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일본소설이 강호의 레이더에 포착돼 컬렉하게 됐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음에, 아니 그것보다는 제목이 완전 똑같은 한국영화 '죽이러 갑니다'를 예전에 보고서 그 내용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소설이라고 보면 더 정확하다. 구글에서 '죽이러 갑니다'로 검색하면 바로 소설 <죽이러 갑니다>도 나온다는 거. 그래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니, 이 소설의 포스가 남다름을 보게 된다. 보통 강호가 일본소설로 주로 읽어 온 건, 알다시피 많이 알려진 작가들 작품들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오기와라 히로시, 노자와 히사시, 이사카 코타로 등 주로 이들 소설들이었는데, 이번에는 '가쿠타 미쓰요'라는 여류작가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작가일까? 67년 가나가와 현 출신으로 2004년 <대안의 그녀>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현재 일본 최고의 여성 작가 중 한 사람. 섬세한 심리묘사와 현실의 작은 부분까지도 파고드는 관찰력을 소유한 감성적인 문체 스타일의 여류 작가란다. 그러고보니 2003년 부인공론문예상을 받은 <공중정원>이라는 소설의 이름을 얼핏 들어본 것도 같다. 어쨌든 이미 국내에 번안된 소설만해도 10여 종이 넘을 정도로, 꽤 인기가 있는 작가는 분명할 터. 그래서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작가 스타일을 알고자 두 권만 도서 적립금 만료일에 맞춰서 구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영화 제목과 같은 <죽이러 갑니다>와 다소 특이한 <8일째 매미>라는 소설이다.

그럼 어떤 작품인지, 이 두 권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먼저, 우리영화 '죽이러 갑니다'와 같은 제목의 <죽이러 갑니다>는 영화처럼 어떤 '살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즉 제목의 의미처럼 누군가를 말 그대로 죽이러 떠나는 여정?을 다룬 이야기인데, 앞선 영화가 다소 코믹적이고 허무맹랑하게 살의를 무람없이 펼쳐 보였다면, 여기 소설에서 그려낸 '살의'는 꽤 진중하고 메시지감이 느껴진다. 단 장편은 아니고, 표제작을 비롯해서 총 7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살의'를 다룬 일상의 쓸쓸한 이야기 '죽이러 갑니다', 7편의 메시지적 단편들

표제작 '죽이러 갑니다'로 포문을 열고,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치사한 따돌림을 당하는 사오리가 복수를 꿈꾼다는 '잘 자, 나쁜 꿈 꾸지 말고'라는 이야기, '아름다운 딸'에서는 아름다운 엄마 가요코가 사춘기를 맞은 추한 딸이 자신을 향해 퍼붓는 알 수 없는 악의와 날마다 대면하고, 결국 자신이 낳은 사랑스러운 자식이지만 그 아이를 죽이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가요코는 깜짝 놀란다.. 까지 읽어 볼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증오심과 복수는 처절하기 보다는 다소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가 감지된다. 바로 어떤 가열한 '살의'보다도 오히려 그것을 일으킨, 해소할 수 없는 답답함이 극적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는 소개다. 특히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잔혹한 묘사 하나 없지만 더할 수 없이 오싹하며,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일상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파고드는 관찰력과 섬세한 심리 묘사,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가 돋보인다는 평가처럼 이 소설의 의미는 꽤 깊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살의의 기운들과 그것이 파고드는 암울하고 쓸쓸한 이야기, 바로 소설 '죽이러 갑니다'는 그것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역시나 말이 필요없는, 영화 '죽이러 갑니다' 보다 더 괜찮은 '죽이러 갑니다'를 만나보자.

 '가쿠타 미쓰요'의 완성도 높은 우리시대 여자 이야기 '8일째 매미' 강추!



또 하나의 소설은 '죽이러 갑니다'와 같이 제목이 다소 특이한 <8일째 매미>다. 얼추 제목부터 무언가 심오한 뜻이 느껴지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작가라면 그만의 대표작이나 인기작이 있기 마련인데, '가쿠타 미쓰요'의 대표적인 인기작으로 최고의 작품이라 찬사를 쏟아낸 게 바로 '8일째 매미'다. 앞에 홍보된 띄지에서 보듯이 말이다. 무슨 내용의 소설이길래 그럴까?

   
  그저 한 번만 볼 생각이었다. 사랑해서 안 되는 남자, 그의 아내가 낳은 아기의 얼굴을. 하지만 아기의 얼굴을 본 순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기와코는 아기를 안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모두가 떠난 철거 촌으로, 어딘지 수상쩍은 여자들이 공동체를 이룬 엔젤 홈으로, 바다 저 너머 석양이 아름다운 섬으로.. 16년 후. 20살이 된 에리나는 어렸을 때 유괴됐었다는 꼬리표와 그 사건으로 인해 드러난 가족의 허위 때문에 괴로워한다. 어느 날 어려서 함께 엔젤 홈에서 자랐던 지구사가 찾아오고, 둘은 어긋난 운명의 퍼즐을 짜맞추기 위해 과거를 찾아 떠난다.  
   

 
이렇게 간단히 내용만 봐도, 순간적인 실수로 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엇나간 두 여자의 인생을 통해 모성과 가족, 운명,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이유를 반추하는 작품이라는 소개다. 특히나 이 장편소설 '8일째 매미'는 가쿠타의 작품 중에서도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중앙공론 문예상을 수상작이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 이 이야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 순간적인 실수로 전혀 다른 인생을 걸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은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작용으로 인해 인간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나는 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등장인물 모두 인생을 납치당한 사람들이다. 어디서 누구의 손으로 키워졌든, 그 과정이 조금 비정상적이라해도 인간은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역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게, 특히 본인도 여성이기에 안고 있는 문제의식의 출발이 좋아 보인다. 한 여자의 어그러진 인생에 대한 관조와 비판을 가슴을 적시도록 써내려간 그녀만의 대표적 역작 '8일째 매미', 제목의 의미가 아직은 깊게 다가오지 않지만, 7일째 죽지 못한 8일째 매미는 바로 우리시대 여자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민과 작가의 기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격찬처럼, 여기 '가쿠타 미쓰요' 최고의 역작 '8일째 매미'를 만나보자.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가열하게 울어대는 그 매미 소리와 함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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