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퉁이 누구지?" 하며 반신반의하는 독자들이 꽤 많을 것이다. 강호도 그랬으니, 하지만 중국 현대문학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을 중국 근현대사에 담아내며 위트와 풍자로 풀어낸 소설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또 이들 작품에 방점을 찍은 <형제>를 통해서 인기를 구가한 '위화'가 있다면 그와 같은 급으로 '쑤퉁'이 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화'보다 세 살 적은 쑤퉁(63년생)이 더 유명하다 할 수 있다. '중국 문단의 선봉장', '중국 제3세대 문학의 대표자'로 일컬어지는 소설가 쑤퉁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어 실로 그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위화'를 안다면 '쑤퉁'도 알 필요가 있고, 읽어야 한다.
개성 있는 캐릭터, 생동감 넘치는 묘사,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한 그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될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나 그의 작품들에는 인간에 대한 '대서사'가 묻어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강호가 이번에 작정하고 '위화'처럼 그의 작품을 팔 요량으로 고르고 엄선해 대표작들을 컬렉했다. 주로 중고샵에서 저렴하게 구해서 총 5권을 22,000원에 득템한 책들로 <쌀>, <눈물 1,2>, <나, 제왕의 생애>, <이혼 지침서>가 바로 그 책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역사소설 <측천무후>, 여성들의 삶을 다룬 중편집 <홍분> 등 많이 있지만, 우선 다섯 권을 컬렉했다. 이에 그의 작품들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쑤퉁'의 대표작 <쌀>, 인간의 저급한 본성에 대한 이야기
먼저 쑤퉁의 대표작 <쌀>이다. 쌀?이라니, 그렇다. 인간의 주식 바로 '밥'이 배경이 된 이야기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중국의 중소 도시를 배경으로, '대홍기 쌀집' 3대의 이야기를 그렸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의 9개국에 번역.출간되며, 작가 쑤퉁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장편소설이다. 내용은 홍수가 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주인공 우룽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기만을 바라며 쌀집에 일꾼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쌀집과 인연을 맺은 우룽은 불쌍한 떠돌이에서 배신을 꿈꾸는 음모자로, 그리고 악의 화신으로 변모하게 되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악인이며, 삶은 추악하기 이를 데 없고, 세상은 지옥과 다르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증오하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격변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유장하게 펼쳐진다는 소개다.
그렇다. 이 소설에는 쌀집의 이야기를 토대로 폭력과 불륜, 음모로 얼룩진 세상.. 그 비열한 도시에서는 삶이 곧 전쟁이라는 역설 속에 야한 통속극과 참혹한 비극 사이를 오가는 작품으로 쑤퉁은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배신과 음모,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 깔끄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것은 작품의 배경인 쌀집은 문명을 상징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성적 묘사는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매혹적인 멜로 드라마로 인간 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평가다. 그래서 쑤퉁의 대표작답게 제일 먼저 만나봐야 할 소설이다. 마치 위화의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 스타일처럼 느껴지는데, 과연 주인공 '우룽'이 그 쌀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만나보자.
<나, 제왕의 생애>, 아주 독특한 가상역사소설로 재미와 상상의 조합
또 하나의 책은 역사소설 <나, 제왕의 생애>다. 물론 팩션이지만 이것은 좀더 들어가 초현실 가상역사소설이라는 점이다. 줄타기 광대가 되어 세상을 떠돈 어린 제왕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쑤퉁'의 1992년 작이다. 섭나라라는 가상의 왕조를 배경으로,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제왕이 된 한 남자의 삶을 그리며 중국의 왕실을 무대로 삼되, 시대와 인물 모두 특정 모델이 없는 가상역사소설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허구일지 몰라도 소설에 등장하는 제도들과 일화들은 중국의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은주시대로부터 청나라까지의 규범과 사건 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소설 속 세계는, 현실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가상의 세계로 그 재미가 독특하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는 평가다.
