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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에서 또 다른 거장의 반열에 있는 작가 중 한 사람 '박범신'. 학창시절 그의 몇몇 작품을 본 기억이 이제는 가물가물해져 잊혀진 그였지만, 작년에 그의 작품 중에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삶을 아주 문학적으로 조망한 <고산자>를 읽고서 새로운 감흥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중에.. 작년 말 신작으로 나온 두 권의 소설이 있어 이렇게 컬렉하게 됐다. 물론 적립금 만료일에 맞춰서. 어쨌든 한참 중국작가 쑤퉁의 소설에 빠져 있는 강호지만, 우리나라 말글의 향연을 직접 작가로부터 오롯이 느껴보고 싶은 발호심에 컬렉한 두 권의 소설, 간단히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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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신작 장편소설 <은교>와 <비지니스>, 사랑과 삶에 대해서 말하다.
먼저 '은교'라는 소설은 대충 알기론 한 소녀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얼추 '로리타'가 생각나는 플롯이지만, 작가는 소설 <은교>에서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인가.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그러면서 박범신 스스로도 "이 소설로 나는 내 안의 욕망이라는 게 여전히 눈물겹게 불타고 있음을 알았다!"는 말처럼 꽤 의미심장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랑과 욕망,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이면서 존재론적인 메시지를 풀어낸 줄거리는 이렇다.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이 되었다. Q변호사는 이적요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막상 노트를 읽고 나자 공개를 망설인다. 노트에는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인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베스트셀러 <심장>의 작가 서지우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던 것. 또한 <심장>을 비롯한 서지우의 작품은 전부 이적요가 썼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이적요기념관 설립이 한창인 지금, 이 노트가 공개된다면 문단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 것이 빤하다. 노트를 공개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 Q변호사는 은교를 만나고, 놀랍게도 서지우 역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을 듣는다. 은교에게서 서지우의 기록이 담긴 디스켓을 받은 Q변호사는,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디스켓을 통해 그들에게서 벌어졌던 일들을 알게 되는데…
이렇게 보듯 한 늙은 시인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실들, 열일곱 소녀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고백, 그 속에서 다른 사람까지 죽이게 된 사연 등..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꽤 그림이 그려지는 게, 무언가 순수하면서도 갈망과 욕망의 경계에선 우리네 사랑에 대한 그림을 그려낸 것 같다. 그것이 과연 어떤 결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박범신이기에.. 마냥 끌리는 '은교'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모순과 비판 그리고 자조적 비애감 <비지니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설은 바로 올해 나온 신작 <비지니스> 다. 제목만 봐서는 마치 기업소설?의 느낌이지만 정작 그렇지 않다. 제목처럼 비지니스로 점철된 우리네 사회에 대한 모순을 담고 있다.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천민자본주의의 비정한 생리에 일상과 내면이 파괴되어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서늘한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가슴 저리게 그려내고 있다는 소개다. 그러면서 작가는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전 세계적인 자본의 폭력성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냈고 있다는 평가다.
즉 자본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조 섞인 비애감이 드는 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오욕이 가득한 화류항(花柳巷)으로 나가는 어미들이 있는 유례없는 나라가 내 조국이고, 그 어미의 채찍질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세습되는 ‘귀족’들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오진 약육강식의 정글 속을 헤쳐 나가는 전사로 길러지는 아이들의 나라가 내 조국이었다.” 여기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개발 지향에 따른 자본주의적 비애(悲哀)를 물씬 풍기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끌리는 소설 '비지니스'
더군다나 이 소설은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문예지 『소설계』 에도 최초 동시 연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역시나 여러 말이 필요없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박범신 그만이 뿜어낸 필력이 어떠한지, 과연 이 가열한 자본주의 세대를 어떤 비판과 자조로 담아낼지 기대가 되는 장편소설 '비지니스'다. 매혹적인 앞 표지의 문구 "이제 세상의 주인은 ‘자본’이고, 삶의 유일한 전략은 ‘비즈니스’다!"처럼 또 매혹적인 한 여자의 뒷태처럼 매력적인 소설이 될지, 그 비지니스 현장을 당장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