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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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의 또 다른 인기 작가이자 신사실주의 기법으로 중국인들의 삶과 인생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류전윈'(劉震云), 기존의 위트와 해학으로 점철된 '위화'나 어떤 풍자와 문학적 수사를 함께 펼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쑤퉁'의 연장선에서, 아니면 색다르게 끌리는 매력 때문에 현재 강호가 읽고 있는 작가가 바로 '류전윈'이다. 이미 '일지계모'를 뜻하는 <닭털 같은 나날>이라는 중편집 3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매력을 봤다면, 이번에 두 번째로 읽게 된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은 긴 호흡으로 달리는 장편소설이다. 보통 300여 페이지에서 더 나아가 600여 페이지 가까운 이 이야기 속에는 중국의 근˙현대사가 숨쉬고 있고, 그 속에서 인민들의 일상과 인생, 대물린 원한과 복수, 그리고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죽음이 매 편마다 펼쳐지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유구한 역사 속에서 관제화되고 고착화 된 인민들 속에 내재된 중국에서 진정한 서민을 가리킬 때 쓰는 말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역사가 여기 이야기에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공된 것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실상에 가까운 역사라는 점에서 장편소설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의 의미는 깊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가열하게 펼쳐진 '라오바이싱'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제1부 촌상의 피살 - 민국 초년'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서 '민국 초년'이라 함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쑨원이 중화민국을 세운 1912년 이후 한동안'을 말한다.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20세기 초 서구열강의 외세 속에서 당시 중국도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여기 마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서 여기 어느 한 마촌에 쑨씨네와 리씨네로 대표되는 두 지주 집안이 있다. 저 먼 할아버지대부터 대물린 원한이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와 이들은 그 지역에서 촌장 자리를 두고 서로 음해하며 가열하게 살육전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쑨라오위엔의 아들이자 촌장 쑨뎬위엔이 목 졸려 죽게 되고, 그 범행은 리라오시의 살인청부라는 게 밝혀지면서 쑨씨는 양아들 '쉬부나가'를 사주해 리라오시를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 살수 과정에서 놀라서 죽게 된 리라오시. 이어서 물려받은 촌장자리는 리라오시의 아들 '리원나오'가 맡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비적들에게 죽임을 당하며 다음 촌장자리는 쉬부나가가 잡게 되고, 부촌장은 쑨라오위엔의 조카 쑨마오단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이들 두 집안은 촌장 자리를 놓고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대물린 원한에 방점을 제대로 찍는다. 그 넘의 감투가 무엇이길래.. ㅎ

두 지주 집안의 대물린 원한에서 시작된 이야기, 아주 제대로다.

'제2부 귀신이 오다 -1940년'에서는 세월이 20여 년이 흘러 중국의 안팎이 화약고 상황에서 이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 뒤에 자란 자식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은 촌장 쑨뎬위엔의 아들 '쑨스건'은 팔로군의 중대장으로, 죽은 리원나오의 동생이자 앞으로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인 '리원우'의 아들 '리샤오우'는 국민당 중앙군의 중대장으로, 그리고 한 성질하는 '쑨마오단'은 일본군 앞잡이 경비대 소대장으로 지내며 이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즉 이들의 세 세력을 충돌시키면서 일본군을 소탕하려는 팔로군과 중앙군의 암중모색이 디테일하게 펼쳐진다. 여기에다 부촌장을 오랫동안 해왔던 '루헤이샤오'의 아들이자 비적떼 수장인 '루샤오투'까지 이들 세력과 충돌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게 된다. 일본군이 팔로군과 중앙군의 잔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죄도 없던 양민들의 대학살은 물론이요,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한 쑨마오단은 칼로 난도질돼 창자가 다 튀어나와 죽게 되는 등, 여기 '귀신이 오다' 편은 말 그대로 죽음의 귀신이 강림한 듯 정점을 찍는다. 누가 죽고 누가 사느냐는 읽어보면 알터.. ㄷㄷ



'제3부 해방 -1949년'은 장제스의 국민당을 물러나게 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공산당이 집권하는 시절로, 바로 '해방'이라는 위명하에 가열한 '지주 탄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앞선 이야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지주로 몰린 자와 그들을 탄압하는 이들만이 존재할 뿐, 전면적인 토지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투쟁대회가 신날하게 그려진다. 여기서 핵심인 두 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은 이 이야기의 중반 이후 주인공 격으로 바로 소작농의 아들인 '자오츠웨이''라이허상'이라는 인물이다. 먼저, 득세한 공산당에서 공작원 '자씨'가 나서서 지주 탄압을 주도하지만 시원찮은 탄압으로 뭇매를 맞고, 이어서 온 '판씨'라는 인물이 빈봉단의 단장인 '자오츠웨이'와 부단장인 '라이허상'을 이끌고 지주탄압에 들어간다.

