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Bedevill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올해들어 '복수'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들이 대세고 또 인기리에 있다. 멀리가지 않아도.. 아직도 최고의 상종가를 치고 있는 새로운 액션느와르를 선보인 <아저씨>나 하드고어류 슬래셔급의 잔혹한 복수극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전 개봉한 메디컬적인 복수극 <죽이고 싶은>까지.. 연이은 복수 시리즈의 향연들이다. 그리고 여기 이런 복수극의 바톤을 이으며 나온 영화가 있다. 바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복수의 주인공은 바로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여자라면 사회적 약자로 보고, 복수를 가하는 행위의 주체보다는 객체로서 주로 당하는 쪽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런 복수를 하는 이는 그 여자와 관련된 인물인 경우가 보통 다반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수를 당하는 여자가 아니라 복수를 해 살인을 저지르고 마는 '김복남'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전개 즉, 살인사건의 전말을 보여준 것이 이 영화의 플롯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다. 보통이 아니라면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이 여자는 그저 그렇게 평화롭지만 고립된 섬에서 나고 자란 여자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 섬에서 한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며 갖은 무시와 폭력에 시달려왔다. 그러면서 그 억압된 감정이 폭발한 순간.. 과연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왜 그녀는 복수를 하게 된 것일까.. 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해원(지성원)은 휴가를 받아 어렸을 때 잠시 머물렀던 무도로 향한다. 어릴 적 친구 복남(서영희)이 해원을 환대하지만 다른 섬주민들은 해원의 방문이 반갑지만은 않다. 복남의 배려로 편안한 휴가를 즐기며 서울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어가던 해원에게 어느 날 부터인가 복남의 섬 생활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남편에게 매를 맞고,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육욕에 집착이 강한 시동생에게 성적인 학대까지 받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섬사람 모두 복남이 처한 상황을 외면할 뿐이다. 해원 역시도 자신과 딸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는 복남의 간곡한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게 된다. 이제 무도에서 복남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복남은 이 섬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고 마는데...



이렇게 영화는 '섬'이라는 고립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을 그린 잔혹 스릴러다. 그리고 그 섬에 주인공 복남의 소싯적 친구 해원이 휴가차 찾아오면서 영화는 그 해원을 방관자로 놓는다. 그런데 해원은 이미 도시 생활을 통해서 그녀의 삶은 관조적이면서 냉소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였다. 이 섬에서 조차도.. 친구 복남이 그렇게 남편에게 매일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고, 시동생에게 강간을 당하는등 복남의 삶은 찢겨질대로 찢겨졌다. 그래도 둘은 어릴적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며 섬에서 나날을 즐긴다. 그런데, 복남은 이런 나날도 잠깐이다.

가면 갈수록 복남을 옥죄어 오는 폭언과 폭행, 시어머니를 비롯해 몇몇 할매까지 자신을 무시하고 소 돼지마냥 일만 시킴에 울분을 삼킨다. 심지어 자신의 어린 딸이 남편과 그런 성행위까지 한다는 사실(친딸은 아니다)에 묵과해온 자신을 탓하며.. 친구 해원에게 이 섬을 딸과 함께 탈출할 수 있게 도와달라 요청한다. 하지만 친구 해원은 자신이 그래왔듯 방관자로서 불친철하게도 도와주질 않는다. 결국, 복남과 딸은 단독으로 섬을 탈출하려 시도하고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온갖 폭언과 폭행, 남편을 비롯해 시어머니와 할매들에 둘러쌓인 채 시달리다 딸까지 아비에게 맞아 넘어지다 돌뿌리에 부딪쳐 죽고 만다. 이때 복남은 완전 미쳐버린다. 이판 사판이다. 즉, 딸을 잃은 어미의 복수극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복수를 감행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과 시동생이 뭍에 나간날, 딸을 잃고나서 미친년 마냥 밭에서 일에 매진한다. 그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곳에서.. 그리고 쉬고 있던 할매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태양을 오래 째려봤더니 태양이 말을 하네유.." 그리고서 낫을 들고 그들을 죽인다. 이때부터 섬은 핏빛 복수극으로 달린다. 이런 할매들은 물론, 시어머니와 섬에 돌아온 남편과 시동생까지 모두 낫을 들고 죽이고, 특히 남편에게 가한 살인행위는 이 영화에서 백미로 꼽고 싶을 정도다. 그 잔혹함이 <악마를 보았다> 못지 않다. 낫으로 수 십번을 내리치는 난도질과 죽은 사체에게 된장이나 쳐바르라며 윽박지르는 모습에서 복남은 그 심저에 깔린 복수심이 극에 달한 것이었다. (아래 그림)



그리고, 이런 살인의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친구 해원.. 그녀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도망을 친다. 복남은 그런 해원를 쫓아가 같이 죽이려 하는데.. 과연, 복남이 저지른 이 잔혹한 '낫' 살인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말은 영화의 메인 포스터에 나와 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외딴 섬 무도, 여섯 가구 아홉 명이 무참하게 살해된 끔직한 사건을 다룬 잔혹 스릴러다. 그런데 그 강도가 센 편이다. 초 중반까지는 복남이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고 시동생에게 강간까지 당하는등 탈출을 꾀하는 그림이었다면.. 섬 탈출 실패후 딸을 잃고 나서는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폭발하면서 하드고어적 슬래셔급으로 급변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복남의 복수극 그림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그림은 강도가 꽤 세다는 <악마를 보았다>와 비슷하거나 좀 덜해도.. 이른바 박찬욱 감독의 <친철한 금자씨>에서 계보를 이은 '여성 잔혹사'라는 측면에서 새롭다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한번의 여자의 복수를 그리며, 비록 약자지만 억압과 핍박의 감정이 폭발했을 때 자신에게 지극히도 불친절했던 그들에게 응징하는 핏빛 복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극중 김복남역의 '서정희'는 그 큰 눈망물과 둥그랗고 서글서글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햇빛에 그을린 섬 아줌마로 분연하며 섬뜩하면서도 잔혹한 진실의 폭발을 품고 있는 '김복남'이라는 캐릭터를 입체감있게 그려내며 호연을 펼쳤다. 그 어느 여배우가 이런 역을 맡거나 해낼지 의문이 들정도로 제격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친구 해원역의 '지성원'도 관조적이면서 냉소적인 방관자로서 도시민적 현대인의 모습을 잘 선보였다.

이렇게 영화는 지극히 불편한 소재들,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는 한 여자와 근친에게 강간당하고 남편의 불륜과 패륜을 눈 감고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는 삶.. 그런 모든것이 약한 존재라는 여자라는 신분과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억눌린 감정이 쌓이고 쌓이는 순간, 그 섬에서 잠자던 휴화산이 터지듯 그 여자는 그 섬의 진실을 터트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들은 김기덕 감독 밑에서 일했던 조감독 출신의 장철수 감독이 연출하며 칸국제영화제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10에서 3개 부문(작품상, 여우주연상, 후지필름 이터나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영화는 많이 홍보되거나 극장에 주류급 영화들처럼 많이 걸리지 않은 느낌이다. 10억 미만의 저예산으로 찍었다던 이 영화가 어찌보면 사장될지도 모르지만, 불편하고도 끔직했던 그 섬의 진실을 꼭 만나보시길 바라며.. 한 여자의 핏빛 복수극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들과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했던 그 서러움.. 그리고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철한 현대인들의 방관자적 모습까지도.. 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소위 낫들고 설치는 그런 잔혹한 복수극이라 비아냥되도 그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폭발한 순간 "난 악마를 아니 악녀를 보았다." 불친절한 세상을 향해 휘두른 그 낫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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