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장르적 소재에 있어 '전쟁'이라는 테마는 사실 다루기가 조심스럽다. 바로 6.25 전쟁으로 대표되는 그런 것들인데, 이것을 소위 미화시키거나 아니면 역설적으로 그리다 보면 메시지는 공허해지고, 작금의 남북한이 대치된 상황을 희화화시키는 역주행의 결과까지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가 이것을 담아낼때는 자심해진다. 이른바 '북한을 어떻게 그려야할까?' 라는 원초적인 문제부터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터. 그런 점에서 이번에 나온 전쟁영화 아니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그 너머의 인간적인 감동과 휴먼을 담으며 그려낸 영화 '적과의 동침'은 일견 와닿는 구석이 있다. 이념과 체제라는 무거운 탈 속에 갇힌 인민군과 그런 건 전혀 모르고 살았던 어느 깊은 산골 석정리 마을 주민들과의 대치 국면은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이게 영화의 주요 볼거리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들어가서 보여지는 지점은 일견 '웰컴 투 동막골'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비슷해 보인다. 물론 엄청난 인기를 선보였던 2005년작 '웰컴 투 동막골' 또한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따스한 인간미를 풍기며 한 편의 동화같은 전쟁을 다루었다면, '적과의 동침'은 그런 플롯에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전쟁통에 '살아남기' 대작전을 그리며 코믹은 물론 종국엔 휴먼까지 그려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민군은 분명 이들에게 적이 되기도 한편으론 동지가 되기도 한다. 바로 적과 동지가 뒤죽박죽된 석정리 마을의 좌충우돌식 휴먼코미디로 완성시키며 종국에는 인간은 누구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며 석정리 마을 사람들을 그 중심에 갖다 놓는다. 그렇다면 그 석정리 마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전쟁 안해유?
전쟁도 소문으로만 듣는 시골마을 석정리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때는 한국전쟁, 온 나라가 난리통이지만 라디오도 잘 나오지 않는 석정리는 평화롭기만 하다. 구장(변희봉)댁의 당찬 손녀딸 설희(정려원)의 혼사 준비로 분주한 동네 사람들 앞에 유학파 엘리트 장교 정웅(김주혁)이 이끄는 인민군 부대가 나타난다. 초반 인민군의 마을 접수는 순조로워 보인다. 이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재춘(유해진)과 두 팔 걷어붙이고 그들을 도와주는 백씨(김상호), 조용하고 인자한 성품의 구장(변희봉) 등 정 많은 마을 사람들 덕분에 점점 무장해제되는 인민군. 그러나 이는 모두 마을의 안전사수를 위한 주민들의 신속하고 빈틈없는 로비작전이었는데.. 적과 동지가 뒤죽박죽 된 석정리 그러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 상부에서는 비밀작전을 명령하는데…

(이제부터 '석정리'는 우리 인민군이 접수한다. 알갔나? 종간나 새끼들!!)
어느 깊은 산 속의 석정리 마을, 라디오를 통해서 6.25가 발발했다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공기좋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은 잔치 분위기다. 석정리 최고의 신여성 '설희'(정려원)가 시집을 가게 된 거. 그런 경사스런 날을 앞두고 어디서 인민군 부대가 석정리 마을을 들어와 접수하기에 이른다. 위 그림처럼. 이들의 목적은 남조선의 핍박받는 인민을 구하고 갱생시켜 이곳을 이른바 전초기지로 삼는 것인데, 하지만 석정리 마을 주민들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터라 이들의 침입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어떻게하랴.. 그 무서운 빨갱이들이니 쥐 죽은 듯이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그래서 각자 집안의 가사물품을 빼앗겨 공동 분배로 운영이 되고, 부녀자들은 군인들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단체로 밥을 짓고, 남자들은 폭격에 대비해 방공호를 만드는데 투입이 된다.
인민군이 접수한 석정리 마을, 이들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펼쳐진다.
영화는 이렇게 중반까지 석정리 주민과 인민군 간의 밀고 당기는 상황을 코믹적으로 그리며 전개를 시킨다. 사실 인민군도 처음에는 가오를 잡고 이들을 윽박지르는 상황에서 조용하고 인자한 성품의 구장 등 정많은 마을 사람들 덕분에 무장을 점점 해제한다. 이들을 그렇게 만든 석정리의 사람들의 눈치 백단이 아주 수준급인데, 특히 재춘(유해진)의 임기웅변식 대처와 앞잡이로 자청하고 나선 백씨(김상호)는 제대로다. 그러면서 이들의 웃지못할 공동체 생활이 그려지는데, 특히 시집을 갈려는 찰나 파토가 나버린 설희는 인민군 장교 '정웅'(김주혁)을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정웅이 그녀를 대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던 게, 과거 10년 전 이들은 서로 마음에 두었던 정인 관계였고, 서로가 아는 척을 안 하고 접근했지만 둘의 못다한 로맨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다고 이들 로맨스가 극에 방해될 정도로 가열한 수준은 아니다.

