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모비딕'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그 유명한 고전소설 '백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홍보처럼 '음모론'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음모론'은 어감 자체부터가 대단히 베일에 쌓인 듯 음모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되는 용어다. 이미 백과서전에 명징되어 있는 그 뜻만 봐도 음모론(陰謀論, Conspiracy Theory)'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듣기 힘든 격동기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러한 음모론들이 많이 유포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음모론 자체가 바로 그 어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진실 찾기 게임의 양상을 띄며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대한민국의 음모론을 파헤친 영화 '모비딕'은 나름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이런 음모론에 대해서는 책이나 드라마 이렇게 영화로도 사실 많이 나왔고, 이런 소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 어떤 무엇의 실체적 비밀을 파헤친다는 것 자체부터가 매력적이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영화 '모비딕'은 출발선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번에는 어떤 음모론이길래, 그 실체와 진실은 무엇이길래, 식의 근원적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그래서 강호는 그 호기심 때문에 9일 개봉 전에 시사회를 통해서 이 영화 '모비딕'을 먼저 접했다. 그런데 접하고 나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아니 실망스럽기 보다는 영화에서 내건 음모론이 사실 그렇게 대단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진실입니까?

1994년 11월 20일 서울 근교 발암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발 사건. 사건을 추적하던 열혈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 앞에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향 후배 윤혁(진구)이 나타난다. 그는 일련의 자료들을 건네며 발암교 사건이 보여지는 것과 달리, 조작된 사건임을 암시한다. 발암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이방우는 동료 기자 손진기(김상호), 성효관(김민희)과 특별 취재팀을 꾸리는데… 하지만 취재를 방해하는 의문의 일당들로 인해 그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정부 위의 정부, 검은 그림자 조직. 이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조작하는 검은 그림자, 목숨을 걸고 도망친 내부고발자,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는 열혈기자. 이들의 숨막히는 진실공방전이 시작된다!


(직감적으로 특종의 냄새를 포착하는 베테랑 사회부 기자 '이방호' 역의 황정민, 제대로다.)

영화의 시작은 다소 임팩트하다. 어느 흑백의 CCTV 화면이 보여지고, 저 멀리에 있는 다리가 크게 폭발하면서 '모비딕'의 서막을 알린다. 바로 '발암교 폭탄테러' 사건이 터지며 사회는 술렁인다. 때는 바야흐로 지금이 아닌 1994년이 배경으로 -(이때 강호는 군대에서 개고생하고 있을 때로 김일성이 죽은 바로 그 해다.)- 영화는 90년대의 상황이 지배적으로 깔려있다. 당시 IAEA 핵사찰과 관련된 북한의 상황과 남한쪽 핵안보의 문제 등이 영화 속 TV 뉴스에 잡히는 등, 이미 분위기는 감지된다. 북한과 안 좋은 사이에다 그렇다면 저것도 북한소행?! 그러면서 발암교 테러에 용의자 세 명이 검거 아니, 두 명은 이미 죽고 한 명은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지며 그마저도 나중에 죽게 된다. 어쨌든 이 발암교 폭탄테러로 모 신문사의 베테랑 사회부 기장 이방호(황정민)가 나서게 된다. 그는 직감으로 냄새가 구린 걸 눈치채고, 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 한다.

90년대 시대적 배경 속 '발암교 폭판테러'의 실체를 밝힌다. '모비딕'

이때 고향 후배 윤혁(진구)이 불현듯 이방호를 찾아와 발암교와 관련된 의문의 자료를 남기고 그의 주위를 계속 배회한다. 떡밥을 던진 건지, 윤혁은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을 탈영병이라고 선배 이방호한테 말하지만, 실은 자신의 소속부대 보안사에서 정보를 빼돌린 내부고발자였던 거. 그렇기에 그는 계속 감시와 추격을 당하고, 그와 함께 있는 이방호는 물론 이 특종 사건 조사에 특별취재팀으로 같이 동참하게 된 다른 기자 손진기(김상호)와 성효관(김민희)까지 위기에 빠진다. 특히 성실한 노력파 기자인 손진기로 분한 김상호는 그들에게 잡히고 맞는 등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고, 당돌한 매력의 신참 기자 성효관으로 분한 김민희는 그 자료의 암호를 풀어내는데 일조하며 결국 진실에 밝히는데 조력한다.


