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의 이때, 이 계절에 걸맞게 가슴을 적시는 멜로 영화가 개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시스템에 의해 양산된 헐리웃이 아닌 그나마 우리네 정서와 맞을 것 같은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웬지 기대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두 배우 권상우와 정려원의 만남은 어딘가 안 어울릴 듯 하면서도, 정작 보고나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들은 우리시대 무감각해진 사랑에 경종?을 울리며 우직한 신파를 향해 내달렸다. '통증'이라는 제목부터가 무언가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아낸 듯, 영화는 이들 멜로에 초점에 맞추며 나아간다.

그런데 각종 드라마나 여러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기존의 멜로와는 궤를 달리한다. 한껏 멋을 내고 서로 '밀당'을 즐기는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요, 그렇다고 쥐어짜듯 일부러 만들어낸 신파로 감성을 자극하려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사랑하며 종국엔 어떻게 멜로의 방점을 찍는지 보여준다. 다만 그 방점이 앞서 내달려온 있는 그대로의 방식에서 다소 허무하면서도 빈곤하게 마무리돼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멜로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매력을 충분히 살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 두 남녀의 사랑의 통증은 어떻게 다가오고 치유가 됐는지,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강풀 원안 곽경택 감독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어릴 적 자신의 실수 때문에 가족을 잃은 죄책감으로 온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 ‘남순’(권상우). 통증을 못 느끼는 탓에 마음의 상처도, 타인의 고통도 알아채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이상한 여자를 만났다! 본인을 흡혈귀라 부르는 ‘동현’(정려원)은 한번 피가 나면 멈추지 않아 작은 통증조차 치명적인 여자. ‘남순’은 자신과 극과 극인 고통을 가진 ‘동현’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난생 처음 가슴에 지독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오늘도 내일도 맞아야 사는 남자 남순, 사고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무통증은 그만의 삶의 방식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꽤 거칠어 보인다. 매 항상 무표정한 모습으로 매를 맞으며 살아간다. 매를 맞다니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 이 남자는 어릴적 교통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후유증으로 통증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고로 누이를 비롯해 부모님까지 잃고서 그는 혼자서 살아왔고, 이 힘든 세상에서 그 무통증으로 버텨온 나름 깡다구를 지닌 남자다. 남자의 이름은 '남순'(권상우), 옆에서 그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형 범노(마동석)가 유일한 사회적 친구이자 대상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한마디로 남순의 무통증을 이용해 자해공갈식으로 협박해 사채빚을 받으러 다니는 거. 눈앞에서 사람이 야구방망이로 맞고 뺨다구를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니, 채무자로썬 놀랠 놀자.. 그러니 돈을 안 갚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 예전에 이범수와 이정재 콤비가 생각난다..ㅎ)

그리고 또 찾아간 채무자, 그런데 이 여자는 옥탑방 같은 곳에서 혼자 사는 '주동현'이라는 처자다. 원금에서 이자까지 불어 8백만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 홍대 앞에서 악세사리를 팔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녀에게 이런 돈을 갚을 여력이 없다. 남순은 곧바로 자해에 들어간다. "돈갚아 X년아"로 욕지거리를 하고 장독을 깨고 벽돌로 손등을 내리치는 등, 난리부루스를 친다. 그러니 그녀로썬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남자가 웬지 수상쩍다. 남을 전혀 때리지는 않고 맞기만 하는 자해공갈을 하는 게, 싹수가 보인다는 거. 그래서 자신이 월 얼마씩 갚겠다고 도리어 으름장까지 놓으며 남순과 안면을 튼다.


(서로가 치명적인 아픔을 가진 두 남녀 동현과 남순, 이들 역에 정려원과 권상우가 호연을 펼쳤다.)

그러면서 남순은 오늘도 내일도 무통증을 이용해 동네 형과 함께 돈 받으러 다닌다. 심지어 재개발 현장에서 아무런 이권이 없는 그가 투입돼 용역깡패들에게 맞는 것으로 돈을 받는 등, 그는 그렇게 맞으면서 돈을 번다. 이 모습을 옆에서 본 동현 처자는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짠해지고 아파온다. 왜 그러고 살까.. 하지만 동현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악세사리를 팔며 힘들게 살면서 노숙자들에게 삥 뜯기고 급기야 잡혀갈 뻔 하다가 남순이 구해주면서 알거지 신세로 전락. 그리고 동현은 어쩔 수 없이 남순네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이들의 동거가 그려지는데, 물론 이들은 채권채무 관계로 만났지만, 그전에 관계는 잊은 듯 동현은 식모살이를 자처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서로가 친해진다. 그렇다고 재밌고 알콩달콩 사는 게 아니다. 가족을 잃은 상처 때문인지 그대로 남겨진 집기들이 흉물스럽게 남은 그 집은 고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남순이 지내온 삶이 있듯이 힘든 건 매한가지요, 동현이 혈우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남순은 동현을 연민으로 바라본다. 급기야 서로의 마음을 울리는 사건이 있은 후, 둘이 육체적인 교감까지 갖게 되면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려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역시 남녀간의 몸정은 무시 못 한다는 거.. 그런데 무통증의 남순은 느꼈을까..ㅎ

