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한국영화는 작년의 그런 임팩트한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게, 드라마성이 짙은 영화들로 대거 포진돼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살인과 폭력으로 점철된 범죄형 스릴러가 아닌, 말 그대로 현재 우리의 삶과 일상을 그려내는 그림들로 포팅돼 많은 동질감을 부여하며 이목을 끌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에 개봉한 류승범 주연의 <수상한 고객들>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제목에 '수상한'이 들어가서 마치 스릴러가 아닐까 하지만 이 영화는 다분히 드라마적이다. 그것도 보험계약을 맺은 고객들을 상대로 우리네 일상을 보여주며 여기 힘들어하는 고객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야심충만 보험왕 배병우의 고군분투기 '수상한 고객들'
물론 이들을 상대하는 보험왕 '배병우'라는 인물이 자신의 고객들을 만나며 고군분투하는 그림이 주류를 이루지만, 종국엔 '고객님의 꿈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며 영화는 그 어떤 휴먼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거. 하지만 그가 앞만 보고 달려온 실적에 희생양이 된 고객들은 그냥 '호갱님' 수준으로 진정한 고객님은 외형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그가 그들을 통해서 따뜻한 휴먼을 배우게 되면서 개과천선? 하는 그림을 베이스로 깔고, 진정한 고객님을 통한 한 편의 휴먼적인 드라마로 완성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수상하다고 했을까, 또 처음 호갱님에서 후에 진정한 고객님으로 어떻게 탈바꿈이 되었는지,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웃음보장성 코미디 (수상한 고객들) | 고객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한때는 야구왕을 꿈꾸던, 업계 최고의 안하무인 보험왕 배병우(류승범). 어느 날 고객의 자살방조혐의로 인생 최대 위기에 처한 그는 몇 년 전, 고객들과의 찜찜한 계약을 떠올리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우울모드 기러기 아빠 오부장(박철민)과 까칠한 소녀가장 소연(윤하), 입만 열면 욕설을 내뱉는 꽃거지 청년 영탁(임주환)과 애 넷 딸린 억척 과부 복순(정선경)까지. 방심하다간 한 순간에 한강물로 뛰어들 기세인 그들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병우는 온갖 감언이설과 허세를 총동원, 고군분투 한다.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순수함과 가족애에 점점 감화되는 병우. 수상한 고객들을 위한 그의 A/S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보험왕으로 등극한 배병우, 그를 만들어준 고객들은 진정한 고객님이었나? 호갱님이었나?)
영화의 시작은 여기 '수상한 고객들'이라 칭한 그들이 한곳으로 모이며 다소 의미심장하게 포문을 연다. 임팩트한 교통사고 현장과 함께.. 그로부터 2년이 흐르고, 여기 업계 최고 보험왕에 오른 배병우(류승범)는 거액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다른 보험업계로 이전을 준비하며 부푼 꿈에 사로잡힌다. 대한민국 상위 1% VVIP 고객의 자산관리 플래너로 다시 시작을 할려는 찰나, 얼마 전 삶의 희망을 잃고 찾아온 중년신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그는 자살방조혐의로 위기를 맞는다. 생명보험에서 있어서 인지된 자살은 보험금 지급은 고사하고 방조죄로 몰리기 때문에 그는 소송과 내사에 휘말리게 된다. 이때 2년 전 교통사고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그때 명퇴당한 오부장(박철민)의 권유로 실적 때문에 생명보험을 들게 한 게 찜찜해진 배병우, 곧바로 그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생의 희망이 없어보였던 그들이라 더욱 불안해진 그는 일일히 그들을 찾아가 생명보험 대신 연금보험을 들라며 감언이설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들이 사는 모습은 궁핍하게 살 정도로 삶이 척박해 보인다.
보험왕 배병우가 2년 전, 계약한 생명보험을 떠돌리며 그들을 찾아 나선다.
남편을 교통사고 잃고 애 넷 딸린 독종 과부로 사는 복순(정선경)네는 한마디로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큰딸 중학생을 빼고는 모두 코흘리개 아이들, 복순은 남편 대신 청소부 일을 하며 근근히 생활고를 버티지만 이마저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보험 얘기를 꺼내드니 말이 안 먹힌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찾은 고객은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가장 소연(윤하), 어디 한강 다리 밑에서 다 쓰러져간 캠핑카로 사는 그녀는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 부르며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그런 아가씨다. 집안이 풍비박산나 돈이 필요했던 그녀에게 삶은 고달픈 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찾은 고객은 외모는 꽃미남인데 풍찬노숙으로 찌든 꽃거지 출신의 영탁이(임주환), 이 청년은 어렵게 사는 누나와 조카와 함께 살지만 틱장애를 심하게 앓고 있어 매번 괴성과 X새끼 비스름한 욕지거리를 쏟아내는 장애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러기 아빠로 명퇴당해 삶이 외롭고 우울해진 오부장(박철민)까지.. 여기 배병우가 만나는 고객들은 어느 하나 활기찬 모습이 아닌, 삶의 비전과 희망도 없이 어렵게 사는 이들이다.
