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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Silenc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개봉한 지 5일 만에 전국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안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영화 '도가니',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그렇게 난리가 난거냐며 반문한다면 그건 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르겠다. 이미 2009년 공지영 작가의 동명의 원작 소설로 화제가 되었고,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늘 속에 만연돼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성폭행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그냥 액션과 스릴러 혹은 판타지로 점철된 즐기는 오락으로써 다가오는 이른바 팝콘무비도 아니요, 그렇다고 밍숭밍숭한 드라마도 아니다. 이 영화는 이른바 사회고발적 성격을 다분히 띈 영화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것도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진 어른들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벌써부터 심히 깔끄장한 기분을 일게 만든다. 잊을만하면 우리 사회에서 불거져 나오는 수많은 성폭행 사건들,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성년이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 가해진 그것도 장애를 안고 있는 그들에게 가해진 성의 폭력은, 분명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분(公憤)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그 공분의 도가니탕으로 몰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자주 들어봤을 '도가니'가 무슨 뜻일까?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여러 뜻이 나오는데 무릎뼈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나, 소 무릎의 무릎뼈에 붙은 질긴 고기, 아니면 쇠가 녹아 몹시 뜨겁게 단 그릇, 그리고 자주 써온 말처럼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 도가니로 접근해 그린 것일까.. 공지영의 원작소설을 아쉽게도 읽어보진 못해서 그 심오한 뜻을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떤 감정의 끊어오르는 그 지점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도가니'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바로 앞에 세 글자가 빠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공분의 도가니".. 그럼, 그 도가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2011년, 대한민국의 마음을 움직일 진실이 찾아온다.
믿을 수 없지만,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제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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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청각을 잃은 소녀 '연두'에게 가해진 성폭력의 현장, 눈 뜨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이 영화는 시놉시스 자체에도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왜냐? 영화적 상상력으로 점철된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내용은 물론 사건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성폭력 사건, 영화는 그 사건을 재조명하며 관객들을 그 깔끄장한 공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좀비물처럼 피칠갑을 해서 호러가 아니다. 어느 산골에 깊숙히 박힌 어둠 속의 학원에서 벌어진 만행, 그것만으로도 이건 리얼 공포다. 그곳 무진의 '자애 학원'에 미술교사로 일하게 된 강인호(공유)가 찾아가던 날 길에서 사슴을 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한 어린 남자 아이는 몰골이 말이 아닌 채 달려오는 기차에 그냥 깔려 죽는다. 그리고 영화는 제목과 함께 포문을 연다. 오프닝은 가히 의미심장할 만하다.
그리고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보통의 왁자지껄한 학교의 모습이 아니다. 대다수가 지적 장애나 청각장애를 앓고 있어서 이들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런가, 교실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뀅하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인호는 웬지 마음이 착잡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이들 얼굴 표정도 침울한데다 갖은 곳에 상처투성이다. 그 중에서 어린 소녀 연두와 유리, 그리고 민수의 생활기록부를 찾아보니 부모들도 거의 사망했거나 지체장애인이다. 그러면서 퇴근 길에 우연히 보게 된 체벌과 폭력의 현장들, 연두는 세탁기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민수라는 소년은 남자 선생님한테 개패듯 뺨을 엄청 얻어 맞는다. 그 예전의 영화 '친구'에서 '니 아버지 뭐하시노' 씬보다 더 가격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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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에서 '유리'에 이어서 증언을 하는 '연두', 그가 재치를 발휘해 교장을 지목하는데..)