(발암교 폭탄테러의 소스와 실체를 폭로하는 내부고잘자 '윤혁' 역의 진구)

이렇게 세 명의 캐릭터들이 발암교 폭판테러 사건의 실체를 밝힐려는 과정에서 결국 찾게 된 '모비딕' 호프집, 이곳의 화장실 쪽에 숨겨둔 장소가 그들의 아지트로 이곳에서 모든 사건을 조작하고 움직이는 본부였던 거. 물론 이런 장소는 수시로 변하긴 했지만, 현재는 그 호프집에서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방호 일행이 잠입하다 실패하면서 이들은 난관에 부딪히고, 그 와중에 손기자마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물론 이마저도 그들의 마수에 걸려 든 것인데, 이에 이기자와 성기자는 마지막 보루인 디스켓 자료의 암호를 몇 날 며칠을 생고생하더니 풀어내, 그들 조직의 향후 계획과 진실을 알게 되면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과연 그들의 마지막 목표는 무엇이고, 이 거대한 조직에 맞선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렇듯 영화는 분명 음모론, 즉 대한민국을 조작하는 검은 그림자의 조직과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서 메스를 가한 일종의 스릴러물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스릴러적 코드로 충만돼 보이질 않는다. 마치 한 편의 수사적 드라마를 보듯 펼쳐내는 게, 지극히 일반적인 느낌이 지배적이다. 즉 영화적 연출로 덧씌우기 보다는, 실제 1990년 보안사에 근무했던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내부고발을 모티브로 팩트와 픽션을 가미한 일종의 드라마라 볼 수가 있다. 즉 여기서 진구가 연기한 극 중 윤혁이 바로 그 윤이병인 것이다. 진구가 정말 무언가 쫓기는 듯한 인상과 분위기로 일관하며, '마더'의 그 모습과는 다르게 참 매력적으로 호연을 펼쳤다.



어쨌든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인 발암교 폭탄테러의 배후가 북한의 간첩 소행이라고 발표하는 정부의 작태에 대해서는 그렇게 새삼스럽거나 놀랍지 않다. 이미 우리는 이런 케이스를 많이 봐왔고, 또 그렇게 언론플레이를 하며 국민을 호도하거나 매도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술렁이게 하는 양태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그게 음모론이냐 아니냐로 귀결돼 서로들 물어뜯는 백태까지, 이미 우리는 지칠대로 많이 바온 사회 현상들이자 음모론에 휩싸여 사는 우리네 자화상들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이런 걸 담아낸 코드는 사실 독특하거나 색다른 맛이 떨어진다. 이걸 보면서 '어허.. 정말 놀라운 걸..'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음모론' 소재에 팩트와 픽션을 가미한 '모비딕', 사회고발극으로 상기.

즉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하기 전에 민간인 사찰로 이루어진 그들의 불행해진 삶과 운명이 씁쓸하게 느껴질 뿐, 지금의 정부에서도 그렇게 자행되어 온 걸 보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영화는 꽤 정공법으로 다가온다. 스릴러적 요소를 갖춘 음모론을 소재로 하긴 했지만, 그 어떤 스릴감이 충만된 기분으로 포팅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적 구성으로 물 흐르듯 전개를 하며 지켜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마저도 종국에는 '열린 결말' 식으로 그리며 무언가 영화적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갈무리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차이는 다소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조연급 출연진에 눈에 띄는 배우 한 분이 있었는데, 여기서 얘기한 '정부 위의 정부가 있다'고 말한 그 조직을 운영하는 실세로 '이경영'이 나오고, 그 아래에 행동대장 격으로 '정만식'이라는 배우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참 반갑더라. 만식이 형님은 정말 조연급으로 이젠 탑이 아닌가 싶다. 영화 '똥파리'에서 맡은 배역만 봐도 실제 그런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 배어 있는 배우인 게, 작년부터인가 영화나 드라마에도 참 많이 나왔다. 그리고 여기서는 제대로 악역을 맡으며 바로 이방호 일행에 위해를 가해 조사를 중단케 하고, 윤혁을 찾아내 죽이려 했던 것인데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나름 甲인 배우다. 그의 필모는 여기로..

아무튼 영화는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든다. 시사회라서 나름 기대를 한 게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음모론에 휩싸인 대한민국을 조망하기에 사실 스케일도 그렇게 크지 않고, 그렇다고 스릴감으로 충만된 영화도 아니다. 다만 지루함은 없이 지켜보게 하는 힘은 느껴지지만 임팩트한 맛은 많이 떨어진다. 90년대 실제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의 사례를 모티브로 팩트와 픽션을 가미하며 그렸지만, 이미 우리는 그 사찰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정부도 조작하는 세력이 있는 것일까? 영화 '음모론'은 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어필을 하며 메스를 가했지만 영화적 매력은 발산이 못됐다. 그래도 '사회고발극'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직도 암약중인 우리 사회의 '음모론'을 다시 되새김질 하는 역할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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