유랑전 파노라마는 어떠했을까. 작중 화자인 ‘나’를 통해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래, 책 줄거리엔 마지막 스포일러까지 모두 포함돼 있으니 주의)



이소룡 추모제를 나름 의미 있게 치른 삼촌은 동촌 읍내에서 ‘씹새’를 입에 달고 사는 동천의 진정한 건달이 되고자 하는 ‘도치’와 용쟁호투식 한판을 벌이며 강호의 숨은 고수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니 어쩔 수가 없다. 농고를 다녔지만 농사일엔 크게 관심도 없이 형님(나의 아버지) 일이나 도우며 조용히 산 그에게 ‘도치’가 또 도전해 오고, 두 번째 맞대결을 갖게 되면서 그를 아예 묵사발을 만들어 놓는다. 100개나 먹은 호떡을 다 게워내고 도치가 신처럼 따라 모시던 건달 ‘토끼’까지 가세해 그 자리에서 같이 수모를 겪자, 둘은 앙앙불락되며 삼촌을 평생 발라버리겠다는 각오로 살아간다. 이런 삼촌의 실력에 나와 종태는 사부님으로 모시며 의기양양해졌고, 삼촌에게 인생의 변혁기가 찾아온다. 읍내 어느 허름한 곳에서 영화촬영을 하는 곳을 지나가다가 ‘으악새’(주인공이 한번 툭 치면 ‘으악’하고 죽는다 해서) 액션배우로 잠신 발탁된 삼촌. 그곳에서 자신만의 장기였던 공중삼회전 멋진 쇼를 선보이고, 순식간에 스쳐간 여배우 ‘최정원’을 보고서 한 눈에 반하고 말았으니, 이 여자는 삼촌 권도운에게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운명처럼 그렇게 다가오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필이 제대로 꽂힌 거라는.

한편, 그날 도치 건달패들에게 구해준 답례로 호떡장수 여동생 오순이가 찰싹 달라붙는 통에 삼촌은 마지못해 그녀를 받아들여 덜컥 임신까지 해 난감해지자 아기를 포기하자며 그녀를 얼러댔다. 그런데 이미 오순은 각오를 한 듯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자고 덤벼들며 미리 찻잔에 타둔 청산가리를 마신 상태였으니, 어릴 적부터 독극물에 도가 튼 독극물의 여왕의 선택지는 바로 이런 방식이었다. 그곳 다방에서 그렇게 생을 마감할 것처럼 둘이 대치한 가운데, 밖에선 도치와 도끼 일당이 동천 바닥에서 아는 동생의 동생을 대동하고, 그 아는 동생의 또 아는 동생을 끌어 모은 오합지졸의 건달패거리들이 진을 치며 삼촌을 공격하기 일보 직전의 풍전등화가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안에서 청산거리를 먹고 피를 토하고 쓰러진 삼촌과 오순 때문에 서로가 뒤엉켜 난리브루스를 는 바람에 그날의 다방습격사건은 해프닝처럼 그치고 말았다. 웃긴 건, 제대로 공격도 못해보고 이런 살벌한 상황이 미리 무섭게 다가오자, 사리분별을 못한 어느 중삐리가 무시무시한 요괴인간으로 둔갑한 토끼에게 달려들어 각목으로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스스로 와해 모드. 결국 토끼는 쓰러지고 난리법석에 짓밟히면서 병원 신세를 졌다는 점이다.(읽다가 순간 뿜었다) 그곳 병원에서 오순이를 만나 배를 맞추며 그녀를 버리고 도망간 그 남자를 반드시 죽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그 남자는 바로 삼촌이었고, 이날 이후로 삼촌은 동천을 떠나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형님이 사주신 귀하고도 귀한 빨간 오토바이를 끌고서..