급기야 연두가 입원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무진의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간사 서유진(정유미)이 찾아오면서 아이의 본격적인 진술이 나온다. 바로 교장 이하 행정실장 등이 자신은 물론 친구 유리에게도 성추행과 성폭력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런 건 말 못하는 아이들의 수화를 토대로 재현을 하는데, 차마 못 봐줄 정도로 깔끄장하다. 어린 소녀를 화장실에 끌고가 팬티까지 벗겨 성폭행 하려는 장면이라든지, 교장실에서 책상에 눕혀놓고 성폭행을 하려는 장면 등, 그 수위가 꽤 높다. 어른이 봐도 공분이 차오를 정도인데,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인 이유가 이해가 될 정도다. 그런데 이들 두 소녀 이외에, 민수라는 소년은 같은 동성의 남자 선생님한테서 매일 맞고 심지어 그도 성폭행을 당하며 지내왔다. 민수의 어린 남동생도 그런 만행 앞에서 정신을 잃고 거닐다가 기차에 치여 죽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들 세 아이는 그 폭력의 현장에서 벗어나 인호 선생님과 서간사 보호하에 있게 되고, 급기야 이들의 사건이 서울에서 내려온 보도팀에 의해 방영이 되면서,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며 자애학원 교장 이하 행정실장 그리고 그 남선생까지 모두 구속이 된다. 그리고 이들과 법정공방이 벌어지는데.. 그 속에서 아이들의 꺼내기도 힘든 증언이 또 나오고, 그 와중에 장애인를 안고 사는 부모들의 피치못할 돈 앞에서 합의와 저쪽 교장 쪽 변호를 맡은 자의 전관예우 등, 이 사건은 모두 혐의는 인정되나 확실한 물증이 없고 사회에 공헌바를 참작해 그들 모두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난다. 과거 그 기록처럼 처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상처로 남게 된 아이들, 특히 민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복수를 하려 하고..
인호와 서간사는 울분에 휩싸이지만,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진 자신들을 뒤로한 채 그들은 그렇게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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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선생 인호 역으로 나온 '공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연기는 보는 이를 진중하게 만들었다.)
도가니, 열광이 아닌 천만의 '공분의 도가니'를 살 사회고발 영화, 제대로다.
이렇게 영화는 실제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한 실화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많이 각색한 것도 아닌 게, 실제 사건 일지를 보면 영화는 그 일련의 과정과 실제 법정 공방의 디테일까지 살리며 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노력했다. 원작소설의 영화화로 이미 탄탄한 스토리에서 나름 완성도를 높이며 눈길을 끌었다 할 수 있다. 그 학원의 다소 그로테스크한 분위도 한몫했고, 특히 주인공이자 자애학원의 미술 선생님 역으로 상처입은 아아들을 보듬는 공유의 역할은 그의 재발견이라 할 정도로, 침착하고 심도있는 표정으로 성숙한 연기를 선보였다. 함께 무진지역 인권단체 서간사로 아이들의 보모 노릇을 한 정유미도 괜찮게 특유의 색깔을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른들이 저지른 성폭행과 폭력 앞에서 무너진 세 아이들의 공포에 짓눌린 모습과 가엾은 이중의 밸런스는 보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다. 아무튼 영화 자체는 보기 전부터 생각을 했지만 막상 보고 나서도, 또 지금 생각해도 참 깔끄장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아직도 사회 어두운 이면 속에서 자행되고 만행돼 있는 성폭력 현장들, 과연 그것을 간과할 수 있을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런 사회악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며 영화는 사회적 기능으로써 나름 책무를 하고 있다. 다만 이 영화가 단지 과거의 한 사건을 들춰내 좀 자극적인 성폭력 현장을 담아내며 '공분'을 끄집어 내는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가르치고 키워낼 우리의 아이들로 바라본다면 쉽게 넘길 문제는 아닐 것이다. 충격적인 실화라는 점에서 근원적인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고, 그런 미친 두 쌍둥이 교장처럼 성폭력의 노예가 아닌 이상, 성숙된 어른이라면 이 영화를 바라보는 그 지점은 다를 바가 없다. 더 이상 이 영화 자체에 대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웃고 즐길만한 다분히 오락적인 것이 아니기에 어찌보면 외면 받을지도 몰랐을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지대하다.
그것은 바로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 돌파라는 쾌조의 호응은 나름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한국 영화에서 천만 영화가 사라진 수 년 째, 이런 영화야말로 천만이 들어도 이상할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천만 이상의 관객이 보고 같이 느껴야 할 '도가니', 그 흔한 '열광의 도가니'가 아닌 그 '공분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 우리시대 만연돼 있는 성폭력 현장과 그들 권력에 가려진 어두운 단면을 직시하자. 그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이 영화는 책무를 다한 셈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이다. 혹여 천만이 못 되더라도,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화제작'이라 단언하고 싶다. ~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75413&mid=16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