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 Little Black D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여기 예쁘고 산뜻하고 상큼한 봄처녀를 연상케 하는 4명의 처자들이 봄 마실을 나왔다. 그런데 마실도 아주 매력적으로 온갖 치장을 하고 나왔으니 그녀들에게 이번 마실은 인생의 황금기였나 보다. 하지만 그네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황금기가 아닌 대학의 연영과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참 운이 좋은 건지 몰라도, 그렇게 방황하고 허위허위 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심각해 보이질 않는다. '솔까말'로 부모 잘 만나서 아무런 걱정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그렇게 보였으니.. 그녀들의 일과 사랑은 사실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요, 심지어 공허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진정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20대 처자들의 이야기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직도 작금의 청년실업이라는 파고 앞에서 오늘도 내일도 힘들어하는 20대 청춘들이 보기엔 이 영화는 꽤 불온할 정도로 예의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존에 히트를 쳤던 <싱글즈>처럼 20~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현실감있게 그린 이야기라기 보다는, 대한민국 상위 5%에 속한 이들이 명품을 사랑하고 클럽문화를 즐기며, 삶에 아무런 고뇌없이 지내는 그녀들의 배부른 방랑과 방황기라 감히 평하고 싶으니,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꿈은 명품관 현실은 아울렛 | 이 시대의 Must Have Item

명문대 연영과 학생 유민, 혜지, 민희, 수진은 졸업만하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쌓아놓은 스펙이라고는 그저 그런 몇 번의 연애와 클럽생활 뿐...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같은 처지에 놓인 서로를 위로하며 지내던 중, 혜지가 스타덤에 오르게 되자 묘한 질투심이 생기면서 그들의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눈부시게 살고 싶었던 그들에게 찾아온 인생의 20사춘기! 킬힐 보다 아찔하고 아메리카노 보다 씁쓸한 방황을 마치고 화려한 인생의 2막을 열 수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이들은 클럽에서 모인다. 그녀들에게 맥주나 소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4명의 예쁘고 매력적인 연영과 출신의 20대 처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다. 그런데 이들은 각기 개성이 나름 뚜렷하다. 절대로 구차하거나 궁색해 보이질 않는다. 다들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일 정도다. 박한별이 분한 '혜지'라는 처자는 실제 그녀의 정형화된 이미지처럼, 탁월한 비주얼을 무기로 쿨한 성격에 빵빵한 집안을 배경으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능력녀다. 아니 능력녀가 아니라 그녀는 소위 날라리에 밉상녀다. 주야장천 클럽에 도장찍는 죽순이로 오늘도 클럽에서 놀다가 우연찮게 CF 감독에게 발탁돼 연예계로 입성한 그녀다. 운도 좋다. 그리고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의 친구로 나와 통통튀는 아영 역을 통해서 급부상한 '유인나'. 그녀가 분한 '민희'라는 처자는 이혼을 앞둔 부잣집 딸내미로 세상 물정 모르고 사는 심각한 것 없이, 그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로 여기 4명 중에서 유일하게 코믹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인물이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 먹고, 유학을 위해 영어학원에 다니는 게 일과다.

4명의 캐릭터 색깔은 분명 다르지만, 그조차도 배불러 보인다.

그리고 현재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 나름 좋게 보고 있는 처자이자 공회장 막내딸로 나오는 조현진 역의 '차예련'. 그녀는 여기서 꽤 시크하면서 자존심이 강한 차도녀 '수진'으로 나오는데, 그녀의 외모적 이미지와 꽤 부합돼 보인다. 네 명 중 가장 머리 좋고 스펙이 좋으면서도 이성적인 그녀지만, 매번 도전하는 영화 오디션은 실패요, 이런 자신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 그녀다. 그래서 그녀는 혜지가 하룻밤 사이에 CF 스타로 떠오르는 걸 보고, 못 마땅해하며 그녀와 대판 싸우게 된다. 영화는 그 지점을 그녀들의 '갈등'이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캐릭터는 소녀장사 이미지가 아직도 굳건한 윤은혜가 분한 '유민'. 어찌보면 그녀가 가장 와 닿는 캐릭터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대한민국 가정의 딸로 나오는데, 명품관에서 우아하게 쇼핑하고 브런치를 즐기기를 꿈기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요, 그래도 먹고 살려고 공중파의 보조작가로 들어가 나름 직장의 생활전선을 보여준다. 작가님 아이들 뒷치닥거리부터 해서.


