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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 The Yellow Se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금 또 하나의 영화가 화두다. 바로 2년 전 하드보일드풍의 스릴러로 인기를 구가했던 영화 <추격자>, 그 감독과 그 배우들이 의기 투합해서 다시 만든 영화가 바로 <황해>다. 나홍진 감독에 김윤석과 하정우 주연 그대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안 봐도 비디오라며 '추격자2'라고 불릴 정도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고, 실제 장르도 같은 범죄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황해'의 느낌과 구도는 '추격자'와 사뭇 다르다. '추격자'가 어떤 단일 구도로 쫓고 쫓는 자 딱 두 명으로 몰아가며 몰입감을 준 반면에, '황해'의 몰입감은 그 성정부터가 달랐으니 구도 또한 단일하지 않게,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중반으로 딱 나누었을 때 다소 때꾼한 대비감을 주고 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세 남자가 만든 영화 <황해>
앞 부분이 드라마적으로 흐르면서 이야기의 개연성과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중반 이후는 상황이 다소 꼬이게 만들어 산만함과 동시에 애매모호한 전개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꼬약꼬약하게 만들었다. 왜 영화가 그렇게 '절충이나 조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본다면 이것은 감독의 의도된 연출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것은 스릴러 장르가 가지는 어떤 원초적인 힘을 믿는 그만의 기법과 주연 배우들의 호연에 있었으니 특히 김윤석의 미친 원시적인 광기의 도끼질은 이 영화를 이상하게 빛내주는 시퀀스였다. 물론 이런 잔혹한 슬래셔를 못보는 사람들에겐 깔그장한 장면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는 수많은 칼질도 남지만 아주 먼 옛날 원시인들이 사냥할 때 보여준 도끼질처럼 근저에 깔린 폭력성에 탄성을 자아내니 영화 '황해'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황해를 건너 온 남자, 모두가 그를 쫒는다!
연변에서 택시를 모는 구남(하정우)은 빚더미에 쌓여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돈을 불리기 위해 마작판에 드나들지만 항상 잃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에게서 한국 가서 사람 한 명 죽이고 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절박한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남은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황해를 건넌다. 매서운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온 구남은 틈틈이 살인의 기회를 노리면서 동시에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목표물이 살해 당하는 것을 목격한 구남은 살인자 누명을 쓴 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다. 한편 청부살인을 의뢰한 태원(조성하)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구남을 처리하려 하고, 연변에 있던 면가 또한 황해를 건너와 구남을 쫓기 시작하는데…
영화의 시작은 좋은 편이다. 어디 시사보도 채널에서 자주 봐온 연변의 조선족들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듯 그려진다. 복잡하고 깔끔하지 못한 시내 전경과 삶의 고단함과 찌든 모습으로 일터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김구남(하정우)은 삶의 희망이 없다. 택시 드라이버지만 돈은 없고, 아내는 돈 벌러 한국으로 가고 오지 않자, 자신을 버리고 어느 놈과 불륜을 할거라는 그런 악몽을 꾼다. 그렇게 삶은 피폐해져 마작판에서 굴러먹는 그런 남자 구남, 그런 그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지켜보던 면정학(김윤성)이라 불리는 조선족 뒷골목 세계의 오야봉 일명 '면가'가 그에게 '저 개들처럼 쳐맞고 살지 말라'며 거한 제안을 하나 한다. "구남아, 한국 가 사람 하나 죽이고 오라" 면서 말이다. 이에 어이없어 하는 구남은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의 삶의 돌파구로 돈도 받고, 아내도 찾을겸 한국행을 감행한다. 바로 면가가 죽이라고 한 '김승현'의 엄지 손가락을 가져오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중반까지 살인과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구남'의 이야기