시골 촌놈에게 생경했던 서울 바닥은 낯선 지옥과도 같았다. 돈은 없고 배고프고 말 그대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에, 우연찮게 발견한 중국집 ‘북경반점’에 들렀다. 주머니에 보니 남은 돈이 딱 자장면 값 밖에 안 돼 그것만 시켜먹었는데, 옆테이블에 남겨둔 군만두를 보고선 군침이 돌아 훔쳐서 나오다가 걸린 삼촌. 폼 안 나게 쪽팔렸지만, 배고파서 어쩔 수 없었다며 선처(?)를 부탁. 그렇게 북경반점에서 삼촌은 배달부로 전격 일하게 되었다. 칼판장이라는 인물이 북경반점의 실세처럼 다가와 삼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포스로 무장한 화교출신의 치파오 차림의 여자 마사장(마표범, 마지랄)이 버티는 이곳은 그들만의 요새처럼 공고하게 영업을 하며 충무로 바닥에서 버티고 있었다. 삼촌의 배달원 생활도 익숙해진 가운데, 계속 이소룡 꿈을 꾸며 동시상영관 싸구려극장에서 무술영화나 보며 일상을 지내던 날, 스크린 속에서 우연찮게 자신이 지나가다 찍었던 그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은 물론, 여배우 최정원도 나오자 삼촌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고를 쳐버렸다. 어느 날, 배달 간 집이 바로 그 여배우의 집이었고 운 좋게도 목욕 수건을 두른 정원씨를 보고선 참지 못해 버럭 안았다가 치한으로 몰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마사장에게 미친 놈 소리를 들으며 된통 혼나고 사장 선에서 수습. 그렇게 북경반점에서 평생 배달부로 썩을 줄 알았던 삼촌은, 또 우연찮게 칼판장이 가게 뒤뜰에서 남몰래 무술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선 깜놀, 그가 혹시 영춘권의 창시자 엽문의 제자가 아닌가 물어보고, 자신도 이소룡을 흠모한다며 그를 스승으로 삼고 함께 무술 연마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칼판장은 삼촌이 존경하리만큼 무술의 고수였을까?

그런 북경반점의 일상이 진행되는 동안, 우연찮게 과거 그 촬영장의 으악새 배우를 만나고선 이소룡이 남긴 유작 <사망유희> 작품 소식을 듣게 됐다. 바로 못다 찍은 분량 때문에 이소룡 대역을 구한다는 정보를 입수, 삼촌은 그날부터 진정한 액션배우로서 제2의 이소룡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일약 스타급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것 보다는, 자신이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는 이소룡을 위해서 바치는 헌사처럼 어떻게든 홍콩으로 건너가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을 먹지만, 땡전 한 푼 없는 삼촌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간 배달부로 열심히 일 하면서 모았던 쥐꼬리만한 돈을 칼판장의 대 사기행각으로 날려 버리고 만 것이다. 피해자는 삼촌 뿐 만이 아니다. 여타 종업원은 물론, 마사장 돈까지 또 그녀의 사랑까지 배신해 날라버렸으니, 칼판장은 정말 대단한 놈이자 죽일 놈이다. 나중에 삼촌 손에 걸리면 ‘너 죽고 나 죽자’ 모드가 따로 없다.

그렇게 <사망유희> 이소룡 대역 오디션이 물 건너 갈 것을 우려한 삼촌은 정말 오랜만에 고향 시골로 내려와 권씨네 문중들 앞에서 자신을 무술실력을 보여주며 지원해 주기를 간청했다. 그런데 무술까진 좋았지만 왜 먼 팔굽혀펴기까지 하는 바람에 자세가 마치 요상한 거시기 자세처럼 비춰져 불경스럽다며, 문중 어르신들에게 도리어 호되게 혼나고 ‘문중장학생’으로 발탁돼서 가려던 홍콩행은 단번에 좌절되고 말았다. 이렇게 오디션은 못 보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북경반점 마사장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 삼촌을 보고선 제안을 했다. 삼촌에게 밀항선을 타고 홍콩에 갈 수 있게 손을 써주는 대신에 그 사기꾼 칼판장을 내 눈 앞에 반드시 데려다만 주면 도와주겠다는 조건으로 그렇게 홍콩행은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홍콩까지 갈 수 있었을까? 무사히 잘 가고 오디션까지 봤다면 그게 바로 해프닝이 아니였을까. 꿈은 원래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이소룡의 대역이 어디 일개 짱개집 배달부에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홍콩 밀항선은 바다 태풍을 만나 해역에서 표류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삼촌은 속으로 외친다. “아, 씨발 내 꿈이여..”