(그녀들이 몸푸는 곳은 찜질방이 아닌, 고품격 '스파'다. 요즈음 처자들은 다 이렇게 노남?!)

이렇게 여기 4명의 처자들은 각기 개성과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게 보인다. 명품으로 치장한 클럽의 죽순이부터 해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준비중인 예비 유학생, 아픔을 내색하지 않는 자존심 강한 차도녀, 그리고 다소 평범하게 보이는 유민까지 말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그녀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지내고 활동하는지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게 솔직히 말해서 와 닿지가 않는다. 너무나 잘 풀리고 안 풀리고를 떠나서 이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엿보이질 않는다. 주인공 격이자 화자로써 접근하는 유민은 혜지가 소개해준 오렌지족같은 느끼남한테 원나잇스탠드로 빠져들다가 임신까지 가면서 후회하고, 다만 이들이 방황하고 고민한 것은 클럽의 죽순이 혜지가 일약 CF로 뜨고 영화판에서 주연급은 아니지만 조연급 배우로 활동하면서, 이들 지켜본 차도녀 수진과 대판 싸우고 다시 봉합되는 것이 사실 다다. 

그녀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에 대한 이야기, 영화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녀들의 일과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꽤 헐겁고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게 본 씬도 있었다. 주인공 유민의 고등학교 친구로 나왔던 '영미'와의 이야기, 유민 입장에서는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드라마 작가의 꿈을 포기 못하고 계속 한 길을 파온 거. 이때 유민은 보조 작가지만 그래도 명색이 공중파 출신이었고, 하지만 영미는 이름없는 방송국에서 매번 낙방하고 고배를 마시며 자신의 꿈을 못버린 진심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유민을 통해서 위안받고 잘 지내나 싶었는데,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씬은 나름 의미가 있는 시퀀스였다. 실제 한두 달 전 모 작가가 생활고와 병마를 못 이기고 죽은 것처럼 말이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마블미', 예쁜 처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일 뿐.

이렇듯 영화는 시종일관 20대 처자들이 처한 일상을 좇듯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일상은 작금의 청년실업이라는 파고가 무색할 정도로 꽤 괴리감을 주고 있다. 유민과 수진이 직장내 모습과 구직의 모습을 그나마 보여주었지만, 이마저도 그냥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나마 차도녀로 나온 수진의 고민이 좀 와 닿을 뿐, 혜지와 민희는 소위 말해서 된장녀로 현실에서도 따 당하기 쉬운 스타일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안고 있는 그리고자 하는 그 어떤 소명의식이 잘 전달이 되질 않고, 심지어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이런 느낌은 지속이 된다. 즉 이 세상은 그녀들에게 아직도 뷰티풀하고 나에겐 내일의 희망이 항시 뜰 거라는 기대치로 부풀려진 그녀들의 배부른 방랑과 방황, 무엇이 잘못되고 꼬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두 친구간에 싸움을 봉합하는 수준으로 이들이 처한 고민과 고뇌를 대신했다면 이건 영화적 미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누구나 여자든 남자든 고민으로 가득차고 구차하게 소위 폼 안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남부럽지 않게 눈부시고 뷰티풀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현실의 벽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슬기롭게 이기고 헤쳐나가는 게 중요한 것이지, 여기 영화처럼 그냥 세월 좋아서 갖은 게 기본적으로 있다 보니, 그냥 그렇게 실실되고 클럽과 스파를 오가면서 되는 건 아닐지다. 그렇기에 영화는 꽤 현실감이 떨어지게 리얼리티를 못 살렸다. 초반에는 트렌디풍으로 그려내며 드라마적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후반에는 그냥 의무적 갈등과 화해라는 식상한 코드를 집어넣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이라는 주제는 꽤 공허하고 피상적인 성장통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현실에선 보기 힘든 4명의 예쁜 처자들이라 더욱 공감하기 힘들 정도다. 결국 영화의 긴 제목을 줄인 '마블미'처럼 '경이로운 나'에게 바치는 그녀들의 엣지있는 라이프스타일 보고서 정도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상위 5%에 속한 20대 처자들의 이야기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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