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중국의 인기 작가로 통하는 위화'와 '쑤퉁', 그리고 중국 현대문학의 신사실주의 작가로 위명을 떨치며, 앞선 그 둘과 무언가 다른 그만의 색감이 확실한 작가 '류전윈'. 이미 <닭털 같은 나날>이라는 중편집을 통해서 그 맛과 매력을 제대로 보았는데, 곧바로 두 번째로 읽고 있는 두꺼운 장편소설이 하나 있으니 바로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이다. 600여 페이지 가까운 두께만큼이나 여기 장편의 이야기는 꽤 긴 호흡으로 달린다. 그러면서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서문을 통해서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보통 우리가 어떤 인간의 삶과 인생을 다룰 때 쓰는 방식의 이야기들, 특히 서민들이라고 대표되는 그 주인공에게서 우리는 어떤 삶의 지표를 보게 되는데, 그 '서민'에 관한 이야기다.

'런민의 역사' VS '라오바이싱의 역사', 둘은 다르면서 융화돼 있다.

바로 중국에서는 그런 서민들을 스스로 가리켜 '라오바이싱'(老百姓)이라 부른다. 우리말의 '서민'과 같다고 보지만,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다. 즉 우리말의 '서민'보다 쓰임이 더 광범위하고 보다 토속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거. 그래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인민도, 국민도, 시민도 아닌 '라오바이싱'이라고 한다. 그 흔하고 고전틱한 '백성'이라는 표현은 <시경>과 <도덕경>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고, '라오老'라는 글자에는 '오래된, 구식의, 언제나 그러하게'라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대 해석해 들여다 보면 '어쨌거나 우리네는 그 옛날 백성이다'는 속뜻이 내친다는 점에서 이 단어의 뿌리와 근원은 꽤 깊다.

그것이 바로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고착화된 중국인들의 뿌리 깊은 자조와 내면화된 봉건성까지 담아낸 결과물이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시대의 부침에 따라 인민도 되고, 혁명적 군중도 되고, 또 해방 전사나 반동분자도 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실질적인 정체성은 '언제나 봉건 시대의 그 백성'이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음을 견지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 단어 속에서 당대 중국을 봉건 시대와 직통 연결시키는 암호로써 발견한다 해도 놀랍지는 않을 터. 그러한 관점에서 '라오바이싱'의 반대말은 이미 관제 용어가 된 '런민人民'일 수밖에 없고, '라오바이싱의 역사'와 '런민의 역사'는 일치할 수 없는 외견을 띄기도 한다.

즉 보통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서 쉽게 이야기하는 서민들의 '인민'은 이미 경직화된 체제 속에 갇힌 채 중국인이 방송과 제도권 교육 등으로 체험하는 역사를 '런민의 역사'로 보고, 가정에서 부모나 조부모부터 접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의 총합을 '라오바이싱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전자는 통치 집단의 의지에 의해 가공되고 고착화된 것이고, 후자는 날것 그대로의 실상에 가까운 역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의 거리가 사뭇 동떨어져 보이지만, 이게 한데 어우려져 꽤 기묘한 방식으로 나타나 인민들 삶에 '라오바이싱'으로 흔적을 남기고 되새기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게 된 류전윈의 첫 장편소설인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은 제대로 그것을 담아내고 있다. 물론 다 읽은 건 아니고, 200여 페이지까지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충분히 받으며 만끽하고 있는 걸 보면 '라오바이싱'라는 그 단어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된다. 중국 근·현대사를 다루며 중화민국 초년부터 문화대혁명까지 두 집안 쑨씨와 리씨네 가열한 가족사를 통해서 그들의 삶과 인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죽음으로 점철돼 있어, 여기 제목에 쓰인 '고향'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포근함이나, 친숙함,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욕설과 폭력·음모와 배신과 죽음이 난무하고, 그래서 여기서 고향은 때로는 낯선 공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 '노란 꽃'은 '죽음의 꽃'을 말한다기에 이 소설의 제목은 바로 '고향 마을 죽음의 연대기'라고도 볼 수 있다. 절대 무난한 소설이 아니라는 거.

쑨씨네와 리씨네로 대립되는 가열한 가족사, 진정한 '라오바이싱의 역사'

쑨씨네와 리씨네로 대립되는 두 지주 집안, 이들은 그 마촌 지역에서 촌장 자리를 두고 음해하며 가열하게 살육전을 벌인다. 어느 날 쑨라오위엔의 아들 쑨뎬위엔이 목 졸려 죽고, 반대편 리라오시의 살인청부라는 게 밝혀지면서 쑨씨는 양아들 쉬부나가를 사주해 리라오시를 죽이려 하다가 실패, 하지만 그 살수 과정에서 놀라서 죽게 된 리라오시. 이어서 물려받은 촌장자리는 리라오시의 아들 리원나오가 맡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비적들에게 죽임을 당하며 다음 촌장자리는 쉬부나가가 잡게 되고, 부촌장은 쑨씨의 조카 쑨마오단에게 돌아간다. 그러면이 이들 두 집안은 언제 그랬냐듯이 시간이 가뭇없이 흐른다. 이게 1부 '촌장의 피살 - 민국초년'에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이후 2부는 '귀신이 오다 - 1940년'에서는 이들 세대 뒤에 자란 자식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은 쑨뎬위엔의 아들 쑨스건은 팔로군의 중대장으로, 죽은 리원나오의 동생 리원우의 아들 리샤오우는 중앙군의 중대장으로, 그리고 쑨마오단은 일본군 앞잡이 경비대장으로, 이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간단히 보듯이 이들 이야기에서 쑨씨와 리씨네의 대대손손 내려오는 가족들의 변천사가 그 중심에 있고, 그들의 대물린 원한을 배경으로 깔며, 이들 지주에 의탁해 사는 마부와 하인을 그리며 그들 자식들도 연결해 놓는다. 그러면서 중화민국 초년(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쑨원이 중화민국을 세운 1912년 이후 한동안)에서 지주 계급의 살육전을 그리고, 1940년으로 들어서며 당시 일본군이 쳐들어온 중국의 상황을 그리면서 팔로군과 중앙군으로 대표되는 두 젊은이를 내세우며 체제화된 인민의 역사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두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서 '라오바이싱' 역사를 끄집어내 우연과 필연이 서로 맞물리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편소설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은 꽤 의미가 있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 현대중국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의 지난했던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반추할 수 있듯이, 민국 초년부터 해서 문화대혁명까지 다룬 그 이야기 속에서 관제화된 인민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인민들이 지내온 실상에 가까운 이야기로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라오바이싱'의 역사로 변모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무엇이 인민의 역사고, 라오바이싱의 역사인지 딱 잘라 논하기 전,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은 그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제대로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 역사의 끝은 어떻게 될지 기대하며, 쑨씨네와 리씨네의 가열한 가족사를 계속 지켜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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