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비가
쑤퉁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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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기작가이자 이제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쑤퉁'은 중국 문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다. 바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강호는 그런 일환으로 얼마 전부터 <나, 제왕적 생애>, <이혼 지침서>에 이어 읽게 된 신작 소설이 <화씨 비가>다. 이 한 편의 장편소설은 한마디로 한 가족사의 비극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가족사기에 우리네 소시민들이 그렇게 살아왔듯 크게 우리나 중국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중국의 70~90년대 배경이다 보니 좀더 찌들어 보이고, 보통 인민들이라 불리는 특히 멸시받는 하층민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인지라, 그들의 삶이 좀더 가열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른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래서 어찌보면 더욱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 깔끄장한 분위기를 관통하며 종국에는 인간 세상에 대한 쓰디쓴 풍경을 말하고자 했던 '화씨 비가'. 과연 그 화씨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떠나보자.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시대는 70년대로 중국 남부에서 살아가는 한 하층민 가족 '화씨네'. 가장은 '화진더우'요, 아내는 '위펑황' 그리고 자식들은 총 다섯 명, 위로 졸로니 딸이 넷, 막내는 아들이다. 순서도 신메이, 신란, 신주, 신쥐, 그리고 막내 아들 '두후'까지.. 이렇게 자식이 다섯이요, 친척으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격인 고모 '화진메이'가 있다. 우선 이야기는 죽은 '화진더우' 망령의 서술로 진행된다. 즉 그는 죽어서 저승에 와 재판관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토로한다. 수년 전 아내가 일하는 직장 연료창고에서 자살을 했고, 화진더우는 홧김에 복수심에 불타 아내가 다니던 그 연료창고에 불을 지르고 방화범으로 잡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바로 감옥에서 저승의 아내를 만나볼 심산으로 자신도 자살을 한 거. 참 대책없는 인간이 아닐 수 없는데...

망령이 된 가장 '화진더우'의 남겨진 가족사 관망하기, <화씨 비가>

그래서 이렇게 하늘나라로 올라온 그가 이승에 남겨둔 가족은 그의 누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다. 이때부터 그는 원혼이 돼 구천을 떠돌며 자신이 남겨둔 가족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가족의 일상이 가열하게 펼쳐진다. 20살 신메이부터 6살 된 막내 아들 두후까지.. 이들의 일상은 각자 역할에 맞게 나름 바쁘게 지낸다.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슬픔도 잊은 채 고모와 함께 이들 화씨네는 참죽나무길이 있는 그 동네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 딸 넷은 조신거하거나 참한 딸들이 아니다. 각 생활전선에서 나름 열심히 버티는 그들이다. 막내 두후는 외동아들로 애지중지 키워져 자란 사고뭉치고, 이들을 돌보는 고모는 한마디로 궁상맞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면이 많다. 즉 고모로 인해 어찌보면 그나마 여기 화씨네가 유지될 정도로, 죽은 화진더우의 여동생인 고모는 청상과부의 몸으로 조카 다섯을 고집스럽게 길러내는, 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자 그녀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매 항상 각 딸들이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상황이 전개되면 그 자리에 항상 고모가 끼어서 중재하거나 도리어 일을 망치는 등, 그녀는 화씨네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이런 그들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화진더우는 억장이 무너지고, 손을 쓰지 못하는 무력함에 자신을 탓하며 그래도 그 고마움에 계속 관조적으로 화씨네를 지켜본다. 신메이가 죽은 엄마의 못 받아낸 월급을 받겠다며 성깔을 부리고, 둘째 신란은 남친을 잘못 사귀어 덜컥 임신하자 고모와 함께 고향땅으로 찾아가 낙태수술을 하다가 그만 쇼크사로 죽게 되고, 악발이 신주는 더욱더 옹골지게 삶의 악다구니로 일관하며 지내고, 막내 딸 신쥐는 그저 그렇게.. 두후는 화씨네 유일한 아들이지만 귀여운 구석에 사고뭉치로,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살아간다. 어느 덧 세월이 십년이 지난 80년 대, 아비의 원혼은 하늘나귀를 타고 계속 구천을 떠돌며 화씨네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제 훌쩍 커버린 이들 다섯 명의 운명도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큰딸 신메이는 나름 자수성가한 절름발이 페이성과 우여곡절끝에 결혼하게 되고, 결혼 후 그의 무람없는 태도에 홧김에 이혼하려다 혼절해 간염에 걸리고, 이를 수습하려는 남편은 고모의 조언으로 거짓 자살을 기도하다가 뇌를 손상당해 반신불수가 돼 신메이가 그를 평생 수발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악다구니로 버텨온 신주는 아직도 그 기질을 못 버리고 삶을 거칠게 살아온다. 남친을 뭐 보듯이. 그리고 막내 신쥐는 또 그저 그렇게, 그런데 문제는 바로 아들 두후였다. 이제는 십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그런지, 이놈이 하는 짓이 크면 클수록 사내답지 못한 구석이 차츰 보이기 시작하자, 화진더우의 애를 더욱 태운다. 급기야 동네 아는 형이라 동성애와 빠지는 등, 이를 알게 된 죽은 아비의 원혼은 미칠 노릇이다. 내 아들이 '게이'라니 하면서...