특히 왕의 인생을 다룬 작품들이 대개 권력 다툼으로 시작해 흥망성쇠를 거치다 왕의 죽음으로 끝나는 데 반해, <나, 제왕의 생애>는 제위에서 쫓겨난 왕의 광대로의 변신, 왕과 내시의 형제애, 패망 후의 또 다른 꿈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 주인공 단백은 갑작스레 제왕의 자리에 올라 세상을 지배할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왕이다. 하늘을 나는 새를 동경하며 매인 데 없이 훨훨 날 수 있기를 소망하던 단백은 음모와 정치적 투쟁, 숨막히는 궁중 생활 끝에 궁에서 벗어나 '줄타기 왕'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데.. 과연 '단백'이 꿈꾸던 제왕적 생애는 무엇이었을까? 잔혹한 권력 투쟁과 엄격한 제도, 비인간적인 규율로 이루어진 왕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광대놀음을 이 소설을 통해 만나보자.
'쑤퉁'의 대표적 중편집, 영화 <홍등>의 원작이 담긴 <이혼 지침서>
또 하나의 대표작은 먼저 <이혼 지침서>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무슨 현대적 감각의 생활형 드라마 같지만, 이 이야기는 셋 편으로 역은 중편집이다. 첫번째 이야기 <처첩성군>은 장예모 감독의 연출과 '공리'가 주연한 영화 <홍등>의 원작소설로 네 명의 처첩을 둔 천씨 가문을 무대로 축첩제도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여성의 정체성의 변화를 담아낸 이야기다. 표제작 '이혼 지침서'는 이혼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고, 세 번째 '등불 세 개'는 전쟁터가 된 마을에서 소년, 소녀가 나누는 짧은 사랑 이야기다.
특히 여기 중편집 세 개의 이야기는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과 사회성을 겸비하고 있으면서도, 강한 정치성이나 국수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쑤퉁은 그의 주특기처럼 개성 있는 캐릭터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소시민들의 일상과 기댈 곳 없는 약자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며 그 중편집이 바로 <이혼 지침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속편 격으로 여성들의 삶을 담아낸 중편집 <홍분>도 읽을 볼 만하다.
'쑤퉁'의 <눈물>을 읽지 않고 '쑤퉁'을 논하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작품은 바로 <눈물>이다. 쑤퉁을 대표하는 가장 대표작으로 '쑤퉁하면 '눈물'이요, '눈물'하면 쑤퉁이다' 말할 정도로 아주 유명한 작품 되시겠다. 혹시 여러분은 중국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을 아시는지? 바로 중국의 민간고사로 전국시대 진나라 때, 만리장성에 얽힌 전설의 여주인공 맹강녀.. 그녀가 만리장성 노역으로 끌려간 남편을 찾아 먼 길을 찾아 떠난 굴곡진 여정이 담긴 이야기, 그 전설같은 신화가 바로 쑤퉁에 의해서 이렇게 장편소설 두 권의 소설로 나온 것이다. 물론 3~4년 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문학동네에서 나오면서 더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특히 2006년 주제 사라마구, 오르한 파묵, 토니 모리슨 등과 함께 전 세계 33개국이 참여한 <세계신화총서>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집필했던 '눈물'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쑤퉁', 여기서 그는 한 여인이 욕망이 들끊는 인간의 거리를 여리지만 한없이 따뜻한 '눈물의 힘'으로 관통하며 역사와 현실,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과 넘치는 해학으로 기나긴 눈물의 여정을 쏟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눈물의 오디세이아'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인데, 국내 인기 소설가 '신경숙'조차도 대륙적으로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몽환적이면서도 기발하여 경탄해 마지않는다는 추천사처럼 이 소설은 숱한 인간군상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만리장성을 타고 이천 년을 이어온 고대설화의 숨결 속에서 인간의 대서사를 만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쑤퉁의 대표작들을 켈렉하고 소개해 보았는데, 모두 다 끌리는 작품들이자 당장 읽고 싶은 소설들이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유명작들로 강호가 고르고 골라 엄선한 작들이다. 대표작 '쌀'을 시발로 인간의 본성을 엿보고, '나 제왕의 생애'로 그 몽환적이고 광대놀음같은 제왕의 생애를 맛보고, 중편집 <이혼 지침서>로 머리를 식힌 후, 그리고 마지막 인간의 대서사인 <눈물> 두 권으로 방점을 찍는다면 어느 정도 '쑤퉁'이라는 작가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마치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를 통해서 '위화'을 알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당장 달리고 싶은 '쑤퉁'인데, 독서 순서상 다다음주는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위화' 다음으로 이제는 '쑤퉁'을 맛 볼때다. 그 맛은 '칠정육욕'이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