한편, 삼촌의 이야기에서 잠시 돌아온 ‘나’의 중학생활이 그려지는데, 여기선 그 내용은 생략. 그래도 간략히 언급하자면 한마디로 영화 <몽정기> 같은 일상이다. 영어 선생님 올리비아에 대한 사춘기적 욕망의 환상과 그로 인한 사고들이 낯설지 않게 펼쳐진다. 그 여선생님 때문에 종태와 다툼이 일 정도로 사이까지 잠시 멀어지게 됐다. 종태와 대판 싸우고 얻어 터져서 내려오다가, 화딱지가 너무 나는 바람에 종태네가 아끼던 소와 송아지 고삐를 풀어버려 두 마리가 떠돌다가 동네 수렁배지에 빠져 죽는 사고가 벌어지고, 또 이 사고로 충격 먹은 종태 아버지가 농약까지 먹고 자살하는 참극까지 낳고 말았으니 이런 도미노적 아이러니 참극도 없었다. 그때 ‘나’의 인생에 있어서 사춘기는 최악의 시즌이기도 한 것이다.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종태에게 말도 못한 채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홍콩 땅은 밟지도 못하고 돌아온 삼촌과 나는 <사망유희>를 극장 맨 앞에서 보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액션영화임에도, 그게 그렇게 슬프더라. 나는 종태 때문에 삼촌은 불발된 홍콩행 때문이라도.



삼촌에게 입대영장이 나와 군대를 가게 됐고 제대 하면서 세월은 몇 년으로 거슬러 박정희가 암살되던 그때를 배경으로 올라간다.(1979년) 나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일련의 사건들을 반추하며 혼돈처럼 다가왔고, 나의 형 동구는 대학생이 됐지만 당시 시류대로 데모를 하다가 잡혀서 훈방 조치로 풀려나고, 삼촌은 시골에 내려와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거들게 됐다. 삼촌이 꿈꿔온 진정한 이소룡되기 프로젝트를 포기하나 싶었는데, 1980년 신군부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혼미한 정국 속에서 지지리 운도 없게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삼촌은 나쁜 놈들 순화교육 일환으로 거행됐다는 ‘삼청교육대’ 끌려가 사선의 문턱에서 개고생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동천 읍내의 두 왈패 건달 도치와 토끼와 재회해 그간에 앙금을 풀면서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기만을 학수고대 했던 삼촌. 그곳은 말 그대로 아귀도이자 지옥도가 따로 없을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과정이 리얼하게 펼쳐진 그곳에서 도치는 개밥을 훔쳐 먹다가 걸려 개 패듯 맞다가 마지막에 “나는 개가 아니다. 인간이다”로 다구빨을 세우다 죽게 되고, 토끼는 그 과정에서 말리다가 소요 사태를 일으켜 총상을 입고 절름발이가 되고, 삼촌은 반인사정치범 정기자를 지인처럼 대하다가 죽을 위기에서 그를 구해주는 등, 그곳의 생지옥도는 그렇게 펼쳐졌다. 결국, 살아서 돌아왔지만 역전의 용사도 아닌 삼촌은 만신창이가 돼서 다시 근로봉사대 6개월 코스를 이수하고 돌아왔으니, 삼촌 일생일대의 크나큰 사투적 이슈였던 것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내건 산업화 개발 붐이 깡촌인 동촌 읍내까지 뻗치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아끼던 후배 도치는 삼청교육대에서 죽었지만, 토끼는 이곳에서 새로운 실세로 자리매김 하기로 마음먹고, 각종 위락과 유흥시설이 들어선 이곳에서 이권을 챙기는 정치깡패로 자랐다. 그 과정에서 할 일 없이 겉돌던 삼촌을 끌어들여 각종 조직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삼촌은 동천의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게 이소룡이 되기를 원하며 진정한 무도인답게 함부로 주먹을 쓰지 않겠다는 삼촌의 결기는 사라진 것인지, 결국 그의 꿈은 포기한 것인지, 삼촌은 시류대로 자의반타의반 편승해 변질돼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동천파의 반대파 라이거파의 신예 종태가 나서서 이들과 맞대결을 펼쳤으니, 과거 사부님이라 불렀던 수제자 절곤이 종태가 삼촌과 일대일 맞짱을 뜬 이른바 ‘동천나이트의결’ 사건이었다. 그렇게 아끼던 제자의 일취월장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서 아량인지 몰라도 한 수 져주면서 삼촌은 물러났고, 토끼는 사태가 위급해지자 종태를 포섭해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라이거파 보스를 사시미로 찔러 동천파가 조직을 모두 접수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종태의 모습은 마치 영화 <넘버3>의 한석규의 막둥이를 보는 듯 오마주. 그렇게 이들의 흔한 조폭 얘기는 영화처럼 그려진 것이다.