아무튼 이렇게 해서 둘이 잘 먹고 살았다는 이야기로 그치면 사실 심심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무통증 자해공갈로 돈이나 받고 하는 일을 남순이 그만두고, 좀 건전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지나가는 영화 촬영을 보고 엑스트라 스턴트맨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그 마동석 범노가 어느 조직과 연계된 돈 문제로 인해 또 남순이 그 재개발 현장에 투입되어야할 상황, 더이상 그런 일은 안하겠다며 물러섰지만, 타이밍 좋게 혈우병을 앓던 동현이 급기야 쓰러지고 만다. 결국 기존의 약이 아닌 새로운 약값만 해도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는 소리에, 남순은 여태 그래왔듯 마지막 몸빵의 한탕?을 하게 되는데...

과연 그는 방망이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어떻게 됐을까..
또 자신이 여리고 너무 아파 나 같은 여자를 만나지 말라던 동현은 이 남자를 잊을 수 있을까..




'통증', 감각적인 멜로가 아닌 우리시대 무감각해진 사랑에 대한 자화상

이렇게 이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사실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왔고, 이제는 식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소재와 주제는 사람사는 이야기의 영원한 테마이기에 항상 눈길이 간다. 그러면서 그 사랑의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어떻게 예를 들 수는 없지만, 나쁜 사랑과 착한 사랑을 나눌 순 없어도, 남녀간 사랑의 양태는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 '통증'도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진짜 이 영화에서 그려낸 두 캐릭터, 사고로 인해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남자와 혈우병을 앓으면서 작은 통증조차 치명적인 여자가 만나서 사랑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더한 사랑이야기도 있음을 본다면, 영화는 나름 리얼리티를 살렸다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적 메스를 가하며 덧칠해서 무언가 로맨틱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와 닿는다. 무통증이다 보니 매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한 이 남자의 사랑법은 꽤 서툴고 무람없이 보인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남자의 모습이기도 한데,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다가 자신과는 정반대로 통증을 앓고 살아야 하는 여자를 보면서 이 남자는 연민에 빠진다. 그렇다고 그 남자의 연민이 쥐어짜듯 나오는 게 아니라, 우직하리만큼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아프니까 싫고 그래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신의 한몸을 던진다. 그런 남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이 여자도 아프긴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캐릭터는 감각으로 점철된 그림이 아닌 날것 그대로 그려지며, 보는 이의 가슴을 동화시킨다. 이런 역량은 기존의 '친구'등으로 거친 남성들의 우정미를 과시했던 곽경택 감독이 그간에 흥행실패를 딛고 새롭게 작심한 듯 연출하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기존과는 색다른 멜로라는 측면에서 꽤 와 닿게 우직하게 그려냈고, 이것에 더해서 웹툰계의 감성 스토리텔러 강풀의 '원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켄텐츠로써도 승부수를 가졌다. 물론 이게 원안대로 잘 그려지고 못 그려졌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통증의 멜로는 나름 와 닿게 그렸다.

그것은 두 주연배우 권상우와 정려원의 연기궁합을 과시하듯, 이들의 리얼리티를 살린 연기 또한 호평을 받을만 하다. 특히 권상우의 리얼하게 맞는 연기와 그를 대차게 때리는 마동석도 한몫하며 근원적 통증을 유발시킨다. 아무튼 가을로 접어드는 이때, 타겟팅으로 이 영화의 포지션은 좋은 편이다. 누구나 혼자살 수 없듯이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면, 여기서 그려낸 '통증'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고 지향해 본 사랑 이야기일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랑이 판을 치며 감각적으로 내달리는 작금의 이때, 도리어 그것으로 무감각해진 우리네 감성을 여기 영화 '통증'은 날것 그대로 자화상처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올 가을 연인들에게 강추다. ~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78161&mid=15697

ps : 영화는 멜로를 지향하면서도, 간간히 유머코드가 배어있다. 특히 권상우 씬들이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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