(인민군과 석정리 마을 사람들은 이젠 한몸?! 방공호를 파면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다.)
이렇게 석정리 마을에 주둔하며 지냈던 인민군은 상부에서 비밀작전 명령이 하달되고, 그 와중에 미군 정찰기에 폭격을 맞으며 마을이 쑥대밭이 된다. 이에 퇴거 명령이 떨어지고, 이곳 석정리 마을 주민을 모두 몰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왜냐? 다른 지역에서도 믿고 그냥 두었다가 반동분자로 인해 정보가 새나가 고초를 겪었다는 거. 그래서 전원 다 죽이라는데, 그게 바로 주민들이 스스로 파놓은 방공호로 내몰고 거기서 다 총살 시키라는 것이다. 이에 첫사랑을 간직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간직한 인민군 장교 '정웅'은 차마 그 명령을 실행하지 못하고, 일단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창고에 가두어 놓는다. 하지만 퇴각을 앞두는 시점에 상급 부대장이 창고에서 뛰쳐나온 석정리 마을 주민들을 보고 노발대발, 바로 방공호로 쳐놓고 모두 총살을 가하라 명령한다.
과연 이 상황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정말로 그들은 몰살을 당했을까? 자신들의 무덤인지도 모르고 파놓은 그 넓은 방공호에서 석정리 주민들은 그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주인공 인민군 장교 '정웅'은 자신의 첫사랑 '설희'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아니면 산화를 했을까? 영화의 마지막 10여분의 총살과 총격씬은 꽤 의미심장한 시퀀스로 연출이 돼, 영화가 내내 안고 있는 웃음의 코드를 단박에 새드한 분위기의 휴먼과 감동의 경계에서 관객들을 몰입케 했다. 절대 헛웃음이 나올 수 없는 상황, 특히 마지막에 마을 이장 변희봉을 위시해 '만세'를 외치는 씬은 깔그장한 상황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를 가열하게 엿볼 수 있다.

(과거 서로가 첫사랑이었던 정웅과 설희, 그렇다고 이들의 로맨스가 가열하진 않다.)
이렇게 영화는 분명 6.25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쟁영화라는 포괄적인 장르를 안고 있지만, 여기서는 전쟁에 대한 그림이 가열하게 뿜는 건 아니다. 중반 이후 미군 정찰기의 폭격씬과 마지막 10여분의 가열한 총격씬이 사실 전부다. 즉 이 영화는 그런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기 이전에, 전쟁으로 인해서 대치된 북한 인민군의 이념에 몰린 상황과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석정리 마을 주민들을 대비시켜 서로간 좌충우돌하는 그림으로 전개가 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서로 동화돼가는 것은 아니다.
'적과의 동침'에 빠진 석정리, 코믹에서 휴먼의 쌍곡선을 가뭇없이 타버리다.
물론 주인공인 인민군 장교는 첫사랑을 만나고 지내며 일견 이 마을을 절대 반동분자로 내몰 수 없음을 인지하지만, 군인이기에 상부 명령에 따라야 하는 그의 고뇌가 중반 이후 펼쳐져 주목을 끈다. 반면 여기 여주인공 설희는 신여성이지만 한 남자에게 순종적이고 순애보적으로 그려져 반공청년단의 그 남자와 인민군 장교 사이에 갈등을 겪는다. 그런데 여기 첫사랑 '정웅'을 만나 그가 인민군이라는 사실을 떠나 누가 누구를 구제하는 거냐며 그를 야멸차게 대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 나서는 그의 지시대로 마을 구조 작업에 나서게 된다. 그래도 학교 선생이라는.
이외에도 이 영화는 소위 명품 조연들 이 영화에서는 코믹트리오라 불린 '유해진, 김상호, 신정근'과 함께 변희봉, 양정아 등이 대거 포진해 실제 '대한 늬우스'에서나 봄직한 시골의 살풍경과 넉살스런 대사로 인해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앞잡이로 나선 김상호의 모습도 웃기지만, 이보다 미친 존재감을 제대로 선보인 재춘 역의 '유해진'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다. 게기 먹는 낙으로 사는 뚱띵이 아들을 잃은 후에 반 미친 놈처럼 그가 쏟아내는 언사는 '역시 유해진이다'를 보여준 거. 그외 마을 이장 역에 '변희봉' 옹의 마을을 살리기 위한 농익은 연기와 나름 괜찮은 미모임에도 불구하고 시골 과부 역을 너무나 천역덕스럽게 해낸 '양정아'도 잘 어울렸다. 물론 두 주인공 인민군 장교 역의 '김주혁'과 순박하면서도 당돌한 시골처녀 설희 역의 '정려원'도 제대로 호연을 펼쳤다.
아무튼 영화는 분명 전쟁을 소재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점이 밝게 흐르는 구도다. 이게 전쟁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중반 이후 폭격을 당하고, 상부의 지시로 석정리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위기에 처해지는 그 순간부터 영화는 코믹이 아닌 새드와 휴먼의 경계에서 갈피를 못잡을 정도로 이목을 가뭇없이 집중시킨다. 특히 마지막 10여 분, 방공호에서 벌어진 그 씬은 최고의 몰입감이었는데, 그게 아마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바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 어떤 이념과 체제로 무장한 군인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순박한 사람들, 그 지점에서 이들은 적이 되기도 동지가 되기도 하며 같이 동침에 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리고 그 순간 이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 묻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