‘나’는 어느 덧 대학에 입학에 군대에 들어갔고, 데모를 통해 알게 된 첫사랑 경희와의 사랑은 이루지 못한 채, 상병시절 면회를 통해서 추억을 곱씹고, 제대하자마자 교도소에 복역 중인 종태를 면회해 그간에 쌓인 회한을 풀었다. 한편, 본격적인 80년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기에 이소룡이 점거하며 아류작들로 풍성했던 권격영화 시대가 끝나고, 성애영화가 중심에 서며 삼촌은 단역배우로 연명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 이젠 퇴물이 된 가슴만 유독 큰 여배우 최원정을 만나 삼촌은 다시 설렜다. 일적으로 그녀와 영화 촬영장에서 강간 씬을 찍으며 가깝게 지내게 됐고, 이들의 불나비 같은 사랑 얘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와는 대비되게 씁쓸하게 남겨진 북경반점의 마사장 또한 퇴물로 전락했지만, 마치 죽음을 앞둔 여자처럼 간간히 찾아온 삼촌과 인생의 회한을 곱씹는다. “도운아, 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니” 삼촌의 꿈은 과연 이루는 과정일까 아니면 포기한 것일까. 그깟 액션 단역배우 삶으로 마치고 말 것인가. 그래도 삼촌은 행복해했다. 원정과 점차적으로 가까워지면서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내세워 그녀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기로 한 것.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마수가 서서히 펼쳐지며 죽음의 문턱까지 가고 말았으니, 삼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한편, 종태가 출소하자마자 작업한 건 바로 토끼에 대한 복수였다. 자신이 빵에 있는 동안 집안 가족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토끼는 약속을 저버렸다. 이에 종태는 당시 선거열풍을 틈타 정치깡패로 나서고, 토끼도 마찬가지로 삼선의 중진의원 뒷배를 업고 맞대결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토끼는 납치돼 며칠간 감금되고,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도망치다가 그만 도로에서 염산트럭에 받쳐 염산통에 풍덩, 염산말이로 뼈다귀만 남긴 채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나름의 가혹한 최후가 아닐 수 없는데, 이에 좌절한 부인 오순은 그 원흉이 종태인 걸 간파하고 독극물의 여왕답게 종태 마저 독으로 죽여 버리고 말았다. (정말 무서운 여자다) 북경반점의 마사장 마저 세상을 등지며 그 북경반점은 삼촌에게 유산으로 넘겨지고, 그곳에서 원정과 달콤한 새 출발을 약속하는데, 하지만 원정을 여배우로 키워내고 수많은 여배우들을 농락했던 스폰서 대부 유회장의 새끼사장(혹은 사장새끼)인 아들 유사장이 엄청난 문제였다. 