그리고 세월이 다시 10년이 흘러 90년대. 이제는 남은 세 딸이 모두 출가한지라 수십 년을 이들을 따라다니며 지켜본 화진더우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 그동안 그저 바라만 보고 안 좋은 모습에 대해서 가열한 욕지거리만 남겼을 뿐, 사실 그가 한 것은 없다. 심지어 죽은 아내 펑황의 원혼도 만나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계속 구천을 떠돌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지켜봄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후가 마지막까지 동네 형의 꼬임에 넘어가 매춘을 하다 걸리는 등, 화진더우는 더이상 아들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어디서 소문을 듣고 '저 놈은 내 아들이 아닐거'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가족을 수십 년을 돌보며 살아온 고모마저도 나이가 일흔에 가까워져 그녀마저 이제 기력이 쇠잔해지며 이승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한 가족사의 비극적 이야기지만, 통속적인 맛과 처연함까지 삶이 그렇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고모는 화씨네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어떻게든 삶의 끈을 놓치 않으려 한다. 이를 처연하게 바라보는 화진더우는 이젠 고모를 저승으로 부르려 하는데.. 과연 이 늙은 남매는 하늘에서 만났을까? 아니면 남겨진 화씨네 형제들은 또 어떻게 지내게 됐을까? 그런데 결말은 어찌보면 이들이 가열하게 버텨온 가족사처럼, 이 이야기는 사실 끝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중국의 격변기를 보냈던 하층민 화씨네의 이야기다. 어미는 이미 자살을 했고, 그 아비마저 홧김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겨진 다섯 아이와 그들을 챙기며 생활고를 버텨내는 고모의 가열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을 바라보는 망령 화진더우의 넋두리가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그는 애잔하게 비애감에 젖는 감상적인 그런 인물보다는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다면 매번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자식들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화자일 뿐이다. 정작 고생이란 고생은 실제 고모 '화진메이'가 다할 정도로. 이렇듯 이 소설은 우리네 삶의 불행과 행복의 대비점과 교차점을 찾으려는 듯 무던히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결국 이들의 가열한 가족사는 비극적 요소로 점철돼 있지만, 그렇다고 심한 비애감이 들 정도로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매 순간의 상황이 절망적인 궁지로 몰리며 때로는 가혹하게 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애잔하면서도 처연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처량함을 보게 된다. 결국 망령이 된 화진더우를 통해서 처절한 삶에 대한 관조적인 관망, 그 속에서 고모가 겪으며 묻어나는 가열한 인간의 통속적인 삶에 대한 고독까지, 어느 것 하나 이야기는 사실 깔끄장한 요소가 참 많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매번 독립적인 에피소드처럼 진행돼 다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약점이기도 한데, 그래도 쑤퉁만이 그려낸 전형적인 하층민의 생활상은 그만의 더럽고 옹색하고 음울하고 축축하며 꽤 처연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쓰디쓴 풍경으로 갈마드는 현실이기에, 그래서 우리네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여기 '화진더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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