한국으로 밀항은 그렇게 편하지 못했다. 그래도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99-1'라는 주소 하나 딸랑 들고 서울까지 온 구남, 그때부터 그 주소지에 있는 빌딩을 소위 정찰한다. 목표물을 알아내고 그 타겟을 몇 날 며칠을 밖에서 예의주시하는데, 하지만 사람 죽이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엄지 손가락까지 잘라야 하니, 그에게는 곤욕이 아닐 수 없고 기한 내까지 일을 마무리 질려면 초조함이 밀려 올 뿐이다. 그러다 범행을 시도하려던 그날 새벽,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조선족 2명이 그 빌딩에 먼저 들어가 김사장을 죽이려 하는 것을 본 구남, 이어서 밖에서 대기중이던 운전기사까지 빌딩에 잠입,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본 구남도 그 빌딩에 들어 갔다가 운전기사가 김사장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다. 구남은 필사적으로 그놈과 싸워서 물리치고 결국 죽은 김사장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낸다. 그리고 밖에서 울리는 싸이렌 소리, 그가 살인자로 몰리는 순간이기에 그는 그곳을 탈출하면서 인생은 단단히 꼬여버린다. 바로 살인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가 떨어진 거. 이때부터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중반까지 2시간 반의 긴 런닝타임에서 한 시간여 정도를 이 부분에 할애했다. 다른 인물은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오직 구남만의 동선을 쫓으며 그가 어떻게 살인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초조한 심리 상태와 한 인간이 궁지에 몰린 극단의 상황을 보여준 드라마적 전개로 나름 눈길을 끌었다. 즉 영화적으로 의도된 연출이 아닌, 실제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소위 초짜가 갖는 자연스런 상황 전개 등이 와 닿는다. 그런데 문제가 이제부터 터진다. 바로 살인용의자로 몰린 구남이 쫓기면서 하나 둘 스토리가 산만하게 꽉 조이지 못하고 전개가 된다.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구남은 어찌됐든 누명을 벗고 싶어 사투를 벌이지만, 힘도 빽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조선족 출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기일 내에 배를 타서 다시 연변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그에게 지상최대의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김사장이 죽은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면서 또 다른 인물이 전면에 나선다. 바로 죽은 김사장과 막역한 사이로 형 동생하며 지냈던 김태원(조성하)이라는 인물, 그는 말쑥한 양복차림에 젠틀한 신사처럼 굴지만 실은 조직폭력배를 거느린 무서운 남자로 그가 이번 청부살인사건의 주범이다. 즉 그가 김사장을 죽이라고 시킨 것인데,-(이건 스포가 아니다)- 이게 조용히 처리됐어야 할 일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자 증거인멸을 위해서 조선족 용의자 '구남'을 제거하라 지시한다. 경찰의 포위망도 뚫어야 하고, 조직폭력배의 집요한 추적도 벗어나야 하는 구남에게 있어 일은 단단히 꼬여만 간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그는 그렇게 극단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구남'을 잡으려는 중반 이후의 이야기 전개는 꼬여만 갔다.
그러면서 여기 또 하나의 인물 바로 연변에서 구남에게 사람 하나 죽이고 오라고 지시한 면가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것이다. 면가도 또 다른 거래, 즉 태원이 구남을 추적하면서 일이 꼬이자 이 소식을 접한 면가가 직접 황해를 건너 온 거. 자신이 거느린 야만인들 같은 조직을 대거 대동하고 손에 도끼 하나씩 들고서 무람없이 굴며 위세를 떤다. 그러면서 나도 구남을 찾아야 하고, 그를 죽여줄테니 돈을 달라는 요구에 둘은 그렇게 협상같은 거래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타겟인 '구남'을 두고서 벌인 거래는 이들의 조직이 서로간에 동상이몽을 꿈꾼 채, 서로의 힘을 과시하듯 칼질과 도끼질의 향연을 보여주며 광포한 현장을 만들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며 이들은 극단을 향해 달려간다.
