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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ㅣ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인간은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는 법이다. 없다해도 남들한테 말하기 거북하고 밝히기 힘든 속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라면 어떨까.. 그 막중한 국정을 운영하는 내내 어떤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다보면 또 여론과 대신들의 거센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군주로서는 정말 감내하기 힘든 상황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속내를 아니 그 비밀을 자신이 아끼던 대신에게 비밀편지를 통해서 의견을 조율하며 국정을 운영해온 군주가 여기 있다. 바로 조선시대 학자풍의 개혁군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를 이끌었던 '정조'(正祖, 1752~1800)다. 그리고 그 '정조의 비밀편지' 즉 『정조어찰첩』이 2009년 2월 세상에 공개됐을때 역사학계는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을 끌며 기존 사료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잘 알려진 노론 벽파의 수장이었던 '심환지'(沈煥之, 1730~1802)에게 정조가 사망하기 직전인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4년 동안 한 개인에게 보낸 6첩 297통의 어찰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신하나 친족에게 보낸 어찰첩까지 합치면 300여 첩이 넘지만, 여기서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4년간 보낸 비밀편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조어찰첩>이 갖는 의미로서 기존의 설과는 다르게 정조가 노론벽파를 중용하여 심환지가 조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였던 점과, 정조 말년의 정치적 격동기에 집중되어 있어 더욱더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그래서 이 <어찰첩>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라고까지 학계는 보고 있다. 군주가 지속적으로 폐기하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세계사를 뒤져봐도 찾기 힘들 정도로 전무후무한 케이스다. 바로 심환지가 어떤 이유에선지 왕명을 거스리고 보존한 덕택에 그 후손가에 의해서 이렇게 현존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297통이라는 많은 양이 하나의 첩으로 구성되어 오직 한 사람에게 보냈다는 것이 사료로서 더 풍부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이런 <정조어찰첩>을 두고 다른 역사학자들과 연구해온 현직 한문학 박사로 재직중인 '안대회'교수가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썼으니.. 바로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 <정조의 비밀편지>다. 이에 그 '정조의 비밀편지' 를 간단히 들여다보자.
첫 장은 윗글의 서두처럼 1장 『정조어찰첩』의 출현을 다룬다. 이 어찰첩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났으며 그 어찰첩의 개황과 공개 과정을 밝히고 있다. 특히 심환지 후손가 심천보씨등 잘 보존해온 상태가 사료로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후손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2장 '국왕의 비밀편지'에서는 역대 국왕의 어찰문화를 되짚어보며 임금이 직접 쓴 편지는 어찰(御札),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御筆),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御製), 세자나 세손이 직접 쓴 글씨는 예필(睿筆), 직접 지은 글은 예제(睿製), 직접 쓴 편지는 예찰(睿札)이라고 기본 용어를 설명한다. 그리고, 세손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정조가 여덟 살 이전 원손 시절에 큰 외숙인 홍낙인의 부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원손예필'을 선보이며 예의 그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특히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편지를 활용했던 편지광으로서 모습을 이야기한다.
3장 '수신자 심환지와 비밀편지 왕래 과정'을 통해서는 수신자 심환지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한다. 인용해보면은.. 자가 휘원(輝元)이요, 호가 만포(晩圃)로서 1771년 문과에 급제했다. 정조대의 대신인 심이지, 심리지, 심풍지와는 육촌지간이었을 만큼 명문가였으며 언론과 관료의 감찰을 담당하는 부서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준엄하고 격렬한 주장을 펼쳐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심환지는 정조 초년부터 김종수와 함께 정순왕후의 외척집안인 김구주를 좇아 혜경궁 홍씨의 외척집안인 홍봉한을 공격하는 파벌에 가담했다. 이후 줄곧 강경한 노론 벽파로 활동했다. 그가 조정에서 큰 힘을 발휘한 때는 58세 때인 1787년으로 그는 부교리로서 중앙정계에 복귀했고, 이후에도 서명선을 비롯하여 이가환 등을 매섭게 공격하는 원칙론자로 활동했다. 그가 정조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정계의 핵심적인 요직을 맡기 시작한 것은 환갑을 넘긴 1792년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그는 도승지, 이조참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정조사후 영의정까지 오르며 그는 당시 권력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런 그에게 정조는 비밀편지를 보내고 그 왕래 과정 또한 비밀스런 연락책을 통해서 전달했다고 한다. 물론 비밀편지로서 읽고서는 없애라는 지시에 심환지는 의도적으로 묵살한다. 실수나 특별한 목적으로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350여 통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정조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거부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미스터리고 현재로서는 비밀편지를 보관한 심환지의 속내를 밝힌 문건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추정한다면 노론 벽파라는 한 정파를 이끄는 리더로서, 심환지가 정치적 보험을 드는 의미로 보관했다는 견해다. 즉, 정조어찰은 정조의 정치적 입장이 노론 벽파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동지적 관계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해줄 만한 좋은 증거물로서, 이를 확보해두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든든한 보험인 셈이었던 것이다.