(남동생과 힘들게 사는 소녀가장이자 라이브 카페 가수 역 '윤하', 노래 만큼이나 연기도 굿)
그렇기에 이들을 찾아가 온갖 감언이설과 허세와 넉살로 생명보험에서 연금보험으로 바꿀려고 해도, 도통 듣지를 않는다. 이미 이들에게 보험은 의미가 없이, 그저 언제든지 한강에 뛰어들 기세로 삶은 고달프고 힘든 거. 그러니 언제든 자살할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이들을 어떻게든 막아내는 게 배병우의 일차적 목표가 되는 것인데, 그러면서 그는 이들을 만나며 과거 자신이 실적 때문에 대충 보험을 들게 한 걸 자책하고, 때로는 열받아 하며 어떻게든 그들에게 계속 접근해 이들을 막으려 한다. 그러면서 병우는 이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체험도 해보면서 신세계를? 맞본다.
자신이 그토록 잘나가던 시절에는 꿈도 못꾸었던 말로만 듣던 새벽에 쓰레기도 치워보고, 풍찬노숙도 해보고, 직접 주사까지 다 받아주는 등,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이들 고객과 한몸이 된다. 그렇다면 배병우는 종국엔 이들을 감동시켜 삶의 자살 같은 위기에서 새 희망을 찾아주게 될 것인가? 아니면 모두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인가? 굳히 스포일러라 하기엔 이 영화가 휴먼드라마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예상이 되는 그림들이다.
(폐지나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수거하는 틱장애우 영탁이, 그는 진정한 꽃거지였다.)
이렇게 이 영화는 보통 우리네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그것도 소시민들 특히나 힘들어 하는 이들을 담아내는데, 그런 모습은 돈이 없어 가난에 찌들고 사채빚에 시달리고 또는 병마에 힘들어 하는 모습으로 이들 처지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여기 고객들은 배병우에게 있어 정말 진정한 고객이 아닌 '호갱님' 수준으로 접근해 처지곤란의 대상으로 처음 접근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속에서 자신만의 연기 색깔을 확고히 갖고 있는 '류승범'이 온갖 넉살과 허세를 펼치며 생활형 코믹 대사와 연기가 몸에 배여 제대로 웃음을 선사하는데, 이게 극 중반까지 그의 개인기의 향연을 보듯 유머를 선사한다. 정작 그 고객들은 심각한데 말이다. 물론 그런 배병우와 함께 그의 매니저로 나온 성동일도 애드립을 치며 소소한 웃음을 주었지만, 어쨌든 류승범은 여기서 그 이름값 만큼이나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4인4색의 보험계약 고객들, 우리네 지치고 힘든 삶의 자화상들이다.
이외에도 삶에 힘들어하는 4인4색의 고객들도 저마다 색깔을 보이며, 꽤 호연을 펼쳤으니 그것은 배병우에게 들었던 보험 고객들의 상황으로 그려진다. 우울모드로 기러기 아빠 오부장(박철민)과 까칠지존 소녀가장 소연(윤하), 애 넷 딸린 독종 과부 복순(정선경), 입만 열면 19금의 일명 꽃거지 영탁(임주환), 그리고 배병우의 애인으로 외모도 마음도 퍼펙트한 무결점의 여친 혜인(서지혜)까지, 이 영화는 색깔이 뚜렷한 주요 캐릭터들이 배병우의 생명보험 고객으로 나와 눈길을 끌고 있는 거. 이미 <위험한 상견례>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펼친 중년남자 '박철민'이 또 나와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그의 우울한 연기는 웬지 부합이 잘 안 된 느낌이었고, 대신에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정선경이 삶에 힘들어하는 과부 연기는 나름 좋았으며, 소녀가장 역의 윤하는 실제 노래 실력만큼이나 연기도 좋았다. 그리고 틱장애 연기를 제대로 선사한 영탁이 역의 임주환은 새롭게 발굴한 인물이었는데, 틱연기가 아주 제대로였다는.. 개쉐끼..ㅎ
'호갱님'이 진정한 '고객님'이 되는 과정의 코믹한 휴먼드라마
이렇듯 영화는 4인4색의 삶의 캐릭터를 뚜렷히 보여주고, 주인공인 배병우와 그들을 결합시켜 어떤 시너지를 내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는 정작 배병우 입장에서 펼쳐지며 그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즉, 그놈의 실적 때문에 교통사고 현장에 모인 이들의 내막도 자세히 모른 채, 무조건 실적과 성과주의에 급급히 보험계약을 한 것이 화근이 된 셈. 그러니 이제와서 이들이 자살도 서슴치 않을 것 같으니 계약을 해지하거나 다른 것으로 전환케 할려는 그의 고군분투기가 코믹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종국에는 이들과 같이 체험하며 동화돼 진정한 고객님을 상대하는 스킬을 배우게 되는 배병우, 그가 마지막에 그렇게 외친 "고객님의 꿈은 저의 꿈입니다."가 바로 이루어지는 순간인 셈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꽤 교과서적으로 흐르며 이른바 따스한 인간애와 가족애를 담아 귀결시키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모습 때문에 가르치려드는 느낌마저 배제할 수 없지만, 어쨌든 류승범이었기에 그가 펼쳐낸 코믹한 보험영업의 현장은 보는 이들에게 재미는 물론 종국엔 예측 가능한 감동과 마지막 그의 연애담까지 그리며 영화는 갈무리된다. 결국에 자본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보험이란 필수불가결한 우리의 족쇄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실적 때문에 또 자신의 그 어떤 상황 때문에 '호갱님'으로 몰려 맺은 그 계약을 통해서, 이렇게 진정한 '고객님'이 된다면 그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거다.
희망이 없어진 우울한 인생의 A/S를 받으실 '호갱님'은 어디 없으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