자기 엄마의 치졸한 원한을 갚는다는 핑계로 원정을 유학파 김실장과 함께 폭행하고 겁탈하며 얼굴에 난도질까지 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 것이다. 이에 원정은 모든 걸 포기하고 자살을 선택, 삼촌과의 생의 마지막 이별을 감행하고 말았다. 이런 일련의 스너프필름 같은 초현실적인 폭행이 자행된 걸 알게 된 삼촌은 이글거리는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드디어 자신을 그동안 억눌러왔던 갈고리를 처단할 때가 왔다며 유사장과 김실장 두 ‘사이먼 앤 가펑클’을 죽이러 저택에 잠입. 그 자리에서 가열한 절권도로 죽지 않을 만큼 패주고, 유회장을 불러들여 이들의 진상을 알리려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이코패스 유사장이 자신의 아버지를 엽총으로 쏴 존속살해를 저지르고, 그 죄상을 삼촌에게 덮어씌우면서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원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계속 도망만 칠 수는 없어 자수해 15년을 언도받고 교도소에 복역한 삼촌. 그곳에서 그는 원정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간의 인생유전을 곱씹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 새천년이 도래한 그 즈음에 원정을 극적으로 만났다. 아! 님이시여, 왜 이제야 오셨나요. 저는 이제 이소룡도 아니요, 짝퉁 이소룡이 아닌 권도운으로 당신과 함께 남은 여생을 살겠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이소룡에게 올인한 한 남자의 욕망 같은 인생유랑전(傳)이다. 그 인생유랑극에 이소룡(1940~1973)이 멘토처럼 환생해 시대적 향수를 마구 자극한다. 그것이 삼촌 '권도운'에게 투영되며 비록 짝퉁으로 출발했으나, 긴 세월을 거쳐 스스로 인생유전의 고유한 스토리를 완성하며 우리네 삶을 반추케 만들었다.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다만, 1,2권으로 나뉜 장편소설상 스토리 배분에 있어서 2권 후반부로 갈수록 반복된 이야기 전개의 구도로 신선함이 떨어지는 기시감까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결은 생생히 살아 움직였고, 각 캐릭터로 묘사된 일종의 군상극은 생동감 있게 묘사돼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활동사진으로 펼쳐졌다. 시대성으로 과거의 향수를 자아내면서도 캐릭터 심화를 위한 위트가 간간히 심어져 있고, 저마다 사연들이 적시적소에 배치돼 희극적 요소까지 띄며, 이것은 한편의 희비극이 교차하며 맞물리는 이야기로 그려낸 한 남자의 일대기인 것이다. 결국엔 오리지널이 되고 싶었지만 될 수가 없었던 비극까지 맞물린 한마디로 "짝퉁인생의 희비극 파노라마". 그렇다고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갈망과 열망 그리고 욕망스러운 결기까지 보이긴 해도 '서자' 출신이라는 멍에와 견실하게 살아가려는 소시민적 캐릭터의 모습은 우리네 삼촌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런 과정들이 비록 진정한 무도인 이소룡을 닮고자 무던히도 애쓴 삼촌의 짝퉁인생 일지라도 좋다. 어차피 짝퉁이 판치는 세상이다. 자신의 꿈과 욕망을 위해 달려가는 군상들이 판을 짜고 그 속에서 아직도 허우적댄다. 그 무언가를 향해 무엇이 되기 위해서.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바로 그런 인생 유전이자 유랑극이다. 시대가 있었기에 울림은 더 커지고 이야기는 살아 움직였다. 다시 한 번 삼촌 권도운의 건승을 빈다. 우리시대 이 땅의 모든 삼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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