4장 '어찰과 정치가 정조'에서는 말 그대로 어찰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이어진다. 즉 정조가 심환지에게 4년동안 보낸 그 어찰에는 어떤 내용과 의미들이 있는지 편지를 소개하며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은 관료의 인사문제와 정치현안, 그리고 개인의 신상과 감정에 관한 문제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관심사를 많이 언급된 순서대로 뽑아본다면.. 정치 현안을 주제로 논의하고 지시하거나 막후조정, 관료의 인사 문제를 논의하고 지시, 상소와 차자등 임금에게 올리는 각종 문건의 동향과 내용을 논의, 정계의 여론 동향을 탐문하고 논의, 서로의 안부와 가정사, 관료의 비리와 정조의 정국 운영, 심환지의 관직 문제와 진퇴문제, 대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내용, 정조 자신의 성격과 인간됨 그리고 자신의 안좋은 건강문제까지.. 이렇게 그 내용과 관심사는 다양하다.
바로 이를 통해서 <어찰첩>은 막후정치의 실상을 밝힌 한마디로 비공개를 전제로 한 '정치 문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어찰첩을 통해서 정조가 다양한 얼굴을 지닌 군주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기존에 굳어진 학자 스타일의 군주로 세심하고 온화한 인품의 제왕은 물론 강경한 의리를 표방하는 당파를 키우려 했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또한 남과 각을 세워 정사를 처리하는 태도를 옹호하면서 각 당파가 화합할 것을 유도하는 동시에 제 목소리를 분명하게 낼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개혁이미지에 방점을 찍는 정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강경한 주문속에서도 그는 비밀편지에서 감동과 유쾌한 정치를 이끌려는 정서적 도구로 활용하며 신료의 건강과 가족의 안부를 챙기는등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엿보인다.
5장 '어찰첩에 드러난 정조의 인간적 면모'에서는 바로 어찰첩을 통해서 세상에 회자된 새로운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자신은 일 중독증에 걸렸다고 할 만큼 늘 정무에 바쁘다고 토로한 그의 사생활 부터해서 또한 자신의 성격은 다혈질적이고, 흥분을 잘하며, 조급해서 이른바 '태양증(太陽症)이라고 자체적으로 분석해 그 때문에 화병도 자주 나고 가슴의 심한 통증도 발생한다고 토로하며 이 기질은 고치기 어렵다고 고백까지 한다. 이렇게 속내를 다 드러내다 보니 정조는 흥분을 잘하고 거친 언사를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편지에서도 여러 대신들을 지칭하며 누구는 '호로자식'이라는등 원색적인 비난을 가한 모습에서 제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와 저명한 명사라도 정조의 입 앞에서는 온전한 인간은 없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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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치행위가 늘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 아니듯 자신이 솔선수범하며 보여준 정조.. 때로는 가볍고 사소한 내용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예를들면 사안의 무게를 덜기 위해서 가벼운 편짓글에 자주 등장하는 굳어진 표현중 하나인 "껄껄(呵呵)"이란 가볍게 웃는 의성어를 구사했다. 지금으로 치면 ㅎㅎ나 ㅋㅋ정도랄까.. 이렇게 정조는 인간적인 유머까지 편지에 담아내며 심환지와 담소를 말년에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은 6장 '편지의 문장과 언어'에서 정조어찰은 형식과 문체, 내용에서 독특한 개성을 발산한다며 설명한다. 즉, 매우 유려한 한문으로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지만 이두문자를 구사하면서 거의 우리 문장을 한자로 바꿔놓은 수준의 글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급하게 쓰느라고 미처 문체를 돌볼 겨를이 없는 정황을 보이는 편지도 적지 않다. 또한 어휘의 구사에서도 전아한 말에서부터 아주 속된 욕설에 가까울 정도의 비속한 표현까지 다양하게 구사하며 속어 '뒤죽박죽'과 속담의 적절한 구사를 들어 그의 편지는 휘황찬란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7장 '만년의 병세와 독살설'에서는 예의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정조의 독살설에 대한 언급이다. 