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빨갛다고 생각하는'레드'(Red)가 의미하는 바는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바로 사람의 피 색깔처럼 무언가 강렬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함의로써 '퇴직한 그리고 극렬하고 위험한'도 내포하고 있어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느낌이 얼추 온다. 그런데 이런 짧은 제목의 '레드'라는 영화는 강렬함과 위험함 대신에 무언가 관록이 물씬 풍기는 비주얼로 다가온 영화다. 레드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 색이 퇴색돼 오히려 '관록'이 묻어나는 느낌의 영화가 바로 <레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레드'의 출연진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못해, 우리에게 익숙한 헐리웃 대표 노장들이다.
네 명의 어르신이 나선 첩보물 <레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죽기 힘든' <다이하드>계의 영원한 아이콘 '브루스 윌리스'를 비롯해서 <쇼생크 탈출>과 <세븐>, <다크 나이트> 등에 출연했지만 정작 옆집에 마음씨 좋은 흑인 할아버지같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모건 프리먼'과 생김새는 물론 이름 조차도 벌써부터 포스가 넘치는 <레 미제라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존 말코비치', 그리고 강호가 <엘리자베스 1세> TV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역으로 나와 인상 깊게 봤었던 '헬렌 미렌'까지.. 이렇게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아니, 영화를 잘 안보는 이들도 잘 아는 배우들이 대거 포진한 영화다. 물론 이런 배우들이 모두 나온다고 해서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역전의 용사들이 뭉쳐서 나온 영화가 이번 <레드>다.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CIA 사상 최고의 특수요원 '프랭크'(브루스 윌리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장 괴한들의 습격을 당한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대한 위협을 직감하고, CIA 최고의 두뇌 '조'(모건 프리먼)와 폭탄 전문가 '마빈'(존 말코비치), 킬러계의 대모 '빅토리아'(헬렌 미렌)와 함께 힘을 합치기로 한다. 한편, CIA 특수 요원 '쿠퍼'(칼 어번)는 살려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실력자, 일명 ‘레드’를 제거하라는 특별 지령을 받고 이들을 맹추격하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무차별 공격 속에 CIA 사상 최고의 레전드팀 부활을 선언한 프랭크 일당은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CIA 조직을 향한 지상최대의 반격을 선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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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고보면 줄거리는 참 간단하니 심플하다. 뭐.. 별거 없다. 헐리웃 액션 영화들이 어찌보면 제일 많이 차용하는 소재중 하나인 바로 '첩보물'중 하나다. 즉, 현직이든 전직이든 이들 첩보원 출신이 독고다이로 때로는 여기처럼 의기투합해 적을 엣지있게 일망타진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첩보물에도 종류는 각양각색이다. 묵직하게 배신과 음모를 다루는 스릴러적 영화가 있는 반면에, 화려한 볼거리 액션으로만 점철된 첩보물, 또 스릴러와 액션을 결합한 첩보물에다, 조금은 우스우면서도 무언가 컬트적 냄새가 나는 첩보물까지.. 다양해서 이런 첩보물을 보는 팬들은 즐겁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에 나온 <레드>는 거의 후자 쪽이라 할 수 있다. 즉 진중하고 묵직함 대신 가벼운 유머식의 컬트적 분위기를 덧대어 만든 첩보물이다.
강렬함을 벗고 관록의 노익장을 자랑한 '레드'
그런데 이 영화는 올해 개봉해서 나름 히트쳤던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감독 제작하며 역전의 용사들이자 왕년의 액션 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해 화제가 되었던 <익스펜더블>과 비교하게 된다. 익스펜더블이 정극같은 액션 첩보물이라면, 여기 <레드>는 왕년의 액션 스타는 아니지만 헐리웃 영화계에서 이제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을 내세우며 정극보다는 마치 촌극적인 해프닝처럼 다소 유머스럽고 컬트적으로 그려낸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언가 묵직한 첩보물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영화기도 하지만 대신에 <레드>는 묵직하고 강렬함 대신 관록의 컬트적 첩보물이라 할 수 있다.
다분히 이런 요소는 2003년 세 권으로 출간된 DC코믹스의 동명만화가 원작이라는 점에서 작용한다. <트랜스포머>, <G.I.조>, <솔트>의 제작자인 '로렌조 디 보나벤츄랴'가 이 영화를 제작시 서사구조, 등장인물 등 원작의 주요 골격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전언이다. 그래서 이런 그림들이 나온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그림들중 첩보물에서 빠질 수 없는 총격신은 화끈하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특히 마빈으로 나오는 '존 말코비치'가 날아오는 수류탄을 다시 받아 친다든지, 총알이 로켓포를 뚫고 터지는 등 지극히 영화적인 요소가 있다. 보는 순간 뭥미?! 그러면서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프랭크는 자신을 죽이려는 현직 CIA를 피해 다니면서 같이 동행하게 된 전화 상대녀 '사라'와 함께 예전의 용사들 조, 마빈, 빅토리아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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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발코비치' 이름의 포스에 코믹을 더하다.
그럴 때마다 재미난 포스를 보여주는 노익장 배우들, 특히 존 말코비치의 '마빈'은 정말 의외로 웃긴 캐릭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 얼이 빠진 듯해 엉뚱한 모습을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 노장들이 뭉친 전직 CIA는 현직 CIA의 음모를 파헤치고,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한껏 관록을 자랑한다. 이렇게 영화는 어찌보면 꽤 강렬하게 다가올 듯한 '레드'지만 그런 강렬함 대신 코드 네임 '레드' 즉 일급 제거 타겟이 된 그들이 어떻게 위기를 재밌고 컬트적으로 벗어나는지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마빈'의 코믹까지 잊지 않는다. 이 영화가 그렇다.
그래서 영화 <레드>는 그리 강렬한 액션 걸작은 아니지만, 또 이들이 의기투합하는 과정의 전개 등이 조금은 루즈해 임팩트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기존의 첩보물이 보여주는 빠른 전개와 액션 시퀀스에 익숙해서 그렇기도 한데, 대신에 이 영화는 다분히 노익장을 과시한 배우들의 아우라에 코믹이 더해지고 무언가 촌스럽고 컬트적이지만 '관록' 만큼은 묻어나는 첩보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제목의 '레드'가 그렇게 뜨겁고 위험하고 강렬함에서 벗어나 퇴색이 될 수도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여기서 퇴색은 좋은 의미의 퇴색이다. '관록이 묻어난 퇴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