과연 구남은 살인혐의를 벗고, 아니 벗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을 탈출해 무사히 연변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그렇게 자신을 이 지경까지 만든 면가를 그는 두고만 볼 것인가? 또 서울의 조직폭력배와 조선족 폭력배 두 세력 간에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되고, 아니면 누가 죽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은 후반에 미친 광기를 보여준 그들에게 답이 있다. 이렇게 영화는 어찌보면 단순한 구도다. 어렵게 살며 삶이 피폐해진 한 남자가 궁지에 몰리자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살인은 안 했지만 현장에서 엄지손가락을 자른 뒤 살인용의자로 몰리며 도망자 신세가 된 남자의 이야기, 그 속에서 이 남자를 쫓는 두 조직폭력배들의 사람 잡기 거래로 인한 싸움과 미친 광기를 보여준 이들의 그림에서, 과연 주인공 구남이 사느냐 죽느냐가 관건일 수 있는 게 이 영화의 플롯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결말 때문에 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전개된 구도를 봤을 때 퍼즐 조각을 맞추듯 딱딱 들어맞지 않는 이상한 괴리감을 준다. 그렇다고 2시간 반이라는 긴 런닝타임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그렇게 지루한 감은 없다. 특히나 중반 이후에는 눈을 떼지 못하게 과도한 칼질과 도끼질이 솔찮아 적절한 근저의 쾌감 유지를 해준다. 그리고 중반 전까지는 오로지 구남에게 초점이 맞춰져 그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를까 하는 동선을 쫓게 하고, 살인용의자로 도망자 신세가 된 그의 심경과 상황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치 영화 '도망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은 중반 이후 갑자기 스토리가 크게 벌어진 것처럼 유기적으로 잘 조화가 되지 못하고 산만한 느낌마저 주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아쉬움을 남겼다.
액션의 스릴감은 좋지만, 이야기적 스릴감이 아쉬운 영화 <황해>
2시간 반에서 30분을 잘라내 2시간에 더 내밀하게 담아냈다면 모를까.. 나홍진 감독이 의도한 대로 액션과 긴박감 넘치는 스릴은 차치하더라도 내용 전개의 무게를 배분하는데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제작비 100억대가 투입되고, 촬영 기간 300일 이라는 긴 시간동안 만들어내며 고생한 흔적은 영화 곳곳에서 묻어난다. 특히 자동차 추격씬과 충돌씬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나름 임팩트있게 그려내며 제대로 된 사실적인 연출이었고, 올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하드고어류 슬래셔급 영화 '악마를 보았다'처럼 과도한 살인적 액션의 시퀀스도 좋았다. 칼질과 도끼질,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뼈다귀로 내리찍으며 사람을 몇몇 죽이는 면가의 모습은 정말 한 편의 원시적이고 광포한 예술을 보는 듯 해서 쾌감을 자아내게 했다.
아무튼 이 영화 <황해>는 전작 '추격자'의 아우라 때문이라도 좋든 싫든 자신들의 또 다른 영화기에 주목을 받고 있다. 평들 또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전작 '추격자'를 누를 만큼 임팩트했다, 눈에 떼지 못할 정도로 재밌었다, 하지만 내용도 없고 스릴도 없었다, 스토리가 산만해 중반 이후 너무 어이가 없다. 마지막 결말은 또 뭥미?까지.. 말들이 많다. 그리고 강호도 이중 어느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의론이 있긴 하지만서도, 그래도 '추격자2'가 될지도 모른다는 중의적 의미의 이 영화 '황해'는 나름 볼만하긴 했지만, 범죄 스릴러로써 단단히 조이지 못한 이야기의 힘이 빠진 느낌은 있다.
하지만 영화 '악보'때처럼 고어류 액션의 시퀀스는 극 사실주의를 보여주듯 인간 근저에 깔린 폭력성을 보이며 시선을 끌기도 했으니, 나름 볼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대신에 단단히 조이지 못한 이야기적 측면의 스릴러 장르로써 아쉬움이 계속 남을 뿐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고 개인적인 의론이지만 전작 '추격자'에서 김윤석이 "니 4885지?"의 대사가 뇌리에 남듯, 이 '황해'에서는 "니 한국 가 사람 하나 죽이고 온나"가 남을 듯 싶다. 왜냐? 이것이 이 영화의 열쇠이자 모든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대사는 입가에 당분간 맴돌 것 같다. 구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