바로 대중역사 연구가 '이덕일'소장이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제기한 그 독살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독살에 대한 정황만 있을뿐 확신한 근거나 논리가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정조어찰에 나온 편지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 말년에 심환지에게 보낸 4년간의 편지를 보면 정조 본인 스스로 몸에 종기뿐만이 아니라 여러 병증이 섞여 병세가 안좋아 지고 있다고 수시로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그는 자연사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어찰첩>의 전체 내용을 분석해보면, 1795년 '벽패환국' 뒤로는 정조에게 심환지와 벽파는 적대적 관계라기보다는 비판적 협력자로서 정치적 동반자 관계라고 봐야 할 만큼 최측근 신료였다는 것이고, 그래서 노론 벽파가 정조를 독살하려는 정치적 음모를 당파적 입장으로 세울 상황이 아니라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튼, 독살설의 진실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언급하기로 한다.
이렇게 '정조의 비밀편지' 즉 『정조어찰첩』의 각 내용을 살펴보았다. 사실, 그렇게 두꺼운 책은 아니다. 200여 페이지도 안될 정도로 얇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난 소설책을 보듯 게눈 감추듯 막 읽어내려갈 책이 절대 아니다. 한 페이지마다 사진과 글을 읽고 다시 읽는등 그 내용 분석을 좇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페이지 사이마다 키워드 속의 키워드로 '선조의 밀찰과 정조의 발문', '정조 후반기의 정치 지형: 시파와 벽파', '정조가 어찰을 보낸 사람들', '정조의 새해편지', '이명연과 그의 상소', '정조어찰과 호락논쟁', '지방 정보를 캐묻는 정조의 어찰', '「오회연교」의 표적', '정조가 죽던 날의 풍경'까지.. 역사속 지식들을 제공하고 있어 의외로 시간이 걸리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도 읽는 내내 이것은 정조의 기본 이미지와 부합되고 또 이런면은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았다는 점에서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것은 어느 편지는 유머와 인정을 베풀듯 가볍게, 어느 편지는 진중하게 아주 정제된 문장으로 내용을 정확하고 조리 있게 표현하는 능력을 구사하며 높은 수준의 글솜씨를 자랑한 군주 정조.. 그 수준은 어느 군주보다 유례가 드물게 탁월했으며 문학적으로도 우수하여 작품성이 뛰어난 편지가 곧잘 눈에 띄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어찰은 정치사 사료로서 비중이 매우 높은 동시에 문학과 서예, 궁정 문화와 생활사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도 조명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정조의 정적으로만 기존에 알고 있던 노론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4년간 보낸 그 편지속에는 정조의 일거수일투족과 그가 말한 모든 내용이 대부분 정치적 의도를 구현한 일종의 정치적 문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원천적 사료에 속할 뿐만 아니라, 기록학적으로도 충분히 신뢰한 만한 문서라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결국, 200여 년전에 죽은 정조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비밀스런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비밀은 사람들의 묘한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더욱이 권력의 최정점에서 노련하고 완숙한 정치력을 발휘한 군주의 비밀이었기에 더욱더 그렇다.
그리고 그 비밀이 밝혀진 순간, 기존의 근엄하고 진지하고 직관적인 사료가 주는 역사를 좀더 이완시키며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정조의 비밀편지' 즉 『정조어찰첩』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어찰첩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익숙한 정조의 모습에 더해 새로운 정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 아니『정조어찰첩』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