리씨 집안의 대들보 같은 존재인 지주 '리원우'가 어떻게든 이런 상황에서 버티는 가운데, 그를 먼저 탄압해 들어가 결국 그 집안을 숙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조카인 '리칭양'과 '리빙양'은 간신히 도망쳤지만, 이어서 과거 촌장이었던 쉬부다이와 한떼 비적떼 수장이었던 루샤오투까지 비판 대상이 되며 이들도 도망을 친다. 그러면서 한때 중앙군 중대장으로 활약하며 지금은 도망자 신세가 된 '리샤오우'의 잔류군에 합류를 하며 공산당에 맞서기로 한다. 하지만 들이닥친 해방군에 의해서 그들은 모두 전멸하다시피 죽는다. 리빙양만 살아남은 채로, 공산당 해방군의 소탕작전에 그들은 그렇게 죽은 것이다.

'제4부 문화혁명 - 1966년 ~ 1968년' 에서는 60년에 대기근을 일어서고 '4구 타파와 4신 정립' 운동의 기치를 내걸며 마오쩌둥의 업적?중 하나인 '문화대혁명'이라는 파고 아래 설립된 세 개의 사상적인 전투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그들 조직 세력 간에 벌어지는 파벌과 다툼 속에서 죽어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또 보게 되는데, 앞선 두 인물 바로 '자오츠웨이' '라이허상'이 역시 주인공이다. 자오가 만든 전투대는 '악미잔 전투대'고, 라이가 만든 건 '편향호산행 전투대', 그리고 기름 장수를 하다가 마오의 어록을 너무나 잘 외운 재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리후루'가 만든 전투대가 하나 더 있었으니 이름이 꽤 길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 수호 조반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이들 3개의 전투대간의 음모와 배신, 그리고 이합집산을 통해서 전개가 되는데, 마치 위·촉·오로 대표되는 '삼국지'라 보면 편하다. 아니면 어디 무슨 조폭들의 세력 다툼 같기도 한 게, 이들의 물고 물리는 상황이 꽤 드라마틱하게 전개가 된다.

물론 주 세력인 '자오'와 '라이'의 두 파벌 전투대가 서로를 '주전파'라고 몰아세우고 싸우며 전개된다. 이후 '정권 탈취'의 기치를 내세우고 결판을 내기에 이른다. 바로 그 지역의 현 위원회를 접수하겠다는 것인데, 그 와중에 리후루가 이끄는 조반단 파벌이 박쥐처럼 행동하며 정세를 따지고 든다. 결국 한 번의 난투극에서는 자오 측이 승기를 잡았지만, 두 번째 벌어진 탈취 과정에서는 '자오' 측이 무너지며 결국 그 지역의 정권은 '라이허상'에게 넘어가게 된 거. 그런 과정에서 논공행상을 통해서 서로 반목이 생기더니, 두 '웨이'씨에게 자리가 돌아가고,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려도 또 다른 권좌의 이동은 계속되는 가운데 이들 연대기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노란 꽃'은 죽음의 꽃, 그 속에는 '라오바이싱'의 역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이렇게 이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달려온 하나의 가열한 서사적 이야기다. 쑨씨와 리씨로 대표되는 두 지주 집안의 대물린 원한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끝나지 않는 진행형으로 갈무리된다. 그 속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날것 그대로의 실상에 가까운 인민들 아니 토속적인 '라오바이싱'의 역사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도 있듯이 '고향'이라는 어감이 주는 친근함이나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언제나 욕설과 폭력과 음모와 배신과 죽음이 난무하는 그곳은 낯선 고향으로 다가오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맞이하게 되는 죽음까지도 낯설기도 한데, 그렇다고 생소한 것은 아니다. 역사가 그러했듯이.. 한마디로 이 소설은 '라오바이싱'의 역사에 희생당한 수많은 이들을 그려낸 죽음의 연대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목에서 알 수 있다. 언급된 '노란 꽃'은 중국 민속학 자료에 의하면 '근대에 들어와 중국의 장례 풍속이 서구의 영향을 받아 간소화되면서, 죽은 자와 작별하거나 망령을 추모할 때 왼쪽 가슴에 자그마한 노란 꽃 한 송이를 다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노란 꽃'이란 '죽음의 꽃'을 말하고, 이 소설의 제목을 '고향 마을 죽음의 연대기'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바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가열하게 다루고 있다. 그 기법은 일정한 역사적 사건과 조건 속에서 우연과 필연을 서로 맞물리게 빚어내며 그 죽음이라는 일상적인 현상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사실주의 작가로 대표되는 류전윈, 그만이 풀어내는 날것 그대로의 '라오바이싱'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그런 죽음만이 점철된 것은 아니다, 중국 특유의 풍자와 블랙유머, 토속성과 역사성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매력까지 품고 있어 총체적인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다. 물론 중심이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과거지사에 얽힌 대물린 원한의 이야기가 있다는 점과 그러면서 그 '라오바이싱'의 역사 속에서 시작된 도미노 같은 죽음의 연대기가 펼쳐지고, 또 그것을 이렇게 손쉽게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작품도 드물다. 그래서 '류전윈'의 첫 장편소설 작품인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오래도록 기억이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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